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잡설들

달과 육펜스 (1,4,3,3)

카지모도 2020. 1. 13.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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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달과 육펜스>

-서머셋 모옴 作-

 

 

***동우***

2009.07.13 09:22

 

‘서머셋 모옴 (William Somerset Maugham, 1874~1965)

‘달과 육펜스 (The Moon and Sixpence)’

 

삼십여년도 훨씬 전에 읽었던 소설을, 손때 묻은 1976년 삼성출판사 간(刊) 장왕록(張旺祿) 번역본으로 다시 읽었다.

그런데 이상할사.

분명히 옛날 것과 동일한 텍스트로 읽었건만 전혀 다른 인상, 전혀 다른 느낌의 소설로 읽혀졌다.

옛 독서의 인상이 왜곡된 기억이었던 겐지, 아니면 이제 이순(耳順)넘은 마음밭의 감수성이 사뭇 달라졌다는 겐지.

 

기억속, '달과 육펜스'는 불세출의 한 천재화가의 치열한 예술혼(藝術魂)에 관한 이야기였다.

질풍노도와 같은 탐미적 서사(敍事)의 감동.

문명사회 저자거리의 현실 속에서 진부하게 살아가던 어떤 중년 사나이가 홀연 예술적 충동에 사로 잡힌다.

그림그리기를 향한 광포한 갈망이 그의 영혼을 움켜쥐고 뒤흔들었던 것이다.

사십여년 안주하였던 삶의 껍질을 깨부수고 그는 뛰쳐 나온다.

그림에 대한 그의 열정은 주변 인물들에게 가차없는 상처를 입히지만 그의 지독한 예술적 에고이즘은 그 따위 추호도 아랑곳 않는다.

그리하여 그는 그토록 갈망해 마지 않았던, 태양이 찬연하게 빛나는 남태평양의 한 원시의 섬에 들어간다.

정글의 오두막에 틀어박혀 치열하게 그림을 그린다.

그는 예술적 열정을 가열차게 연소(燃燒)시키지만, 풍토병인 문둥병에 걸리고 눈까지 멀어간다.

그러나 그의 예술혼은 더욱 세차게 불타 오른다.

필생의 역작인 벽화에 자신의 생명력을 소진(消盡)시키고 그는 눈먼 문둥이의 몰골, 하나의 고깃덩어리의 주검으로 남는다.

벽화로 그려진 그림들은 오두막과 함께 불타 버리고 그의 흔적은 사라진다.

전대미문(前代未聞)의 걸작인 벽화는 불에 타 사라졌지만 그가 지상 곳곳에 남긴 회화들은 뭇사람들에 회자(膾炙)되는 값비싼 명작이 되었다.

태양. 야만. 관능. 향기로운 대지. 선명한 원시의 색감. 몽상적인 신비의 이미지가 있고, 그러면서도 묵직한 냉정함이 녹아 있는 프로메테우스적 장엄한 서사(敍事).

보다 근원적인 삶의 이데아가 넘실대는 파노라마.

 

그러나 다시 읽은 '달과 육펜스'는 그러하지 아니하였다.

<"물에 빠진 사람은 수영을 잘하느니 못하느니, 그런 말을 할 처지가 못 되죠. 어떻게든 헤엄을 치지 않으면 빠져 죽고 말 테니까.">

40년의 세월을 작파하고 나서는 주인공(찰스 스트릭랜드)은 고작, 지극히 산문적(散文的)인 단문(短文)의 세리프로 그 이유를 이처럼 표현한다.

17년 함께 한 아내와 자식들을 버리고 낯선 이데아의 세계로 떠나는 그 당위(當爲)는 어설프고 모호하여 어이가 없을 정도이다.

주변 사람 모두 치정(癡情)의 도피행각으로 여길만큼 수십년 그는 평범하기 짝이 없는 주식중개인이었을 뿐인데 그 출사표치고는 참으로 매가리가 없지 않은가.

 

소설 속에서 일인칭으로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화자(話者)일시 분명한 서머셋 모옴으로서도 그 부분이 상당히 캥겼던 모양이다.

소설의 43장에서 스트릭랜드의 그 당위에 대하여 변명을 하지만 그래도 역시 상당히 구차하다.

