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지모도 2016. 6. 25.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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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46 1995. 6. 1 (목)


노동부 안전 특별 점검, 이틀째.

CT용 , KK곤 그들을 수행하면서 고생들 한다.

쏟아지는 지적 사항.

그러나 내게는 진실되게 그것을 받아들일 마음이 생기기보다는 반발이 앞선다.

관료주의에 대한 혐오감.


피로감, 극심하다.

술은 3일째 마시지 않건만 혓바늘은 또 반란을 일으킨다.

나의 체질인즉슨 피곤한 컨디션을 술로서 다스려야하는 체질인가.

왼쪽 눈에는 또 결석이 생겼다.


사하린 대지진.

수천명 매몰.


꿈- 다시 대학생이 된 나, 철학강의, 입 속에 돌이 가득 서걱거리고, 나는 지적 허영심으로 '인식은 심령에 선행한다'라는 뜻 모를 말을 내뱉고는 꿈 속에서도 부끄러워 한다.


17647 1995. 6. 2 (금)


특별 안전 점검, 마지막 날.

행정과 기술의 이른바 검사관들.

서기관 기술사 교수의 무리들.

사뭇 기라성의 폼들을 잡으면서 나름대로 떠벌여대는 그 언사에 진정 산업 현장의 안전에 대한 충정은 어느 정도나 담겨있을런지.

문과는 문과대로 청산유수의 달변, 이과는 이과대로 멋대로 농하는 언사.


퇴근하여 직원들 어울려 술, 술.


'브람스, 그를 아시나요?'

말랑말랑하게 언어를 희롱하는 어느 소설가의 소설 속 대사였지.


기도.

새롭게 하소서.


17648 1995. 6. 3 (토)


전일의 취기가 걷히지 않아 오전에는 여적 혼미한 머릿속.

그러나 술이 완전히 깨고 난 오후부터 급격히 밀려오는 피로감.


오후에는 전산실에서 WINDOWS 교육을 받는다.

훨씬 LEVEL UP된 WINDOWS의 현란한 기능들.

이런 속도로 자꾸만 새로운 소프트웨어들이 출현할라치면 문제는 그 기능들을 익혀야 하는 그것이 또한 문제일 것.

정작 소프트웨어를 이용하여 달성하고자하는 목적을 잃고, 오히려 그 기능을 익혀야 하는, 방법이 목적과 도치되는 상황이 연출될지도 모른다.

이것은 개같은 경우.


DOS에 비하여 WINDOWS는 너무나 눈부시다.


홍성원 '달과 칼' 3권째 읽는다.

임진왜란이라는 역사적 사실, 그 전란의 의미를 천착하기보다 그 난리를 온몸으로 겪어낸 민초들의 이야기를 능숙한 말솜씨로 풀어낸다.


꿈- 房과 섹스.

방이라는 상징은 성과 직결되는 무엇?


새벽 일어나 묵은 때를 벗긴다.

추적거리며 내리는 토요일의 빗줄기.

멀리 뱃고동 소리.


17649 1995. 6. 4 (일)


비내리는 토요일.

어영부영 오전 일과를 보낸후, 묵지근한 아랫배를 안고 CT용 의 차를 타고 서면으로.

후덥지근한 날씨 속에 서면 쪽의 인파는 더욱 붐빈다.


취업정보센터.

각종 국가시험, 자격시험등의 안내문이 어지럽게 게시되어 있다.

오만여원 어치의 공인중개사 교재를 구입한다.

시험은 11월 12일.

1차 민법,민사특별법,부동산학개론,부동산공법

2차 부동산중개업법령, 부동산 공시에 관한 법령. 부동산 세법.


돌아와 마시는 술.

俊이는 친구 천우와 제 방에서 노닥거리고 英이도 일찍 돌아와 동생에게 저녁을 차려준다.


꿈- 보생의원, 좁아 터진 재래식 화장실, 형, 작은 어머니, 막내 삼촌.


