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불 9권 (48)
거기다가 잎이 하나도 없는 나무였다 하지 않는가.
꿈에 수목이 마르거나 낙엽이 떨어져 보이면 가정이 불편 불안할 징조다.
잎이 없는 나무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꿈에 보이는 물은 맑아야 좋은데, 흙탕물도 아니요, 검은 강물에 빠
져 떠내려가면서 헤어나오지 못하였다면, 굳이 해몽할 줄 모르는 사람이
들어도 형상은 불길한 것이었다.
거기다가 산발한 머리카락의 강물이라니. 머리를 풀어 보이면 남의 음해를
받고, 머리털이 얼굴을 가리면 사고를 당하며, 머리칼을 가르는 꿈은 걱정
이 생길 조짐인데. 하물며 거꾸로 매달린 사람의 머리카락이 쏟아져 이루
는 강물이라니. 말해서 무엇하랴.
그 나무에 거꾸로 묶이어 매달린 사람은 아마도 강실이였으리라.
효원은 침묵을 얼른 깨지 못한다.
오류골댁도 꿈 이야기를 하고는 더욱 침울해져 입을 다물어 버린다.
"꿈이 무어 다 맞는답니까. 작은어머님 요새 심기가 허하셔서 그런 꿈을
꾸셨을 거예요. 가위 눌린 것이나 한가지로."
"틀린 것 하나 없지 뭐."
"남의 말은 사흘을 못 간답니다. 설혹 구설이 좀 있다 하더라도 잠시 잠깐
이지요. 사람의 한평생은 긴것인데, 오입진경이라 하지 않던가요? 잘못 간
길이 오히려 제대로 간 길인 경우도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어요. 천지
운행 하늘의 계산은 사람의 계산과 종종 맞지 않아서, 사람이 무슨 일을
당하면 크게 낙심도 하고, 횡재라고 기뻐도 한다지만, 그것은 모르는 사람
들의 일희일비 아닐까요?"
물 먹은 냇내가 어둑발을 타고 방안으로 눅눅하게 고여든다.
"강실이가 무사히 대시까지 가기는 갔을까? 왜 이 황아장수는 안 오는 것
이여. 사람 까깝허게."
답답하기는 효원도 오류골댁만 못할 것이 없었다.
우선 황망한 중이었다고는 하지만 안행사로 보내자 한 것은 자기가 주선한
일이었으며, 중정이 깊은 시숙모 오류골댁이 드러내어 말할 수도 없는 이
일을 두고 아무리 궁금해도, 속이 썩으면 내려앉고 말지, 효원에게 채근하
거나 재촉하는 성품이 결코 아닌 것을 아는지라.
알려 주면 주는 대로, 처분만 바라고 있을 뿐인 오류골댁에게 들려줄 소식
이 끊어져 버린 효원은 당황하였다.
"이 예펜네가 왜 날짜 지냈는디 안 오까요잉."
안서방네는 으레 그 황아장수 아낙이 마을에 들르는 날짜 터울을 후딱 넘
겨 버린 채 안 나타나자, 애간장이 녹아서 안절부절을 못하였다.
"하이고 급살을 맞었는가. 즈그 부모 초상이 났능가. 못 오먼 못 온다고 말
이라도 보내야제, 저 혼자 꿀 먹은 버부리맹이로 입 딱 붙여 불고, 어디 가
처백헤서 오도가도 안허먼. 눈빠지게 저 하나만 까막까막 지달르고 있는
여그 사람들 생목숨은 복장이 터져서 죽어 부러도 나는 모른당 거이여 머
이여, 시방."
남들이 눈치 못채게 아랫몰 동구밖까지 나가서 고개가 아프도록 정거장 쪽
을 바라보다가. 해가 저물면, 오늘도 틀렸능게비다, 돌아서서 오는 길에 그
네는 혼자말로, 쎄 빠질년, 욕을 하기도 했다.
"싸가지 없이. 그렇게 안 드니 영 못쓰겄구나. 한두해도 아니고, 하루 이
틀도 아니고, 몇 삼 년씩을 속 알게 댕기던 예펜네가 이런 중요한 일을 맡
어 갖꼬는 왜 않던 짓을 허끼요잉? 혹시나 가다가 화적떼를 만나서 우리
작은아씨를 뺏게 부린 거는 아니겄지라우?"
