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디외의 문화자본론
이 종 호.
<1998. [文化的 趣向에 影響을 미치는 社會經濟的 要因들에 관한 硏究:부르디외(P. Bourdieu)의 文化資本論을中心으로]. 성균관대학교 사회학과 석사논문.>
부르디외의 연구를 특징짓는 것은 현대사회에서 지배구조 혹은 계급구조가 어떻게 유지되고 재생산되는지, 피지배계급 혹은 노동계급이 어떻게 그들의 지위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는지에 대한 설명을 문화에 관한 분석을 중심으로 제기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작업을 수행하며 부르디외는 객관적인 계급구조와 행위자들의 취향 사이의 밀접한 관련을 발견해 낸다. 이 부분에서 부르디외의 독특한 점이라고 한다면, 구조와 행위를 직접적으로 연결시키기보다는 그 사이를 매개하는 구조로서 '아비투스(habitus)'라는 새로운 개념을 끌어들여 기존의 이론들이 극복하지 못했던 구조와 행위의 딜레마를 넘어서려고 시도한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서 부르디외는 어떻게 문화가 계급과 지위의 차이들을 유지하고 재생산하기 위해 작동하는지를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양종회, 1997: 152; Peterson, 1979: 150).
이후에는 먼저 부르디외가 취향과 계급(계층)구조 사이의 밀접한 관련을 설명하기 위해서 도입한 아비투스 개념이 취향과 계급(계층)구조 각각과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한 그의 논의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런 후에 본 연구가 직접 검증해 보고자 하는 취향과 계급(계층)구조와의 관계에 관한 논의를 살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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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취향과 아비투스
부르디외는 행위자들이 가지는 취향을 선천적으로 물려받은 어떤 것이 아니라 행위자들이 스스로의 경험과 생활 속에서 획득한 후천적 성향으로 본다. 취향은 "구분하고 평가하는 획득된 성향"이며 "계급의 표시자로 기능 한다"(Bourdieu, 1984: 466). 취향은 순수하고, 중립적이고, 개인적인 현상으로 보여진다 할지라도, 객관적 계급위치와 함께 변화한다는 것이다. 취향은 객관적 계급위치의 사회적 위계를 반영하는 문화적 위계로 조직화되기 때문에, 취향들 사이의 갈등은 계급 갈등으로 간주된다(Turner, 1990: 516). 이처럼 부르디외에 의하면, 취향은 결국 소유하고 있는 물적·비물적 '자산'에 의존한다는 것인데, 이러한 자산의 소유는 각각의 사회계급들에 균등하게 분배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그는 이러한 사회적 존재조건과 취향 사이의 관계를 인지하기 위해서 각 행위자들의 아비투스를 포착해야 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아비투스는 행위자들의 실천의 산출원리이기 때문이다(현택수 외, 1998: 57). 부르디외는 파노프스키의 『고딕건축과 스콜라철학』이라는 저서를 프랑스어로 옮기면서 그 서문에서 아비투스에 관한 개념을 최초로 소개한다. 아비투스는, 구조주의의 객관주의적 편향과 상징적 상호작용론과 현상학의 주관주의적 편향을 비판하면서 제기된 개념이자(이영욱, 1996: 83; 최종철, 1994: 236; 한상정, 1995: 9), 보다 구체적으로는 왜 자의적인 차별적 체계가 지배받는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제시된 개념이다(DiMaggio, 1979: 1464).
아비투스는 "특정유형의 환경을 구성하는 조건(예를 들면 계급조건의 특징인 존재의 물질적 조건)"에 의해 생산되는 것으로, "실천과 재현을 발생시키고 구조화하는 원칙으로서 지속적이고 치환이 가능한 성향이다"(Bourdieu, 1977: 72). 아비투스는 "같은 집단이나 계급구성원 모두에게 공통적인 인지, 개념, 행위의 도식 혹은 내면화된 구조의 주관적이지만 개인적이지 않은 체계"로서 간주되는데, 경제의 계급구분과 계급구성원들의 문화적 상징 및 생활양식간을 매개하는 구조다(Bourdieu, 1977: 86 ).
한 계급 내의 사람들은 어떤 분류, 전유(appreciation), 판단, 인지, 행동 양식들을 공유한다. 부르디외는 계급과 개인적인 인지, 선택, 행동 사이를 매개하는 이런 과정을 아비투스로 개념화한 것이다. 개인들이 공통적인 방식으로 세계를 재현하고, 특별한 방식으로 분류, 선택, 평가, 행위 할 수 있게 하는 인지적이고 감정적인 가이드라인을 제공하기 때문에, 아비투스는 유사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집합무의식(collective unconscious)이라고 할 수 있다(Turner, 1990: 516). 이처럼 아비투스는 "같은 계급 구성원들에게 통계적으로 공통적인 초기경험들에 의해 지배되는 하나의 독특한 통합을 발생시킨다."(Bourdieu, 1977: 79).