자욱한 일요일 새벽 안개.


17650 1995. 6. 5 (월)


몸살의 잦은 예방.

나른한 머릿 속, 후들거리는 팔다리, 육체의 마디마디에 뿌연 농무가 끼어있는듯한 기분.

일요일 오후, 베란다 내 방에 앉아서 민법이니 부동산학 개론이니 부동산 중개업법이니 하는 교재를 펴놓고, 노트를 펴 놓고, 거기다 마인드 맵을 해가면서 공부를 시도하였으나 집중하기가 힘이 든다.

공부-

진지한 자세를 허물고 차라리 침대에 누워서 무슨 소설 읽듯이 훌쩍훌쩍 읽어가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


법, 법, 법의 홍수.

공인중개사를 공부한다는 것은 결국 법 지식을 공부한다는 것이다.

법 조문을 외워야 한다.

조문 너머에 있는 법의 정신이나 철학을 들여다 볼수 있는 것은 개개인의 교양의 깊이에 있을 것이고.

그리고 나는 이 교양의 깊이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의 자신감을 갖고는 있다.


베토벤 삼중 협주곡.

크라우디오 아라우의 피아노, 헨릭 쉐링의 바이올린, 야노스 스탁의 첼로.


17651 1995. 6. 6 (화)


항국생산기술과 설계 용역 계약.

1억원.

젊은 친구들의 순수한 패기만큼 실력도 믿을만 할 것이다.


광안대교 CAISSON제작공사, 산재보험관계로 왈가왈부.

업무분장의 원칙하나 정립되지 못한 회사, P상무의 어거지 논리도 딱하고 건설부의 무원칙도 딱하다.

P상무를 설득하여 근재보험 쪽으로 유도하여 결론을 보게 한다.


굳어버린 나의 하드웨어.

내 머리는 이제 노후하였다.

형편없는 암기력이다.

금방 읽고 쓴 것들이 다음 장을 넘길때 쯤이면 이미 머릿 속에 남아 있지를 않으니.

민법의 진도는 도무지 나아가지 못한다.


엘큘 포와르의 회색 뇌세포.

노후한 뇌에게서 기대할건 직관 뿐이다.

정보들을 고지식하게 뇌의 주름 사이에 새기려 하지 말고 직관의 이해로서 인식하는 쪽으로 접근해야 한다.

마인드 맵의 기법이 도움되는듯도 하지만, 어쩌면 그것 자체가 또 하나의 부담이 되어 학습 진도를 방해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좌우간 녹슨 하드웨어도 자꾸 작동시키다 보면 다소 기능이 향상될런지도 모르지 않는가.


17652 1995. 6. 7 (수)


현충일, 오전에 사무실 잠시 나갔다 돌아온다.

사뭇 더운 날씨, 여름이다.


장정일 '너에게 나를 보낸다'

기존의 소설 작법과는 사뭇 틀리다.

주간지의 도색기사들을 편집한듯한, 단편적인 에피소드들을 조합해서 만든듯한 소설이다.

그러나 어떤 진지함만은 감지할수 있겠다.

무라카미 하루키와는 또 다른 진지함과 그 진지함 속에 소설적인 미학이 녹아 있다.

장정일은 적어도 삿된 엉터리 작가는 아니다.


민법의 진도는 지지부진.

계약법을 들추다가 부동산학이라는 걸 들추다가, 휴일의 오후 결국 베란다 내 방에 갇힌채 소주에 취하고야 만다.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는 뇌세포, 그 보다 더욱 따라주지 않는 의지.

전자야 어쩔수 없다 하더라도 후자는 극복 해야만 한다.

카투사 시험을 치르고자하는 俊이에게 모범을 보이기 위하여서라도.


주님.

늙어가는 정신, 새롭게 하소서.


17653 1995. 6. 8 (목)


SB-405 예비시운전.