효원이와 강실이의 이 속과 저 속을 다 알고 있는 안서방네는, 차마 제 상
전의 앞에서 내놓고 강실이 염려를 할 수도 없는 처지였으나, 효원의 도량
에 의지해서 애가 닳는 제 심정을 털어놓는다. 그런 안서방네를 효원도 그
다지 나무라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남의 눈에 다르게 보이지는 말라."
고 당부했을 뿐.
사실 효원으로서도 어느 누구와 함께 의논을 할 수도 없으면서 결과가 궁
금해서 답답만한데, 안서방네라도 친정으로 보내 볼까 했지만, 명분이 없었
다. 명분이 없는 일은 화를 불러일으킨다.
그렇다면 편지를 써 볼까.
하지만 편지는 위험하다. 오랜만에 출가한 여식한테서 온 편지는 받는 이
이름을 누구로 했든지 간에 온 집안 식구들에게 반가운 소식이어서, 마치
효원이 직접 다니러나 간 것처럼 모두 다 둘러앉아 피봉을 뜯고, 낭랑하게
한 줄 한 줄 읽을 터이니. 색다른 내용을 어떻게 적어 보낼 수 있으랴.
효원은 자기가 편지를 쓰지 못하는 대신, 어머니 정씨부인으로부터 봉서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씨부인은 범연한 듯 시어른의 문후를 여쭙는
말씀을 비롯하여 가내 대소사 안부를 적으면서, 아무도 못알아볼 암호 같
은 점 하나를 찍어서라도 그쪽 형편을 알려 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러할 만한 날짜가 지나고, 시일이 겨워도, 친정의 안어버이 정씨
부인한테서는 소식이 없었다.
이월 초열흗날 밤에 매안을 떠난 사람의 소식을 일흔 날이 다 가도록 듣지
못하고 날마다 가슴을 조이던 중, 뜻밖에도 오늘 대실에서 편지가 왔다. 그
것도 정씨부인의 전아한 궁체 달필 친서로.
체전부가 전해 준 봉함편지를 들고 기함을 할 듯, 터지려는 환호를 참으며
효원의 건넌방으로 들어온 안서방네는 상하의 신분을 잊고, 그 자리에서
효원이 봉투 열기를 기다렸다.
글씨는 모르나 함께 보고자 하는 심산이었다.
다른 때 같았으면야 어림도 없는 수작이지만 오늘만은 그런 저런 가늠조차
할 틈이 없었다.
안서방네는 마음이 바빴다.
아무리 진정하려 해도 벌써 숨이 받쳐, 효원의 낯빛을 놓칠세라 올려다보
며 상전의 턱밑으로 제 이마를 밀어넣다시피 하였다.
효원도 숨을 죽였다.
그러나 편지는 오직 모정으로 여식을 그리워하는 구구절절의 사연이 적혀
있을 뿐 다른 말은 없었다.
보고 십흔 내 새끼야, 그토록도 틈을 못 내 한 자 소식 전하기가 힘들고도
어렵거든 아모 말 말고 그저 다만 내 새끼 수결이라도 하나 보내 주고, 백
지 한 장 펼친 우에 손바닥을 그려 내어 뽄이라도 떠 보내면 몽매에도 못
잊어서 자다가도 펀 듯 깨어 잡았다 놓친 손을 대신해서 맞춰 보리. 아무
러면 사람 살기 이만 일도 못하리야. 너는 이 어미 말을 웃음으로 듣지 말
어 네 손이 닿은 자리 내손을 포개얹어 우리 모녀 못 만난 정 달래 보려
하느니라.
효원은 모친의 봉서에 심장이 짓이기어져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나는 왜 여자로 태어나서 부모의 곁을 떠나 이승과 저승으로 나뉜 것도 아
니건만, 이와 같은 편지를 받을 수밖에 없도록 살고 있는 것일까. 한심하고
서러웠다. 무릇 남의 딸자식 된 설움이 이런 것이요, 남의 딸어미 된 아픔
이 이러한 것이라면, 왜 누구는 아비에 아들로 나고, 누구는 어미에 여식으
로 낳는 것인가.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효원은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불길하고 불안한
기색을 감추기 어려운 효원의 낯색에 안서방네도 따라서 질린다. 그네는
글자보다 사람의 몸과 기색을 먼저 읽는 사람이다. 그렇게 읽어 낸 것은
거의 틀림이 없었다.
