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불 4권 (28)
"에라이, 빌어먹을놈, 어른이 무신 말을 허면 그렁갑다 허제 꼭 저렇게 어긋장
을 놓제. 야 이놈아, 매안에 양반들은 일펭상에 빗은 머리크락, 깎어 낸 손톱
발톱을 하나도 안 내불고 유지에다 싸 둔단다. 그렁 거 다 뽄 보든 못허지만,
알고는 있어야여, 알고는."
"헐 일이 그렇게 없다요? 우숴 죽겄네. 그러고오, 그렁 것도 참말로 그랬능가는
모르지만 그랬다고 허드라도 인자 옛날 이애기요. 아재, 수천 양반 못 뵈겼소?
진작에 단벌허고 양복 입고 안 댕기요? 개명해서. 양반 중에 양반이고 종갓집
형제라도 시절이 변허먼 사람도 바뀐당 거, 그것만 바도 알 수 있잖아요? 그것
뿐이간디? 두말 더 헐 거 없이 나랏님이 먼저 상투를 손수 짤렀다는디 머."
"나랏님이 그랬다능 건 내 눈으로 직접 보들 안했잉게 머라고 말을 헐 수가 없
고."
설왕설래하던 그 춘복이 머리는 며칠 못 본 사이에 아닌게 아니라 우북하니 자
라나서 잡초더미같이 보이기도 하였다. 자가 요새 먼 일이 있능가. 공배네는 속
으로 생각하며 곁눈질을 거두고, 방바닥 훔치던 걸레를 다시 구석으로 밀어 놓
는다.
"아이, 전에 들으먼요이, 멩사들은 달괄(달걀)을 갖꼬 댕긴다등마는, 그거 멋
할라고 그런당가요? 멩당 자리 맞능가 볼라먼 거그다 살째기 달괄을 묻어 본다
든디."
평순네가 문득 생각이 난 듯이 공배한테 물었다.
"암먼. 그런 말이 있제. 생달괄 성헌 놈을 갖꼬 가서 뫼자리다가 가만히 파묻오
노먼, 맥이 제대로 잽힌 자링가 아닝가 알 수 있다능 거여. 제 자리 잘 잡었을
때는, 그 묻어 논 달괄이 기양 껍데기 까고 바로 삥아리로 나온다대."
"아이갸!"
"긍게 지맥이 탯줄이 되야 갖꼬 그 자리를 에미 뱃속맹이로 싸고 있어야 멩당이
라 헌단 말이겄지. 땅이 살어서 따숩고."
"그런디 아까 그 유명헌 시님은 어디다가 뫼를 썼이까요?"
"요 뿔다구 새이에다 요렇게 써 줬단 말이여."
공배는 검지 손가락으로 뿔 돋은 시늉했던 머리빡 어름 한 가운데를 가리킨다.
"아하."
"그러고 나서 인자 절로 들으가 갖꼬 원효대사를 뵈옹게. 너 어디다 뫼자리 하
나 써 주고 오능게비다. 그런단 말이여? 도통을 허신 시님잉게로 안 봐도 다 알
그덩. 처억."
그래서 사명당이 대답하였다.
"예, 써 줬습니다."
"거 뭔 자리다 써 줬능고?"
"황우도강을 써 줬습니다."
"그러먼 황우도강 어디다가 써 줬능고?"
"뿔다구 새이에다 써 줬소."
"야, 이놈아! 거 인자 앞으로 산소 쓴 놈은 문딩이가 된다."
"문딩이요?"
"그래, 이놈아. 생각을 해 봐라. 황우가 깊은 강을 건너자면 몸뚱이는 다 물에
잠기고 머리만 내놓고 가는디, 온몸에 붙었던 쇠파리가 다 어디로 가겄냐? 물에
쫓겨 갖고 죄다 뿔다구로 올라간다. 안 죽을라고. 그렇게 파리가 뿔다구로 올라
갈 때는 문딩이가 되는 거이다."
"아, 그러먼 어디다 쓰먼 좋겄소?"
"야, 이놈아. 요 코밑에, 코밑에다 써야 헌다. 바짝."
"어째서 거그다 써요?"
"황우가 콧바람을 획, 획, 힘차게 황소 바람으로 뿜어제킹게 파리가 앉들 못허
고 날아가 버릴 거 아니냐. 그렁게 재앙이 침범을 못허지. 그런 황우도강은 코
밑에다 써야 한다. 뿔에다 쓰먼 안되야."
"아하."
"묏자리만이 아니라 사람 사는 지혜도 그 이체나 같다. 제 몸뚱이 안에 그 자리
파먼 문딩이 되는 혈도 있고, 죽을 고비 닥쳐도 지 콧바림으로 쫓을 수 있는 거
이다. 그런디 그 혈이 무언지 그걸 모르니 인간이 어리석지."
하더니 하루는
"야, 속가에 좀 한번 나가자."
하고는 사명당을 앞세우고 나란히 절 문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