痕迹/글

장인 가시다 (2011. 10. 5)

카지모도 2016. 6. 17. 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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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히 택시에서 내려 요양병원에 들어선다.

장인어른.

이서방 보고싶다 하셨다는데 이미 의식이 없다.

가끔 쉬익쉬익 들이 쉬는 숨소리만 가쁠뿐.

그마저 시나브로 옅어지고 있었다.

 

아, 가시려는 것이다.

 

삼십여분쯤 지났을까.

어느 순간.

내 두 팔에 감싸인채 장인의 숨결은 자취가 없어지고 말았다.

 

둘러선 세 딸들 오열한다.

2011 9 29일 목요일 오후 5 35.

 

나의 장인 이인호(李仁昊).

1923 55일 태어나 여든여덟해를 살다 가셨다.

늙디 늙은 마나님 조갑제(趙甲濟) 남겨두고.

광혜병원 장례식장에 빈소가 차려졌다.

 

아내 이정화(李貞和)가 맏딸, 나는 유일한 사위.

외손녀 이수린(李秀麟), 부부함께 비니미니(정빈,정민) 데리고 외할아버지 배웅하였다.

초가을 아직 짙푸른 영락공원 숲에 울리는 비니미니의 까르르 까르르 웃음소리.

노할아버지 마지막 길에 바치는 두 개의 꽃다발.

외손자 이승준(李承俊), 직장일 때문에 일본서 나오지 못하였다.

 

둘째, 큰아들 이태희(李太熙).

8년전 먼저 세상을 버려 부모께 참척(慘慽)을 끼쳤다.

미망인 큰며느리와 두손자,

큰손자 택기(澤基)와 아직 미혼인 둘째손자 중기(仲基)가 줄곧 상청(喪廳)을 지켰다.

택기는 두 딸의 아버지, 장손(長孫)으로서 할아버지 제사 모실 것이다.

택기 아내 지현어미가 수고하였다.

 

셋째, 작은아들 이재희(李在熙).

3년전 사고로 전신마비의 일급 장애인이 되었다.

아버지 뵙지도 못하고 영전에 절하지 못하는 그 애통함 오죽 하랴.

작은 며느리, 독자(獨子)인 성악과 학생 세기(世基)가 할아버지 영정을 받들었다.

 

넷째와 다섯째, 교사인 둘째딸 이정욱(李貞昱)과 막내딸 이정선(李貞善).

지천명(知天命)을 훌쩍 넘겼지만 둘 다 여적 독신이다.

마이너리티의 어떤 종교의 신앙인들.

종교적 무슨 신념 때문인지, 그에 대하여는 형부와 속내 나눈적 없으니 그저 짐작할 뿐이다,

 

가장 연배의 사위인 내가 장의(葬儀)를 주관할 수밖에 없었다.

알게 모르게 불거지는 종교적 갈등 없지 않아 장의형식(葬儀形式)은 무형식.

원근에서 오신 많은 친척 친지들.

간혹 호상(好喪)이라고 수군대는 소리 귓가에 있었지만, 초상(初喪)에 호상이란 있을리 만무하다.

 

2011 9 30일 오전 11시 입관.

학처럼 여윈 얼굴은 얼음처럼 찹다.

삼베를 다루는 능숙한 염습사의 솜씨는 장인의 주검을 연꽃의 장식으로 묶는다.

장인어른, 성장(盛裝)하여 관에 눕혀졌다.

 

2011 101일 오전 1130분 발인.

마지막 길, 리무진의 호사로 영락공원으로 옮겨졌다.

장인의 주검은 오후 110분 펄펄 끓는 불길 속으로 사라져 오후 3시 한 줌 재가 되어 항아리에 담겨졌다.

 

오후 4시 정관추모공원의 일실(一室) 한 칸에 장인의 흔적 모셔졌다.

뼛가루만 담긴 고인의 유택(幽宅)이다.

정관추모공원 봉안당 제041 020463

 

모두들 집에 홀로 있는 어머니 시어머니 장모 할머니께로 간다.

장인에게는 나의 오열 없었지만, 장모를 뵈니 붉은 것 울컥 올라온다.

지푸라기 같은 장모의 몸뚱이 쓸어안고 내 울음 터져 나온다.

 

불쌍한 것은 산 것들이다.

불멸은 오로지 산 것들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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