<“스트릭랜드가 어째서 갑자기 화가를 지망했는지 그 이유는 아무래도 일종의 변덕이라고 밖에 볼수 없다. 숨어있던 재능이 갑자기 나타났는지... 결혼생활이 원인인지.. 또는 어떤 천상의 뮤즈를 만나 자신의 재능에 대한 영감을 깨달았는지 운운...”>

40년간 살아 왔고, 결혼생활 17년간 길들여 진 환경의 성벽을 깨고 나올 수밖에 없는 엄청난 원시적 에너지의 그 욕동은 어느날 갑자기 멀쩡한 사람에게 신이 내려 무당으로 내몰듯 그런 불현듯한 것은 아니지 않는가.

평소에 아마추어 일요화가로 그림을 그려왔던 스트릭랜드.. 그에게 예술적 재능은 추호도 없다고 확신하는 아내를 비롯한 주변사람들.. 주식중개인으로서 살아가는 일상중 때때로 엄습하는 격렬한 예술적 충동... 그 추상의 이데아는 영혼의 저수지에 차츰 축적되어.. 어느 날 신비한 영감이 그 기름밭에 불을 붙여 드디어 폭발..

 

벗이여. 이러한 심리적 디테일이 장삼이사(張三李四) 우리의 내면에 꿈틀대는 바 전혀 없던가.

'달과 육펜스'의 액추어리티는 찰스 스트릭랜드 행적의 피상(皮相)이 아니라 사실상 여기에 있어야 한다.

스트릭랜드의 출사표까지의 과정중 꿈틀거리는 인간성 깊은 곳의 내면(內面)과 외피(外皮)와의 갈등, 그에서 비롯된 환경과의 조화와 부딪침등은 독립된 영역의 작품일수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서머셋 모옴이 토스토예브스키가 되지 못하는걸 어쩌랴.

차라리 환상이 넘실대는 압축된 시적(詩的)언어로서 표현 하였으면 좋으련만 하는 생각이 들지만, 드러나는 인간성의 묘사에 능한 극작가인 서머셋 모옴은 너무나 산문가(散文家)였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소설의 내적 플롯을 이루는 두 개의 축.

찰스 스트릭랜드라는 가열찬 예술적 개성과 그러한 그의 개성에 깨어 부서지거나 또는 그 개성에 대하여 짐짓 교활한 몸짓을 보이는 주변의 인간들.

아마 <달>은 전자(前者), <육펜스>는 후자(後者)의 은유일 터이다.

 

모옴의 창작동기는 후기인상파 화가 고갱이 모티프가 되었고, 그것은 전자(前者)에서 일부 발현되었겠지만 '달과 육펜스'는 무슨 전기소설(傳記小說)이 아니므로 고갱의 에피소드는 흥미로서 그러할뿐 소설에서는 중요한게 아니다.

다만 일인칭 화자(話者)인 모옴은 후자(後者)의 시각으로 소설을 전개해 나가면서 전자(前者), 곧 <달>의 묘사는 다른 사람의 입을 빌어 간접적으로 표현하여 짐짓 객관(客觀)의 입장을 표방하는데 다소 교활한 바가 있다.

 

모옴은 <달>에 대하여는 아무래도 역부족을 느꼈었나 보았다.

파리에서의 스트릭랜드의 행각도 창조적 생명력이 감동적으로 약동하는 그런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타히티라는 원시의 섬에 이르게 되는 것도 스트릭랜드의 불타는 갈망 때문이 아니라 마르세유에서의 부랑자 생활중 우연한 사건에 연유한 것이었고. 타히티의 현장은 지극히 피상적이고 그 분량은 상당히 짧았다.

 

옛날과 지금 이 소설을 읽는 맛이 그토록 다른 것은, 아마도 옛날에는 <달>만이 확대되어 보였을 뿐이지만 지금은 <육펜스>를 읽어 낼수가 있었어서 그러하지 않은가 싶기도 하다.

좀 풍자적인 멋을 부리자면, 옛날의 '달과 육펜스'는 “<달>이 너무 밝아 은화는 뵈이지 않았다”라고 한다면 지금의 '달과 육펜스'는“은화는 너무 빛나는데 <달>은 형편없이 이지러졌다”랄까. ㅎ

 

그러나 '달과 육펜스'는 서머셋 모옴의 명성을 드높였던 작품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반세기 이상 애독하는 명작이다.

세계인의 감성에 소구(訴求)되는 보편성이 있는 문학작품으로서의 가치를 폄훼할 생각은 없다.

서머셋 모옴의 문학적 재능은 탁월한바 없지 아니하다.

