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꺽정 2권 (23)
20
꺽정이가 옆에서 보고 섰다가 “고만들 일어나오.” 하고 말한즉 연중이가
먼저 입을 열어 “서방님, 저 총각이 누구요?”하고 물어서 덕순이가 “임꺽정이
란 총각이야.”하고 대답하니 “양주 임꺽정이오? 내게 칼 쓰는 법이 다르더라.
” 하고 연중이가 꺽정이를 치어다보며 “자네가 천하 장사란 것을 말로만 들었
더니 인제 눈으로 보았네.” 하고 말하였다. “우리 선생님을 만나보았소?” “
자네 선생님이 우리 형님이야. 지금 내게 계시지. 요새도 심심하면 자네 말씀일
세.” “선생님이 여기 계시단 말이지. 그러면 어서 들어갑시다.” 하고 꺽정이
가 재촉하니 연중이가 덕순이를 부축하여 일으켰다. 덕순이가 꺽정이를 보고 “
선생님 한 분은 여기 내버리고 갈 터이냐? 오시라고 해야지.” 하고 말하여 꺽
정이가 “어서 가서 뫼소고 옵시다.” 하고 덕순이와 같이 가려고 하는데 연중
이가 “그 선생님은 누구요?” 하고 물어 혜화문 안 갖바치란 말을 듣고 반색하
며 “나도 같이 갑시다. 그러나 잠깐만 기다리시오.” 하고 작은 두목 하나를 손
짓하여 불러서 죽은 자와 상한 자를 모두 치워 가지고 들어가게 하고 졸도 중에
서 십여 인만 데리고 남아 있으라고 분부한 뒤에, 세 사람이 같이 산기슭 솔밭
속에 떨어져 있는 갖바치에게로 오게 되었다.
연중이가 갖바치와 반갑게 인사하고 김륜이와도 수어 인사를 마친 뒤에 꺽정
이가 산속으로 들어가기를 재촉하여 말하니 갖바치가 연중이를 보고 “자네 있
는 곳이 여기서 멀지나 아니한가?” 하고 물어서 십 리 넘는다는 대답을 듣고
“지금 우리들은 모두 시장한 터이니 가까운 절이 있으면 절로 가세.” 하고 말
하여 연중이가 “그것도 좋지요. 여기서 남방사가 가까우니 그리로 가서 저녁들
을 잡숫게 하지요.” 하고 일변 갖바치의 뜻을 좇으며 “우리 형님도 그리 나오
시라고 함세.” 하고 일변 꺽정이의 급한 맘을 위로하였다.
연중이가 작은 두목에게 말을 일러 들여보내고 나머지 졸도를 거느리고 손님
일행과 같이 남방사에를 들어오니, 대장님이 행차하셨다고 절이 발끈 뒤집히다
시피 야단이었다. 멸악산에 있은 이 절 저 절 중들이 모두 박연중이를 호랑이같
이 무서워하고 상감같이 알고 위하는 터이라, 남방사 중들이 노문 없는 행차에
수각이 황망하여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큰방을 치우고 연중이가 손님들과
같이 들어앉았다. 손님 일행 다섯 중에 하나는 물론 마굿간으로 들어갔다. 칼고
창이 번쩍거릴 때 죽지 않고 살아난 것이 마굿한 대접에 족한 줄을 모르고 ‘보
리를 드려라, 콩을 드려라’ 하는 듯이 앞발로 마판을 연해 긁고 있었다. 중들이
갑자기 다담상을 차리느라고 분주한 중에 한 중이 “아니구, 노선생님까지오시
네.” 하고 말하여 여러 중이 문에 들어오는 늙은이에게로 마주 나가서 일제히
문안을 드리었다. 그 늙은이는 중들이 문안하는 것을 본 체 만체하고 절 마당으
로 들어오며 “꺽정이 어디 있느냐?” 하고 소릴치니 큰방에 있던 꺽정이가 한
걸음에 뛰어나와 마당에서 절을 하고 늙은이를 부축하고 큰방으로 들어왔다.
