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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8권 (14)

카지모도 2023. 7. 8. 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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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거리 집으로 제법 깨끗한 집이 배돌석이가 사처를 정한 뒤 길양식에서

상하 세 사람의 저녁 아침 두 끼 쌀밥을 주인에게 내주고 저녁밥 지어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중에, 사처방의 비슷 맞은편 길가 방 쪽에서 주인과 어떤사람이

수작하는 말이 바로 옆에서 말하는 것같이 들리었다.

“형님 웬일이오?”묻는 것은 주인의 말소리요, “너희 집에 손님 드셨구나.

어디서 오신 손님이냐?”묻는 것은 다름 사람의 말소리다. “서울 손님

이오.”“안전께 구걸하러 온 손님인가?”“아니오. 평안도로 가시는 손님이라

우.”말소리가 그치고 얼마 아니 있다가 신발 소리가 가까이 나는 듯하여 배돌

석이가 방 밖을 내다보니 어둔 속이나 눈에 보이는 것이 분명히 장교 복색이라

마음이 갑자기 뜨아하여졌다. 배돌석이는 얼굴을 보라고 들고 앉았을 묘리가 없

어서 슬그머니 퇴침을 베고 드러누웠다. 한동안 지난 뒤 주인이 저녁 밥상을 가

지고 와서 배돌석이가 일어 앉았다. 하인 졸개가 행구 중의 찬합을 내서 열어놓

는 동안에 배돌석이는 방 밖에 섰는 주인을 보고 “아까 장교가 무어 수탐하러

왔었나?”하고 말을 물어보았다. “아니올시다. 소인의 사촌형이 소인보구 무슨

할 말이 있어 왔다갔습니다.”“사촌형이 장교 다니나?”“수교 올시다.” 주인

은 손님이 수저 드는 것을 보고 길가 방으로 나갔다.

일이 공교하게 되려면 억지로 꾸며 만든 것같이 공교하게 되는수가 있다. 배

돌석이가 우연히 사처를 정한 집 주인의 사촌형 봉산 수교가 역시 우연히 대단

치 않을 볼일로 사촌의 집에 왔다가 서울 손님이 어떤 손님인가 들여다보았더

니, 뜻밖에 그 손님의 얼굴이 눈에 익어 보이었다. 배돌석이는 어둔 밖을 내다보

아서 복색을 겨우 분변하였지만, 수교는 등잔불 켠 방안을 들여다본 까닭에 얼

굴을 잘 볼 수 있었다. 만일 배돌석이도 수교의 얼굴을 보았던들 눈에 익어 보

였을 것이 수교가 황천왕동이와 함께 장교를 다닐때 배돌석이와 수차 안면이 있

었던 까닭이다. 손님의 얼굴을 더 좀 자세히 보려고 할 즈음에 손님이 드러누워

서 수교는 그대로 돌아나와 사촌보고 할 말 하고 길거리로 나오면서 고개를 이

리 기울이고 저리 기울이고 하다가 나중에는 “옳지, 그놈이다.”“영락없는 배

가다.”하고 혼잣말을 지껄인 뒤 주먹을 쥐고 달음박질하여 홍살문 안으로 들었

갔다.

문루위의 폐문소리 끝나갈 때 수교가 삼문 안에 들어와서 쌍창 열어놓은 동헌

방을 바라보니 원님이 어디를 가고 자리가 비었었다. 수교가 동헌 마루에 올라

서자, 방에서 아이 통인하나가 마주 나왔다. “안전께서 내아에 듭셨느냐?”“아

니요, 뒤 납셨소.”수교가 동헌 마루에서 내려와서 뒷간 편으로 가다가 말고 넓

은 마당 중간에서 어정어정하는 중에 통인이 한 손에 초롱 들고 또 한 손에 인

궤들고 앞을 서고 그 뒤에 원님이 걸어오는데, 체소한 양반이 걸음만은 황소 걸

음 못지않게 무거웠다. 수교가 앞으로 나가서 두 손길 맞잡고 국궁하였다. “너

밤에 웬일이냐?”“비밀히 아뢸 일이 있소이다.”“비밀히 말할 일이 있어?”원

님이 수교의 말을 뇌듯이 말하고 다시는 말이 없었다. 무슨 일이냐 채쳐 묻지

않는 것을 수교는 속으로 괴상히 생각하며 원님의 뒤를 따라왔다. 원님이 방에

들어가서 자리에 앉은 뒤에 통인이 앞에 갖다놓는 인궤를 한번 열어보고 다시

닫아서 옆에 비켜놓고 좌우에 있는 통인들을 다 물리고 비로소 마루에 섰는 수

교를 내다보며 나직한 말소리로 “비밀히 말할 일이 무슨 일이냐?”하고 물었

다. 원님의 성질이 찬찬한 데 수교는 새삼스럽게 놀랐다. 이때 봉산군수는 박응

천이니 사람이 찬찬하고 또 찰찰하였다. 수교가 열어놓은 쌍창 앞으로 가까이

들어서서 역시 나직한 말소리로 말을 아뢰었다.

