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 8
18803 1998. 8. 1 (토)
실습실의 내 옆자리에 앉는 PG동 씨, 나보다 나이가 많은 유일한 사람이다.
그래픽에 대한 열성도 뜨거운데 그는 본래 전기기술자.
가희에서 몇꾸러미 보따리 싸 놓다.
18804 1998. 8. 2 (일)
비 흩뿌리는데 가희 철수.
英이 차에 자질구레한 것들 실어 몇 번이나 집으로 나른다.
친구들 오고나서는 큰짐들 용달차에 싯는다.
수십번 오르내리는 계단.
그야말로 중노동중 중노동.
그림쟁이 H근, 부도나 도망온 S규, 사진쟁이 S곤이 정말 큰힘을 써 주었다.
노가다 일당으로 처도 만만치 않은 금액일 것인데, 오십넘은 중늙은이들이.
땀으로 미역을 감으며 헥헥거리며 엘리베이터도 없는 5층을 수십번 끙끙대며 오르 내린다.
마루는 말할 것 없고 俊이 방과 베란다에 꽉 들어찬 패잔병의 전리품들...
이제 이것들 정리할일 이 아득하다.
샤워들을 하고 내 속옷으로 갈아 입은채, J 는 고기를 구워 소주를 차려 낸다.
이로써 가희는 9개월여만에 패배하여 물러 난 것이다.
18805 1998. 8. 3 (월)
종일 정리.
욱신욱신 쑤시는 팔다리 그리고 허리.
낡은 기계를 혹사한다.
18807 1998. 8. 5 (수)
푸른 하늘, 이글거리는 태양.
동의공대 숲에서는 매미가 운다.
매미의 울음소리, 한여름의 한가한 그윽한 정취...
녹슨 흑인의 목소리로 한가하고 느리게 부르는 불루스.
조지 거슈인의 섬머 타임...
풍요와 게으름, 한적함과 느긋한 일락의 오후.
그 그림 속에는.
작열하는 태양의 치열함은 그곳에 없다.
소금기가 배어나는 살거죽, 노동자의 근로의 고달픔도 없다.
매미소리...
18808 1998. 8. 6 (목)
대구는 36도.
작열하는 오르가즘.
여름은 절정의 환성을 지른다.
중앙동 인쇄소의 시스템 견학.
코아 출력소와 매일 프레스.
드럼 스캐너, 암실의 필름 출력 시스템, 4도 분판 교정, 알미늄판 부시 요철, 인쇄에 이르는 과정.
진작 이런 기회가 있었다면 나의 장사 컨셉은 좀 더 달라지지 않았을까.
페이지 메이커 매뉴얼 구입.
俊이에게서 편지오다.
올 俊이의 여름은 작년의 여름과는 같지 않을 것이다.
18809 1998. 8. 7 (금)
물난리, 집중호우로 많은 사람이 죽고 재산손실.
지리산 계곡에 야영하던 사람들 백여명 희생.
이런 재난에서 누구든 자유로울수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나만은 괜찮겠지 하는 운명론적 특혜의식 속에 살고들 있다.
아무런 근거없는 운명론적 특혜의식.
'운명론적 특혜의식' 이란 회사 다닐적 누구에겐가 들은 말인데 정말 실감나는 말이다.
나는 괜칞아... 나는 괜찮아...
자신은 무조건 괜찮은 것이다.
18810 1998. 8. 8 (토)
어머니 생일.
새벽 2시.
무더운 여름 날 1919년, 79년전 서울 종로통의 한 중인의 집에서 태어난 어머니.
동경여의대를 졸업하고, 부자집 의사집안 맏아들 경제학자라는 이동우와 중매로 혼인하여.
전쟁에 남편은 월북하고 어줍잖은 운명과 어줍잖은 환경 속에 더욱이 어줍잖은 자식들을 낳고 그렇게 살다가 간 어머니.
어머니 무덤가.
그곳에서 형제들도 만날 것.
그러나 어머니께 가려하는 이 마음에는 노여운 불꽃 하나 있으니.
그리하여 당신께 대하여는 아득하고 아득할 뿐인 서러움 하나 있을 뿐이거니.
기도하여
그 이께 기도하여 나는...