그날 밤은 여러 사람이 다 함께 남방사에서 자게 되었는데 늙은이와 꺽정이의
사이에도 이야기가 많았거니와 덕순이와 연중이의 이야기는 닭 울 때까지 그칠
줄을 몰랐었다. 이튿날 연중이 있는 적굴로 들어왔다. 적굴이라고 토굴 같은 것
이 아니었다. 고래등같은 기와집이 살골짜기에 가득하였다. 갖바치와 김륜이는
이삼일 동안 융슝한 대접을 받은 뒤에 강서길을 떠나고, 덕순이와 꺽정이는 연
중이와 같이 산 밖까지 나와서 갖바치를 전송하고 다시 들어와서 며칠 동안 더
묵었다. 그 동안에 덕순이는 연중이를 보고 세상으로 나가서 같이 살자고 누누
히 말하였다. 연중이가 아무말이 없이 듣고 앉았다가 나중에는 “세상에 나가
사는 것은 생각만 해도 진저리가 나오. 나를 죽은 사람으로만 치시오.”
이와 같은 대답으로 거절하여 덕순이는 연중의 손을 잡고 뜨거운 눈물까지 흘
리었으나, 진정에서 솟아나는 눈물로도 연중의 맘을 변개시키지 못하였다. 며칠
뒤에 덕순이는 간곡하게 붙잡는 연중이를 떨치고, 꺽정이는 다시 볼지말지하다
고 눈물 뿌리는 검술선생을 하직하고 동행하여 멸악산을 떠나 나왔다. 두 사람
이 나귀를 앞세우고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덕순이가 연중이를 인정없다고 원망
하니 꺽정이는 “세상에 나와서 남의 집 하인질하느니 산속에서 왕노릇하려고
아니하겠소?” 인정을 말하는 당신이 대중없는 사람이오.“ 하고 덕순을 핀잔
주었다.
제 8장 출가
1
갖바치와 김륜이는 평산서 떠난 뒤에 도중에 일이 없이 강서 구룡산에 도달하
여 선생을 찾아 만났는데, 삼십 년 만에 다시 만나는 터이라 선생, 제자의 서로
반가워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어느 날 조용한 때, 선생, 제자 세 사람이 마주 앉아서 이야기하는 중에 김륜이
가 “선생님이 세상에서 숨으시기 전에 한림 벼슬을 다니신 일이 있습니까?”하
고 물은즉, 선생은 눈을 스르르 감고 그렇다 그렇지 않다 말이 없었다. 김륜이가
무료하여 갖바치를 돌아보며 “형님도 아시지만 신판사가 적어놓은 책에 정한림
이란 이의 사주가 선생님 사주와 똑같읍디다.” 하고 말 붙이는 것을 갖바치도
빙그레 웃고 대꾸를 하지 아니하니 김륜이가 더욱이 무료하여 얼마 동안 잠자코
앉았다가 “갑갑하니 바람이나 쏘이러 나갑시다.” 하고 갖바치를 이끌고 나가
려고 하였으나 갖바치는 “나는 나가고 싶은 생각이 없네.” 하고 따라나가지
아니하였다. 김륜이가 밖으로 나간 뒤에 갖바치가 “선생님, 두 권 책을 이번에
도로 가지고 왔습니다.” 하고 허리에 찼던 전대를 끄르고 그 속에서 부주비전
과 망단기결 두 권을 내어서 선생 앞에 갖다놓았다. “책을 남에게 보인 일은
없겠지?” “주야로 만나던 사람도 책이 있는 줄까지 모릅니다.” “너는 모르
는 것 없이 다 알겠지?” “대강 다 압니다. 아는 것이 도리어 걱정되는 때가
많습니다. 세상에 어려운 일이 한두 가지 아니겠습지요만, 아는 것을 모르는 체
하기보다 더 어려운 일이 없을 것 같습디다.”
선생이 갖바치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너같이 조심하는 사람이 아
니면 전치 못할 책이다. 함부루 뒤에 남길 책이 못 되니 내 눈앞에서 불사라 버
려라.” 하고 곧 뒤를 이어서 “륜이가 돌아오기 전에 앞뜰에 나가서 태워라.”
하고 일러서 갖바치가 책을 태우고 재를 치우기 전 김륜이가 들어왔다. “무엇
을 태우셨소?” “선생님이 휴지책을 태우라고 하셔서.” “무슨 책입디까?”
“부주비전이란 책인데.”
김륜이가 “여보, 그 책을 왜 아깝게.”하고 반동강 말을 하면서 시비하려는 사
람같이 바짝 갖바치 앞으로 대어들었다. “아깝지만 선생님이 태우시라는 걸 어
떻게 한단 말인가?”하고 갖바치가 나무라는 눈치로 치어다보니 김륜이는 “형
님, 고지식도 하오. 한번 보기라도 하고 태우지요.”하고 다 탄 재를 들여다보며
곧 울 것같이 상을 찡그리었다. “방안으로 들어가세.” “녜.”