“연전에 황주 경천역말 역졸의 배가성 가진 자가 살인하구 도타한 일이 있솝

는데 그자가 유명한 불한당 괴수 임꺽정이 부하가 되었단 말이 있솝드니 무슨

흉겐지 모르오나 그자가 지금 가짜루 양반 행차를 꾸며가지구 읍에서 와서 싸전

거리 소인의 사촌의 집에 사처를 잡구 있소이다.”“네가 보았느냐, 네 사촌의

말을 들었느냐?”“소인이 사촌의 집에 갔다가 봤소이다.”“그놈들 수효가 모

두 몇이드냐?”“배가가 양반 행세하구 하인이라구 둘을 데리구 왔습디다.”“

모두 세 놈뿐이야?”“녜.”“세 놈을 잡는데 사람이 얼마면 되겠느냐?”“배가

가 돌팔매질루 유명한 놈이오나 잠자는 것을 들이덮쳐서 잡는 데는 사람이 많지

않아두 되겠소이다.”“그러면 왁자하게 떠들 것 없이 네가 슬그머니 장교와 사

령을 칠팔 명 모아가지구 나가서 잡아오너라.”수교가 장청에 나와 앉아서 장교

중의 힘꼴 쓰는 사람 네 명과 사령,군노 중에 건장한 사람 네 명을 뽑아 모아서

거느리고 싸전거리 사촌의 집으로 몰려나왔다. 그 집은 뒤채,안채,옆채 세채 집

인데, 안방과 건넌방은 뒤채에 있고 길가 방은 앞채에 있고 마굿간은 옆채에

있었다. 집 뒤와 집 옆은 울타리가 둘렸으나 집앞만은 그대로 길거리고 안채 한

구석에 있는 널찍한 헛간은 밖에서 뒤채로 드나드는 길이었다. 관차들이

집 앞에 와서 보니 온 집안이 캄캄하고 안방에만 희미한 불이 비치었었다.

수교가 이럴 줄 짐작하고 홰 두 자루를 준비시켜 가지고 왔었다. 가까운 술

파는 집에 가서 홰에 불을 붙여가지고 바로 안마당으로 들어오라고 두 사람을

보내고 길가 방과 헛간 앞에 한 사람씩 세워두고, 나머지 네 사람은 모두 육모

방망이를 손에 들고 배가의 사처방인 건넌방의 앞문과 지겟문을 지키게 하였다.

도둑과 같이 발자취들을 숨기고 다니나 자연 인기척이 아니 날 수 없었다. 안방

머리맡 외쪽문이 열리며 주인이 내다보는 것을 수교가 가까이 가서 손을 저어서

주인은 말없이 외쪽문을 도로 닫았다. 그 뒤에는 마굿간에 매인 말이 힝힝 소리

할 뿐이고 건넌방과 길가방은 사람 없는 듯 조용하였다. 횃불이 안마당에 들어

오자마자 건넌방의 앞문과 지겟문을 일시에 열어젖히고 수교까지 다섯 사람이

으악 소리들들 지르며 방안으로 뛰어들어갔다. 빈방이다. 행구도 있고 의관도 있

는데 사람만 없었다.

배돌석이는 잡히지 않을 운수가 뻗쳐서 관차들 오기 바로 전에 밤뒤를 보려고

마굿간 옆에 따로 떨어져 있는 뒷간에 나와 있었다. 배돌석이가 뒤를 다 보고

뒷간에서 나오다가 복색 다른 사람들이 안마당으로 들어오는 것을 희미한 별빛

아래 바라보고, 먼저 왔던 수교에게 자기 본색이 탄로되어서 관차들이 자기를

잡으러 나온 줄 선뜻 짐작하였다. 남의 없는 무기 팔매 돌주머니를 방에 두지

않고 가지고 나왔다면, 그까지 관차 몇 명 안중에 둘 것도 없었지만 무기를 안

가지고는 별수가 없어서 구차스럽게 은신할 곳을 찾았다. 뒷간 앞에서 뒤울안으

로 돌아오는데 신발 소리를 새지 않으려고 신을 벗어 손에 들고 맨발로 색시 걸

음을 걸었다. 버선은 벗어놓은 채 두고 맨발에 신을 꿰고 나왔던 것이다. 마루에

북창이 있으나 다행이 닫혀 있어서 마루 뒤 안방 뒤를 살그머니 지나 부엌 뒤에

까지 와서 울타리의 개구멍으로 밖에 나가려다가 나중 급하면 어찌하든지 우선

당장 버스럭 소리 내는 것을 부질없게 생각하여 부엌 뒤에 가만히 숨어 있었다.

