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불 4권 (19)
그때 자광의 생모는 자광의 생가요, 상전의 집인 남원읍 누른대에서 동쪽으로
낙고개를 넘고 요천수를 건너는 이백면의 작은 마을 '폐문이'에 살고 있었다.
자광을 낳은 덕분으로 유규의 비첩이 된 그네는, 신분은 여전히 노비였으나 계
집종이 하는 궂은 일만큼은 면하고, 이만큼 떨어진 폐문이에 조그만 오두막을
한 칸 얻어 따로 나와 살았던 것이다. 그러니까 외거노비인 셈이었다. 이러한
그네가 서른 중반의 나이에 자광을 남기고 세상을 뜨니, 남루한 집안에는 들여
다보는 사람 그 누구도 없고, 오직 자광이 혼자서 비통을 가누지 못하여 서럽게
울 뿐이었다. 아버지 유규는 벼슬살이로 멀리 외지에 가 있기도 하였지만, 설혹
집에 있다 할지라도, 일개 노비의 초상에 지아비로서의 범절을 갖추고 찾아와
울어 줄 리는 천만 없었으니. 노비가 죽으면 지게 송장으로, 아무렇게나 대강
묶어서 지게 위에 짊어지고 나가, 아무 곳이나 파기 쉬운 곳에 묻는 것이 고작
인데. 자광의 생모가 비록 상전의 몸에 한 점 인연이 있었다 하나 여전히 하찮
은 노비에 불과한지라. 그네가 죽었다 해서 특별히 슬퍼할 사람은 하나도 없었
다. 다만, 때는 마침 여름이어서 밤낮을 모르고 내리는 궂은 비만이 처량한 시
체의 식은 귀를 젖게 하고, 그 곁에 앉아 비루를 어금니로 물고 있는 자광의 설
움을 대신하여 무겁게 울어 줄 뿐이었다.
"어머니를 치상하려면 상주가 있어야 한다. 상주는 당연히 아버지가 되셔야 하
지만 불행히도 여기 계시지 않으니, 마땅히 장자인 형님이 상주가 되어야 한다.
지아비와 장성한 아들이 있는 시신이 이와 같이 개처럼 버려질 수는 없는 법이
다."
자광은 분연히 자리를 떨치고 일어났다. 그리고 그 적형 자환을 찾아갔다. 그
무렵 자환은 다음에 있을 과거 준비를 위하여 주촌방에 있는 조용한 절 용담사
서 밤을 낮 삼아 글을 읽으며 오직 공부에만 전념하고 있었다. 그는 얼자 동생
자광이보다 나이 두세 살 위였다. 그들에게는 엄격한 적서의 차별이 있어 자환
은 자광을 냉대하였고, 자광은 자환을 감히 형님이라고 부르지 못하였다. 그러
나 자환은 자광의 재주 비범한 것을 알고 있었고, 자광은 자환을 어떻게든 이기
려고 속이 썩도록 궁리하며 남모르게 이를 갈았다. 어머니의 시체를 방에 뉘어
놓은 채 용담사로 찾아가는 그의 손에는 편편한 송판 두어장이 들려 있었다. 큰
비가 내린 다음이어서 요천수물이 불어났을 것을 생각한 때문이었다. 자광은 요
천수에 이르러, 과연 제방을 곧 넘을 만큼 큰물이 성난 기세로 싯벌겋게 흘러내
려오는 것을 보았다. 요천은 강이라고 불러도 좋을, 넓고 깊은 하천이어서 붉은
흙탕물이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도도하게 흐르는 광경은 보는 사람을 어지럽고
무섭게 하였다. 그러나 자광은 조금도 두려워하는 기색없이, 들고 온 소나무 판
자를 발에 묶어 신고는 물 위로 올라서서 성큼 성큼 걸어가니. 사람들이 물구경
을 나왔다가, 헛것을 보았는가 하고 큰 소동이 났다. 이윽고 용담사에 당도한
자광은, 진흙 땅바닥에 엎드려 자환에게 큰 절을 하고는 참고 참았던 눈물을 쏟
으며 통곡을 하였다. 놀란 자환이 손에 든 시전을 내려놓고, 자광이 가슴을 뜯
으며 우는 까닭을 물었다.
"무슨 일이냐, 말을 해라."
"예, 도련님. 대부인 마님께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아니 그게 정말이냐? 엇그제 가서 뵈올 때 기력이 정정하시던데 뜻밖에 이런
소식 당키나 한 말이냐. 아마 네가 무엇을 잘못 알고 온 모양이다."
"세상에 대장부가 그래 어디 할 짓이 없어서, 안 죽은 어머니를 돌아가셨다, 거
짓말을 하오리까?"