김륜이가 갖바치의 뒤를 따라 들어와서 한구석에 앉은 뒤에 “삼원명경 백여
권이 지금 네게 몇 권 남아 있느냐?”하고 선생이 노기 있이 말하니 김륜이가
앞으로 나와 꿇어 앉았다. “친한 사람들이 보고 가져오겠다는 것을 인정에 차
마 못한다기 어려워서 빌려주었더니 구경 돌려보내지 아니하여 낙길이 되었습니
다.” “내가 남에게 빌리라는 말한 일이 없지야?” “잘못되었습니다. 이번에
나가면 저지히 찾아다 두겠습니다.” “찾아? 지금 없어진 것이 벌써 십여 권이
고 네가 찾지 못할 만큼 깊이 들어간 것이 대개 이십여 권이다. 삼원명경쯤을
잘 보존 못하는 네가 그 이상의 책을 바라는 것은 분수에 넘치는 일이다.”하고
선생이 준절히 말하여 김륜이는 부끄러운 생각에 한참 동안 고개를 바로 들지
못하였다.
선생은 조는 듯이 눈을 내리감고 앉았다가 홀저에 눈을 들어 두 제자를 바라
보며 “이리 가까이들 와 앉아라.”하고 이르고 난 다음에 “명일 오시에는 내
가 이 세상을 떠날 터이다. 신후사는 부탁할 것이 없으나 화장에 소도바도 성가
신 일이니 배토장으로 관 쓰지 말고 묻고, 봉분도 만들지 말고 평토를 쳐라. 고
인총상 금인경이라니 가랫밥 보탬도 좋지그려.”하고 허허 웃었다. 아무 병도 없
는 선생이 그 이튿날 오시에 과연 자는 사람과 같이 운명하니, 갖바치는 김륜을
데리고 일을 주장하여 선생의 이른 말대로 초종을 지내고 며칠 지난 뒤에 구룡
산을 떠나는데 김륜은 광주 가서 볼일이 있다고 서울길로 올라가고 갖바치는 “
기위 이곳까지 왔으니 묘향을 한번 둘러보고 가겠네.”하고 영변길로 내려갔다.
2
갖바치가 묘향에 들어가서 머리 깎고 중이 되었다. 갖바치가 서울서 떠날 때
에 금동이 내외를 양주로 보내고 혜화문 안 집을 김덕순에게 주고 손 털고 나선
것이 중이 될 맘을 속으로 작정하였던 것이다. 전에 갖바치가 선생의 심부름을
다니는 중에 면분이 두터웠던 수월당 노장중은 그 동안에 벌써 죽었고 그때 상
좌가 수월당 주장중이 되었었다. 그 주장중이 갖바치의 이야기를 듣고서 아이
적에 보던 사람인 것을 깨닫고 남달리 대접하여 갖바치는 수월당에서 중이 되었
다.
갖바치가 묘향산에 간 소식은 김륜이가 광주 가는 길에 덕순을 찾아보고 말하
여 양주서도 곧 알았으나, 그 뒤에는 소식이 막히어서 섭섭이와 꺽정이가 궁금
히 생각할 때가 많았다. 이듬해 늦은봄에 묘향산 보현사 중 하나가 금강산을 가
는 길에 덕순을 찾아 들어와서 편지 한 장을 전하고 갔다. 그 편지 겉봉에 “한
양 혜화문내 이석사전치 임꺽정개견”이라고 쓰인 것이 갖바치의 필적이었다.
덕순이가 중간에서 편지를 뜯어보니 안부 이외에 별 말이라고는 묘향산 구경 오
라는 말뿐이고 연월일 아래에는 병해라고 쓰이어 있었다. 덕순이가 꺽정이를 불
러올리어 편지 사연을 말하여 들리었더니 꺽정이는 “선생님이 오라는데 묘향
산 구경이나 가야겠군.”하고 불일간 길을 떠날 것같이 서둘렀다. “언제쯤 가려
느나?” “곧 가지 무어.” “너의 집에 말도 아니하고?” “말하고 가지요.”
“그러면 집에 가서 말하고 오너라. 나하고 동행하자.”