그러나 MAIN ENGINE 계통의 TROUBLE로 속력시험등 주요 항목은 해보지도 못한채 일찍 귀환하고 만다.


무언가의 허전함.

뿌리없음의 허전함.

중심없음의 그 허전함.

가치를 어디에다 두어야 할지 모르는 인간의 그 막막함.

그리고 허전함과 막막함의 정서에다가, 그 정체를 인식할수 없다는 그 절망감.


퇴근하여 민법 '의사표시' 공부.

무작정 연필 들고 밑줄 그어가며 학습하는 것이 오히려 효과가 있을법.

체계적으로 정리한답시고 그 쪽으로 머리 쓰는 것 보다 그냥 미련한 정공법으로 밀어붙이는 것이 어쩌면 더 효과적이다.


17654 1995. 6. 9 (금)


건설공사의 이것저것 계약서, 사양서등으로 정신없이 바쁜 하루.


형에게서 전화.

媛네, 내 명의의 발기인인가 무언가를 이제 취소할테니 인감증명과 인감도장을 급히 보내 달라는.

늘 이렇게 급한가, 원.


퇴근하여 서면, 취업정보센터.

俊이의 카투사 문제집 사다.

번잡한 도심, 인파의 물결.

그 속에 섞여있으면 나는 머릿 속이 지끈거린다.

게다가 텁텁한 더위.

나는 이제 도시인은 하지 못할란다.


기도.


17655 1995. 6. 10 (토)


일과중 잠시 몸을 빼내 동회에 가서 인감증명 떼어 J편에 서울로 부치다.


퇴근하여 마루에 앉아 소주.

민법공부는 아예 미뤄둔채.

그러나 해야지 해야지하는 강박은 그저 남아 있다.


俊이 녀석, 서울 고모에게 전화하였다고.

삐삐대금을 보내준 고모에게 감사의 인사.

엉뚱하게 기특한 생각을 곧잘 해내는 俊이.


17656 1995. 6. 11 (일)


김신조 '나의 슬픈 역사를 말한다'

북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지독한 훈련을 거처 남조선의 청와대 습격을 위하여 남파되었다가 투항하여 결혼하고 아이낳고 신앙인이 된 역정의 수기.

1.21 사태, 내 쫄병시절 그로 인하여 군 복무기간이 6개월이나 연장되고, 고참들에게 졸병으로서 그야말로 개피를 보게 한 원흉이 김신조일진데, 이 책을 읽노라니 가장 큰 희생자는 바로 김신조 자신이었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토요일, 퇴근하여 SJ엽 , KJ도 등과 어울려 맥주를 마신다.


꿈- 돈 떨어져 서울거리를 헤맨다, 거대한 도시, 철판으로 만들어진 운동장같이 드넓은 고가도로, 뒷골목, 돈 떨어져 간밤 묵었던 여인숙을 찾으려고 뒷골목을 헤매인다, 그곳은 내수동같기도 혹은 수하동이나 양동같기도.


일요일.

아우성치는 바람소리.

오늘은 공부를 해야지.


17657 1995. 6. 12 (월)


일요일, 아우성치는 바람 속에 높이 뜬 아파트의 공간 속에 갇혀서 혼곤한 몸살끼로 하루를 보낸다.

때로 교재를 펼처보기도 하였지만 도무지 몸의 컨디션이 이런저런 정보를 두뇌에 쟁여둘만한 상태가 아니다.


토요일, 일요일에는 술을 마시지 않겠노라하여 맥주를 들이 붓고 정작 일요일은 음주의 후유증으로 꼼짝을 못하는 이 어리석음.

그러나 아침에 기도한 주님의 느낌, 그 느낌은 감사하는것, 후회를 반추하지 않는 것.


낮에 잠을 자고 또 밤이 되니 밤이라서 잠을 자야 한다.

아릿한 몸살끼와 거북한 뱃속이 꿈 속에서 가만 있을리 없다.


