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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B> 부활 (38) -톨스토이-

카지모도 2021. 8. 13.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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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미사가 시작되었다.

미사는 다음과 같은 순서로 진행되었다. 먼저 사제가 일종의 기묘하고 거북스러운 금란 제의를 입고 여러 성인들의 이름과 기도문을 외면서 성반 위의 빵을 잘게 썰어 늘어놓은 다음, 그것을 포도주가 들어 있는 성작 속에다 집어넣었다. 그러는 동안 부제는 쉴 새 없이 자기도 잘 모르는 슬라브어로 된 기도문을, 더군다나 너무나 빨리 읽어서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도 없는 기도문을 읽고 있었고, 그 다음에는 죄수들로 구성된 성가대가 번갈아 가며 찬가를 불렀다. 기도문은 대개 황제와 그 가족의 안녕을 비는 것이었다. 이러한 기도문은 다른 기도문과 함께, 혹은 그것만 단독으로 여러 번 되풀이되었으며, 그때마다 모두들 무릎을 꿇었다. 그 외에 부제가 <사도 행전>중의 몇 구절을 낭독했는데, 너무나 긴장된 목소리로 낭독했기 때문에 무슨 말인지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 다음에 사제가 <마가 복음>중에 한 구절을 매우 또렷또렷하게 읽었다. 그것은 예수가 부활 승천하여 하느님의 오른편에 앉기 전에 먼저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서 살아 있는 모든 것에 복음을 전하라고 명령하고, 동시에 믿지 않는 자는 멸망하고, 믿어서 영세를 받는 자는 구원을 받을 뿐만 아니라, 마귀를 쫓아내고, 병자에게 손을 대기만 하여도 병이 낫고, 새로운 말을 하며, 뱀을 쥐고 독을 마셔도 죽지 않고 건강하게 살아남을 수 있으리라고 말한 대목이었다.

미사의 본 의미는 사제가 잘게 썰어 포도주 속에 넣은 빵 조각이 일정한 순서와 기도가 행해지는 동안 하느님의 살과 피로 변한다는 데 있었다. 이 일정한 순서라는 것은 사제가 몸에 두른 금란의 자루 같은 제의가 거추장스러움에도 불구하고 두 팔을 같은 높이로 쳐들고 한동안 그대로 있다가 무릎을 꿇고 제단과 그 위에 있는 성물들에 입을 맞추는 일이었다. 그 중에서 제일 중요한 행위는 사제가 두 손으로 냅킨을 집어 성반과 금 성작 위에서 능숙한 솜씨로 일정하게 흔드는 것이었다. 바로 이 순간에 빵과 포도주가 하느님의 살과 피로 변한다고 알려져 있으므로 미사 중에서도 이 행위가 제일 엄숙하게 행해지고 있었다.

"더없이 거룩하시고 순결하시고 축복받으신 성모 마리아를 위하여!"하고 사제는 본당 칸막이 뒤에서 소리 높이 부르짖었다. 그러자 성가대가 엄숙히 찬미가를 불렀다. 순결한 처녀의 몸으로 그리스도를 낳은 성모 마리아를 찬양하는 것은 매우 훌륭한 일이며, 그러므로 마리아는 케루빔(제2급의 천사, 곧 지품 천신)보다 더한 존경과 세라핌(천사, 곧 지품 천신)보다 더한 영예를 받을 가치가 있다는 내용의 노래였다. 이러한 것 뒤에 성찬의 기적이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하여 사제는 성반에서 냅킨을 걷어치우고 가운데의 빵 한 조각을 넷으로 잘라 먼저 포도주 속에 넣고 다음에는 자기 입에다 넣었다. 이것으로 그는 신의 살(성체) 한 조각을 먹고 신의 피(성혈) 한 방울을 마신 셈이 되는 것이다. 그 다음 사제는 제단을 모신 곳의 막을 걷고 가운데 문을 연 다음, 한 손에 금 성작을 들고 열린 문으로 나와, 성작 속에 든 성혈과 성체를 먹고 싶은 사람을 앞으로 불렀다.

