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잡설들

어떤 파리 -박순녀- (1,4,3,3,1)

카지모도 2020. 5. 24.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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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어떤 파리(Paris)>

-박순녀 作-

 

***동우***

2013.02.26 05:25

정치꾼일 때 박근혜의 모습에는 아버지 박정희의 걍팍한 면모의 일단이 언뜻언뜻 엿보였었다.

근데 어제 취임식 때 그녀의 인상은 자못 부드럽더라.

화장 탓인가, 풍만하고 따뜻해 보이는 이목구비, 복스런 잘 생긴 얼굴이었다.

내 아이들의 세상에 한줄기 서기(瑞氣)를 느끼고자 하는 열망이 그렇게 보이게 하였는지도 모르겠다.

 

예전에 가슴 시리게 읽었던 ‘영가(靈歌)’를 쓴 작가 박순녀(1928년생)는 함흥출신, 월남(越南)한 여성소설가.

‘어떤 파리’는 1970년 현대문학 신인상 수상작이다.

으흠, 그런데 이 소설의 포스팅.

시대착오(時代錯誤)가 분명하렷다?

작금이 어떤 세상인데.

그러나 이 소설,

‘저 색과 빛의 불가사의 한 조화’...

나는 아마 그걸 얘기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것은 이제 이데올로기의 문제만이 아니다.

어떤 형태로든 작금에도 존재하는 검은 색과 빛은 있다.

권력마다의 색갈이 시대를 주도(主導)하는 부정적인 측면.

편향된 어떤 가치관에 의한 트랜드라하여도 무방하리라.

정책과 제도와 인사(人事)가..

다른 생각의 사람 마음을 그늘지게 하는...

권력의 외곽지대 마이너리티의 자각과 주눅을 강요하는...

그들의 자격지심을 자아내게 하는...

 

<다만 기이했던 검은색과 빛의 인상만이 언제까지나 마음속에 침체해버렸다. "나는 그것을 색과 빛의 불가사의한 조화라고 우길 도리는 정말 없어요. 이해하시겠어요 ? 이해한다면 이런 회복할 수 없는 자기불신을 가져오는 것을 왜 한단 말입니까?">

 

그 빛은 자기부정 자기모멸 자기혐오에 이르게 하는 빛이다.

소설 속 ‘홍재’로 하여금 극심한 자기혐오에 빠지게 하는 빛과 색은 이제 이념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홍재는 그 새벽에 악성의 주정을 부렸다. 위경련 환자처럼 방안을 데굴데굴 헤매고 자기혐오로 소리를 내어 울기도 했다. 그가 체포당하는 행운을 가졌어도 그 속에서 나왔을 때 그는 그렇게까지 비참하고 굴욕스럽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타나지 않는 체포의 손길을 기다리며 원죄처럼 놓여날 날이 없는 공포의식에 쫓기는 그는 그 속에서 문득 무수한 쥐 떼에 아연했다. 그놈들은, 그 하등 동물 놈들은 그가 무력하다고 알자 상상할 수 없는 방자한 꼴로 그를 우롱했다...무서운 굴욕이다. “벌레다, 나는 보지도 말고 밟아 죽여야 하는 더러운 벌레다!”>

 

18대 대통령, 박근혜는 열정을 담아 말하였다.

경제부흥과 국민행복과 문화융성을.

정치권력이 만능의 보검은 아니더라도, 이 나라 권력은 여러 모로 힘이 세다.

열정과 사랑과 의지를 가지고 그 힘을 발휘하라.

국민행복, 행복한 세상을 만들라.

 

권력은 국민행복의 요체를 경제가치에만 기대려 하지 말라.

저 빛의 마법이 없는 세상.

자아가 진실로부터 도망가지 않아도 되는, 곧 사유의 혼란이 없는 세상이 좋은 세상이다.

아름다운 마음씨가 스스럼없이 발현되는, 자아(自我)가 스스로 정열을 느끼게 하는 세상이 행복한 세상이다.

<‘홍재’처럼, 감추인 자신의 비겁함이 노정(露呈)되는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좋은 세상.

 

지연’에게 옛 동무 ‘진영’은, <남편에 순(殉)하는 여인>으로서만 사무쳐야 한다.

<"홍재씨, 내 말을 들어보시겠어요? 웃어도 좋으니 들어보세요. 그 유치하던 시절, 그 센티하던 시절, 진영이와 나는 바다를 동경했었어요. 우리가 자란 그 만주벌판에서는 볼 수 없었던 푸른 물결, 진주빛 물이랑의 바다를 동경했었어요. 그러고 우리는 소녀적으로 말했었어요. 류샤야. 우리 이담에 남쪽 고향으로 돌아가면 그 바닷가에서 꼭 같은 하늘색 원피스를 입고 나는 소월의 시를 읊고...“>

 

잘 해보라.