"무슨 일이 났능기요?"
안서방네 목소리가 떨린다.
"아무 말씀도 없으신데."
"없으서요?"
"응."
"그러먼 거그 안 가싱 거이그만요?"
효원은 대답을 하지 않는다. 확실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게 먼 일이까요?"
"어머님 들으셔. 음성을 낮추게."
"아, 이놈의 예펜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드니 똑 그 짝 났구만이요잉.
무신 말을 들을 수가 있어야 앞 뒤 사정을 알제."
그리고는 안서방네가 단호히 질러 말했다.
"도적맞어 분 거이여요. 작은아씨를 잃어번지고는, 어따가 뺏게 부리고는,
지년도 도망가 부린 거이랑게요. 그렁게로 못 오지라우. 일을 잘했으먼 상
을 받을라고라도 텍주가리 치끼들고 올 거이고, 생색을 낼라고라도 올 거
이고, 지 물견을 더 팔러라도 올 거 아닝기요? 예? 일이 틀려 부링게 저도
여그 오먼 맞어 죽으까 접나고, 염치없고, 미안해서도 못 오능 거이지라우.
꼭. 그러먼 그렇다고 말을 해야 수습을 허고 일이 적어지는 거인디, 어디
그런 년 중정머리가 그렇게 틔인 년 있겄습니까? 꿩이 사냥꾼 만나먼 도망
간다는 풍신이 지 대가리만 땅 속으로 처박고, 지 눈구녁으만 안 뵈이면
되제, 대명천지 삼라만생이 다 저를 못 보는지 알고, 궁뎅이 똥구녁은 하늘
로 쳐들어서 외나 더 잘 들키게 표내는 거이나 같은 이치지요. 머. 아, 지
가 펭상으 숨어 댕기고 펭상으 도망 댕길 수가 있간디요? 언제 들케도 들
키제, 미련헌 놈의 예펜네."
평소의 입질이 결코 이와 같이 사나운 사람 아니었으나, 안서방네는 진정
을 못하고 소리 눌러 새되게 구시렁거렸다.
"무신 핑계를 대서라도 지가 조께 댕게오끼요? 대실에?"
드디어는 그렇게 조르듯 효원을 다잡았다.
"서두르지 말어. 넘어질까 두려우니."
그러고 나서 효원은 우선 한 가지 궁리를 떠올렸다. 그 궁리를 오류골댁한
테 말해 주고 의논을 하는 것이 좋을 성싶어, 효원은 저물녘에 작은집으로
내려왔던 것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만 화염에 휩싸인 오류골댁을 발견하
고 혼이 나갔으나.
"하늘이 도우신 것이예요."
하도 아슬아슬 사참한 지경이었던지라, 효원은 하마터며 지붕 위로 기어올
라 집채를 다 삼킬 뻔했던 불길을 미리 잡아 얼마나 천만다행인가, 시숙모
를 위로하였다.
"살어서 무엇이 다행인가. 욕이지."
사실은 내 차라리 아까 그 불더미 속에서 그냥 꼬실라져 죽어 버리고 싶었
다네. 죄로 갈 말이지만. 살고 싶은 마음이 눈곱만치도 없어.
"작은 아씨를 생각해서라도, 작은어머님 기운을 채리셔야지요."
죽느니 빌어야지.
"죽느니, 빌어야이."
오류골댁은 저도 모리게 불거지는 말을 밀어낸다.
제 속은 오죽할까. 에미가 이럴 적에. 나이 먹어 산전수전 겪은 에미도 이
러할 때, 철모르는 거린 것, 세상 물정이라고는 귀털만큼도 모르는 내 새
끼, 대명천지에 꾀벗고 맨발로 거꾸로 매달려 어떤 꼴을 당하면서 어떤 인
생을 살아갈 것인지. 아이고, 불쌍헌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