안마당에 불빛이 비치더니 방문 열어젖히는 소리와 여러 사람 으악 소리가 일시

에 나서 ‘저놈들, 빈방을 들이치는구나.’배돌석이는 관차들이 허탕친 것을 고

소하게 생각하는 중에 별안간 밖에서 “여기 한 놈 뛰었다!”외치는 소리가 나

며 곧 안에서 “홰 하나,사람 둘만 얼핏 쫓아나가게.”지휘하는 말소리가 들리었

다. 잠깐 동안 신발 소리들이 요란하게 나고 뒤가 괴괴하여 배돌석이가 살며시

부엌안으로 들어와서 안마당을 내다보니 마굿간 근처에 횃불빛과 사람 그림자가

어른거리었다. 마당과 마루에 사람이 없는 것을 보고 배돌석이는 부엌에서 건넌

방으로 갔다. 말코지에 걸어두었던 돌주머니를 떼어내려서 손에 드니 우선 안심

이 되나 방안에서 팔매질이 거북하고 또 도망질한 졸개가 궁금하여 버선만 신고

대님도 못 치고 바로 헛간으로 밖을 나오는데, 횃불은 뒤 울안에 있는 듯 마루

북창문이 환하였다. 졸개들이 어느 쪽으로 도망하였는지 몰라서 배돌석이가 어

둠 침침한 처마 밑에 잠깐 망설이고 섰는 중에 마침 술집 앞에서 나섰던 사람들

이 “그놈이 도둑놈인가베.”“그놈 향교말 다 못 가서 붙잡히네.” 지껄이는 말

이 귀에 들리어서 향교말 길로 오게 되었다. 배돌석이가 향교말을 거의 다 왔을

때, 맞은편에서 횃불하나가 오는 것을 보고 길 옆 으슥한 곳에 몸을 숨기고 있

었다. 관차 다섯이 마부 노릇하던 졸개를 붙잡아 가지고 오는데, 하나는 횃불을

들고 앞을 서고 둘은 졸개의 양죽지를 치켜들고 중간에 서고 뒤에 오는 둘은 손

에 방망이들을 들었었다. 배돌석이의 신통한 재주 연주 팔매가 잠깐 동안에 중

간의 돌과 뒤의 둘을 꺼꾸러뜨리니 앞에 하나는 홰를 내던지고 어둔 속으로 도

망질하였다. 홰 떨어진 곳에 물이 있든지 불은 뿌지직하고 바로 꺼졌으나, 늦게

뜨는 달빛이 우리기 시작하여 어둠이 차차로 엷어졌다. 배돌석이가 관차를 꺼꾸

러진 자리에 와서 관차의 방망이로 관차들을 짓두들겨서 좀처럼 일어나지 못하

도록 만들어놓고 비로소 졸개를 돌아보니 졸개는 양쪽 어깨를 번갈아 만지고 있

었다. “어깨는 왜 만지느냐?”“양쪽 어깻죽지를 방맹이루 어떻게 몹시 맞았는

지 살이 죄다 으스러진 것 같습니다.”“너 혼자만 잡혔느냐?”“소인이 자다가

으악 소리에 초풍해서 일어나 보니까 소인만 남았습디다. 잠든 동무를 깨우지

않구 혼자 먼저 도망하는 그런 천하의 몹쓸 놈이 어디있습니까. 소인이 방문을

박차구 길거리루 뛰어나오는데 사령 한 놈이 방문 밖에 지키고 있다가 붙잡으러

대듭디다. 그래서 눈깔이 빠지두룩 눈퉁이를 후려갈기구 도망질을 쳤습니다. 발

치만 익은 길이면 저깐 놈들한테 붙잡히지 않을겐데 길을 몰라서 허둥지둥하다

가 붙잡혔습니다.”“고만 지껄이구 가자.”“어디루 가잡시요?”“나를 따라오

너라.”배돌석이가 졸개 하나를 데리고 이날 밤에 밤길로 검수역말을 지나오고

이튿날 아침부터 과객질을 시작하여 갖은 토심을 다 당하고 사흘 만에 청석골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