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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B> 亂中日記 (3) -李舜臣-

카지모도 2021. 1. 14. 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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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년 3월 (1592년 3월)

 

 

 

3월 초1일 [양력 4월 12일] <辛酉>

망궐례를 했다. 식사를 한 뒤에 별방군과 정규군 하번군을 점검 하고서 놓아 보냈다. 공무를

마친 뒤에 활 열 순을 쏘았다.

 

3월 초2일 [양력 4월 13일] <壬戌>

흐리고 바람이 불었다. 나라제삿날(중종 장경왕후 윤씨 제사)임에도 공무를 보았다. 승군(僧軍) 일백 명이 돌을 주웠다.

 

3월 초3일 [양력 4월 14일] <癸亥)

비가 저녁내 오다. 오늘은 삼짇날 명절이건만 비가 이렇게 내리니 답청도 못하겠다. 조이립 우후·군관 등과 동헌에서 이야기하며 술을 마셨다.

 

3월 초4일 [양력 4월 15일] <甲子>

맑다. 아침에 조이립을 배웅하고 객사 대청에 나가 공무를 본 뒤에 서문밖 해자와 성을 더 쌓는 곳을 순시했다. 승군들이 돌줍는 것을 성실히 하지 않으므로 책임자(수승)를 잡아다가 곤장을 쳤다. 아산에 문안갔던 나장이 돌아왔다. 어머니께서 편안하시다 하니 다행이다.

 

3월 초5일 [양력 4월 16일] <乙丑>

맑다. 동헌에 나가 공무를 봤다. 군관들은 활을 쏘았다. 저물녁에 서울 갔던 진무가 돌아왔다. 좌의정 류성룡(유성룡)의 편지와 "증손전 수방략이라는 책을 가지고 왔다. 이 책을 보니 수 전·육전·화공전 등 모든 싸움의 전술을 낱낱이 설명했는데, 참으로 만고의 훌륭한 책이다.

 

3월 초6일 [양력 4월 17일] <丙寅>

맑다. 아침밥을 먹고난 뒤 출근하여 군기물을 점검했는데, 활·갑옷· 투구·전통·환도 등이 깨지고 헐어진 것이 많아 색리·궁장·감고 등을 문책했다.

 

3월 초7일 [양력 4월 18일] <丁卯>

맑다. 동헌에 나가 공무를 보고 난 뒤에 활을 쏘았다.

 

3월 초8일 [양력 4월 19일] <戊辰>

종일 비가 내렸다.

 

3월 초9일 [양력 4월 20일] <己巳>

종일 비가 내렸다. 동헌에 나가 공무를 봤다.

 

3월 초10일 [양력 4월 21일] <庚午>

맑으나 바람이 불었다. 동헌에 나가 공무를 보고 난 뒤에 활을 쏘았다.

 

3월 11일 [양력 4월 22일] <辛未>

맑다.

 

3월 12일 [양력 4월 23일] <壬申>

맑다. 식사한 뒤에 배있는 곳으로 나가 경강(여수시 봉산동)의 배를 점 검했다. 다시 배를 타고 소포(여수시 종화동 종포)로 나가는데 때 마침 샛바람이 세게 불고 격군(보조사공)도 없어 도로 돌아왔다. 곧바로 동헌에 나가 공무를 본 뒤에 활 열 순을 쏘았다.

 

3월 13일 [양력 4월 24일] <癸酉>

아침에 흐렸다. 순찰사에게서 편지가 왔다.

 

3월 14일 [양력 4월 25일] <甲戌>

종일 많은 비가 내렸다. 이른 아침에 순찰사(이광)를 만나러 순천으로 가는데, 비가 몹시 퍼부어서 길 앞을 분간할 수가 없었다. 간신히 선생원에 이르러 말에게 꼴을 먹이고서 다시 해농창평(순천시 해룡면)에 이르니, 길 바닥에 물이 석 자나 괴었다. 겨우 겨우 순천부에 이르렀다. 저녁에 순찰사와 격조를 터 놓고 이야기했다.

 

3월 15일 [양력 4월 26일] <乙亥>

흐리며 가랑비 오다가 저녁나절에 개었다. 다락 위에 앉아서 활쏘고, 군관들에게는 편을 갈라 활을 쏘 게 했다.

 

3월 16일 [양력 4월 27일] <丙子>

맑다. 순천부사가 환선정에 술자리를 베풀었다. 겸하여 활도 쏘았다.

 

3월 17일 [양력 4월 28일] <丁丑>

맑다. 새벽에 순찰사에게 작별을 고하고 선생원에 이르러 말에게 꼴을 먹인 뒤에 본영으로 돌아왔다.