용서하소서
나의 창조주여.
18811 1998. 8. 9 (일)
양산 신불산 자락으로 가는 길은 꽉 막혀있다.
허덕거리며 英이 모는 차는 신불산 자락을 올라간다.
어머니.
당신을 덮은 잔디는 생명의 여름을 뽐내는데 당신은 어디 계시는지.
당신의 해체된 원소들이 이 생명 속 깃들어 함께 푸른 하늘을 바라보고 춤을 추는지.
媛이와 珍이,
형네.
G주누나와 사촌여동생 Y철이.
내가 한때 참다랗게 생각하였던 사촌누이 Y철이도 이제 오십을 넘어섰을 것이다.
나는 어린시절, 아직 어리고 어린 고종사촌누이에게 연정을 품었던 적도 있었다.
공원묘원의 식당에서 하릴없이 나는 소주를 붓고 그렇게들 흩어져 헤어진다.
어머니.
18812 1998. 8. 10 (월)
일요일의 하루.
코렐 드로우를 만지작.
내게는 좋은 장비들이 있어 작품도 만들어 낸다.
작은 처남 세기 데리고 쇠고깃근 한아름 사들고 오다.
백수의 실패한 자형을 위로함인지, 그 마음이 고맙기 짝이 없다.
새벽.
꿈-형, 媛, 뱀, 박쥐....
18814 1998. 8. 12 (수)
디자인 마케팅론.
고답적이고 진부한 강의보다는 칸느 국제 영화제의 영화를 보여주는게 차라리 낫다.
어제처럼.
양정 언덕을 내려오는데 느닷없는 빗방울.
습기찬 더위다.
땀범벅이 되어서 30분 정도의 배차간격을 가진 135번 버스를 한참 기다렸다 타고 돌아온다.
'페이지 메이커'로 내 옛날 글들을 편집하여 본다.
18816 1998. 8. 14 (금)
휴강.
종일 집.
코렐 드로우 금새 책한 권을 마스터.
대 여섯시간 집중하여 한 프로그램의 FUNCTION을 대부분 이해하였다는게 스스로 자랑스러웁다.
18820 1998. 8. 18 (화)
J의 생일.
아직 자고있는 어미를 위하여 미역국을 끓여 놓고 출근한 딸네미, 英이.
내심 J도 기쁘고 외심 나도 기쁘다.
18821 1998. 8. 19 (수)
비 내린다.
엘니뇨인가 하는 이상 기후.
곳곳에 난리.
양쯔강 범람, 일부러 상류도시를 물에 잠기게 하여 하류의 공업도시를 살린다는 중국 정부의 계획.
국내에서도 경상남도를 빼고는 엄청난 수해.
경제도 이 지경인데 물난리까지...
살이는 고달프다.
18822 1998. 8. 20 (목)
PI철 교수의 '컴퓨터그래픽스 개론'의 강의는 가장 뛰어나다.
가지고 있는 지식이나 실력, 가르치는 열정 모두.
학과장 CD희 교수나 다른 강사들은 그에 비하면 한창 열의가 뒤진다.
TV '그것이 알고 싶다'
무슨 단군성전이라는 정도령이라는 작자가 만든 엉터리 종교.
쑤알라 쑤알라하는 외마디 헛소리들이 신들의 언어라고 하며 수천만원씩 받고 제자를 모은다.
참으로 이상하기 짝이 없다.
그토록 형편없이 유치하고 치졸한 사깃꾼에게 속아 넘어가는 사람이 있다니.
트릭과 장치를 이용하여 눈속임 연극으로 현혹하는 것도 아닌데.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사람에게는 몽매하다기 보다는 참으로 우스꽝스러운 어떤 심리상태가 있는 모양이다.
18823 1998. 8. 21 (금)
한낮의 무더위는 맹렬하지만 아침 저녁으로는 어딘지 모르게 서늘한 맛이 감지된다.
계절은 어김없이 바뀌는 것.
프레젠테이션, 동화상을 집어 넣어 현란한 화면.
프로그램의 펑션을 익히는 수준의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늘 디자인적 시각에서 미적 감각을 획득.
C교수, L교수, 조교를 비롯한 스물 서넛의 수강생들.
