축이 낮은 소리로 말했다. 집사자 하나가 제반에 받쳐들고 온 밥그릇을 두 손으
로 받들어 저 안쪽, 신주에게서 가장 가까운 자리 한가운데 조용히 놓는다. 그
'메'와 '갱'옆에, 생시의 밥상에 그러하듯이 나란히 놓인 숟가락과 젓가락을 바
라보는 순간, 이기채는 비애가 사무쳐 통곡하였다. 아아, 어머니.애처로우신 어
머니. 육류에,어물에, 웃기 얹은 떡, 그리고 온갖 적이며 전, 저오가와 과일들
을 둥실하게 모양내어 높이 괴어 올린 제물들이 모두 한낱 허세로 보일 만큼 그
숟가락과 젓가락은 남루하고, 정답고, 절실하게, 그리운 체온을 눈물겹게 머금
고 있었다. 그것은 끝내 이승을 다 놓고 가지는 못하는 청암부인의 정이, 이승
에 남아 우는 애자 이기채의 정을 구체적으로 떠먹는 숟가락일터이니. 이 숟가
락이 아니라면 무엇으로 혼백과 생자는 서로 살이 닿는 구체를 느낄 수 있을 것
인가. 폐부가 찢기어 나가는 것 같은 아픔에 가슴이 미어져 섧게 섧게 우는 이
기채는 초헌을 올리고, 집사자는 메 그릇의 뚜껑을 열었다. 무덤의 봉분처럼 그
릇 전 위로 둥그렇게 담긴 소박한 밥의 흰 빛이 서글프고 아득한 저승을 머금고
있는데, 거기서 모락모락 기운 없이 오르는 여린 김은 흡사 먼 속의 향연같이
비치었다. 그러다 어찌보면 또 그것은 허공에 어리는 시름없는 이슬인 듯 일룽
거리는 촛불빛을 받으면서 이윽고 덧없이 스러지곤 하였다. 유유세에차아 이임
오 지워얼 임자아사아악 이시입구이일 계에해 고애애자아 기채에 가아암소오고
오우우 혀언비이 유우이인 여엉주우 기임씨이 일워얼부울거어 어엄그읍삼우우
숙흐흥야야처어 애모오부울녀어엉 그은이이 처엉자아악서어수우 애애처언 서엉
사아 사아앙 햐아앙 축이 이기채의 오른편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서쪽을 바라보
고, 깊이 울리는 목소리로 낭랑하고 구슬프게 축문을 낭독하였다. 월명사는 꽃
을 뿌리며 도솔가를 불러서 부처의 감응을 받았다 하는데, 제사에서는 어동육
서·홍동백서, 형형색색의 음식과 과일이 혼백에게 드리는 꽃이요, 도솔천까지
갔다는 그 꽃의 향기는 항료의 푸른 연기이며, 월명사가 지어 불느 그 노래는
바로 이 제사의 독촉이 아니라. 빛깔과 향기와 음향이 지극함으로 어우러져 귀
신과 인간이 서로 상응 교감하는 것이 어쩌면 제사일 것이다.
"계미년 동짓달 갑자삭 이십구일 무오일에 슬프고 외로운 아들 기채는 감히 밝
게 돌아가신 어머님께 고하나이다. 해와 달이 한자리에 머물지 않아 어느덧 삼
우가 되었습니다. 밤낮으로 슬피 사모하여 편하지 못하매, 삼가 맑은 술과 음식
으로 정성을 다하여 제사를 오리오니 부디 흠향하옵소서."
하는 말씀을 사뢰어 읽는 축문을 바치며 이기채는 엎드려 곡하였다.
"관 좋은 것 다 쓸데없다. 물 많은 땅 속에 들어가면 이내 썩고 마는 것. 관보다
는 땅이 좋아야지. 그래서 다 명당들을 찾는 게야. 허나, 명당, 명당 해도 선조
의 정신을 모으는 후손의 마음 자리가 제일 큰 명당이지. 그 마음 자리가 썩어
있으면 이백 년 송 관목이 다 무엇이고, 좌청룡,우백호가 다 무엇이야, 무단한
공염불일 뿐."
이라고 청암부인은 말했었다. 부인의 임종 소식을 들은 문중의 문장 이헌의는
"사람이 죽어서, 그 죽은 길 보내는 데는 까다롭고 일이 많다."