 

3월 18일 [양력 4월 29일] <戊寅>

맑다. 동헌에 나가 공무를 봤다.

 

3월 19일 [양력 4월 30일] <己卯>

맑다. 동헌에 나가 공무를 봤다.

 

3월 20일 [양력 5월 1일] <庚辰>

비가 몹시 쏟아지다. 저녁나절에 동헌에 나가 공무를 보고 각 관방의 회계를 밝혔다. 순천 관내를 수색하는 일이 제 날짜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에 대장·색리·도훈도 등을 문책했다. 사도첨사(김완)에게도 만날 일 로 공문을 보냈는데, 혼자서 수색했다고 했다. 또 한나절 동안에 내나로도·외나로도(고흥군 봉래면)와 대평두·소평두 섬을 다 수색하고 그 날로 돌아왔다고 하니, 이 일은 너무도 엉터리 거짓이다. 이를 바로 잡으려는 일로 흥양과 사도첨사에게 공문을 보냈다. 몸이 몹시 불편하여 일찍 들어왔다.

 

3월 21일 [양력 5월 2일] <辛巳>

맑다. 몸이 불편하여 아침내 누워 앓다가 저녁나절에 동헌에 나가 공무를 봤다.

 

3월 22일 [양력 5월 3일] <壬午>

맑다. 성 북쪽 봉우리 아래에 도랑을 파내는 일로 우후 및 군관 열 명 을 나누어 보냈다. 식사한 뒤에 동헌에 나가 공무를 봤다.

 

3월 23일 [양력 5월 4일] <癸未>

아침에 흐리고 저녁나절에는 맑다. 아침밥을 먹은 뒤에 동헌에 나가 공무를 봤다. 보성에서 올 널빤 지가 아직 안 들여 왔기 때문에 색리에게 다시 공문을 보내어 독촉했다. 순천에서 심부름꾼을 보내 온 소국진에게 곤장 여든 대를 쳤다. 순찰사가 편지를 보내었는데 보니, "발포권관은 군사를 거느릴 만한 재목이 못 되기로 갈아 치워야 하겠다"고 하므로 아직 갈지 말고 그대로 유임하여 방비에 종사하게 해달라고 답장을 보냈다.

 

3월 24일 [양력 5월 5일] <甲申>

나라제삿날(세종 소헌왕후 심씨 제일)임에도 공무를 보았다. 우후가 수색하고 탈없이 돌아왔다. 순찰사와 도사의 답장을 송 희립이 아울러 가져왔다. 순찰사의 편지 가운데, "영남 관찰사(김수)의 편지에 `대마도주(종의지)가 공문을 보냈는데, 벌써 대마도 배 한 척을 귀국(조선)에 보냈는데, 만일 도착하지 않 았다면 풍랑에 깨졌을 것이라'고 했더라는 것이다. 그 말이 매우 음흉하다. 동래에서 서로 바라다 보이는 바다인데 그럴 리가 만무하며, 말을 이렇게 거짓으로 꾸며대니, 그 간사함을 헤아리기 어렵다"고 하였다.

 

3월 25일 [양력 5월 6일] <乙酉>

맑으나 바람이 세게 불었다. 동헌에 나가 공무를 본 뒤에 활 열 순을 쏘았다. 경상병마사가 평산포에 도착하지 않고 곧장 남해로 간다고 하였다. 나는 그를 만나지 못한 것을 한스럽다는 뜻으로 답장을 보냈다. 새로 쌓은 성을 순시해 보니, 남쪽이 아홉 발이나 무너져 있었다.

 

3월 26일 [양력 5월 7일] <丙戌>

맑다. 우후와 송희립이 남해로 갔다. 저녁나절에 동헌에 나가 공무를 본 뒤에 활 열다섯 순을 쏘았다.

 

3월 27일 [양력 5월 8일] <丁亥>

맑고 바람조차 없다. 일찍 아침밥을 먹은 뒤 배를 타고 소포(여수시 종화동 종포)에 이르러 쇠사슬을 가로질러 건너 매는 것을 감독하고, 종일 나무 기둥 세우는 것을 바라 보았다. 겸하여 거북함에서 대포 쏘는 것 도 시험했다.

 

3월 28일 [양력 5월 9일] <戊子>

맑다. 동헌에 나가 공무를 봤다. 활 열 순을 쏘았는데, 다섯 순은 모조 리 다 맞고, 두 순은 네 번 맞고, 세 순은 세 번 맞았다.

 

3월 29일 [양력 5월 10일] <己丑>

맑다. 나라제삿날(세조 정희왕후 윤씨 제일)임에도 공무를 보았다. 아산 고향으로 문안 보냈던 나장이 돌아왔다. 어머니께서 편안하시다니 참으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