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B> 亂中日記 (18) -李舜臣-
계사년 9월 (1593년 9월)
9월 초1일 [양력 9월 25일] <壬子>
맑다. 공문을 만들어 도원수와 순변사에게 보냈다. 여필·변존서·조카 이뇌등이 돌아갔다. 우수사(이억기)·충청수사 정걸(정걸)과 함께 이야기했다.
9월 초2일 [양력 9월 26일] <癸丑>
맑다. 장계의 초안을 잡아서 내려 줬다. 경상우후 이의득·이여념 등이 와서 봤다. 어두울 녘에 이영남이 와서 보고, 또 전하기를, 병마사 선거이가 곤양에서 공로를 세웠다고 한 것과 남해현령(기효근)이 체찰사에게 꾸중을 들었는데 공손치 못하다는 이유로 불려 간 것이다고 말했다. 우습다. 기효근의 형편없는 짓이야 이미 알고 있는 터이다.
9월 초3일 [양력 9월 27일] <甲寅>
맑다. 아침에 조카 봉이 들어와서 어머니께서 평안하시다고 한다. 또 본영의 소식도 들었다. 장계를 올리려고 초안을 만들었다. 순찰사 (이정암)의 편지가 왔는데,"무릇 군사인 일가족 등이 하는 일이라 일체 침해하지 말라"고 하였다. 이는 새로 부임하여 사정을 잘못 알고 하는 일이다.
9월 초4일 [양력 9월 28일] <乙卯>
맑다. 폐단되는 것을 진술하는 것과 총통을 올려 보내는 것과 제만춘을 불러서 문초한 사연을 올려 보내는 것 등 세 통의 장계를 봉하여 올리는데, 이경복이 지니고 갔다. 정승 류성룡· 참판 윤자신 ·지사 윤우신 도승지 심희수·지사 이일· 안습지· 윤기헌에게는 편지를 쓰고, 전복을 정표로 보냈다. 조카 봉과 윤간이 함께 돌아갔다.
9월 초5일 [양력 9월 29일] <丙辰>
맑다. 식사를 한 뒤에 충청수사 정걸의 배 곁에다 배를 대어 놓고서 종일 이야기했다. 광양현감·흥양현감 및 우후(이몽구)가 와서 보고서 돌아갔다.
9월 초6일 [양력 9월 30일] <丁巳>
맑다. 새벽에 배 만들 재목을 운반할 일로 여러 배를 내어 보냈다. 식사를 한 뒤에 우수사(이억기)의 배로 가서 종일 이야기하고 거기서 원균의 흉칙스러운 일을 들었다. 또 정담수가 밑도 끝도 없이 말을 만들어낸다는 말을 들으니, 우습기만 하다. 바둑을 두고나서 물러갔다. 그만두도록 할 배의 재목을 여러 배로 끌고 왔다.
9월 초7일 [양력 10월 1일] <戊午>
맑다. 아침에 재목을 받아 들였다. 아침에 방답첨사가 와서 봤다. 순찰사(이정암)에게 폐단을 진술하는 공문과 군대 개편하는 일에 대한 공문을 만들어 보냈다. 종일 홀로 앉아 있으니 마음이 편하지 않다. 저녁때가 되니 탐후선이 오기를 몹시 기다려지는데도 오지 않았다. 해가 저무니 기분이 언짢고 가슴이 답답하여 창문을 열고 잤다. 바람을 많이 쐬어 머리가 무겁고 아프니 걱정스럽다.
9월 초8일 [양력 10월 2일] <己未>
맑다. 바람이 어지러이 불었다. 새벽에 송희립 등을 당포 산으로 내 보내어 사슴을 잡아 오게 했다. 우수사(이억기)가 충청수사(정걸)와 함께 왔다.
9월 초9일 [양력 10월 3일] <庚申>
맑다. 식사를 한 뒤에 모여서 산마루에 올라가서 활 세 순을 쏘았다. 우수사(이억기)·충청수사 정걸(정걸) 및 여러 장수들이 모였는데, 광양현감은 아프다고 참가하지 않았다. 저녁때에 비가
내렸다.
