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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 5권 (45)

카지모도 2024. 8. 26. 0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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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골네는 무부와는 달랐다.

무당은 물론 더 말할 것도 없이 천하디 천한 팔천 중에 하나여서, 그 신분으

로만 보면 짐승 잡는 백정이나 한가지지만, 그러나 백정과도 다르고 또 함께 사

는 서방인 무부와도 좀 다른 것은, 무업의 주를 맡고 있는 사람이 당골네 무당

인지라, 그들은 만일에 용하다고 이름이 나면, 궁중에서도 부르고, 권세 높은 재

상가나 돈 많은 장자의 집에서도 부르니. 때로는 덩을 타고, 때로는 다소곳이 따

르는 대갓집 시비를 앞세워 거느리고 태깔 내어 걷는 품은, 얼핏 한다 하는 사

대부의 부인 못지않아 보이기도 하였다.

그만한 곳에 드나드는 당골네라면 복채도 상당하여. 보패도 화려하고 비단 명

주 피륙도 색색깔이라, 솜씨 좋은 집에 삯을 주어 맡기면 날아가는 바느질은 꿰

맨 자국 흔적도 없게 지어내니, 본디 귀신도 호리는 맵시로 춤을 추며 굿을 하

는 당골네 몸매에, 그 옷을 떨쳐 입고 장신구 곱게 꾸며 나서노라면 언뜻 양반

의 부인인가 속을 만도 하엿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래도 자신들의 몸에 밴 탯거리를 숨기지 못하여 당골네 행

투를 곧 드러내곤 하기는 하였다.

덕과면 안동네 이씨, 소씨들 사는 곳에 당골이 하나 다녔는데. 그네는 재간도

있고 붙임성도 좋아 그 동네에 들어가면

"마님."

"성님."

하면서 가히 양반의 부인과 한 방에서 밥도 먹고, 잠도 자고, 친숙하게 지내었

다. 당골네는 분명히 천민이지만 그들이 상대하는 사람이 양반일 때는, 가정사

깊은 것까지 은밀히 의논해야 할 일도 있을 것이고, 남모르게 문복을 하거나 굿

을 해야 할 일도 있을 것이어서, 당골은 댓돌 아래 무릎 꿇어 엎드리고 마나님

은 누마루 높은 곳에 우뚝 서, 소리소리 외치며 호령하여 물을 수는 없는 것인

지라, 자연히 안방으로 깊숙이 들어가 면대하고, 무릎 대고, 나즉나즉 말하다 보

면, 심기도 통하고 허물도 없어지며, 혹 때로는 그 부인이 당골네를 형님같이 위

바쳐야 할 경우도 생기지 말란 법은 없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그 집안 사정을 소상히 알게 되고, 제를 지내거나 양반네 선산에 자

주 출입할 일도 생겨서, 자연히 어떠어떠한 곳에 산소 자리 보아 둔 곳이 있는

데 그곳에 조상을 모시면 어떻겠는지, 그곳이 주인 대주와 부인 계주의 사주와

연대가 맞는지, 혹시 세살, 겁살, 재살의 불길한 액이 낀 삼살방은 아닌지, 이야

기가 저절로 오고 가기 마련이었다.

그러면 당골네는 그런 내용들을 은밀히 기억해 두었다가, 때를 보아 쥐도 새

도 모르게 자신의 조상 유골을 수습하여, 그 명당 자리 묘의 옆구리를 파내고

뼈 뭉치를 그 속에 던져 넣은 다음, 감쪽같이 다시 흙을 메워 놓고는 씻은 듯이

시치미를 떼었다.

그것이 바로 투장이었다.

그런데 제 당골판이 아닌 남의 당골판에 있는 명당을 이쪽에서 알아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지간히 가찹게 지내는 사이가 아니고서는, 그런 내

막을 좀체로 남에게 말하지 않는 것이 당골네의 습성이었다. 그것은 자기 판에

대한 당골네의 도리이기도 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자기들의 잇속이기도 하였다.

또 만일에 여차 잘못하여 그런 사실이 발각된다면, 그 길로 내외간에 다 같이

산소 주인네 집으로 끄집혀 가, 덕석말이를 당하는 것은 두말 더 할 것도 없거

니와, 심하면 볼기가 너덜너덜 해어지도록 몽둥이로 몰매 맞고, 선혈이 낭자하게

흩어진 몰골에 북을 치며 온 동네에 조리를 돌고, 무부는 귀때기에 화살을 꽂아

회술레를 돌 것인데.