고 하였다. 여러 해 전에 이미 고희를 넘긴 동계어른 이헌의의 노안에 드리워진
수염은 마치 나무의 실뿌리처럼 허옇다.
"후왕이박래라고. 저 중원의 천자가, 원방의 제후들이 알현을 하려 올 적에 맞
어들일 때는, 오는가. 싱겁게 대하고 오히려 돌아갈 때는 선물을 후히 주어 보
냈듯이. 사람이 이 세상에 날 때는 소식 없이 슬쩍 와서 어머니 배나 좀 아프고
응애애 울기나 좀 허면서 오지만, 이승을 떠나갈 대는 모든 사람이 들어서 습렴
허고 조문허고 후하게 장사하여 보내는 것이다. 사람은 오래 살았거나 적게 살
았거나, 잘한다는 치하보다는 잘못한다는 말을 많이 듣는 것이니, 마음에 멍이
맺히기 쉽지. 그런 일을 다 잊어 버리고, 되도록 이 진세상의 모든 일을 잊어
버리고 가볍게 가도록, 앞길이 순탄하게 열리도록 도와 주고, 어쩌든지 신향인
일·월로 가는 혼백이 개운허게 죽은 이를 보내는 것이 사람의 도리인즉. 절차
를 소홀히 하지 말라."
그리고는 주홍 공단필에 손수 만사를 적어 글장으로 조상하였다.
증식인생 일몽장 내하감인 송사행 부로해제 영결지 해가호곡 총처량 인간 세상
이 한 조각 꿈인 것은 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그대로 보내다니 이 슬픔을 어
찌 가눌 수 있으리 늙은이 어린 아해 모두 나와 언덕에 서 가는 이 영결할제
구슬픈 상여 소리 서러운 울음 소리 눈물 바다를 이루네 이곡성의 물마루 높은
곳에 둥실하니 떠오른 상여가 중문을 나서고 대문을 나서 고샅으로 내려오며 마
을을 휘돌아, 잔등이 너머 도선산 아래 종산으로 떠나갈 때. 설움의 꽃같이 길
고 휘황하게 나부끼는 붉은색,흰색,노랑,자주색들의 비단,공단,명주,무명 만장
들이 얼음같이 파랗게 트인 빙청 하늘 아래 색동 강물같이 흐르며 장례 행렬을
앞서고 있었다. 남원,임실군의 각 유지들과 일가 친척,인척,외가,사돈,친지,이
웃 동네 사람에 이르기까지 평소의 교분과 형편대로 한 사람 한 사람이 깊은 슬
픔으로 애도하며 보내 온 만장들. 거기에는 고인을 추모하고 그리워 애통히 여
기는 만시들이 검은 먹빛도 선명하게 적혀 있어, 아직 마르지 않은 눈물같이 보
였다. 생전에 그 성품이 호방하나 엄중하고, 추상 같았으나 한없이 자애 자상하
였던 부인을 저마다 기리어, 어떤 가난한 사람은 휜 무명에다 심중을 쓰고, 또
어떤 이는 좁은 베폭에다가 써 오기도 하였지만, 그것들은 조금도 남루해 보이
지 않았다. 그보다는, 비단,공단,명주의 형형색색 휘황한 슬픔들과 함께 어깨를
부비며 같이 우는 순정이 그대로 느껴졌다. 그런 중에 어떤 이는
"부인께 평생에 갚을 길 없는 큰 고마움을 입었다."
하여 톡톡하고 붉은 비단에 금빛 찬연한 글씨를 눈부시게 써 오기도 하였으니,
부인이 시집으로 올 때는, 열아홉의 어린 나이에 홀로 되어 청상의 몸으로 무명
소복을 입은 채 휜 가마를 타고.
"일그러진 대문간에는 등 넝쿨이 얽히고, 사랑채 석계는 잡초에 묻히어 무너졌
는데, 기와는 뚜드려 잡은 물고기 비늘처럼 군데군데 떨어져 있고, 벽은 거북의
등 무늬처럼 이리저리 금이 갔다."