꿈- 맨발로 걸터앉는 재래식 변소, 회사에서 승진의 좌절...


새벽 일어나 화장실에 엉덩이를 까고 앉으니 간 밤 꿈 속의 화장실의 느낌이 그대로 생생한 현실이 된다.


목욕하여 게으른 때를 벗긴다.

체릴 스튜더가 부르는 슈베르트의 리트.


바람은 여전하다.


17658 1995. 6. 13 (화)


또 불려가 신모씨에게 노망에 가까운 닥달을 받는다.

자기가 원칙을 흐트려 놓고는 그 원칙을 따지는 조그만 노인, P상무에대한 욕설도 어지간히 해댄다.

임마 점마하면서 배를 툭툭 찔러가며 쏟아내는 무식하고 상스런 언사를 고스란히 받아낸다.

어느 배짱있는 젊은이같으면 대뜸 주먹이 날아갔을 그 밴질밴질한 늙은 낯짝.


P상무에게 하소연 해 봤자, 그 역시 지금은 신뢰를 잃은 처지라서 신모라는 그 인간 앞에서는 무력하기 그지없고.

합리와 논리와 원칙과는 거리가 먼, 효율과는 또 전혀 다른, 재래식 뒷깐같은, 권위주의와 독선만이 판을 치는,

환멸이 밀물처럼 밀려든다.


俊이 과친구라고 집에 데려온아이, 예의바르고 순진한 인상.

俊아, 젊을 때의 친구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친구로부터 받는 영향은 엄청나게 큰 것이란다.


17660 1995. 6. 15 (목)


전일의 폭주로 인하여 하루의 육체는 피폐하다.

이제 폭음의 다음 날은 견디기가 무척이나 힘이 든다.

극도로 피로한 머릿 속에서 핏줄이 뛰는 소리가 느껴지면 갑자기 핏줄이 터져 버리는 것이 아닐까하는 불안까지도.


레이몬드 챈들러 '기나긴 이별'

필립 마로우, 테리 레녹스.

1950년대의 미국사회, 부호와 변호사와 작가와 기자와 경찰과 갱과 그리고 시니컬한 사립탐정.

문체는 건조하지만 깊은 맛이 있다.


사장 비서로 있던 여사원, 관리부로 전보발령.

늘씬한 글래머.


일찍 돌아와 이른 잠자리들다.


꿈- 거대한 목욕탕, 호텔의 객실, 유원지, J와 俊이,,


그 꿈의 흔적을 새벽 목욕으로 씻고 듣는 슈베르트의 현악사중주.

'죽음과 소녀'


기도.

긍정과 의지.


17661 1995. 6. 16 (금)


Sh씨 로부터 모욕과 함께 툇자맞았던 서류들 다시 꾸며 올리다.


회사에서 틈을 내어 교재를 펴 볼 여유가 때로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마음의 여유가 따라주지 않는다.

직장은 직장, 업무적인 강박이 의식을 지배한다.


천상 퇴근후나 휴일만이 공부할수 있는 시간일 터인데, 내 의지는 그 여유를 학습에 진력하게 할만큼 강하지 못하다.

늘 술마시기 따위의 쾌락주의에 지고 마는 것이다.


어제 SB-405 TEST 시운전, SB-405 예비시운전.

그 때문에 밤이 깊어서야 돌아올수 있는 집.


오늘은 SB-416 진수, SB-405 예비시운전.

아침부터 바쁜 일과.


아이들 곧 시험.


기도.

주님의 안정, 그 평형감각.


17662 1995. 6. 17 (토)


SB-416, 2선대의 고정대를 미끌어져 내려가다.

SB-405 쌍용 엔지니어들 DAMAGE 입은 M/E을 밤새 손보았으나 여의치 않아 시운전 또 순연.

11시, 1시, 2시, 3시 1시간꼴 단위로 출항을 연기하는 그 미련스러움.