 

이번에 다시 꺼내 읽었는데 그의 단편 ‘비’는 매우 뛰어난 작품이다.

수잔 헤이워드, 험프리 보가드(맞나?) 주연의 영화도 좋았지만, 추적거리며 내리는 열대의 비 그 지루하게 나른한 분위기 속에 드러나는 인간성의 위선과 추악함을 그린 이 소설은 내가 좋아하는 극작가 테네시 윌리엄스적 몽환적인 분위기 속 미세한 흐느낌이 있는 빼어난 작품.

그의 단편중에는 추리소설집(어센덴)도 있는데 1차대전중 실제로 대영제국의 스파이활동을 하였다는 모옴의 경험이 녹아있는 매우 재미있는 스파이소설이다. 일독을 권한다.

 

그렇다.

<달>을 얘기하는 모옴은 다소 아쉬울지라도 <육펜스>를 얘기하는 모옴이 뛰어난 소설가로서 부정되지는 않는다.

모옴이 바라보는 인간성이란 늘 그로테스크하다.

나 역시 동감하는바, 인간성이란 그로테스크하다.

 

<육펜스>의 면모.

찰스 스트릭랜드의 아내.

남편의 가출이 치정(癡情)의 도피라면 용서할수 있지만 예술을 빙자한 가출이라면 용서할수 없다는 여자.

남편이 오로지 예술을 위하여 자신을 버린 것이라면 그녀의 딜레당뜨의 폼잡기는 모욕을 받은 것이다.

"뛰어난 예술은 항상 장식적이니까요"라고 말하는 여자.

소유로서만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인 그녀는 존재의 삶을 이해할수 없다.

고작 예술애호가 수준으로 어찌 스트릭랜드의 불꽃을 헤아릴수 있으랴.

 

나중 목사가 된 스트릭랜드의 아들도 폼을 잡고 사람들에게 말한다.

“아버지는 근면하고 착실하여 남편으로서나 아버지로서나 더 바랄 수 없는 인물이었어요.”

이 발언 때문에 스트릭랜드의 값비싼 그림들은 값이 조금 떨어지기도 한다.

사람들은 그림 속에서 화가의 천재적 불량끼를 보고 매료되었는데 정작 그 화가라는 양반은 고작 범생이라니. ㅎ

 

모옴의 시니컬한 수법.

스트릭랜드의 정부, 블랑쉬.

장면이나 대사의 미묘한 묘사로서 복선(伏線)을 깔아 파국적 결말을 슬쩍 예감케 하는 모옴의 솜씨도 예사롭지 않다..

천재를 알아 보아 스트릭랜드한테 끔찍한 남편이지만, 블랑쉬의 겉마음은 그를 극도로 혐오한다.

그러나 감정모체의 진실은 다르다.

과거 마음의 상처를 가지고 있으며 겉으로는 짐짓 숨기고 있지만 격정의 내면을 가지고 있는 그녀가 극도로 이기적이며 야만적인 예술가에게 육정(肉情)이건 심정(心情)이건 정신없이 빠지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파국을 예감하면서도 달려드는 불나방이.

그녀가 자살하고 난 다음 <나>에게 들려주는 스트릭랜드의 세리프는 좀 시시하였지만 이 시퀴엔스가 나로서는 '달과 육펜스'에서 가장 오르가즘적 대목으로 읽혀졌다.

 

스트릭랜드의 친구, 스트로브.

아낌없이 선의를 베푼 친구에게 그토록 사랑하는 아내를 빼앗기고, 아내를 자살로 내몰아 죽게 한 그에게 자신의 고향 네델란드로 함께 가 그림을 그리자는 스트로브.

어릿광대이고 그에게만은 증오의 염이 없는 가장 긍정적인 인간성의 사람이지만 이러한 인간성도 역시 그로테스크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런 사람은 흔치 않겠지만 어쩌면 모든 사람에게 어떤 부분으로서 잠재되어있을 법한 인간성.

어찌보면 그 역시 불꽃 같은 사람, 스트릭랜드처럼 치열한 생명을 살아내는 또 하나의 인간일런지도 모른다.

나는 스트로브에게서 패러디된 어떤 고흐를 보았는데. 흐음.

 

찰스 스트릭랜드의 마지막 여자인 아타.

타히티의 토녀(土女)인 아타에게는 개성이 없다.

신비한 이미지를 꾸미기 위한 하나의 장식으로서만 등장시킬 뿐이다.