박근혜의 새 정권.

 

***저녁산책***

2013.02.27 10:34

요즈음.. 블로그를 조금 게을리 하였습니다.

포스팅을 하긴 햇지만요..

 

최초의 여성대통령.. 취임식날 보니 우아하고도 품위가 있어보였어요.

정말 '행복한 세상'이 올까요?

 

아이가 일년여 넘게 준비한 시험이 있었고..그리고 시험이 끝났는데

어떤 일을 끝낸다고 걱정이 사라지기는 커녕 새로운 염려가 등장하는..

인생이 이런거겠지요.ㅎ

 

이 소설, 이데올로기에 대한 소설인가요..

오랜만에 읽고 갑니다.

 

동우님,,

좋은 하루 보내셔요~~

 

***동우***

2013.03.02 05:31

저녁산책님.

나야말로 사나흘 게을렀는데, 좀 전 저녁산책님댁 음악, 여일한 봄빛에 취하였어요. (게으르시기는 커녕)ㅎ

저 베토벤 소나타 '봄'을 저녁산책님께 청해 감상하였던 때가 벌썬 작년 이맘때쯤인가요?

와우, 세월의 흐름이라니.

 

시험준비 말씀하시는 쪽은 저녁산책님댁 영특한 세남매중 작은따님?

 

그래요, 저녁산책님.

좋은 일, 궂은 일, 즐거운 일, 싫은 일..

그런게 인생사.

 

모쪼록 대한민국에 서기(瑞氣) 가득하기를.

 

***베로니카***

2013.03.01 10:37

우아한 여성 대통령의 모습이 애아빠는 무언가 흐뭇한가 봅니다.

아무래도 여인네들보다 남정네들이 더 좋아하겠지요,.. 속된 저의 생각. 호호

남성 대통령보다 더 섬세하게 우아래를 보면서 자상하게 뭔가 다른 정치를 잘 해줄테지..

이런 생각도 하지만. 아유, 머리에서 발끝까지 호화로운 패션과 영광...그 밖의 수많은 딸린 식구들 .

그 속에서 어려움은 이루 말할수 없이 많겠지요. 으 ..골치 아파랑.

그냥 나같이 자빠져 자고 싶음 자고 뜰에서 우리 강쥐들에 휩싸여 뒹글고 난리를 부리며

대자연과 같이 있는 제가 오히려 행복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빠리는 무조건 낭만적이다 요런 생각을 했던 저가 화장실에서 환상을 좀 깼나봐요.

이태리 화장실들과 골목골목들이 더 전 이쁘더이다

오히려 아주 아주 검소한 빠리, 그리고 멋쟁이 할머니들.

또 왜 유독 빠리의 지붕만을 그리던 꼬질꼬질 청바지 그 남자친구는 지금도 거기 있을까. 아님 요기 같은 하늘아래 어디선가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아웅다웅 살아갈꼬나..

 

***동우***

2013.03.02 05:55

하하, 베로니카님.

우아한 대통령의 모습, 부군께서는 무엇이 그리 흐뭇하셨을까. ㅎ

 

수많은 딸린 식구들 언급하시면서, 속된 생각이라 하시는데 무엇이?

짐작건대, 한나라 대통령으로서 국민들의 눈과 귀에 노출된채, 유지해야 하는 그 부자유를 말씀하시는 거?

과연 그러하옵니다.

베로니카님 말씀처럼.

우리와 같은 장삼이사들이야 자빠져 있는다고, 무슨 입성 걸친다고, 뉘 뭐라할 사람있나요.ㅎ

 

베로니카님은 생활속의 美를 터득하신 분.(그림그리시는 분이라 더욱 그러할듯)

이태리 화장실과 좁은 골목길들, 빠리 지붕만 그리는 청바지 무명화가..

무슨 환상적 풍경이나 유명 유적지 명품 명작들에 흠취하는듯한 폼잡는 격식적 관광객이 아닌.

 

강쥐들과 뒹구는 마당... 베로니카님의 행복.

나도 좀 알만 하지요.ㅎ

 

***eunbee***

2013.03.01 11:56

동우님께 인사.

봉쥬르~

 

***teapot***

2013.03.02 02:51

은비님, 안녕~ 봉죠~ㄹ~~~

 

***동우***

2013.03.02 06:26

좀 전, 은비님 댁 들여다 보아 파리통신 접하였습니다.

