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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 9권 (12)

카지모도 2025. 4. 17. 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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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즉 살생, 도둑질, 음행, 거짓말, 헛된말, 이간질, 악담, 탐, 진, 치의 악

업 열 가지, 십악의 과보와 폐단, 그리고 그 폐단의 또 다른 과보들로 칡넝

쿨과 배암같이 뒤엉킨 이곳 중생들의 질기고 독한 마음은, 마치 원숭이와

같기에 말씀으로만도 다는 안되어 약간의 법을 가지고 제어해야만 합니다."

"사람의 마음이 원숭이와 같다니요?"

"다섯 가지 욕심의 나무에 매달려 번개처럼 재주를 넘고, 한 자리에 만족

하지 못하여 이 가지와 저 가지 사이를 눈 깜짝 새 넘나들며, 잠시도 머물

줄 모르고 돌아다니는데다, 끝없이 소란스럽게 꽥꽥거리는 것을 비유한 말

입니다."

이에 관하여 저 후대의 인도 스님 구마라습은 말했다.

"마음은 코끼리나 말과 같아서 매를 쳐 조복하여야 한다."

향내까지는 못 가도 느낌만 있다면 굳이 말로 해야 하는 것보다는 나으리

라. 아무리 그것이 깨침이라 할지라도 이미 무엇인가 말을 해야 알아듣는

지경은 둔한 것이다. 그런데 그 말로도 안되어 고삐 잡아 후려패 때려야

하는 '마음'. 그 거친 말 갈기.

구마라습은 세상의 '말'을 다섯 등급으로 나누었다.

첫째는, 채찍의 그림자만 비쳐도 스스로 조복되는 말이다.

둘째는, 내리치는 채찍질을 받고서야 조복되는 말이다.

셋째는, 날카로운 송곳으로 살가죽을 뚫어 찔러야 조복되는 말이다.

넷째는, 살을 깊이 베어야만 조복되는 말이다.

다섯째는, 칼과 망치, 도끼로 뼈에 저며 사무치도록 쪼고 쳐야 겨우 조복되

는 말이다.

라고.

그러나 채찍과 송곳질, 칼질, 망치질, 도끼질이 아무리 아프고 참혹다 해도,

만일에 끝내는 깨칠 수만 있다면, 다스리어 교화할 수만 있다면, 그까짓 살

점이야 갈기갈기 찢기어 문드러지도록 매를 맞고, 넝마 같은 살 속에 뼈다

귀 박힌 것도 다 부서져 꺾이게 치도곤을 당한다 해도, 어떠랴,아무것도 아니리.

하지만 벼 다 깨어져 칼날보다 송곳보다 더 예리한 파편들이 제 뼈로 제

몸을 마디마디 찌르다가 급기야는 절명을 하도록까지, 순화 조복되지 못한

채 매만 맞다 죽는 아둔함에서 못 벗어난다면 이 마음을 어찌하리야.

그런데 중생들의 영리하고 우둔한 것도 다섯 등급이 있느니.

첫째는, 남의 무상을 보고서 내가 깨닫는 사람이다.

둘째는, 지식으로 무상을 배워 알아 홀연히 깨닫는 사람이다.

셋째는, 형제나 친척의 무상을 보고서 깨닫는 사람이다.

넷째는, 부모의 무상을 보고서 깨닫는 사람이다.

다섯째는, 자신의 인생에서 매우 괴로운 고통을 겪고, 무한히 고뇌하여 피

가 마르는 참경을 당한 후에 만신창이가 되어, 옆의 사람이 해 주는 충고

를 듣고서야 비로소 깨닫는 사람이다.

그러나 이 또한 마찬가지이니 이 모든 것을 겪고, 잃고 나서, 드디어는 깨

달을 수만 있다면, 아둔하다 하여도 서러울 것 없으련만.

무지 몽매 암흑 천지, 눈감고 걷는 세상, 제 발부리에 제가 걸려 코깨지고

박 터지면서도, 영문을 몰라 길가의 돌멩이 탓 원망하다가, 무명 속에 한세

상 헛매 맞고 가는 이여.

그대. 또 다시 매맞으러 세상으로 돌라오리.

"이와 같이 질긴 근 업이 깊어, 굳세고 강한 뿌리가 도무지 잘라지지 않는

중생들이기에, 사바세계 부처님은 온갖 비유와 타이름, 그리고 광채로운 고

언으로 참된 길 말씀을 하시어, 이들이 진정한 율행에 들어가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곳의 보살들이 사바 예토 한 생에서 중생들을 가르

치고 이끌어 올리는 것은, 저 극락 정토 맑은 곳에서 백천 겁을 행하는 것

보다 더 많은 공덕이 있지요. 왜냐하면 정토의 중생들은 이미 선근이 순결

하게 무르익어 깨달음을 얻기 쉽지마는, 사바세계 중생들은 하나같이 헤아

리기 어려운 번뇌에 붙잡혀 시달리고 있는지라, 아무리 이끌어 제도해도

해탈을 얻기는 어려운 까닭입니다."

유마힐은 말했다.

향내로는 할 수 없어 그보다 낮은 도구인 말씀을 써야 하는 이 국토의 독

기 불꽃 맨발로 밟고 뛰는 중생들, 모질고 모자라서 측은한 인간들이 부디

부디 제 업장을 어서 벗고, 참회 멸죄할 수 있도록 인도하고 지키려는 자

비 공덕 보리심이 세상에 현신할사.

각기 그 모습을 나툼이 저마다 같지 않으리니.

사천왕은 과연 누구의 응신일까.

절에는 문이 많다.

수목이 울창하게 우거진 사찰의 경내로 들어서는 어귀에 서 있는 산문인

일주문이 삼문 중에 첫 번째 문이다.