희망자로서 몇몇 아이들이 나왔다. 먼저 사제는 아이들의 이름을 묻고는 성작 속에서 조심스럽게 포도주에 적신 빵 조각를 스푼으로 건져내어 아이들 하나하나의 입 안에 차례차례 넣어 주었다. 그러면 옆에 서 있던 부제가 그 자리에서 아이들의 입을 닦아 주면서 아이들이 신의 살(성체)을 먹고 그 피(성혈)를 마셨다는 뜻의 찬가를 불렀다. 이러한 의식이 끝나자 사제는 성작을 칸막이 뒤로 가져가서 잔에 남아 있는 성체를 다 먹고 성혈을 다 마신 후 정성껏 수염을 닦고 입과 성작을 닦고 나서는, 몹시 흐뭇한 듯 쇠가죽구두의 얇은 뒤축을 가볍게 울리며 힘찬 걸음걸이로 칸막이 뒤에서 걸어나왔다.

이것으로 미사의 중요한 부분이 끝났다. 그러나 사제는 이곳에 온 불행한 죄수들을 위해서 보통 미사 의식에다가 특별한 의식을 덧붙였다. 이 특별한 의식이란 사제가 지금 자기가 먹은 신의 상을 본뜬 금니 성상(얼굴과 손은 검다.)과 켜져 있는 열 자루의 촛불 앞에 서서 노래도 아니고 이야기도 아닌 괴상한 어조로 다음과 같은 말을 시작하는 것이다.

"더없이 너그러우신 예수여, 사도의 영광이시고 전능하신 예수여, 가장 아름다우신 우리의 예수여, 당신을 그리며 모여드는 자들을 구원하소서! 당신을 낳으신 자와 당신의 거룩하신 모든 예언자의 기도에 의하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우리의 구주 예수님, 천국의 기쁨을 베푸소서! 만백성을 사랑하시는 예수여!"

여기까지 하고 그는 말을 끊더니 잠시 동안 숨을 돌리고 나서 성호를 긋고 코가 땅에 닿도록 깊숙이 절을 했다. 모두들 그대로 따라 했다. 소장도 간수들도 죄수들도 절을 했다. 위층에서는 빈번히 쇠고랑 소리가 울렸다.

"모든 천사의 창조자이시고 힘의 구현자이신 예수여!"하고 사제는 계속했다. "모든 천사들의 경탄의 표적이시고 우리 시초의 구원이신 굳센 예수여, 온 족장의 찬송이신 예수여, 모든 왕들의 지위를 굳게 하신 영광스러운 예수여, 모든 수도자들의 기쁨이신 겸손하신 예수여, 사제들의 동경이신 자비로우신 예수여, 제계자들의 계율이신 인자하신 예수여, 모든 성자들의 기쁨이신 거룩하신 예수여, 동정자들을 지키시는 순결하신 예수여, 죄인들의 구원이신 영원하신 예수여,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사제는 예수라는 말을 입에 올릴 적마다 점점 소리를 높여 나중에는 휘파람 소리를 내면서 가까스로 끝마쳤다. 그는 한 손으로 비단을 안에 댄 제의를 붙잡고 한쪽 무릎을 꿇고 절을 했다. 성가대는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마지막 구절을 부르기 시작했다. 죄수들 절반쯤 깎은 머리를 흔들며, 뼈만 남은 앙상한 발목에서 쇠고랑을 절그럭거리면서 엎드리기도 하고 일어서기도 했다.

미사는 이런 식으로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처음엔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로 끝나는 성가를 부르고, 다음엔 '할렐루야!'로 끝나는 새로운 성가를 불렀다. 죄수들은 성호를 긋고 절을 했다. 처음에는 노래가 끝난 때마다 절을 하더니 나중에는 한 번씩 걸러 절을 하다가 두 번씩 걸러 절을 했다. 그리고 성가가 전부 끝났을 때에는 모두들 마음이 흐뭇했다. 사제도 안도의 숨을 내쉬고는 기도서를 덮은 다음 칸막이 뒤로 들어갔다. 마지막 한 가지 일이 남아 있었다.

사제가 커다란 제단에서 끝에 칠보 메달이 달린 도금한 십자가를 들고 와서 성당 중앙으로 걸어갔다. 그런 다음 제일 먼저 소장이 그 곳으로 다가가 키스하고 뒤이어 간수들, 죄수들의 순서로 나아갔는데 죄수들은 서로 떼밀며 욕지거리를 퍼부으며 나갔다. 사제는 소장과 뭔가 이야기를 하면서 곁에 온 죄수들의 입에다 십자가와 자기 손을 내밀기도 하고 때로는 코에다 불쑥 내밀기도 했다. 그러자 죄수들은 십자가와 사제의 손에 키스하려고 애를 썼다. 이런 식으로 길 잃은 형제들의 위로와 교화를 위한 크리스트교의 미사가 끝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