양반의 산소가 어떤 것이라고 감히 누가 그것을 훼손할 수가 있단 말인가.

그리고 풀포기 하나 건드린 것이 아니라. 상종 못할 천민의 뼈다귀를 서슬 푸른

양반의 조상 유골 위에 걸레같이 쑤셔 넣은 행위는, 그 자리에서 박살을 내 때

려 죽인다 해도 할 말이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 투장한 당골네는 그 모든 사형을 다 받아 마땅하고, 또 그것만으로 그

치는 것이 아니라, 이제 다시는 그 마을에 발걸음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것

은 매 맞고, 조리 돌고, 회술레 도는 것보다 더 큰 벌이었다. 지금까지 그네를

먹여 살려 주던 당골판을 고스란히 잃어 버리게 되기 때문이었다.

당골판이란 당골네들끼리는 서로 엄격하게 지켜지는 제도여서, 자기판이 아닌

동네에 혹 놀러 가는 것은 나무라지 않았지만, 행여라도 슬그머니 끼여들어 굿

을 할라치면 본판에 있던 당골네가 결코 가만 두지 않았다.

한달음에 달려들어, 그 굿에서 번 것을 모조리 빼앗아 버린 뒤에, 다시는 그런

생심을 못하게 흠씬 두들겨 멀리 쫓아내고 말았다.

당골네 한 사람이 마을 한 개나 두 개, 혹은 서너 개, 아니면 올망졸망 대여섯

개를 둘러 한 테두리로 정한 그 판은 칼날같이 구획되어 남이 절대로 범접할 수

가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세습되었다.

당골네는 이렇게 자기가 독점한 당골판의 마을에서 행하여지는 굿이나, 그 마

을의 집집에서 일어나는 길흉의 대소사에 있는 굿을 책임지고 모두 해 주었으

며, 마을에서는 봄.가을로 보리 추수 때나 나락 추수 때, 곡식을 걷어 당골네 식

구들이 일년 동안 먹을 양식을 대 주었다.

그것을 '동냥'이라고 하였다.

그러니까 무당은 마을의 집집마다 크고 작은 액을 지켜 주고, 마을에서는 무

당의 생계를 돌보아 서로 공생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찌하다 이 판을 잃게 되면, 당골네는 조선 천지 어디에도 갈 곳이

없었다. 정말로 바가지 차고 동냥아치로 나설 작정이 아닌 바에야, 얻어먹을 곳

도 없었다. 본판의 당골은 다른 동네 당골이 와서 일없이 오래 묵는 것을 좋아

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판'을 잃는 것은 곧 양식을 잃는 일이었다,

"차라리 염라대왕 저승사자 턱을 차는 거이 덜 무섭제, 하이고오, 투장은 못헐

일이여. 간뎅이가 얼매나 크먼 그런 짓을 허능고이?"

지난번에 찾아간 덕과면 당골네는 마치 백단이의 속을 들여다본 듯이, 무슨

이야기 끝에 그 말을 하며. 버르르 어깨까지 떨어 보였다.

아무리 이족에서 능청스럽게 돌려가며 물었다 해도, 귀신하고 노는 사람이라

눈치가 비상하여 이쪽 마음을 넘겨짚은 말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무서운 일을 두고, 제 눈앞에 번개 치듯 닥친 사정이 절박한 것도 아

닌데, 무단히 어느 누가 옆엣사람한테 인정을 쓰노라고

"아무 아무 곳에 누구를 뫼셌는디 아조 멩당이라드라."

소리를 해 줄 것인가.

그랬다가 만일 일이 서툴러 꼬리를 잡힐작시면, 물론 당사자인 백단이는 치도

곤으로 난장질을 당한 뒤에 아까 꼴을 못 면하겠디지만,

"네 이 년, 이 내력을 어디서 들었느냐."

고 죽인다고 형문하면, 아픈 매를 못 이기고, 아무개 올습니다.

자기를 끌어댈 터인데 그 다음이야 불을 보듯 훤한 노릇 아니겠는가.

비록 아는 명당이 있다 하더라도 덕과면 당골네가 무슨 선심으로 백단이한테 그

런 말을 해 줄 리가 없었다.

백단이는 난감하여 마음이 착잡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