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불 8권 (28)
저 하찮은 개미떼나 쥐떼들도 저한테 닥치는 위험은 미리 알아차리고, 행렬을 지어 죽
음의 그림자 덮이는 사지로부터 빠져 나가는 것이 본능이거늘, 항차 사람이 그만 못하랴.
그것도 나라를 다스리고 경영하는 일이 천질인 왕과 왕족과 문무 대신들이 말이다.
눈물로 간곡히 충간하는 단 한 사람 충신도 없이, 의심해 보는 사람 하나도 없이, 경애
왕의 포석정은 신라의 정사에서 벗어나 기우뚱 기우뚱 가련한 역사의 우화 속으로 침몰해
들어갔던 것이다.
이 또한 승자의 칼끝에 인각, 왜곡된 패자의 일그러진 그림이리라.
고려는 이기고 신라는 졌다.
헌데, 신라는 귀순하였고 후백제는 저항하였다.
그리하여 고려에 남은 신라와 후백제의 모습은 아주 확연히 다르다.
수그리어 안겨들며 제 나라를 살점 하나 발르지 않고 송두리째 바친 신라에게 베푼 관
용과 미화, 그 은혜의 붓털 터럭끝 한 날도 후백제한테는 스친 일 없었다. 오히려 치명적
으로 질타 왜곡하였다.
보겠는가, 제군들이여.
다시 아까의, 적병들이 오는 것도 알지 못했다는 구절로 돌아가자.
굳이 우격다짐으로 둘러 씌워서, 이 날 포석정에 난개난발 흐드러지는 잔치가 벌어진
것이 사실이라 하자.
남의 나라인 고려가 소중한 정병 병사의 목숨과 국력을 아끼지 않고 구원병을 일만 명
이나 급파하여 죽으라.
보낼 적에.
막상 위난을 당하여 국경이 허물어지고, 백성들이 적병의 말발굽에 짓밟히어 눈알이 빠
지며 창자가 흩어지는 신라 당사자는, 원군 일만 명보다 적은 군사로서 싸울 리가 있겠느
냐.
풀 베는 초동까지도 징발하여 싸움터로 몰아넣을 지경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정황에, 전황을 알리는 파발은 지축을 뒤흔들고 난리 겪는 비명 소리 하늘에 사
무치며, 신라 천 년을 지켜온 봉화 불은 밤낮을 모르게 검은 연기 붉은 화염 피워 올리고
태웠을 터인데.
후백제 군사가 겨우 한두 명 간자처럼 잠입하여 아무도 모르게 도성으로 접근해 온 것
이 아니라면, 도성의 사대문이 어찌 그리 허술하여, 왕이 놀고 있는 포석정 깊숙이 그 많
은 병사 치닫도록 아무도 막지 않고, 싸우지도 않고, 난입하게 내버려 두었겠는가.
더욱이나 지난 구월부터 견훤은 근암성을 쳐서 빼앗아 불사르며, 고울부를 습격하여 빼
앗고, 시림을 무찌르고 신라 왕도로 돌입했음에야.
오늘날에도 전라도의 전주에서 경상도의 경주로 가는 길은 산 넘고 물 건너 멀고, 높
고, 험난하다.
후백제의 도읍인 전주 완산에서부터 신라 서울 서라벌까지의 거리가 지붕 하나 뛰어넘
는 지척이 아닐진대, 그 멀고 먼 도정을 흙먼지 일으키며 함성 지르며 쳐들어오는 적병의
기척을, 그토록 신라 전역이 쥐죽은 듯 모르고 있다가, 느닷없이 포석정 임금 앞에 창검
을 번쩍이며 들이대게 놓아 두었을 리는 없는 것이다.
못난 나라의 어리석은 임금한테도 언제나 만고 충절 충신은 꼭 있게 마련인데, 이 국가
존망이 턱끝에 달린 위경에, 제 한 목숨 내던지어 나라를 구하고자 하는 병사와 백성 또
한 그 어찌 없을소냐.
목이 떨어져 뒹굴어도 제가 맡은 사명을 다하여 싸웠을 것이다.
하물며 신라가 아니냐.
천하에 자랑하는 화랑의 용맹과 기상으로 무예를 길러 삼국을 통일 한 뒤 이백오십 년
이 넘도록 번영해 온 나라가 진정 분명하다면, 견훤의 군사들이 그처럼 구중궁궐 열두 대
문 도성 안 첩첩심중 복판에까지 쳐들어가 칼을 박아도 적병이요.
알리는 놈 하나 없이 날 살려라 다 도망갔을 리 있겠는가.
너무나도 강용한 군사여서 견훤의 후백제 군사를 이겨내지 못한 채, 갈대풀 쓰러지듯
신라의 군사들이 모조리 죽어 넘어져 버린 탓이라고, 만 보를 양보하여 남산 아래 포석정
놀이 상황을 꿰어 맞추어 본대도 최소한 적병이 오는 것도 알지 못하다가 창졸간에 어찌할 줄을 몰랐다.는 것만큼은 병법을 들먹일 것조차도 없이 아예 말이 안된다. 모를 수가 없는 것이다.