컴 상태, 좀 어리숙하면 어때요?

한글 되고 사진 올릴수 있을 정도면 되지 무어.

아무러나, 이제 은비님댁 보암직 먹음직한 포스팅 가득할 것.

내 친구 은비님의 파리, 은빛 소나기 기대할랍니다.

그 파리 요즘 우울한 색감인가, 은비님 왜 우울하실까... ㅎ

 

그래요 은비님.

우리 연배 건강이 제일입니다.

좌우간 무얼하거나 무얼 먹거나 무얼 생각하거나.. 건강을 유념하여 건강합시다그려.

 

박순녀의 '어떤 파리'

어지러운 댓글, 여기 에다가 좀 정리 합니다.

 

이 소설, 70년대 엄혹한 시대상황이 아니었다면 박순녀는 좀 다르게 이 이야기를 풀어나갈듯 싶습니다.

 

이 나라, 집단사고가 절대적 가치로 지배하는 세상은 벌써 사라졌을거라 믿습니다만.

집단사고적 가치의 횡포는 오히려 무리를 이루어 여일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양성, 다른 생각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아집들...

또레랑스가 없는 사회.

 

이 시대 정치인 누구나 부르짖는 구호 있으니 그건 바로 '통합'이라는 외마디소리.

근데 그런게 어디 있어요.

사고의 통합, 가치관의 통합이란 있을수도 있어서도 아니되겠지요.

이를테면 마음의 통합일 것입니다.

다른 가치를 인정해 주자는...

 

은비님도 기억하실지 모르겠는데, 오래 전(6.29 직전무렵) 서을대 여대생이 한강에 투신하여 자살하였어요.

그 죽음은 민주화를 위한 헌신이 아니었지요.

회색분자로서 자의식의 괴로움이었답니다.

 

아마 그 무렵 김지하가 일갈하였을 겁니다.

'죽음의 굿판을 때려치워라'라고.

 

그 여학생의 유서가 이러했어요. (내 옛 기록을 찾아..)

 

<"아파하면서 살아 갈 용기가 없는자 부끄럽게 죽을 것, 살아감의 아픔을 함께 할 자신 없는자, 부끄러운 삶일뿐.">

 

시대의 절망감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무기력과 죄의식이 죽음으로 내몰았던 겁니다.

동료들 치열하게 투쟁하고 있는데, 자신은 시대에 저항하여 행동하지 못하는 인간적인 자괴감과 죄의식...

 

아마, 나는 새 대통령에게 이런 식의 횡설수설을 하고 싶었던가 봅니다.

일관된 가치로 자신을 내몰지 말라.

 

국민행복.

열등감 소외감 자격지심 죄의식..

이런 걱정없는.

내면적 행복을 추구하라.

 

하하, 은비님.

이렇게 지껄여보아도 내 얘기하고자 하는 뭔가는 역시 어지럽습니다.

 

언젠가 이런 생각들 정리하기로 하고, 대충 감으로 알아들어 줍시사.ㅎ

 

***동우***

2013.03.02 05:42

티팟님.

댓글 행간에서 언뜻 엿보았습니다.

따님과 함께 하는 유럽여행.

행복한 어떤 모녀의 그림..

 

파리.

뉘에게나 파리라는 도시의 근세사는 세계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겠지만, 1789년 대혁명후의 100여년 파리는 그야말로 인간사와 인간성에 있어서 격동의 현장이었습니다.

 

자유와 평등...

그래서 일견 관념의 도시가 되었을법도 합니다.

 

<파리의 이야기, 우리의 환상 속의 파리의 하늘, 그 도피의 도시... 파리와 너무도 동떨어진 곳에서 사는 우리는 우리의 사는 곳을 의식하면 파리가 우리 생의 환희의 상징이나 되는 것처럼 파리의 이야기를 지껄이곤 한다. 세계에서 오직 하나 미워하지 않을 도시로 남겨놓은 듯한 곳, 그 파리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우리는 허망한 만족, 현실의 자기에 대한 잔인한 복수를 기는 습성이 있었다.>

 

그렇지만 파리의 속살은 얼마나 낭만적인지요.

근래, 레미제라블, 미드나잇 인 파리..

그리고 티팟님과 은비님 있어 파리의 속살이 더욱 아름답게 느껴지기

도 합니다그려.

 

박근혜 대통령.

잘 하겠지요.

아니, 잘 해야하지요.

이 나라 여성제위의 위상을 위해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