서머셋 모옴의 오리엔탈리즘적 시각이 엿보인다.

 

인간이란 그로테스크하다.

옛날의 나에게는 스트릭랜드가 가득하였지 싶어 돌아 보지만 실은 아니다.

당시(當時)의 육펜스에 목을 매 허덕였을 내 인간성의 꼬라지를 나의 감정모체는 훤히 알고 있음을.

그 참혹한 우물을 나는 들여다 본다.

그리하여 그 때나 지금이나 폼만 잡는 딜레당뜨.

미세즈 스트릭랜드의 신음섞인 푸념이 또한 내 입 속 가득하다.

“장식해 주어요. 나의 삶.”

 

++++

 

 

***후니마미***

2009.07.13 23:39

 

생각의 자락이 가까운 곳에 있음을 발견하는 기쁨

이것이 책부족에게서 느끼게 될 선물 같습니다

동우님의 훌륭하신 독후감 읽으면서 새삼 저도 동우님 시선까지 같이 올라갔다는 생각에 흐믓합니다.

보다 꼼꼼히 읽으셨다는 걸 보게 됩니다.

저는 책을 덮고 며칠 두다 보니 디테일한 표현과 이야기 줄기도 잊고

마음에 들지 않은 서머셋 몸의 글쓰기에 관한 인상만 남더군요.

그러고 보니 저는 서머셋 몸의 다른 글을 읽은 적도 없으면서 이 한 권 읽고나서 은근히 서머셋 몸을 따돌리고 있었습니다.

추리소설이 있었군요

기억해 둡니다

세계문학읽기는 마치 고등학교 때 해야 될 과업을 지금에야 하는 것 같지만 저로서는 상당히 유익합니다.

그때 읽었다면 읽은대로, 안 읽었던 것은 놓치지 않고 펴 봤다는 점에서..

게다가 이렇게 독후감을 공유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지요...

밖에 풀벌레 소리 가득한 밤입니다.

동우님 댁 창문에도 이런 소리가 매달려 있으리라 짐작합니다

동우님의 평안한 밤 되시길.

 

***┗동우***

2009.07.27 20:25

 

내게도 책부족은 매우 유익합니다. 다른 재주 없지만 그나마 조금쯤 자신있었던 우뇌와 좌뇌의 돌아가는 기능. 그러나 슬슬 하강곡선 긋고 있음을 느낀답니다.

그러나 책부족은 팽이를 때립니다. 팽이는 때려야 돌지요.

 

조교수님의 건강 어지간 하신듯 하여 마음이 참 좋습니다.

다만 후니마미님의 박사과정 포기하신건 아닐테지요?

동기부여.

그리고 후니마미님은 필경은 글을 써 文名을 넓히시게 될겝니다.

 

***도치***

2009.07.13 23:46

 

등장인물분석이 멋지십니다.

책도 읽을 때마다 느낌이 다름을 동우님 역시 느끼시니 저만의 변덕이 아니었군요.

후기 잘 읽었어요. 다른 시선, 제게는 이 모임이 다른 생각을 본다는게 참 매력있는 일 같습니다.

 

***┗동우***

2009.07.27 20:29

 

여러분의 독후감 읽고 정말로 느낌의 다양함을 접하고는 '나루호도'한답니다.

내 딸보다 연하의 어떤 님 글에서는 홀연 짜릿한 상쾌함이 덮치기도 하고. 하하

 

***송현***

2009.07.16 06:15

 

모처럼의 동우님 글이네요~

문학의 이해를 재미있게 해설해 주시는 동우님의 강의입니다!

꼭한번 읽어야 겠습니다

 

딱히 재능 없는 저로는 많은 공감이가네요

그로테스크한 인간....

 

써머셋 모움의 단편 진주 목걸이는 읽어 보았습니다

남의 말하기 좋아하는 인간의 생각 그릇이랄까?

예리하게 간파한 알량한 인간성

거기에도 그로테스크한 인간입니다

 

***┗동우***

2009.07.27 20:40

 

송현님 집에 들르면.

인사동 얘기.. 미술하시는 분들의 이모저모 노변정담.. 송현님의 서예실.. 주변 풍경과 느낌의 생각들..가족에 대한 단상.. 그리고, 흐음 슈베르트.

하하, 그러고보니 우리는 슈베르트에서 죽이 맞았지요. 디스카우의 반주자 피아니스트 제럴드 무어.. 은퇴 공연.. 아, 그 때 울리던 소박한 피아노 선율은 바로 '음악에'였습니다.