학교 밑 갈비집 둘러 앉는다.
반장으로서의 나의 스피치, 이어지는 C교수의 답. 그리고 각자의 자기 소개가 있은후 돼지갈비를 뜯는다.
18825 1998. 8. 23 (일)
토요일, 늘어지게 늦잠.
고맙게도 J는 며칠동안 온유함을 베풀어 준다.
모처럼 처제들 오다.
아직 처녀로서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40줄의 처제, W이 S이.
세자매들 중리 뒷산을 산책.
WS규 에게서 전화.
난삽한 꿈.
일요일 새벽.
창문밖 어둠을 배경으로 맺혀있는 빗방울, 어떤 이미지가 연상되어 디지털 카메라 꺼내어 몇 커트고 찍는다.
18827 1998. 8. 25 (화)
포토샾- 투명도 유지하고 저장하는 기능, EXPORT방법등 내가 정작 필요로하는 기능에 관한 질문에 답변을 못하는 LJ덕 교수.
이 분은 사람이 좋아, 더구나 술꾼이라서 앞으로 이 계통에서 내가 도움을 청할만 하지만 기르치는 것은 영 젬병.
자꾸 예전에 내가 가르치던 조선소의 훈련소 아이들 생각난다.
그 생각을 하면 나 역시 부끄러웁다.
18828 1998. 8. 26 (수)
동의공대는 전문대학인지라 개강이 빠르다.
젊은 남녀 학생들의 젊은 목소리와 모습으로, 캠퍼스는 울긋불긋 아연 활기가 돈다.
그 덕에 창업 과정의 늙다리들은 더불어 젊은 공기를 마신다.
로마서 읽기 시작하는 새벽.
기도.
18829 1998. 8. 27 (목)
느낌에다가 깊은 흔적을 남기지 않는 기억은 금새 잊어버린다.
뇌세포는 이제 급격히 그 수가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학교로 오며 가며 기초결합법으로 성서의 66권의 장수와 이름을 외운다.
또 디자인 개론의 중요 내용들을 정리하여 그것도 연상기억법으로 죄 외운다.
이제 이론 강의는 모두 끝났다.
그런데 솔직히 PI철 교수의 강의 빼고는 썩 만족스럽지 못한데...
다른 강사들은 그저 시간 떼우기....
배우는 사람들은 그것을 금새 눈치챌수가 있다.
18830 1998. 8. 28 (금)
나와 연구실 마주 앉아 CD희 교수는 제안한다.
수강생들은 모두 디자인 계통의 창업이나 취업을 생각하는 입장이다.
그러므로 3명 정도의 조로 창업팀을 구성하여 스터디그룹을 만들자는.
아마 정부의 지원을 받는 학교 입장에서 그에 대한 실적과시의 의미도 있을 것.
18831 1998. 8. 29 (토)
학교 오르는 길, 초입에서 LJ덕 교수 만나다.
근처 건물 지하에 있는 그의 연구실로 한사코 끌고들어간다.
한 20평되는 그곳에는 전산 장비들 가득하고, 또 한편에는 아틀리에로 꾸며져 있다.
알고보니 그는 일요 화가회의 주축 멤버.
곧 있을 시민회관 전시회 준비로 바쁜 모양이다.
나를 형님으로 모시겠다는 그.
그것은 술꾼으로서 과대 포장된 우의의 표현.
그의 찦차를 타고 휑하니 학교로 올라온다.
18833 1998. 8. 31 (월)
일요일 이른 아침 영도도서관.
젊은이들의 공부하는 열기, 도서관은 젊은이들 차지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마흔쯤 넘기면 모두들 공부는 잊어버린다.
자료실과 도서실 돌면서 디자인 관련 책들을 훑어본다.
두권의 책 대출.
'시각 디자인의 기초'와 '디지탈 사진'
디자인에 관련된 책들은 전부다 고가로서 대출이 되지 않는 노란 딱지가 붙어 있다.
'디지탈 사진'은 내 수준을 넘지 못하는 내용이어서 열람실 앉아 후딱 읽어 치운다.
아기다리 고기다리던 훈련수당이 나오다.
남포동 나간다.
신장약 구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