신라와 후백제 군사들이 모두 한결같이 벙어리이거나, 경애왕을 비롯한 궁녀, 비빈, 종
척들이 전부 귀머거리 청맹과니가 아닌 바에야.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바로 아마 이 부분을 강조하여 쓰려고 포석정 이야기를 끌어낸 것이 틀림없는 사태가
곧 이어 벌어지게 되니.
연회를 베풀고 놀던 왕과 왕비는 뜻밖에 군사가 닥치매 창졸간에 어찌할 바를 모르며
혼비백산 기겁하여 술잔을 대던지고 뒷대궐로 들어가고, 왕족과 공경대부와 귀족, 부인들
은 천지사방 흩어져 달아나다가 적에게 사로잡혔으며, 귀천을 가릴 것 없이 모두 땅에 엎
드리어 벌벌 기며 견훤에게 노비가 되기를 애원했다 했는데.
견훤은 군사를 놓아 공사간에 재물을 마구 약탈하고, 왕궁에 들어가 거처했다고 한다.
여기서 약탈이라는 언사가 옳게 쓰이었는가.
나라와 나라가 서로 영토를 빼앗고자 부딪쳐 깨지면서, 적국의 궁성에까지 진입하여 이
르렀을 때, 한 나라를 통째로 치고 빼앗으려는 마당에 만일 창고를 부수고 재물을 취하였
다면, 이는 마땅히 약탈이 아니라 상대국에 대한 전리품이라 해야 맞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결국은 져 버린 후백제였으므로, 난폭하게 비하해서 견훤을 일국의 왕
이 아니라 도적으로 취급한 이 약탈 정도의 기록은, 그 다음 일에 비기면 또 아무것도 아
니다. 행하는 것은 간편하게 했다.
왕궁을 점령한 견훤은 좌우에 부하를 시켜 왕을 수색하여 찾게 하니, 왕은 왕비와 후궁
들과 함께 뒷대궐에 숨어 있었다.
이를 뭇군사들의 무리 앞으로 개 끌 듯이 잡아다가 꿇어 앉혀 놓고 리로 오르고 망망한
왕은 그 자리에서 억지로 자결해 죽게 하고 왕비를 강간하고 부하들을 놓아 제 맘대로 왕의 빈첩들을 모두 욕보이게 했다.
고 씌어 있다. 그리고 신라의 이 어리석은 포석정 잔치와 짐승처럼 야비한 견훤의 만행은
극명하게 맞물리어 화석이 된 채, 고려 이후 조선을 지나 오늘에 이르도록 널리 정설처럼
굳어서 이어져 내려온다.
이는 오직 고려의 일연스님이 쓴 삼국유사 김부대왕 경순왕편에 활자로 찍히어 넘은 탓
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후백제, 견훤 편에는 사론을 빌어서 견훤을 궁예와 더불어 뭇도적 중
의 한 사람일 뿐이다. 라고 했으며 견훤은 신라의 임금과 신하 죽이기를 짐슴처럼 하였으니, 실로 천하에도 다시없는 죄악의 원흉이다.
궁예, 견훤 같은 악인 따위야 어떻게 우리 태조를 상대로 맞겨룰 수 있겠는가? 라고 적
었다.
그리고 왕건도 이렇게 편지를 썼다고 한다.
그대는 털끝 같은 작은 이익에 눈이 어두워, 천지의 두터운 은혜를 잊어 버리고, 임금
을 죽이고 대궐을 불태우며, 대신들을 몰살하고, 백성들을 모조리 도륙했소. 또 궁녀들을
잡아 수레에 글어가고 보물을 빼앗아서 바리바리 짐 꾸러미로 실었으니, 그 흉악함은 걸,
주보다 더하고, 잔인한 것으로 보면 짐승과 올빼미보다 더하오.
하지만 과연 정말로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었을까.
제왕으로서 견훤이 갖추어야 할 인품과 자질과 덕망에, 두고두고 치명적인 먹칠을 한
이 장면이 나는 결코 믿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애초에 포석정에서 적병이 오는 것도 모를 정도로 먹고 마시고 춤추며 놀았다는 것 자
체가 어불성설이었지만, 지금 막 궁성을 점령했다고는 하나, 각축을 벌이는 고려의 원병
이 일만 명씩이나 발뒤꿈치를 물어 뜯게 바짝 몰려오고 있는 상황에서, 기록대로라면, 경
순왕이 자결하여 죽은 시신의 원한 맺힌 선혈이 시뻘겋게 낭자한 자리에 왕비를 쓰러뜨려
능욕할 겨를이 어디 있었겠으며, 부하들을 풀어서 왕의 빈첩들을 모두 욕보일 틈이 어디
있었겠는가.
아직은 여기가 피비린내 진동하는 아비규환 난장판 적국의 궁성일진대, 등뒤에 칼날이
꽂힐까 봐서도 못할 일이다.
그런즉 이는 견훤이 얼마나 야비하고 난폭하며 무지막지한 승냥이 개 짐승과 같은 인물
이었던가를 여실히 강조하여, 역사 속에 꼼짝못하게 못박아 놓고자 했는가를 역설적으로
드러낸 장면이 아닐 수 없다.
나는 감히 단언하노니, 이 포석정 가설 무대는 극적인 허구다.
거기에 등장하는 배우들 역할은 승자의 각본대로 교묘하게 짜 맞춘 활자가 되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