9월 10일 [양력 10월 4일] <辛酉>
맑다. 공문을 적어 탐후선에 보냈다. 저녁나절에 우수사의 배에 이르러 방답첨사와 함께 술을 마시고 헤어졌다. 체찰사의 비밀편지가 왔다. 보성군수(김득광)도 왔다가 갔다.
9월 11일 [양력 10월 5일] <壬戌>
맑다. 충청수사 정걸이 술을 마련하여 와서 봤다. 우수사(이억기) 도 오고, 낙안군수·방답첨사도 같이 했다. 흥양현감이 휴가를 받아 갔다. 서몽남에게도 휴가를 주었다. 함께 나갔다.
9월 12일 [양력 10월 6일] <癸亥>
맑다. 식사를 한 뒤에 소비포권관(이영남)·류충신·여도만호 김인영 등을 불러 술을 먹였다. 발포만호(황정록)가 돌아 왔다.
9월 13일 [양력 10월 7일] <甲子>
맑다. 종 한경·돌쇠(돌세)·해돌이(연석) 및 자모종이 돌아왔다. 저녁에 종 금이(김이)· 해돌이(연석) 등이 돌아갔다. 양정언도 같이 돌아갔다. 그러나 저녁에 비바람이 세게 일더니 밤새도록 그치지 않았다. 어떻게 갔을런지 모르겠다.
9월 14일 [양력 10얼 8일] <乙丑>
종일 비가 내리고 또 바람도 세게 불었다. 홀로 봉창 아래에 앉았으니, 온갖 생각이 다 일어난다. 순천부사가 돌아왔다.
9월 15일 [양력 10월 9일] <丙寅>
9월 17일 [양력 10월 11일] <戊辰>
큰 포구에는 달리 한 마지기에 석 섬을 내는 것을 133섬 5말을 내었다. (의견을 덧붙인 종이) 붓과 벼루에 뜻을 두었지만, 바다의 뭍의 일이 너무 바빠 쉴틈이 없고 내 구역을 내버려 두고 잊은지 오래 되었다. 이를 받들어. (** 날짜는 알 수 없으나, 1593년(계사) 9월 15일 다음에 별도의 장부터 시작하여 5 장에 걸쳐 적혀 있는 글이 있다.) ①㉠ 하나, 오랑캐의 근성은 언행이 경박하고 거칠며, 칼과 창을 잘 쓰고 배에 익숙해 있으므로, 육지에 내려오면, 문득 제 생각에, 칼을 휘드르며 돌진하고, 우리 군사는 아직 정예롭게 훈련되어 있지 않은 무리이므로, 일시에 놀라 무너져 그 능력으로 죽음을 무릅 쓰며 항전할 수 있겠습니까. ㉡ 하나, 정철총통은 전쟁에 가장 긴요한 것인데도, 우리 나라 사람들은 그 만드는 법을 잘 알지 못하였습니다. 이제야 온갖 연구 끝에 조총을 만들어 내니, 왜놈의 총통보다도 낫습니다. 명나라 사람들이 와서 진중에서 시험사격을 하고서는 잘 되었다고 칭찬하지 않는 이가 없었습니다. 이미 그 묘법을 알았으니, 도 안에서는 같은 모양으로 넉넉히 만들어 내도록 순찰사와 병마사에게 견본을 보내고, 공문을 돌려서 알게 하였습니다. ㉢ 하나, 지난해 변란이 일어난 뒤로 수군이 전투한 것이 수십번이나 많이 되는데, 그 적들은 꺾여져 무너지지 않는게 없고, 우리는 한번도 패하지 않았습니다. ②㉠ 나라는 갈팡질팡 어지러운데, 충신으로 나설 이 그 누구인고! 서울을 떠난 것은 큰 계획이요, 회복은 그대들께 달려있나니, 국경이라 산의 달 아래 슬프게 울고, 압록강 강바람에 아픈 이 가슴, 신하들아! 오늘을 겪고 나서도, 그래도 동인 서인 싸우려느냐! 임금이 "누가 곽자의나 이광필처럼 되겠느뇨"라고 지은 시이다. ㉡ 나라는 갈팡질팡 어지러운데, 충신으로 나설 이 그 누구인고! 