P상무의 단견, 또는 밀어붙이기식 엉너리, 그도 아니라면 사람을 피곤하게 하려는 심술일 뿐이다.

무척이나 짜증스러웁다.


오후에는 또 신모씨의 난리.

동백교 건으로 처음에는 내게 퍼부어대더니, 건설부 안이사에게 무차별 폭격을 퍼붓는다.

당신이 너가 되었다가 드디어는 씨발 소리가 튀어 나온다.

아아, 그는 필경 노망에 접어 든 모양이다.


완전히 지친 마음과 몸.

돌아와 마루에 앉아서 소주잔을 뒤집는다.

도무지 남편의 무엇도 헤아려주기를 거부하는 J께서는 또 무엇에 볼이 부었는지 이불 뒤집어 쓰고 누워 있는데.


안개, 새벽의 자욱한 안개.

이 안개 속에 오늘 예비시운전 출항이나 할수 있으려는지.


기도.

주님의 평강과 안정을 훔치자.


17663 1995. 6. 18 (일)


SB-405 예비시운전 무사히 마치다.

SB-416 진수후, 수문을 닫고 유입된 해수를 PUMPING OUT하는데 애를 먹는다.

수문의 TIGHTNING이 부실한 까닭이다.

잠수를 불러서 우웨스등으로 응급조치한후 오후에는 말끔하게 물이 퍼졌다.

KC원 대리, 예전 염효동과장은 그를 다룰줄 몰랏던 거다.

동기를 적절히 부여해 주면 자신의 일은 착실하게 책임지고 수행하지 않는가.


시운전 나간 SB-405, 7시 30분경 귀환하기까지 토요일 오후를 하릴없이 사무실 지킨다.

P상무와 둘이 남아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다.

그의 중학교 수학교사인 큰딸네미는 올 대학원 2학년, 곧 시집을 보내야 한다는, 또 큰 아들은 세무사 1차시험 합격....


일요일 새벽.

간 밤 비 내렸던듯, 축축한 비냄새.

좋은 냄새다.


목욕하여 기도.


17664 1995. 6. 19 (월)


일요일, 모처럼 베란다 내 방에 들어 앉아서.

커텐을 처서 밖의 드넓은 풍경화로부터 눈맛을 차단시키고, 백열등의 스탠드를 켜 책상위를 조명하고, 돋보기를 걸처 쓰고 공부를 한다.

물권법에서 물권의 변동, 점유권까지 진도를 나아갔다.

하면 되는 것이다.

늙은 뇌세포일지라도 자꾸만 훈련을 시키다보면 어느 정도의 효율은 기대할수 있다.


학습의 방법론에 있어서, 처음부터 낯선 지식들을 미주알 꼬주알 정독하여 머릿 속에 틀어 넣을 생각은 하지 말자.

우선 개괄적으로 전체의 그림을 파악한후 소설을 읽듯이 자꾸 읽어 나가자.

1독,2독,3독.

또 기출문제의 출제경향을 파악하여 빈도가 잦은 항목들은 중점적으로 공부하고 거의 출제되지 않았던 항목들은 그냥 상식적 수준에서 멈추도록 하자.


늦은 오후, 공부 좀 하였다고 스스로에 대한 포상.

맥주를 사다 마신다.


꿈- 설계부 한가운데의 변기에 쪼그리고 앉아서 중인환시리에 똥을 눈다.


기도.

주님의 끼치는바 그것을 느껴 인식하라.


17666 1995. 6. 21 (수)


여름이다. 사뭇 덥다.

SB-405 공시운전, 75명 승선하여 오전 8시30분 안벽을 떠나 오후 6시 30분 귀환하다.

순조로운 진행.


박영한의 소설, 전에 한국일보에 연재되었던 '우리는 중산층'을 '장미 눈뜨다'라는 선정적인 제목으로 바꾼 소설.