그 귀한 녹음을 동경의 멜론님 어렵게 구하여 내게 들려 주셨지요.

벌써 5년여 흘렀습니까? 하하 세월이 이와 같습니다.

진주 목걸이는 나도 얼마전까지만 하여도 서머셋 모옴의 작품인줄 알고 있었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잘 못 알고 있는데. 하하. 실은 모파쌍 단편이었어요.

 

***┗동우***

2009.07.29 18:21

 

급히 인터넷 접속하여 답글 답니다.

송현님이 답글로 말씀하신 '진주 목걸이'는 모파쌍의 것이 아닌 써머셋 모옴의 단편이었습니다.

모파쌍의 단편이 유명하지만 서머셋 모옴의 단편 역시 많이 알려졌다고 하는데 도무지 문학적 지식이 과문인 탓으로 이와 같은 실례를 범하였습니다.

송현님. 모옴의 '진주 목걸이' 는 꼭 구해 읽겠습니다.

송현님.

손수 전화를 주시고, 비로소 바로잡는 나의 이 무식을 모쪼록 용납하여 줍시사.

 

***쟁***

2009.07.16 15:04

 

저는 이제서야 중반부를 향해 가고 있는데, 스트릭랜드의 괴팍함에 막 짜증이 밀려올 정도네요. 제가 감정적으로 이입만 할 동안 동우님은 이렇게 명료하게 써 주셨네요. 저도 분발해야 겠습니다.

 

***┗동우***

2009.07.27 20:58

 

멀고먼 미국땅 시애틀, 쟁님 분발하여(?) 쓰신 글. 벌써 읽었지요.

팽귄 클라식 영문판, 원어로 읽으신 디테일한 그 느낌은 아무래도 한다리 건너 읽게 되는 느낌과는 다를거라 잠직합니다. 모옴의 영어는 아름답다고 하던데 번역본으로는 아무래도 미치지 못할 느낌이겠지요.

옛날 직장생활 할 적 여러 외국인과 함께 일하였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버벅대는 외마디 영어로는 도달할수 없는 영문..그러나.

젊은날 연극무대 기웃거릴 무렵 연출선생이 녹음판으로 들려주는 로렌스 올리비에와 리차드 버튼이 읊는 세익스피어의 대사들- 그 인토네이션의 리듬감은 하나도 알아듣지 못하였더라도 굉장히 멋있었답니다. 하하, 아마 세익스피어를 공연하려면 그쯤은 느껴야하고 펜싱의 몸짓도 익혀야 하고 어쩌구하는 그런 진한 예술적 사대주의의 모습 또한 없지 않았답니다.

세익스피어를 그런 식으로 느끼려고 하였던 그떄가 때로 그립기도 합니다. 하하

 

***웬디***

2009.07.25 03:40

 

함께 책모임에 참여하는 웬디입니다. ㅎㅎ 아. 글 먼 댓글로 보내려고 했는데 동우님께만 안되더라고요. 아쉬워라.

스트릭랜드 부인이 가장 인상적인 인물 중 하나였던 것 같아요- 묘하게 스스로에게도 드러내지 못하는 저의 속물적 근성들을 슬쩍 슬쩍 보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나저나 30년도 더 전에 읽으셨다니, 제가 태어나기도 전인가봐요. 참, 세대를 넘어 이렇게 블로그라는 공간을 통해 교감할 수 있다는 것도 기쁜 일인 것 같아요- 종종 뵙겠습니다.

 

***┗동우***

2009.07.27 21:14

 

하하, 웬디님. 스트릭랜드 부인에게서는 이를테면 작금 서울하고도 강남 어디쯤 우리 어떤 부인네의 모습이 오버랩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와는 다른 분명한 면이 있지요.

강남의 어떤 돈많은 부인네- 자신을 버리고 바람나 가출하는 남편은 용서할수 있을지언정 어떤 이데아, 추상적 아름다움을 추구하려고 자신을 버리고 뛰쳐나가는 남편은 용서할수 없다고 할수 있겠는지요?

하하, '박복에 이르는 병을 앓기'에는 우리 부인네들은 너무나 자본주의의 단물에 취하여..

감히 웬디님쯤 정도 되어야 이 병을 앓을수 있는 귀족병이지요. 하하

 

***서민정***

2009.07.25 22:37

 

늦게서야 다시 블로그에 찾아왔습니다.

