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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 9권 (41)

카지모도 2025. 5. 22. 0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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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러이 서러이 가슴 찧으며 목을 놓아 우는 소리는, 진달래 핀 봄밤의 검

은 산속을 오장 토하게 뒤흔들었다.

그 새를 어른들은 두백이라고도 하고, 자규라고도 했다. 그러기 그냥 접동

새, 혹은 소쩍새라 하기도.

"저 새는 너무나도 원통하고 애통해서 목이 다 갈라져 찢어지도록 우는데,

처절하게도 제가 토한 피를 도로 삼키면서 연명한단다."

그 한 많은 핏방울 떨어진 자리에서 점점이 꽃으로 피어난 것이 진달래라

하였다. 두견화. 그러나, 온 산에 봄이 겨워 진달래 만발하고, 귀촉도, 토한

피가 병처럼 깊어도.

불여귀, 불여귀.

돌아갈 수 없으리라, 돌아갈 수 없으리.

저 밤새는 스스로 제 운명을 감지하고 목쉬어 운다.

피울음 엉기어 멍든 목을 어디에 부리고, 봄은 간 것일까.

핏자국에 피어난 진달래 분홍의 너울도 이제는 이미 다 져 버린 거멍굴,

옹구네 마당 귀퉁이, 꽃 진 자리로 호성암의 저녁 예불 종소리는 속절없이

고인다.

사월 초파일, 묵은 나무에 새 잎이 돋아 연두색이 물 머금은 신록 사이로,

부처님은 오시어서 연등을 휘황하게 받으시는데.

이날 밤 강실이는 노적봉 중턱의 무시무시한 어둠 속에, 숯불같이 붉고도

찬연한 연등들이 아프게 박히어 걸린 것을 보았다.

어머니는 올에도 창호지 꼬리에 지성으로 내 이름을 적어서, 저 호성암이

나 범련사 마당에다 연등을 밝히어 달아 놓으셨을라는지.

꿈에라도 그러할 리 천만 없지만, 어머니가 혹시나, 거멍굴에 곤두박힌 딸

자식의 참혹지경을 다 알고서, 한 점 불빛으로 강실이를 건져 올리고저, 간

절하게 등롱 하나 점등하여 저 산 말랭이 높은 어둠의 중턱 복판에다 걸어

놓지는 않으셨을라는지.

오라고.

이 불빛 따라 이리로 오라고.

에미 여기 있다.

강실이는 저도 모르게 어느새 옹구네 검은 마당 가운데까지 내려서서, 하

염없이 오래도록, 캄캄한 밤이 깊어가는 노적봉의 호성암 초파일 꽃등불

연등을 아득히 멀리 우러러보며, 제 등불을 더듬어 찾고 있었다.

바람이 부는가.

어둠을 빨아들여 더욱 요요하게 일렁이던 연등 불빛이 솨아아, 쏠리듯이

한쪽으로 기울었다. 소원들이 출렁인다.

"하이고오, 참말로 불이 꽃밭맹이로 곱기도 허지라우?"

강실이는 그만 하마터면 자지러질 뻔하였다.

안그래도 몸이 극허하여 작은 소리에도 소스라치게 놀라는 놀람증이 있는

그네의 등뒤에, 귀신처럼 소리도 없이 다가선 옹구네가 거두절미, 툼벙, 뛰

어들며 한 소리 던진 탓이었다.

"어매, 놀랬능게비요잉. 하앗따아, 내가 머 작은아씨를 잡어먹을 것도 아니

고요, 사램이 사람 보고 그렇게 깜짝깜짝 경끼를 해사 쓰겄소? 그러먼 못

쓴다는디."

목에 잔뜩 거드름을 부리며 퉁명스럽게 비꼬아 말한 옹구네는, 팔짱을 척

끼면서 강실이 들으란 듯 혼자말을 섞어

"은인이라먼 은인이제, 지가 언제 해롭게 허등기요? 무단히 사람 무안허게

놀래고 그리여. 이게 한두 번이 아니그만."

하며 트집을 잡았다.

"미안해요. 내가 사람이 부실해서..."

강실이는 겨우 입속말로 한 마디 하였다. 그러고는 거기 더 서 있을 마음

이 없어 몸을 돌리자, 그 뒤를 따라 옹구네도 방안으로 들어왔다.

음력 사월이라 하여도 밤바람은 아직 찼던지 강실이 목덜미에 흰 궤털이

오소소 돋아 있다.

내가 여기 온 지 며칠이나 되었는고.

강실이는 방안이라야 방이라고 할 수도 없는 부들자리 닳아 빠진 방바닥에

무릎을 모두고 앉으며 헤아려 본다.

