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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 8권 (38)

문서 약조가 무슨 소용있을까 싶게 분명한 부모 자식 정리를, 그 오랜 세월 동안 의심 없이 품어 안고 나누면서 여기까지 왔는데. 나는 저 사람허고 몸 섞어서, 가시버시요. 뻔뻔스러운 낯바닥을 반짝 치켜들고 혹자 박힌 주둥이 야불야불 지껄일 때, 내 어찌 그 년의 주둥팽이를 번개같이 후려쳐 납작하게 못 만들었을까. 다시는 입 뻥긋도 할 수 없게 짝짝 찢어서 뭉개 놓았대도 시원치 않을 것을. 엉겁결에 다그치는 대로 밀려 당하고 만 제 꼴이 생각사록 분통 터져 공배네는 아까부터 공배한테 원정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 지 속으로 난 자식도 품안으 자식이라고들 않등가아? 하물며 덜썩 큰 넘으 자식, 저 혼자 큰지 알고 지 멋대로 지집 붙응걸 인자 와서 어쩌자능 거이여어, 내비두어야제. 그 속도 온전할 리는 ..

혼불 8권 (37)

21. 내비두어  온갖 짐생을 다 키워도 머리 꺼먼 짐생은 키우능 거 아니란 말, 내가 그전보톰 딛기는 들었지만 왜 그렁가를 몰랐드니, 인자 봉게 옛말 그른디 한나도 없습디다. 무단헌 소리가 왜 나왔을 거이요잉? 다 그럴만 헝게로 그랬을 티지. 분이 안 풀리는 공배네가 바짝 마른 두 무릎을 깍지 끼워 옴킨 채로 부르르 어깨를 떤다. 이미 가짓빛 이 되어 버린 입술을 물어뜯어 짓씹는 그네의 낯색은 살기마저 느껴지는 회청이었다. 그 잿빛 띠운 푸른색에 놀란 사람은 공배였다. 허, 이거 일나겄네. 어이 참, 철들자 망령난다고들 허등만 임자는 망령나기 전에 철이 몬야 들어서 갠찮그만, 시방이라도 그 기맥힌 것을 알었잉게 잘 되얐어. 머. 참 큰 것 깨쳤네어이. 골골이 주름 패인 이마빡과 볼따구니 눈자위를 구기..

혼불 8권 (36)

이 어간에 있는 다른 샘물 한 줄기는 삼사십 보 가량 흐르다가 두 갈래로 갈라져, 한 갈래는 서쪽으로 흘러 압록강 원천과 합치고, 한 갈래는 동쪽으로 흘러 두만강 원천과 합치었다. 그 흐르는 모양새가 사람 인자와 같은 두 물줄기 가운데, 호랑이 형국의 작은 바위가 하나 어찌 보면 뛰는 거북처럼도 보이게 엎디어 있었다. 비석은 이곳에 세웠다. 경계가 확정되자 조선 조정에서는 두만강 봉금령을 내리고, 사사로이 강을 건너는 자에 대해서는 사형을 내리겠다 하였다. 청나라에서도 신주 밖을 국경 바깥으로 취급하고 사람 살 곳이 못된다하여 황폐하게 내버려 두었다. 그리하여 연변 일대는 날짐승과 길짐승이 하늘을 메우고 땅을 채우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다만 사냥꾼이나 약을 캐는 사람들, 혹은 탐관오리 학정을 못..

혼불 8권 (35)

이토록, 떼치지도 못하고 정벌도 못하면서 시달리던 중에, 훗날 세종때, 육진을 개척할 즈음, 임금은 병조에 교지를 내려 말씀하시되. 우리나라 북계에 있는 두만강은, 하늘이 만들고 땅이 베푼 험고한 땅이다. 태조께서 비로소 경원부를 공주에 설치했던 것을, 태종께서 소다로(경원에 속한 지역 이름)에 옳겨 부치(부를 둔 장소)를 두시었으니, 이는 모두 처음으로 왕업을 일으킨 땅을 중히 여긴 때문이었는데, 이를 지키는 신하가 좀도적의 방어에 실패하고 부거참에 잠시 머물렀더니, 그냥 그대로 지금에 이르기까지 옛 성에 들어가지 못하였다. 그러나 태종께서 일찍이 명령하시기를 만약 오랑캐들이 이곳에 와서 살고 있으면 곧 쫓아버려, 절대로 도적의 소굴이 되게 하지 말라고 엄중 간곡히 말씀하시었다. 그러나 이제 저..

혼불 8권 (34)

20. 그리운 옛 강토   중일간도협약전문 1. 중.일 두 나라 정부는 두만강을 중, 조 두 나라 국경으로 하고, 강원천 근방은 경계비를 기점으로 하여, 석을수를 경계로 한다. 2. 중국 정부는 본 조약에 조인한 후 아래의 몇 개 곳을 개방하여, 외국인들이 거주하고 무역하게 하며, 일본 정부는 이런 곳에 영사관이나 영사분관을 설치한다. 개방시간은 참작하여 정한다. 용정촌, 국자가, 투도구, 백초구. 3. 중국 정부는 조선민이 두만강 북켠에서 계속 개간하고 거주하도록 허가한다. 그 지 역 경계선은 지도로 따로 표시한다. 4. 두만강 개간지에 거주하는 조선민은 중국의 법권에 복종해야 하며, 중국 지방 관리 의 관할과 재판을 받아야 한다. 중국 관리들은 이런 조선민에 대하여 중국 공민과 동일한 대우를..

