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에 이들이 달아난다면 어찌하시렵니까? 지금은 장례원도 없고 노부 추쇄도감도 없
습니다. 또 옛날처럼 속량문기를 작성하는 시대도 아닙니다.
옛날에야 속량하는 데 필요한 절차로 문서를 써야 했지요.
첫째로 속가를 지불하는 사람과 이 속가를 받고 속량을 시켜 주는 사람 간에 서로, 속
량할 노비는 누구이며 속량 가격은 얼마로 한다는 계약 속량문기를 쓰고.
둘째로 속량을 받은 사람, 그러니까 노비랄 수 있는 납속인이나 혹은 돈을 받은 사람인
노주 즉 수속인이 장례원에 올리는 입안 신청 소지의 작성이 있으며.
셋째로 수속인 또는 납속인, 증인, 필집에 대한 초사(진술서)를 써야 했고.
넷째로 위에 열거한 문기와 초사를 바탕으로 장례원에서 이 사실에 대하여 입안한 문서
를 발급해야 했습니다.
이런 문서들은 모두 장례원에서 관장하여 풀로 붙인 다음 관인을 곳곳에다 찍은 후에,
신청한 사람한테다 주었지요. 그 서류를 받은 순간부터 노주, 노비는 서로 떨어져 고리에
서 풀리는 것이 옛법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양식 절차가 늘 같은 것은 아니었지 않습니까.
하물며 이제는 노비를 다스리는 장례원뿐만 아니라 나라 자체마저도 망하여, 모든 것이
뒤바뀌고 말았습니다.
나라는 망하지 않았다. 내가 있고 네가 있고, 종중이 있고, 이 마을 저 마을이 모두 그
대로 있으며, 자식들과 손자들이 자라고 있는데 왜 나라가 망했단 말이냐, 망했다 망했다
하지 말아라. 다만 잠시 나라의 이름이 덮여 있을 뿐인즉.
나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아조와 더불어 모든 것은 그대로이다.
이기채는 단호히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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