꺽정이가 집으로 내려와서 묘향산 갈 일을 말하니 꺽정이 아버지가 첫마디에
“안된다.”하고 막았다. “왜요?” “그런 일이 있어. 가려거든 두어 달 후에
가거라.” “그런 일이 무슨 일이오?” “지금 너의 혼인말이 작정되어 가니 어
른이 된 뒤에 구경을 나가거라.” “어른이오? 나는 싫소. 갓도 못 쓰는 어른보
다 총각이 좋아요.” “이 자식, 그러면 총각으로 늙을 테냐?” “총각으로 늙어
도 좋지요.” “망한 자식 같으니.” “남이 들기 싫다는 장가를 억지로 들이려
고 하면 내가 묘향산에 가서 다시 아니 올 터이오.” “중이 될 테냐? 이 자식.
” “중이 되든지 무엇이 되든지.” 꺽정이는 부자간에 말다툼하고 이튿날 서울
로 올라왔다.
혜화문안 덕순에게를 와서 보니 덕순도 없고 덕순의 아우 덕무도 없다. 집 지
키는 할머니를 불러서 물어보니 그 할머니 말이 “큰댁에들 가셨소.”하고 가르
쳐서 덕수의 집에를 찾아왔다. 안에 있는 덕순을 불러내어 길 떠날 일을 말하니
덕순이는 “지금 우리 어머니가 갑자기 병환이 나셔서 어젯밤도 새우다시피 하
였다. 구경이 다 무어냐.”하고 동행 못할 사정을 말하였다. “그러면 나 혼자
가겠소.” “그래라. 내가 동행하려다 못한 이야기나 하여라.” 꺽정이가 작별하
고 돌아서 나갈 때에 덕순이가 꺽정이를 다시 불러가지고 묘향산에 가서 갖바치
를 찾을 때, 수월당 병해대사로 찾으라고 일러 주었다.
꺽정이가 평산부터는 초행길이라 길을 묻느라고 자연 조금씩 지체가 되어서
서울서 떠난 지 나흘 되던 날 아침에 묘향산에를 들어왔다. 보현사 큰절에 와서
수월당을 물으니 머리 깎은 갖바치 선생이 어느 방에서 나오며 “너 오느냐?”
하고 꺽정이를 반갑게 맞아들이었다. 꺽정이가 양주 집안 이야기와 서울 덕순의
집 이야기를 대강 말하고 난 뒤에 대사가 “너 올 때 심선생을 못 뵈었니?”하
고 물으니 꺽정이는 “안 뵈었소. 안녕하시겠지요.”하고 말하였다. “너더러 오
라기는 다름 아니다. 내가 백두산에를 들어가 볼 생각이 있으니, 너 나하고 같이
가지 아니하려느냐?” “아무데라도 같이 가십시다. 그러나 백두산은 함경도 땅에
서 들어가지 아니하나요?” “이곳에서 함경도 땅을 지나서 백두산에를 들어갈
수도 있겠지.” “아무렇게든지 가십시다.”하고 꺽정이는 별말 아니하고 선생
과 같이 백두산 구경을 가기로 작정하였다.
3
늙은 중과 건장한 총각이 작반하여 길을 나섰다. 희천, 강계를 지나 후창으로
나와서 강물을 끼고 올라오며 갈파진, 혜산진을 거치어서 영변서 떠난 뒤 달포
지난 때에 백두산 지경을 접어들었다. 그 동안에도 인가 없는 곳을 누차 지나왔
지만, 앞으로는 산 상봉까지 이백 리 길이 내처 무인지경이라 총각은 질머진 바
랑 속에 감자를 말이 넘게 얻어 넣었다. 범이 내닫거나 곰이 덤비거나 또는 무
지한 되놈이 달려들거나 총각은 조금도 겁낼 사람이 아니로되, 생후에 처음 보
는 크나큰 수림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도끼 소리를 들어보지 못한 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서서 하늘이 잘 보이지 아니하였다. 하늘을 찌를듯이 꼿꼿이 선 것도
나무요, 다리 놓이듯이 썩어 자빠진 것도 나무라, 가고 가고 쉬지 않고 가도 전
후좌우에 보이느니 나무뿐이었다. 말하자면 나무바다를 헤엄쳐나가는 셈이었다.