고 회고하던 집으로 처량하게 울면서 왔었으나, 죽어 저승으로 가는 길은 그토
록 곱고 찬란하여 그 화려함이 오히려 목메이게 하였다. 통곡존령 누불경 여하
선아 상제경 요억소상 한야월 인하적안 오인성 그대와 영좌 앞에서 통곡하니 눈
물이 그치지 않소 어찌하여 그대가 나보다 먼저 저승길을 앞선단 말이오 아득한
소상강의 찬 달빛 아래 벗을 잃은 외기러기 슬퍼하는 소리를 차마 어찌 들으리
오 하는 추모의 글장이 묵묵히 지나가고, 구 뒤를 잇달아 나부끼는 만장의 색색
갈 갈피에서는 비애의 처창함이 요요하게 펄럭였다. 후인종차 의하처 월만공산
성만천 남은 우리들은 누구를 의지하고 살 것인가 빈 산에는 시름 겨운 달빛만
가득하고 하늘에는 무심한 별들만 아득히 깜박이네 바람에 길게 출렁히며 흐느
끼어 펄럭이는 비감의 자락들에게 문득 '황천'이나 '휘루','석양천'같은 글자들
이 비쳤다가 가려지고, 바랜'송'이 흔들리는 저쪽에 가'거'가 가뭇 보이곤 하였
다. 인근의 사람들은 이 행렬이 지나갈 때 황량한 겨울의 밭두둑과 얼어붙은 방
죽가의 둔덕에 웅숭그리고 웅긋중긋 나와 서서 혹은 슬퍼하고, 혹은 배웅하고,
또 혹은 구경하고, 실로 감탄하면서, 그 긴 꼬리가 눈에서 아주 사라질 때까지
오래오래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빛깔과 나부낌은 눈에서 사라진 다음에도 마음
속에 선연하게 찍히어 남았다. 생전에 은혜를 입었거나 정리를 서로 나누던 사
람의 마지막 성의로 슬픔을 담아, 그들은 찹쌀이나 멥살을 부조하기도 하고, 술
을 빚은 동이나 떡시루, 또는 팥죽 함지를 이고 오기도 했으며, 달걀 꾸러미,
호박,가지,채소, 아니면 무명,명주,삼베 등, 무엇이든지 상가에 소용되는 것이
라면 가지고 와 내놓았고, 다른 많은 사람이 형편껏 금전으로 마음을 표시하였
는데.이렇게 만장으로 조의를 표한다는 것은 망인이 가는 마지막 길을 위하여
또 얼마나 서럽고 아름다운 배웅의 손짓이야. 오색 비단 휘장에 비단 술을 달
고, 지화에 능한 호성암의 스님 도환이 원뜸으로 내려와 밤이 새도록 접은 종이
연꽃을 달고 떠나가는 꽃상여 앞에서 명정 공포가, 어서 가자, 펄럭이는데, 그
뒤에는 운갑과 아삽이 따라갔다. 무덤 속의 살기를 물리치는 제살품인 이것은,
긴 장대 끝에 부채를 단 것 모양으로, 흰 종이를 두껍게 발라서 네모 반듯하게
하고 네 귀가 쫑긋하게 만든 판에 그림을 그려 놓은 것이다. 이 중에 구름의 무
늬를 그린 것은 운산이요,'아'자를 가득 차게 그린 것은 '불삽'이라 하는 아삽
이다. 그음이기일지인 처언구우가암고오
"오늘이 좋은 날이므로 널을 옮기고저 하나이다."
하고, 발인 하루 전에 재최 상복을 입은 이기채를 비롯하여 대공,소공,시마의
단계별로 오복을 입은 친척들이 모두 모여 영좌 앞에 아침 전을 올릴 때, 축관
은 술을 따르고 북쪽을 향하여 무릎 꿇고 앉아, 고사 축을 읽었다. 널을 들어
모시어 사당의 조상들에게 고하러 가는 것이다. 이제 참으로 내가 죽었구나 망
인의 혼백은 절감할 것이었다. 생전에 먹고, 자고, 살던 방을 이 순간에 영 이
별하고, 널에 실리어 이 문지방을 넘어 나가면 다시는 몸으로는 돌아오지 못할
곳. 널에 실려 이 방을 떠나 사당으로 가서, 이 집안의 어버이요, 선조이신 조
상들의 위패 앞으로 나아가, 그네는 자신이 죽어 혼백이 된 것을 고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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