한창 산업화가 촉발되어 변두리는 개발 붐을 타고 부동산이 들썩이던 시절, 사람들은 슬슬 돈맛을 알아 기분은 달뜨고, 돈을 찾아 도시로 몰리는 젊은이 때문에 농촌은 비워가던 시절,

내 조선소 초년병 시절. 정신의 황폐함을 향한 첫발이 내딛어지던 그 시절.

박영한은 그때 그 달뜬 사람들, 어지러운 정신들을 풍자적 입담으로 제법 잘 표현한 것인지.


확실히 모니터의 전자파는 눈에 무척이나 해롭다.

2,3년전부터의 급격한 노안 현상의 원흉은 바로 컴퓨터 모니터일 것이다.

어제 오후 종일 아프고 쓰라린 두통과 눈의 아픔 또한 그것이 원인일 것이다.

그런데도 윈도우의 폭탄게임에 열중하는 그 미련스러움을 어이 할거나.


꿈- 어린 英이의 어여쁨.


새벽.

훔처라 훔처라 .. 창조하신 분의 드넓음.


17667 1995. 6. 22 (목)


실로 좋지가 않다.

눈의 아픔과 두통.


P/C를 멀리 하라.

혹은 전자파에 대한 안전장치를 강구하라.

전산실에 공문띄우다.


어머니께 가다.

형,형수,彦이,哲이.


어머니 연륜의 한계.

형의 어눌한 그 한계.

나의 그 자의식 한계.

뛰어 넘을수 없는, 이제는 결코 뛰어 넘을수 없는 그 한계들이여.


그리하여 그 한계를 슬프게 의식하는 어리석고 아프고 그리하여 여젹 외디푸스 콤플렉스를 벗어나지 못한 아들.


취하여 쓰러져 잠이 들고.

잠들기전 늦은 시각, TV에서는 김용등 귀순자들이 출연하여 눈물겹게 그리운 어머니를 토로한다.


바람부는 아침.

부랴부랴 출근준비.


주님의 안정을 도둑질하라.


17668 1995. 6. 23 (금)


SS우 를 시켜 P/C의 위치를 옮기다.

전산실 권고인즉, 건물 밖을 지나는 고압선의 간섭으로 모니터 화면이 미세히게 흔들리는 것이 원인일수 있다는.

3대의 컴퓨터와 프린터등의 위치를 바꾸고 나니까 그래서 그런지 눈의 아픔은 한결 덜해지는 듯도 하다.


사무실의 책상앞에서 공부를 좀 하려 하지만 그것처럼 여의치 못한 일도 없다.

첫째, 주위의 시선에서 자유로울수 없다.

둘째, 책상위 이런 저런 서류들이 눈에 삼삼하여 집중할 수가 없는 것이다.

여섯권의 교재를 몇 번 훑어보고, 시험일 임박해서는 문제집이라도 한권이라도 풀어보려면 일주일에 하루 휴일의 너덧시간으로는 어림없다.

매일 새벽 한시간정도, 회사에서도 틈을 내어 공구실 같은 곳에 들어 앉아 한시간 정도는 할당해야 한다.


장마는 24일경부터 시작된다고.


주님.

안정과 일관된 마음가짐.


17669 1995. 6. 24 (토)


민법을 공부하다보니 법이라는 것의 본질을 알듯도 싶다.

인간관계의 갈등구조의 가능한 모든 것을 상정하여 그물을 처 놓은 것이다.

대부분은 일반적인 도덕규범이나 상식적 도덕관으로 파악할수 있는 것이지만 때로 전혀 뜻밖의 법규범을 마주칠때가 있다.

그러나 그도 잘 살펴보고 궁구하여 보면 어떤 보편적인 원칙을 유지코자하는 어쩔수 없는 법규범임이 파악되기도 한다.

법이라는 것, 매력이 없지 아니하다.


광안대교 외주공사, 동아건설의 산업재해의 보증 문제가 참으로 어정쩡하다.