방향을 잃고 헤매게 된다면 십 년 이십 년에도 벗어져 나갈 수가 없을 것 같았
다. 총각이 중의 뒤에 따라오며 “이놈이 숲이 끝이 없네요.”하고 말하니 “참
말 굉장한 수림이다.”하고 앞선 중이 대답하였다. “어디가 북쪽인지 어디가 남
쪽인지 아주 대중할 수가 없어요.” “염려마라. 방향은 잃지 않을 게니. 이것
보아라, 여기 사람 다닌 자취가 있다.”하고 이끼 위에 박힌 발자국을 가리키며
중은 총각을 돌아보았다. 중과 총각이 수림 속으로 얼마를 걸었던지 나무 없는
넓은 터전에 나오게 되었다. 그 터전 중간에 당집이 있다. “그만해도 시원하구
먼요. 저기 무슨 당집이 있네요.” “당집이다. 거기 가서 쉬어 가자.”
두 사람이 당집 앞으로 가까이 와서 보니 여편네 한 사람이 당집 안에 꿇어앉
아 있다. 두 손바닥을 맞대고 손 위에 앞이마를 얹고 입속으로 중얼중얼하는 것
이 무슨 축원을 드리는 모양이다. 총각의 큰기침에 여편네가 깜짝 놀라 돌아다
보며 “아구머니나.”하고 소리를 지르더니 “놀라지 마십시오.”하고 부드럽게
말하는 늙은 중을 이윽히 바라보다가 일어나서 당집 밖으로 나왔다. 그 여편네
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나이 오십 넘어 보이는 사람인데, 쪼그라지고 바스라진
그 얼굴에도 전날 곱던 전형이 보이었다. 여편네가 다시 한번 중의 모양을 훑어
보고 또 그 다음에 총각의 얼굴을 치어다보았다. 머리에 굴갓을 쓰고 목에 염주
를 걸고 몸에 먹장삼을 입고 두 손으로 지팡이를 짚고 섰는 늙은 중은 안에 품
은 도덕이 외모에 나타나고, 사람도 낳을 만한 큰 바랑을 짊어지고 굵직한 몽둥
이를 들고 섰는 총각의 얼굴은 사납게 생겨 보이나 흉한 사람 같지 아니하였다.
여편네가 놀란 맘이 가라앉는 듯이 늙은 중과 말을 하기 시작하였다. “이곳
을 어째 왔소?” “백두산을 올라가는 길이외다.” “대사님, 어느 절에서 왔소?
천봉산 자복사요?”
“아니올시다. 묘향산에서 왔소이다.” “묘향산이 어디인가요?” “평안도 영변
이올시다.” “평안도요? 아이구 멀고 먼 하관에서 오셨습니다.”하고 여편네가
잠깐 무엇을 생각하는 모양이더니 “우리 집이 여기서 가까우니 가서 쉬어 가시
지요.”하고 말하였다. 뒤에 섰던 총각이 앞으로 나서며 “대체 여기가 어디인가
요?”하고 물으니 “허항령이어. 사십리 허항령 고개를 말도 못 듣고 왔는가. 이
당집은 천왕님을 위하는 천왕당이고.”하고 여편네가 대답하였다.
중과 총각이 여편네의 뒤를 따라서 천왕당 옆으로 수림 속을 뚫고 5리길을 넘
어 나와 보니 통나무로 지은 삼간집이 보이었다. 여편네가 들어오라는 대로 집
안에를 들어서서 한번 둘러보니 나무벽을 털가죽으로 도배한 것같이 산짐승의
털가죽이 사방 벽에 매어 달렸다. 호랑이 가죽, 곰 가죽, 사슴 가죽, 가지각색 짐
승의 가죽이었다. 산짐승에게서 나는 노린내가 코를 거슬리었다. 손들이 주인의
뒤를 좇아 안방에 들어앉은 뒤에 총각이 산짐승의 털가죽을 가리키며 말을 묻기
시작하였다. “이것들을 어떻게 잡으셨소?” “아이들이 잡아온 것이지, 내가
어떻게 잡아.” “아이들이라니요?” “딸 하나, 아들 하나 남매가 있어.” “지
금은 어디들 갔나요?” “남매 같이 사냥 간다고 나갔으니까 해질 때에나 돌아
올 터이지.” “어째 이런 사람 살지 않는 곳에 와서 사시나요?”하고 물은즉
“이야기하자면 사연이 길어.”하고 여편네는 한숨을 쉬고 “대강 이야기하리
까?”하고 늙은 중을 돌아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