자광이 주먹으로 제 가슴을 원통하게 두드리며 머리를 땅에 찧어 산발을 하고,
두 눈에 핏발이 돌게 목을 놓아 우는 모습이 심상치 않아, 자환은 드디어 그 말
을 믿고 그만 실성 대곡을 하였다.
"어서 가자. 앞장 서라."
자환은 신도 제대로 꿰어 신지 못한 채 비에 젖으며 눈믈 범벅으로 황망히 용담
사에서 내려왔다. 그러나, 요천수에 닿아서는 그 성난 물살에 막혀 더 못 가고
멈추어 서서 발을 구를 뿐이었다.
"도련님, 저한테 업히시오."
"너한테 업혀서 무슨 수가 있단 말이냐?"
"월천을 해 드리리다."
"너 이놈 누구를 놀리는 게냐?"
"돌에 채이고, 나무에 부딪치고, 개골창에 빠지고, 재를 넘고, 가다가 꼬부라지
고 허는 육지보다, 저는 물 위를 걸어 다니는 것이 훨씬 더 쉽습니다. 물 위에
는 높은 산도 없고 낮은 골짜기도 없어, 걸리고 막히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
으니 이런 평탄한 길이 또 어디있겠습니까? 저는 세상살이가 이 물 위를 걷는
것만큼만 수월하다면 아무 근심이 없겠습니다. 자, 저한테 업히시오."
"장난 치면 우리 둘 다 죽을 것이다."
"누가 목숨을 가지고 장난을 친답니까. 저 같은 목숨을 가지고도 꼭 한 번 살아
보고 싶은 세상이 있습니다. 자, 저한테 업히시오."
결연한 태도에 자환은 더 머뭇거리지 못하고 자광에게 몸을 맡기었다. 집어 삼
킬 듯이 붉은 물살이 거센 혓바닥을 감으며 달려드는 요천수 한복판으로 거침없
이 걸어가는 자광의 걸음은 정신이 아찔할 만큼 빨랐다. 귓전에 찰박찰박 물 소
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분명히 물 위를 걷기는 걷는 것인데. 자환이 그만 눈
을 감아 버렸다.
참으로 요사스러운 일이다. 이럴 수가 있는가. 이것이 분명 자광일까. 자환은
덜컥 겁이 났다. 그때였다. 싯벌건 요천수 붉덕불 한가운데 이른 자광은, 자환
을 등에 업고 날아가듯 가던 걸음을 별안간 뚝 멈추었다. 자환이 번쩍 눈을 떴
다. 그러면 그렇지, 내가 무엇에 홀렸는가 보다. 내가 여기서 정신 차리지 않으
면 자칫 죽겠구나.
"도련님."
"말을 해라."
"사실은 대부인 마님이 돌아가신 것이 아니요, 저의 생모가 죽었습니다. 하오나
만일 처음부터 사실대로 여쭈오면 지체 다르신 도련님이 거들떠나 보시겠습니
까. 잠시 도련님을 속인 것은 잘못이오나, 저의 생모가 도련님의 서모도 되온즉
어미 모짜는 같으니 도련님의 어머니 돌아가셨다는 말씀이 아주 다 거짓은 아니
오니다. 자, 이제 어찌하시렵니까. 이 길로 가서, 세상을 버린 제 어미의 불쌍
한 시신을 거두어 주시렵니까, 아니면 여기서 하동으로 가시렵니까."
"하동으로 가다니?"
"요천수는 섬진강 상류이니, 이 물에 도련님을 놓아 버리면, 그 수중고혼은 하
동으로 흘러가시겠지요. 자, 상주가 되시려오. 귀신이 되시려오."
자환은 어이가 없었다. 엄연히 살아 게신 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사부 반가의 자
제로서, 노비 서모를 어머니라 부르며 그 초상에 머리를 풀고 상주 노릇을 해야
한다니. 만고에 이런 괴이한 일이 어디 다시 있으리오. 그러나 자광의 등에서
뻗치는 살기는 결코 예사로운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목숨이 받은 수모에 중오
의 옹이가 박혀 풀 길 없는 억울함으로 새파랗게 날이 선 것이었다. 기어이 설
분하고야 말리라. 자광의 등은 분을 뿜으며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베일 것 같은 칼날에 업힌 것처럼 아슬아슬한 자환은, 그 살기가 끼얹는 소름의
두려움을 이길 수가 없었다.
"알았다. 네 소원대로 해 주마."
자환은 가까스로 대답하였다.
"여기서 머리를 푸시오."
이 말에 자환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요천수 한복판 붉덕물 위에서 자광의
등에 업힌 채 상투를 풀어 머리를 흩었다. 난발이 된 자환은 이제 두려움 때문
이 아니라 부끄러움 때문에 온몸이 떨리었다. 그가 비록 스물이 다 못된 젊은
소년이었지만, 장부로서 대의가 아닌 일에 비루한 목숨을 비는 것이 어찌 정당
하고 떳떳한 일이랴. 자환은 차라리 자신이 물에 드는 것이 옳으리라 생각했다.
