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불 10권 (20)
청암부인의 이야기에 율촌댁은,
"그런 이약이 있었답니까?"
하고 미소지었다. 그때 어쩌면 어머니는 큰방에서 할머니 저고리에 동정을 달고
있었던 것도 같았다. 율촌댁 무릎 위에 얹힌 전반을 날개처럼 덮으며, 오동 꽃색
저고리가, 얼굴이 비치도록 말갛게 질이 난 콩기름 장판에 흘러내려 펼쳐진, 그
무늬와 빛깔이 아른아른 어울던 생각이 홀연 나는데. 아마 강태가 이 종의 제사
이야기를 지금 들으면,
"썩어빠진 봉건 지주 양반 계급의 지배 논리와 착취 근성이, 무지몽매한 인민들
을 영원히 노예로 묶어 두고자 날조해 낸 거짓말, 조작된 이데올로기."
라고 지탄할 것이 분명하였다. 그러나 강모는 그날의 아련한 오동꽃색 저고리와
노란 장판의 미묘하고, 은근한 어우러짐이 숨을 누를 만큼 그립고 고적하게 가
득 차 밀리는 것을 느낀다. 자기를 공대하는 심진학과 강태 앞에서 어쩔 줄 몰
라 말을 떼지 못하는 부서방에게 강모가 물었다.
"그래, 중국에는 누구 아는 사람이 있어서 왔던가?"
부서방은 아무래도 강모한테 남다른 정이 있는지라 그의 말을 듣는 낯빛이 금방
달라진다. 그는 두 손으로 싸쥐고만 있던 찻잔을 들어 홀짝 한 모금 마시고는
강모를 바라보았다. 그 눈에 찻물의 온기가 돈다.
"서방님, 왜, 저 고리배미 있잖응교?"
"응."
"그 고리배미서 만주로 가 자리를 잡었다는 사램이 하나 있었그덩요. 양판식이라
고. 그 판식이가 일본 만척을 따러 영구라는 디로 갔다는 말을 듣고, 한 번 찾어
볼라고 했지요. 첨엔."
'만척'이라면 1936년 일본 총독부에서 조선의 경성과 중국의 신경에다 세운 '만
선척식주식회사'를 줄여 부르는 간칭이다.
"일본이 만주 동북지방을 소리 없이 독점하여, 중국을 침략하는 데 필요한 식량
생산 기지로 만들며, 적극적인 환위이민 정책을 실시함으로써 장차 동북에서 저
들이 세력의 범위를 넓히어, 드디어는 이 곳을 조선과 같은 식민지로 만들고자
하는 일본의 야심이자."
심진학이 말했다. '환위이민'이란, 말 그대로 자리를 바꾸는 이민인즉. 조선 이민
들을 중국의 동북지방인 남만주 요녕성과 북만주 흑룡강성, 그리고 동만주 길림
성으로 동북 대량 이주시켜, 이미 식민지 백성이 된 이들을 이용한 영토 확장을
꾀하고, 조선땅에는 일본의 이민들을 대대적으로 이주시켜 점차 조선을 제이의
일본으로 만들겠다는 정책인 것이다.
"이는 일석이조를 노린 일본 제국주의의 악랄한 침략 정책인데 1936년 팔월에,
저들은 소위 '백만 호 일본 이민 계획'이라는 것을 제정하지 않았나. 백만 가호
라면 한 집에 식구 다섯을 기본으로 잡고 최소 오백만 명이라는 얘기 아닌가.
엄청난 일이지."
동시에 조선총독부에서는 '재만 조선인 지도 요강'에 근거하여 땅이 없는 수많은
조선 농민들을 계획적으로 몰아대, 조선 내지에서 중국의 동북 지방으로 이주시
켰다. 만척에서는 동척(동양척식주식회사)과 동아권업회사가 만주에서 경영하던
땅을 접수한 뒤, 거기다 조선인 집단농장을 세웠으니, 남만주 영구농장, 북만주
안가농장, 수화농장, 하동농장들이 바로 그것이었다.
"내가 알아본 바, 불완정한 통계지만, 1937년부터 1940년까지 삼년 동안만 해도
이렇게 이민이라는 허울좋은 형식으로 동북땅에 끌려 온 조선 농민은 근 십만여
명이나 돼. 오늘도 이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고 있으니, 앞으로 몇 년 사
이에 몇 십만 명이 될 지 몇 백만 명이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야. 이와
같이 강제 이주당한 조선 농민들은 동북 각지의 농장으로 배치돼서 노예처럼 처
참하게 농사일에 종사하고 있지."
"왜놈들이 만주를 머 비옥헌 무산 천리요, 호의호식의 낙토요. 허든 선전은 그야
말로 새빨간 거짓말이등만요. 참말로, 와 봉게로 가자니 태산이요. 돌아서자니
숭산이라, 첩첩산중을 걸음서 울음을 터친 일도 한두 번이 아니였지라우. 명월구
라는 디서 도안구라는 디끄장 한 오십 리 걸어가기도 해 봤는디. 골째기 냇물가
는 거치른 갈밭이요. 산은 산마동 우중충헌 원시림 천지라, 무섭고 험해서 머리
크락이 쮜삐쮜삐. 누가 잡우땡기는 것맹이로 캥긴 일도 있고라오."
가도 가도 망망하여 끝이 보이지 않는 지평선에 그만 겁이 나서,
"아이고매, 이 벌판에 자빠져 죽으먼 송장이 썩어서 백골이 진토가 되야도 누구
한나 지내가는 사람 없게 생겠다."