결국 3300만원짜리 일반 보험 상품에 가입하여 계약케 한다.

아까운 3300만원.

좀 더 적극적인 정보를 수집하였더라면 나가지 않아도 될 돈, 안전빵 최고, 책임회피의 풍조가 지배하는 회사.


아이들 시험, 시험이 끝나면 방학이다.

俊이는 이제 카투사 공부를 하여 카투사로의 입대를 생각하지만, 스물 넘은 대학 4학년짜리 英이는?

졸업후 진로는?

여상을 나온 여자애들은 당당히 취업도 잘하는데 대학나온 애들은 그냥 처녀룸펜이기 십상인 현실인데.


17670 1995. 6. 25 (일)


눈의 통증이 심하여 가급적 P/C 앞에 앉지 않으려하지만, 어쩔수없이 앉아서 자판을 두드려야하는 것이 또한 업무라는 것이다.

전자파를 차단해 줄 렌즈를 구하라.


당나귀, 절제없이 부려 먹었던 당나귀는 이제 주인의 배려를 기다린다.

급격하게 쇠약해지고 있는 불쌍한 당나귀.


토요일 일찍 회사를 나서 귀가.

英이와 俊이도 모처럼 집에들 있다.

내 방에 앉아 용익물권을 좀 들여다 보다가 한병의 소주를 마신다.

이른 저녁, 라면 하나 끓여먹고 잠이 드는데, 꿈은 또 어찌 그리도 망망한지, 드넓은 산자락 안개 자욱한 풍경 속에.


일요일 새벽.

내 방에 불밝혀 자리잡아 앉는다.


기도.

주님의 중심, 안정... 사랑과 온유.

그것을 획득하라.


17671 1995. 6. 26 (월)


일요일.

공부의 진도는 다소 이루었다.


젊었을 때에는 부족하였던 집중력도 나이들면 생긴다는데, 집중력도 썩 좋은 편이 못되는데다가 기억력도 형편없이 퇴화하고 말았으니.

다만 직관력과 이해력 하나로 버텨내고 있는 꼴이다.


저문 오후, 그예 J가 만든 파전을 안주로 하여 소주를 마신다.


"드디어 하나의 결론에 다다랐다/ 노상 성가신 허깨비를 무너 뜨렸다/ 사흘밤 사흘낮이 온통 비에 젖어/ 떠나가는 이의 등을 울었느니


철부지였느니라 나의 젊음/ 어리석었느니라 나의 친구/ 한 마리 몸쓸 짐승같이/ 허허로운 들판을 우짖고' 쓰러진채 바라보는 이승의 하늘


한 줌 재로 남는 격정을 더불어/ 황토길 모진 바람 속에 섰느니/ 이제사 사슬 풀린 나의 사랑이/ 외로운 넋으로 떠돌기만 하는 것


잃어버린 술을 위해 눈물 한방울/ 옥향복 비단 구름 끝에 매달려/ 소스라치게 불타는 핏빛 노을이/ 이제는 나더러 잊으라 한다."


- 잃어버린 술 '권일송'-


17672 1995. 6. 27 (화)


지자제 선거를 앞둔 월요일.

초여름의 더위, 올 처음으로 에어컨의 찬바람이 나온다.


민법을 일차 독파하였다고 생각하였는데 계약법의 문제를 풀어보니 태반 모르는 것 투성이다.

용기가 팍 꺾인다.

그러나 아직 4개월여가 남았다.

7월중에는 부동산 공법과 부동산학개론과 감정평가이론을 섭렵하고 8월에는 부동산 중개업법과 실무 그리고 공시법을 섭렵하고 9월에는 부동산 세법을 섭렵함으로 대강의 과목이해를 마친후 9월 중순부터 다시 민법부터 재독하는 것이다.


아이들 시험 끝나고 이제 방학.

J는 시형어머니, 황선생님,동광약국등과 시형어머니 차에 실려 영주 부석사행.