이 무슨 참혹한 몰골이란 말이냐.
"곡을 하시오"
자광이 말했다. 이에 자환은 크게 통곡을 하고 말았다. 그것은 자기를 우는 울
음이었다. 끝내 그 등에서 내려오지 못한 채 업혀서 물을 건넌 자환은, 거대하
게 붉은 몸뚱이를 뒤채며 핏빛 아가리를 벌리고 있던 요천수가 흡사 자광의 원
한인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것은 승천하지 못한 용이 온몸에 상처를 입고 땅에
떨어져 몸부림을 치며 어디론가 굼틀굼틀 기어가는 모습 같기도 하였다. 자환이
자광의 생모 처상에 깎듯한 절차로 상주 노릇을 한 일은, 요천수가 그치지 않고
흐르는 것처럼 번지고 번져서 남원, 이백, 송동, 수지, 그리고 이 골 저 골 여
러 사람들의 이야기 갈피 속에 서캐같이 박혀 남게 되었다.
"유자광이가 그렇게 무선 사램이여, 긍게. 살어 생전 사람대접 단 한 번도 못
받은 즈그 어매를 죽어서 시체나마 제대로 대접 한 번 받게 해 줬어. 신원을 해
준 거이여. 아, 자광이 아니었으먼 누가 언감생심 그런 치상을 바랠 수가 있겄
능가."
"그렁게 우례도 꼭 그런 아들 하나 낳야겄그만잉."
"우리도 그런 귀경 조께 허게."
멍석 위에 앉은 사람들은 어둠 속에 꺼부정하니 앉아 있는 막손이를 돌아보며
말했다. 막손이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은 채 묵묵히 어둠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 말이사 바로 말이제만, 나는 그렇게 못 살어도, 같은 처지에 남이 그렇게
살어 줬다먼 그것도 속이 티이는 일 아니여? 유자광이 이얘기 아니먼 어디 가서
누구한테 종의 자식이 재상 되얐단 이얘기를 들어? 디지게 뚜드러 맞었단 이얘
기나 듣제."
하지만 영광 유씨는 오대에 걸쳐 이름이 울리게 창성하였으나, 잘못 둔 서손 자
광 이후 참혹하게 몰락하여 그 일족이 모두 숨어 살거나 사방으로 흩어져 찾기
어렵게 되고 말았으니.
남원의 네 대문 중에, 자광이 태어난 누른대 동네는 정승이 났다 하여 입구에
홍예문까지 세웠지만, 종의 자식으로 그만한 광영을 누린 것을 장하다 할 것인
가, 그 한 몸의 역류로 온 집안이 멸문을 당하여 박살이 나고 바람에 티끌같이
흩어지게 된 것을 죄 많다 할 것인가.
임서방이 모깃불을 헤집어 보더니 꺼진 것을 알고는 일어나 발로 밟는다. 모깃
불조차 없는 마당에 별무리가 쏟아진다. 멍석에서 일어선 어서방네가 하늘을 올
려다보았다.
"은하수가 쩌어리 기울어진 것 봉게로 밤도 에지간히 되얐능갑다."
"대체나. 언제 그렇게 되야 부렀네. 노니라고잉."
임서방의 아낙은 한 손에 부채를 든 채로 아이를 추스려 안으며, 어서방네한테
지나가는 말처럼 물었다.
"머? 은하수가 요천수라고 그랬어어, 요천수가 은하수라고 그랬어?"
"아이고, 그것도 몰라? 요천수가 은하수."
"오오."
임서방의 아낙 앵두네가 고개를 주억거리자
"오오? 또 저노무 오오."
하며 임서방이 아까 생각이 나는 듯 제 아낙을 쥐어지르는 시늉을 한다. 아낙은
홱 피하는 시늉을 하면서 웃는다.
"아이 왜 그리여? 나는 시방 요천수가 은하수먼 우리는 머잉가, 허고 생각헝마.
은하수 옆으가 저렇게 별이 많응게, 요천수 옆으 사는 우리도 무신 별이나 될랑
가 아요? 저 별들에서 보먼 우리가 별이겄제."
앵두네는 아닌게 아니라 문득 아까, 하늘에 흐르고 있는 은하수가 요천수이고,
자기가 앉아 있는 멍석이 거꾸로 은하수 옆에 뜬 별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었
다. 그 실없는 생각에 웃음이 나오는 아낙에게 임서방은 툭, 한마디 던졌다.
"별? 우리는 똥이여. 별똥."
그날 밤에 사람들이 빌어 준 대로 우례는 달을 채워 아들을 낳았다. 그리고 그
아들 봉출이는 지금 열다섯 살을 먹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