혼불 8권 (33)

20. 그리운 옛 강토   중일간도협약전문 1. 중.일 두 나라 정부는 두만강을 중, 조 두 나라 국경으로 하고, 강원천 근방은 경계비를 기점으로 하여, 석을수를 경계로 한다. 2. 중국 정부는 본 조약에 조인한 후 아래의 몇 개 곳을 개방하여, 외국인들이 거주하고 무역하게 하며, 일본 정부는 이런 곳에 영사관이나 영사분관을 설치한다. 개방시간은 참작하여 정한다. 용정촌, 국자가, 투도구, 백초구. 3. 중국 정부는 조선민이 두만강 북켠에서 계속 개간하고 거주하도록 허가한다. 그 지 역 경계선은 지도로 따로 표시한다. 4. 두만강 개간지에 거주하는 조선민은 중국의 법권에 복종해야 하며, 중국 지방 관리 의 관할과 재판을 받아야 한다. 중국 관리들은 이런 조선민에 대하여 중국 공민과 동일한 대우를..

혼불 8권 (32)

그리고 결국은 진덕여왕이 후사 없이 죽자, 군신들이 서로 추대하여 진골로서는 최초로 김춘추가 왕위에 오르매, 누이동생은 지존인 왕의 아내 왕비가 되었으며, 자신은 머지 않 은 훗날 드디어 임금의 외숙이 되었으니, 그는 김수로왕의 십이대손이면서 가야국을 멸망 시킨 신라의 왕족으로 편입하여 이제는 드디어 신라의 등뼈를 이루었다. 할 발씩 한 발씩 용의주도 치밀하게 자신의 야심을 이루기 위하여 거대하고 강한 것 속 으로 변신하여 들어가서 끝내는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든 그의 지모는, 말 그대로 신비스 럽다 할까, 야비하다 할까, 아니면 너무나도 필사적이라 할까. 그는 훗날 태종 무열왕이 된 김춘추를 도와 삼국 통일의 기초를 닦았는데, 신라보다 강 성한 백제를 치기 위하여, 더욱 강성한 당나라와 손을 잡고 ..

혼불 8권 (31)

그는 여기서 망한 것을 다시 일으키고, 끊어진 것을 잇는 것은 지난날 성인들의 공통돈 규범이었다. 일이란 반드시 옛것을 본받아야 하는 것이라고 사책에도 전해오는 것이기 대문에, 전 백 제왕 부여융을 세워 웅진 도독으로 삼아 자기 조상의 제사를 받들게 하여 상자를 보전케 하는 것이다. 라고도 했다. 상자란 뽕나무와 노나무(가래나무)를 말하는데, 옛날에 무릇 어버이 된 이는 담 밑에 이 두 가지 나무를 심어서 자손에게 물려주어 생계의 자료로 쓰게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자손이 이것을 보면 부모를 생각하고 공경하는 마음을 가졌던 것이다. 나중에는 이것이 변하여 조상 대대의 고향을 이르는 말이 되었으니, 향리라는 뜻으로 쓰였다. 문무왕은 이어 백제가 신라에 의지해서 길이 우방으로 될 것이요, 제가끔 묵은 감..

혼불 8권 (30)

그러나, 아마, 이 경순왕신에 대한 추앙과 전설도 어쩌며, 고려에서 의도적으로 도모하 여 사당을 짓고 퍼뜨린 관제 신화였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 또한 망한 나라의 왕이기 때문이다. 경순왕신을 섬기어 받드는 신라 유민들의 정서와 행태가, 만일 고려의 개국통치 차원에 서 어거지로 만들어 꾸민 회유 정책의 일환이 아니라, 백성들 각자 심중에서 우러나온 진 심이었다면, 제군들이여, 대저 백성이란 무엇이며, 그 백성이 동아리를 이룬 나라란 무엇일 것이냐. 제 한 몸 일신의 부귀와 영화나 편안을 도모하고자 시정의 장돌뱅이들처럼 장날 잠시 모였다가, 이윽고 보다 강력한 조직이나 점령자가 나타났을 때는 뒤돌아볼 것도 없이 그 쪽으로 투신하는 것이 정당하고도 아름다운 일이라면, 우리는 지금 조선이 망하..

혼불 8권 (29)

그 활자들은 방탕하고 무력한 경애왕을 포석정에 앉힌 뒤, 포악 잔인하기 이를 데 없는 견훤으로 하여금 그를 찢어 도륙하게 만들어 놓고, 드디어 신라의 마지막 임금 경순왕을 왕위에 오르게 한다. 그런데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 또 벌어진다. 견훤은 경애왕의 족제인 부를 옹립하여 왕으로 삼으니, 김부대왕은 견훤이 세웠다. 이 장면을 나에게 납득할 수 있게끔 설명해 달라. 나라를 세워 천하를 얻고자 하는 야심으로 후백제 깃발을 드높이 치켜들고 그 융창했던 백제를 다시 일으키자. 열광하는 백제 유민 전주 완산 백성들의 이백사십 년 피못 박힌 원한과 통분을 반드시 갚아 주겠노라, 백제를 다시 찾겠노라, 신라를 쳐들어 간 견훤이, 인정 사정 없이 궁궐을 유린하며 재물을 약탈하고, 경애왕을 명령 한 마디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