등골에 식은땀이 쫙 돋은 일도 있다고 했다. 대부분 갚을 수 없는 빚에 쪼들리
거나, 오랜 가난, 또는 왜놈의 그악스러운 공출 등쌀에 시달리다가 더 견디지 못
하고, 부득불 살던 고향을 등진 농민들이라, 가진 것이라고는 빈 주먹에 눈물과
쪽바가지뿐이어서, 지게 하나 변변한 것이 없었으니, 집단농장에 정착을 한다 해
도 쟁기질을 할 소와, 파종할 씨앗이며, 우선 당장 오늘 먹을 식량까지 모든 것
을 만척으로부터 비싼 이자를 물고 빌리지 않으면 안되었다. 땅도 물론 만척의
것이었다. 그 빚과 이자를 다 어찌하랴.
"영구농장은 어떻습디까?"
심진학이 물었다.
"그게 어디 있는 것이야?"
혼자말로 강태도 거들었다.
"저는 머 앙끗도 몰랐지요. 줏어들은 거 쪼께말고는. 그런디, 영구라는 디가 여그
봉천서 기차로 한 ㅁ 시간찜이나 더 가는 거리라는디 즈그들은 기양 걸어강게로
요. 하루 왼종일 갔지요. 머, 얼매나아 갔능가, 하이간에 나오기는 나오드만요.
해변가에 사람들이 웍적벅적허는 도시여요."
"그 도시가 아마 요하라는 강을 끼고 있을 겝니다."
"긍게요잉. 거그가 하구라서 그렁가, 아조 참말로 바다맹이로 널룹고 큰 물이대
요. 저는 아랫몰서만 살어 봐 갖꼬 그런 물은 생전 첨 봤그만이라우. 시퍼런 파
도가 철썩철썩 기양. 하앗따아."
부서방은 그 나루터에서 조선인 농장으로 가려고 조그만 배를 탔다. 요하의 남
안에서 북안으로 오고 가는 배들은 기껏해야 손님 여나믄을 태울 수 있는 것으
로, 널빤지 조각을 이어 붙인 일엽편주였는데. 내가 시방 이것을 타고, 살랑가,
죽을랑가. 살얼음이 섞인 강바람에 나룻배가 거칠게 출렁이며 뱃머리 휘익 솟구
쳐 올랐다가 금방이라도 두집힐 듯 곤두박질치며 고꾸라지는 것이 하도 위태로
워, 부서방은 뱃전을 붙들고 후들후들 떨었다. 그의 아낙과 아이들은 와악, 와악,
멀미를 하며 토했다. 그때 힐끗 바라본 배 밑창의 물빛은 오라고, 이리 오라고,
검푸른 손 너울너울 끝없이 흔들어, 찰싹이는 물의 넋이 부서방의 깊은 혼을 빼
는 것만 같이 보였다. 부서방은 휘잉 어질머리를 일으켰다. 공포스러우면서도 빠
져 죽고 싶게 사람을 홀리던 그 이상한 물을 건너서 내린 곳은, 요하의 북안, 판
산이라 하는 작은 현성이었다. 내려서 보니, 끝간 데 없이 무연한 황토 벌판에
집들은 모두 성냥갑처럼 납작한데, 누른 흙을 다져서 세운 벽과 흙 바른 지붕들
이 켜켜이 누런 황토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거나 퍼런 기와를 얹은 것이 웬일인
지 음산하게 보였다. 누루꾸룸한 연기와도 같은 바람이 뿌옇게 시야를 가리는
거리에 문득 검은 옷 시푸른 옷 다부산즈를 입은 중국인들만 팔짱을 낀 채 느릿
느릿 오가고 있어. 무서운 마음이 왈칵 들었다. 도무지 부서방은 이런 곳에서 살
아 낼 성싶지가 않았다.
"거그는 해변가라 그런지, 질가에 풀도 벨라 안 나서 기양 머이 더 황량허고 마
음붙일 디가 당최 없등만이요. 엥기들 안해요오."
조선안 농장이 여그 어디 가찹게 있다먼, 행이나 길가는 조선 사램이라도 만날
수 있을랑가, 허고 암만 둘러봐도 그 비식헌 그림자도 안 뵈이능 거이여요. 식솔
들 줄렁줄렁 뀌여서 데꼬 하염없이 걸어가다가 어뜬 또랑 얼어붙은 물가에 쭈그
대고 앉어서, 어쩌끄나아, 허고 있는디. 날은 춥지요. 갈 길은 멀고, 아는 사람도
없는디, 해는 저물어, 참 환장허겄대요이. 그런디, 사램이 죽으라는 법은 없능가,
쩌어짝으서 흰옷을 입은 노인냥반 하나가 지게에 가마니를 둘둘 말어서 지고,
묵묵히 저 있는 짝으로 오는디, 가만히 봉게로 똑 조선 사람맹이여요. 내 고에.
아니나 달르까. 제 짐작이 맞드랑게요.
"영구농장 갈라고?"
노인은 부서방을 한 번 찬찬히 바라보더니,
"저어 철길 뵈이시오? 저걸 따라 동쪽으루 한 십 리만 고대 가면 옹기종기 조선
마을이 나타나기 시작할 거요. 그게 영구농장이지."
하고는, 한숨을 푸욱 쉬며,
"조선서 오시우?"
걱정스럽고 서글픈 어조로 물었다.
"영감님이 고향 생각이 나능가 싶으대요."
"그래, 양판식이는 만났고?"
"가 봉게로, 거가 그 사램이 있기는 있등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