목욕하고, J도 없는 아침상을 아이들과 둘러 앉는다.

俊이는 과의 M/T가기도 포기한채 제 방 틀어 박혀 있는데 썩 좋은 심기가 아닌듯.

4학년짜리 英이는 내일 M/T 떠난다고.


17673 1995. 6. 28 (수)


찌는 더위.

英이와 중리초등학교 올라가 투표.

英이의 첫 투표권행사다.

이 척박한 상공업 도시, 문화의 불모지인 영도라는 갯가, 억센 사투리와 우직한 사고방식이 지배하는 고장.

문화적인 인물이 있을까마는 그래도 여기저기 골라가며 동그라미를 찍는다.

투표장에서 최석교 부부 만나다.


英이 들떠서 동아리 M/T 소백산 간다고 학교로 가고 俊이와 둘이 남은 빈집.

한시간여 민법 학습.

그러나 이내 책을 덮고 TV영화 '늑대와 춤을'을 보면서 맥주를 마신다.

캐빈 코스트너의 그렇고 그런 인디안과의 우정과 애정 이야기.

영화를 보면서 엉뚱한 생각을 하여 본다.

인디안은 왜 수염이 없을까하는.


일찌감치 잠자리 들고, 나 잠든 사이 J는 돌아오고.

오늘 새벽 英이는 소백산으로 떠났다.


선거결과는 민자당 5, 민주당 4, 자민련 4, 무소속 2의 구도.

기고만장한 자민련, 떠들썩한 민주당, 풀이 죽은 민자당.


17674 1995. 6. 29 (목)


참 끈질기게도 무대에 남아있는 김대중과 김종필.

그들은 또 불사조처럼 되살아 났다.

한반도 좁은 반쪼가리 땅을 이리저리 갈라 지역의 맹주로서 다시 군림한 것이다.

한국의 한계.

그 두 김씨를 극복하지 못하는 이나라 국민의 한계.

여기 이 풍토에서 무슨 전위가 있으며 진보가 있으며 개선이 있으며 새 패러다임을 꿈이라도 꿀수 있을까보냐.

나를 비롯한 불쌍한 정신들.


J, 그 억센 어투로 뱉어내는 무식한 폭력.

냉장고 속을 정리정돈하라는 내 충고는 전혀 그녀에게 접수되지 않는다.

자신의 부족함이나 잘못을 생리적으로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다.

즉각적으로 되돌아 오는 고함 한마디.

"너의 일이나 잘 해라."

俊이 앞에서 조금의 주저도 없이 튀어 나온다.


변하거라.

참혹한 인격이여.


17675 1995. 6. 30 (금)


이한호부장의 퇴직.

총무로서 회식을 주관하는 나는 이광섭차장의 차를 얻어타고 광장 호텔 뷔페로 향한다.

차 안에서 숨가쁘게 들려오는 충격적인 뉴스.

서울 서초동 삼풍백화점 붕괴.

천명이상의 사람들이 우굴거리는 건물이 무너져 내린 것이다.

이럴수가!

그야말로 사고의 왕국 대한민국.

부실공사의 아수라, 이것 하나 개선치 못하는데 무슨 개혁이란 말인가.


이한호씨, 20년 훨씬 넘은 세월을 바친 직장을 떠나는 그 포즈에서는 쓸쓸함과 시원함이 교차된.. 그러나 쓸쓸함이 더욱 돋아난다.


J,그 거친 말투.

삼백원짜리 비누 한 장.

말한마디로 천냥빚도 갚는다는데, 뿔을 세우고 송곳니를 갈아 증오의 염을 담아서 한마디 한마디 언어에 천개의 주먹을 내지른다.


오늘 SB-405 TRAINING SEA TRIAL.

억지로 몸을 일으키다.


英이 3일째.

주님.

끼치소서.

이 척박한 영혼들에게 끼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