인터넷에서 만나지 않았더라면 무슨 대화를 해야했을지도 모를...

저에게는 아버지보다 더 연배이신 동우님과 같은 책을 읽고 공감대를 교류할 수 있다는 거

진짜 블로그가 좋기는 좋다고 생각하는 중입니다. ^^

그리고, 저 역시 인간이 그로테스크하다는 점에 대해 절대 공감합니다.

그런 인간의 그로테스크함을 약간은 즐겁게 바라보는 저도 그로테스크? ^^

육펜스의 인생들이 달에 사는 인생을 이용하거나 이해할수 없다고 하더라도,

때로는 그런 인생들에도 정감이 갈때가 있지요. 혹은 그런 인생들에 의해 일상사의 대부분은 흘러가기 마련이지요.

저는 한때 '정신적인것만이 위대하다' 하는 속좁은 명제에 사로잡혀 있다가 실물적이고 속물적인 것이 우리네 인생에 얼마나 중요한가를 차츰 배워가고 있는 중인것 같은데요, (그게 서른살이 새롭게 배워가게 되는 부분 아닐까 합니다 ^^) 그 부분에 대해 모옴은 너무 이분법적 시각을 유지해버린 나머지 스트로브와 스트릭랜드 부인을 같은 선상에 놓고 그 차이를 크게 정의하지 않은 오류를 저지른건 아닌가 하고 생각을 해봤습니다.

 

***┗동우***

2009.07.27 21:22

 

그러믄요, 서민정님.

뉘 말이던가? '디테일한 것이 인생을 만든다'

낫살드니 께닫게 됩디다.

대단한 명제가 우리를 이끌어가는게 아니라는 걸, 아주 소소한 것들이 슬금슬금 무어를 만든다는걸.

하하, 그러니 서민정님.

문학작품도 역시 그러한듯, 소소한 디테일의 축적으로 한사람의 캐릭터를 완성하고, 소소한 에피소드의 축적으로 한 시퀜스를 만들고.. 하하.

서민정님의 버지니아 여름은 어떠할까.

한국의 올여름 장마는 끈적이고 지루합니다.

오늘도 비내립니다.

 

***굿바이***

2009.07.31 10:36

 

안녕하세요? 이제서야 인사드립니다. 책모임에 수저 올린 굿바이입니다.

리뷰 잘 읽었습니다. 문장이 간결하고 힘이 있어 읽는 내내 즐거웠습니다.

인간이 어떤 하나의 성향으로만 정의될 수 없다는 것, 절대선도 절대악도 그리고 그것들의 투쟁으로 뭔가 짜잔~하고 생겨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데 꽤 오래 걸렸던 것 같습니다.

인간은 그로테스크하다에 백만표 날립니다^^

 

***┗동우***

2009.08.05 19:29

 

반갑습니다. 굿바이님.

그로테스크한 인간. 이 명제는 적어도 서머셋 모옴류보다는 심오할듯. 하하

어쩌면 우리 독서 클럽이 이를 천착하는듯한 재미도 없지 아니합니다. 하하

 

***字夢ハナエ***

2019.12.06 10:49

 

이번에 남양군도의 조선인을 편집하면서, 얍 섬의 이도(한국어로는 낙도)에 갔던 일본인 조각가 히시카타히자카츠의 면모를 읽었습니다. 일본 예술가 또한 고갱을 마음에 그렸다지요. 그리고 남국의 원초성을 그리워했습니다. 그래서 고른 게 남양군도의 오지라고 할 수 있는 섬이었는데요, 사회학자 조성윤이 밝힌 그의 면모는 예술가와는 좀 다릅니다. 그래서 편집 중에 서머셋 모옴의 이 소설이 생각나곤 하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책을 읽은지도 10여 년이 되어 버려서 소설내용도 까마득합니다. 동우님의 기록을 보며 10년 여 동안 참 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변하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동우***

2019.12.07 09:27

 

조교수님의 남양군도에 대한 저서로 인하여 남양군도는 내 의식 속에 특별한 섬이 되었습니다.

이번 출간된 남양군도의 조선인은 어제부터 읽기 시작하였고 어느 종교이야기는 주문하였습니다.

자몽님은 지금 일본?

 

***┗字夢ハナエ***

2019.12.08 10:18

 

돌아와 있습니다.

차츰 인사 드릴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