일반적으로 보통 집을 지을 때는 우선 동, 남, 서, 북에 네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다 지붕을 얹는 것이 상식이지만, 일주문은 나란히 선 일직선상의

두 기둥 위에 지붕을 덮었으니. 이는 오직 한 마음, 일심을 상징하는 것이

다. 신성한 가람으로 들어서는 사람이 저 세속의 번뇌를 부처님 법 청량수

로 말끔히 씻고, 지극한 마음으로 진리를 그리워하며 금당에 안치된 부처

의 경지를 향하여 깨끗하게 걸어가라는 무언의 가르침이 그곳에는 서리어

있다.

이 대문에서부터는 부처의 세계인 것이다.

일주문을 지나면 중문인 금강문과 천왕문, 그리고 불이문들이 서 있다.

중문에는 대개 그 절을 지키는 수문의 신장들을 모시게 마련이었다. 여기

모신 신장이 누구인가에 따라 문 이름이 정해지는데, 사천왕을 모시면 천

왕문이요, 금강역사를 모시면 금강문이라 하였다.

사천왕과 금강역사는 얼핏 보아 모두 성이 나서 부릅뜬 눈에 우락부락한

체격을 과시하며, 무엇인가 움켜잡아 패대기를 치려하는 자세로, 거대한 기

둥같이 우뚝 솟아 버티고 선 듯 보이지만 사실은 엄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아주 쉬운 것을 말하자면, 위용 무쌍한 무장의 격식대로 갑옷을 찬란하게

차려입고, 머리에는 온갖 꽃, 구름 문양, 오색 날개 새들과, 불꽃 같은 눈동

자들이 방울방울 타오르는 보관을 쓰고 있는 이는 사천왕이며, 민머리에

붉은 몸 웃통을 활짝 벗어젖힌 채, 주먹을 불끈 쥐어 틀어올린 이는 금강

역사다. 금강역사는 너무나도 건장하여 힘살조차 우람한 다리로 발가락이

튀어나오리만큼 기운 차게 땅을 밟고 있다. 허리만 살풋 감은 옷자락은 마

치 휘날리는 구름가닥처럼 흩어져 다리를 스친다.

본디 사천왕은 동남서북 네 방위를 지미고 서 있는지라 네 위지만, 금강역

사는 금강문 양편에 이쪽 저쪽 두위가 마주 서있다.

오만가지 일천 근심 중독 깊은 번뇌 망상을 일격에 때려부수는 보리심의

상징 법구로서, 놋쇠나 구리 혹은 쇠 같은 것으로 절구공이 처럼 만든 무

기 금강저를 왼손으로 드높이 휘두르며, 오른손으로는 지하에서 올라오는

어둠과 못된 기운을 지그시 즈려누르는 알몸의 금강신, 금강수, 금강역사

는, 달리 인왕역사라고도 하였다.

그 무서운 힘의 상징, 한 방에 맞아 죽을까 바라보기도 두려운 형상의 이

름이 어질 인자, 인왕이라니 기묘한 일이다.

여래의 온갖 비밀스러운 일 자취를 미리 다 알고 있으면서 그 일들을 돕

고, 오백 명 야차신을 휘하에 거느리어 악귀들을 굴복시키고, 현겁 천불의

법을 수호하는 금강신.

금강역사는 보통 금강문 왼쪽에 밀적금강, 오른쪽에는 나라연금강이 봉안

되어 있다.

비밀스러운 자취라는 이름의 밀적금강은 금강저 방망이를 항상 치켜들고

부처님을 엄중히 호위하는 야차신이다.

"나는 부처님의 일과 자취, 그 모든 비밀 사적을 다 들으련다."

는 서원을 세웠기에 '밀적'이라 이름한 이 수호신은, 우주의 비밀을 가슴에

담고 함구하여 굳게 입을 다물고 있는데, 그 맞은편에서 이를 마주보고 선

나라금강은

"아."

커다랗게 입을 벌려 함성을 지르고 있다.

천상계 역사인 나라연금강.

그의 힘은 코끼리보다 백만 배나 세다고 하였다.

이렇게 엄청난 힘을 토하며 '아' 입을 열고 있는 나라연금강을 흔히

"아 금강역사."

라 부르며, '음' 하듯이 입을 꾹 다물고 있는 밀적금강을

"훔 금강역사."

라고 하였다.

이때의 '아'는 범어의 첫글자이며 '훔'은 끝글자이다. 그러니 금강역사의 두

입은 시작과 끝을 잇는, 영원한 염원과 이룸의 상징이다.

마치 온몸의 힘을 다하여

"아아."

포효로 부르짖으며 그 어떤 간절한 세상을 향하여, 발원향심을 바치는 시

작의 울림이 나라연금강에게서 진동하고

"훔."

모든 것을 모두어 마친 통일의 침묵이 끝을 마무려서, 다시는 잃지 않고

지키려는 방어의 비밀이 밀적금강에게는 넘치어 차 오른다.

솟구쳐 곤두선 눈썹 아래 부릅뜬 두 눈방울, 울끈 불끈 성난 근육이 돋아

오른 안면은 분명 분노상이언만, 그토록 힘센 금강역사의 얼굴이 험악하다

기보다는 오히려 순진 무구하여 그 박직에 웃음이 나오니, 완력도 너무 크

면 거칠고 사나운 것이 아니라 차라리 어진 것인가.

그래서 이들의 머리 뒤에는 둥그런 보름달과도 같은 두광이 드리워져 있는

지도 모른다. 그것은, 이 역사들이 결코 힘만 센 것이 아니라, 신성한 지혜

까지도 고루 갖추고 있다는 상징의 외형이리라.

그런 만큼 그에게는 이름도 많아서 다른 존명이 또 있으니.

이왕 또는 이천왕이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