서울을 떠난 것은 큰 계획이요, 회복은 그대들께 달려있나니, 국경이라 달 아래 슬프게 울고, 압록강 강바람에 아픈 이 가슴, 신하들 아! 오늘을 겪고 나서도, 그래도 동인 서인 싸우려느냐! ③ 약속하는 일. 이제 여러 곳의 적들이 모두 영남의 바다로 모이고, 육지로는 함안·창원·의령에서 진양에 이르기까지, 물길로는 웅천·거제 등지까지 무수히 합세하기에 도리어 서쪽에다 뜻을 두 었으나, 이런 흉모를 더하는 것이 무척 통분할 뿐 아니라, 지난해 늦가을부터 지금까지 여러 장수들을 쓰는 것이 마음을 다했는지 여부와 시기를 따라 익히 살피면 혹시라도 먼저 돌진하자고 하여도 서로 싸우기만 하는데, 마음에 맺혀 잊지 못하는 가운데 눈물을 흘리는 자가 있고, 혹 욕심이 있어 늙은이에게 이로움이 절실하여 승패를 가늠하지 못하고서 저돌적으로 적의 예봉에 마침내는 나라가 망하고 몸만 아프게 되었습니다. ④ 군사의 예리함의 정도가 바람과 비와 같고, 흉물들의 나머지 넋들이 달아나 숨는데,□□□ 석자 칼로 하늘에 맹세하니 산과 강 떠는도다. 만번을 죽일지라도 한 목숨 살 꾀 돌보지 않는도다. 분하고 분할 따름이다. 나라와 종사를 안정하게 하려고 충성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이에다 죽고 삶을 두니, 사직의 위엄과 영험에 힘입어 겨우 조그마한 공로를 세웠는데, 임금의 총애와 영광이 너무 뛰어 분에 넘칩니다. 장수의 직책을 띤 몸으로 티끌만한 공로도 바치지 못하였으며, 입으로는 교서를 외우지만, 얼굴에는 군인 으로서의 부끄러움이 있을 뿐이다. 비리고 노린내 나는 놈들에게 함락되어 앞으로 두가지 세력에 미치게 되것이니, 국가를 회복할 시기는 바로 지금입니다. 정치는 명나라 군사와 수레 및 말들의 소리를 기다리며, 하루가 1년이 되는 것 같으나, 적을 죽여 없애지 않고 화친을 삼으려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물러난 왜적들이 우리 나라에 수년 동안 침범해와 그 욕됨 을 아직도 씻지 못했습니다. 하늘에까지 미친 분함과 부끄러움이 더욱 절실한데, 임금의 수레는 서쪽으로 가시고 종사는 쓸쓸 하게 변하여, 온 나라 안에 충성스럽고 의리의 기운을 펴지만 스스로 백성들의 희망을 끊어버립니다. 저가 비록 아둔하고 겁이 많지만, 몸소 시석을 무릅쓰고 여러 장수들을 위하여 먼저 나가서 몸을 다칠지라도 나라에 은혜를 갚으려는데, 지금 만약 기회를 놓친다면 앞으론 후회해도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도끼와 쇠뇌틀을 군문에 두고 오랫동안 쓰지 않으면서 파수꾼에게 훈계하여 말하기를, 설사 □하지 않는다 해도 곧 우리 집을 불태워서라도 왜적의 손안에서 욕먹지 말아야 한다. 바로 위급한 일에 사용되어야 합니다. 하물며 여러번 해전에서 승첩하여 크게 왜적의 콧대를 꺾었으니, 군사들의 떠드는 소리가 바다를 뒤흔들었으니, 비록 과중부적(중과부적)일지라도 우리의 위세를 겁내어 감히 버티고 싸우려는자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