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것들 키우는 이들에게.
어린 것들.
그 여린 생물(生物)들의 이름을 발음해 보게.
병아리..강아지..망아지..송아지..송사리..새순..아가..
목소리 어디에 긴장을 싣게 되던가.
입술과 혀의 순(順)한 움직임만으로 마냥 애잔하고 부드러운 느낌이지 않은가.
품에 안아보게.
가슴 가득 담겨오는 사랑스러움, 콧등을 간지럽히는 솜사탕처럼 달콤한 향취.
여린 것들, 어린 것들, 이쁜 것들...
어린 것들.
이것들 생겨 날적에 스스로의 탄생의지(誕生意志) 한방울 섞여 있지 않았다네.
아무런 영문도 모른채, 어느 암컷과 수컷의 유전자 때문에 발아(發芽)되어 이 험한 세상으로 떠밀려 내보내어 진 생명이 아닌가.
그 목숨의 시원(始原)은 오로지 암수(雌雄) 한쌍의 욕(慾)과 망(望)이었다는 말일세.
어린 것들의 아픔을 보면서 ‘저 타고 난 팔자’ 어쩌구 하면서 비겁함 뒤에 숨을수 있는 당위(當爲)가 암과 수에게는 없음이네.
암컷과 숫컷은 제 새끼의 귀에다 대고 속삭여야 한다네.
‘너는 가엾구나. 나는 미안하구나.’
어린 것들에게 능동(能動)의 몸짓이 있다면 그것은 다만 욕구(慾求)뿐이라네.
자신의 힘으로는 도대체가 그 욕구를 채울수 없는 무력하기 짝이 없는 존재.
순수한 수동적(受動的) 생명체라네.
어린 것들은 베풂의 보살핌 없이는 도대체가 살아 낼수 없는 존재일세.
이것들은 왜 그토록 여리여리하고 애잔하고 어여쁠수 밖에는 없을까.
그것은 호의(好意)와 사랑을 유발하기 위한 일종의 보호색이고 어떤 종류의 페로몬일세.
어여쁨을 팔아 생존하는, 순수한 수동(受動)의 생명체가 살아내기 위한 방법론이 거기 있다네.
조물주의 지혜로움일세그려.
오로지 받음으로서만 살 수 있는 불쌍한 짐승들.
참으로 어여뻐서 애긍(哀矜)한 목숨들이로세.
어린 것들이 베풂을 향한 그 욕구는 또 얼마나 이기적(利己的)인지 모르겠네.
집요하기도 하지.
저만을 향하여만 베푸는 베풂을 원하네.
저만의 풍족하고 편안한 육신을 원하네.
저만이 받는 넉넉한 사랑만을 요구하는 것이네.
그러므로 그 것들에게 베푸는 그 사랑이란 예사의 사랑이 아니어야 하지.
사랑이란 인간이 지닌 것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일세.
낫살 들어서야 좀 알건대, 모든 사랑 속에는 연민(憐憫)이 있다네.
사랑이란 긍휼(矜恤)의 감정상태 없이는 돋아날 수 없는 감정이라네.
그리고 사랑 후 남는 것이 또한 그 연민이란 놈일세.
연민은 사랑의 전제(前提)이고 사랑의 상흔(傷痕)일세.
현란한 사랑의 색깔 이윽고 다 바래어 가장 나중까지 남아 있는 것, 그것이 회색빛 중후(重厚)한 그 연민이란 놈일세.
늙은 가시버시는 사랑이 아니라 연민이 함께 살게 해 주는 것이라네.
사랑이란 연민(憐憫)이 직조(織造)한 아름다움이고 연민은 사랑이 바랜 흔적의 아름다움일세.
아, 사랑.
사랑.
하물며 내 새끼임에랴.
섭리(攝理)의 끈, 그 애달픈 유전자의 핏줄임에랴.
철부덕.
이 세상천지 오만 다른 곳 마다하고 오직 내 품 속에 철부덕 떨어진.
애긍하기 그지없는 존재 한덩이.
그것이 내 새끼일세.
내 새끼는 어미의 아비의 애련(哀憐)한 눈물방울일세.
그 눈물방울은 연민덩이 사랑덩이 보석.
그 보석은 자랑의 대상이 아닐세.
무한가치, 자족함의 느꺼움 뿐이라네,
동기도 없네.
무작정이 바로 동기일세.
보상도 없네.
무한정의 일방(一方) 뿐이로세.
어미 아비는.
혹여 내 새끼로 인하여 상처받는 자아(自我)가 있더라도.
어떤 모멸감(侮蔑感)에 신음하는 자아가 있더라도.
자아까지도 초극하는 초자아의 정(情).
그 진국의 정이라는게 바로 모정과 부정일세그려.
달라고. 달라고.
무언가 채워 달라는 저 모습을 보게.
배고파, 둥지의 새새끼처럼 짹짹 주둥이를 벌리는.
영혼이 허전하여, 성냥팔이 소녀처럼 성냥불을 켜달라고 빈등잔을 내미는.
달라고, 달라고.
채워 달라고.
어린 것들은 얼마나 흡수력 강한 생명체런가.
육신에 주는 것은 곧바로 살이 되고 피가 되고 뼈가 된다네.
영혼에 주는 것들은 직정적으로 사랑이 되고 행복이 된다네.
뉘라 어린 것들에게 독을 줄 리가 있겠나.
그러나.
연민이 들어있지 않는 것들은 모두 독이 될수 있는 것들이라네.
당의정 껍질이 훈육이나 사랑비스무리한 것으로 입혀졌더라도, 캡슐안의 것에 연민이 들어있지 않다면 그것은 독일세.
어린 것이 흡입하는 것은 주는 사람이 가진 어둔 감정상태와 불행한 마음밭의 독이라네.
저 달라는 어린 것.
저것들에게 모쪼록 행복을 주세나.
연민을 주세나.
사랑을 주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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