지난 이월 초아흐렛날.

"부지깽이를 꽂아도 싹이 튼다."

는 무방수날(무신일)인지라, 귀신 없는 이날을 놓치지 않고, 무엇을 해도

탈이 없다 하여, 집집마다 안방 건넌방의 가재 도구들을 옮기기도 하고, 지

붕과 바람벽, 부뚜막이나 뒷간들을 수리하기도 하며, 아낙네들은 장을 담그

었지.

큰집에서도 이날 장을 담근다 하였다.

그래서 명색이 도우러 갔다가 당한 사단이 아니었던가.

그러니 그 동안 꼭 두 달여가 지나간 것이다.

"내 물어 볼 말이 있소."

강실이는 옹구네 집으로 업혀온 뒤, 며칠 만에 맨 처음 말문을 그렇게 열

었다.

"머이간디요?"

옹구네가 웃목의 소나무 반닫이 위에 얹힌 베개를 내리다가 순간 흠칫한

다. 아무리 안 그러려고 해도 역시 간 큰 일이 벌어진데다가, 신분이 달라

서 상하가 분명한데 한 방에 명분 없이 머물며, 때때로 자기가 거염을 떨

어 곱지 않은 눈짓을 한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강실이는 운만 떼어 놓고는 얼른 말을 잇지 못한다.

잠시 두 사람사이에 침묵이 고이는데, 옹구네는 무슨 말이냐고 재차 묻지

는 않는다. 자기가 들어서 이로운 말인지 해로운 말인지 얼른 짐작할 수가

없는 탓이었다. 그러나 긴장이 되어 눈살만큼은 꼿꼿이 세우고 강실이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천하 없는 호랭이한테도 눈싸움에만 안 지먼 절대 안 잽헤먹는 거잉게로.

옹구네 눈자위가 팽팽해졌다.

"나를 이리 데려다 준 황아장수는 언제쯤이나 온다 했소?"

오오, 그것 물어 볼라고오?

강실이 말에 우선 마음이 놓인 옹구네는 먼저 낯빛을 풀었다.

"왜, 여가 지시기 까깝허싱가요?"

목소리도 낫낫하였다.

"아니요. 그래서가 아니고..."

"긍게 저도 오늘이나 오늘이나 허고 눈이 빠지게 지달린디. 요렇게 안 옹

만요. 급살을 맞었능가, 에미 애비가 디졌능가아, 망헐 놈으 예펜네, 그런

일 안 당허고서야 어느 댁으 뉘 작은아씨랑 헌 약조라고 이렇게 까마구 괴

기를 먹겄능기요? 못 오먼 못 온다고 인편을 보내든지 허제. 실없이 기양

시르르 안 오든 안헐 거이네요. 왜 그냐먼, 아 요 매안으 장사판이 얼매나

큰디요? 장사꾼이랑 거이 맹랑해서 일전을 보고 십 리를 간다능거인디 이

판을 매급시 포기허겄어요? 거그다가 여그안 오먼 고리배미도 못 가는디요."

옹구네는 강실이보다 한 수 더 떠서 황아장수 기다리는 시늉을 하였다. 그

래야만 매운 연기가 꽉 들어찬 오소리 굴 속 같은 강실이 심정을 조금이라

도 누그릴 수 있을 터이므로.

허나, 그 사람, 인자 다시는 안 올 거이요.

옹구네는 그 말이 곧 튀어나오려는 것을 참았다.

지그시 누른 혀끝이 간지럽다.

내가 니 속을 모를 지 아냐? 다 안다. 다 알어.

옹구네가 더 요란하게 너스레를 떨어 버리는 바람에, 그만 입을 다물고 마

는 강실이한테서 눈을 거둔 옹구네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너는 시방 어디로든지 도망을 가고 자프제? 나도 없고 춘복이도 없는 디

로. 아는 사람 아무도 없는 디로 말이여.

매안으 코빼기 밑 거멍굴에 엎어져서 앉으뱅이맹이로 오도 가도 못허는디,

배는 점점 불러오고, 어쩔 거이냐. 거그다가 징그러운 애 아배는 두 눈구녁

버언히 뜨고 끔벅 끔벅 체다보고 있으니. 이런 놈으 시상이 있을 거이냐,

싶제? 추접시럽고 겁이 나서 더 못 있을 것맹인 니 맘은 내가 알겄는디,

너는 인자 어디로도 못 가. 여그 살어야여. 여그서 썩어야여.

"옹구네."

강실아가 가라앉은 음성으로 옹구네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