부르디외가 취향에 상당한 관심을 쏟는 이유는 그것이 아비투스의 가장 가시적인 표현들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그리고 아비투스는 객관적인 사회구조, 즉 사회의 계급 내지 계층구조를 반영하고 있다. 따라서 계급위계와 그 위계에서의 특별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문화적 대상, 선호와 행동은 상호관련 되어 있는 것이다.
(2) 아비투스와 계급(계층)구조
취향을 통해 드러나는 아비투스는 객관적인 계급(계층)구조에 따라서 구별될 수 있는 것으로써, 여기에는 지배/피지배의 관계가 포함될 수밖에 없다. 부르디외는 지배가 강압에 의해서가 아니라 문화적 수단에 의해 암묵적으로 일어난다는 점에서는 프랑크푸르트 학파와 유사하다. 그러나 이들 서구 마르크스주의자들과는 달리 부르디외는 마르크스주의의 핵심개념들을 사용하지 않고, 계급과 지위의 개념, 권위와 지배에 대한 논의에 있어서 오히려 베버의 이론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부르디외는 물질적인 존재조건의 재생산을 보장하기 위해 인간 행동들이 조화되는 방식(생산양식) 보다는 그러한 조화에 의해 만들어지는 불평등한 계급관계가 정당화되는 양식(지배양식)에 더욱 주목한다(이영욱, 1996: 84). 그러면서 부르디외는 사회계층을 하나의 연속체(continuum)로 개념화하게 되고, 그것을 통해 그의 모델을 정교화 한다.사회계급간의 갈등보다는 지위집단간의 경쟁이 그의 모델의 역동성을 가장 잘 특징짓는다. 스와르츠(Swartz, 1977)에 따르면, 이러한 시각은 마르크스보다는 베버에 대한 부르디외의 더 큰 유사성을 나타낸다고 한다(Swartz, 1977: 554).
부르디외는 객관적 분석이라는 결정론에 귀착되는 바 없이 이러한 상황이나 문맥을 설명하기 위해서, 그리고 사회를 하나의 총체로 보는 '방법론적 전체주의'에 반대하기 위해서, 동적이고 다양한 잠재적인 인식의 공간에 대한 개념을 제안하는데 이것이 바로 '장(field)'이다(한상정, 1995: 13). 부르디외의 이론적 모델에 따르면, 모든 사회는 여러 개의 장들(경제적 장, 교육적 장, 정치적 장, 문화적 장 등등)로 이루어져 있다. 실제로 사회공간은 다차원적인 공간이며, 상대적으로 자율적인 장들의 열려진 집합이다(Bourdieu, 1991: 245). 그에 의하면 각각의 장에는 단순히 물적 교환관계로 환원될 수 없는 그 장의 일정한 교환관계(이해관계)가 있다. 각 장의 일정한 '객관화된' 의미체계가 그 교환관계의 기초를 제공한다(현택수 외, 1998: 63).
장은 사회적 혹은 문화적 생산영역에 포함된 행위자들과 조직들의 총체, 그리고 그것들 사이의 역동적 관계들을 말한다. 부르디외에게 있어서 장은 갈등의 영역이다. 장들 속에서 인간행위의 목적은 서로 다른 종류의 자본들을 축적하고 독점하는 것이다(DiMaggio, 1979: 1463; 이동연, 1997: 316). 여기서 부르디외는 자본의 개념을 확장한다.
자본은 모든 물질적이고 상징적인 대상들로 확장된다. 이해관심의 대상은 항상 물질적인 것만은 아니다. 신성화나 위신에 기반한 권위는 순수하게 상징적이며, 많은 양의 경제적 자본의 소유를 함축하지 않는다. 부르디외는 경제자본으로 환원될 수 없는 자본의 다양한 형태를 구분함으로써, 경제 결정론적인 계급 개념을 극복하고자 한다.
첫째로, 경제자본(economic capital)은 상품과 서비스를 소비하기 위해 사용될 수 있는 돈과 물질적 대상을 말한다.이것은 여타 재정자원과 자산뿐만 아니라 금전적 소득을 포함한다. 두 번째, 문화자본(cultural capital)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이것은 사회화 과정 속에서 획득한 오랜 특성과 습관(체화된 문화자본), 가치 있는 문화적 대상물의 축적(객관적 문화자본), 그리고 공식적인 교육자격과 훈련(제도적 문화자본)을 포함한다. 세 번째, 사회자본(social capital)은 집단과 사회 연결망 내에서의 위치와 관계이다. 이것은 사회적 연결망에의 소속을 통해서 동원될 수 있는 실제적이고 잠재적인 자원들의 총합이다. 마지막으로, 상징자본(symbolic capital)은 다른 세 가지 유형의 자본들이 정통적으로 승인된 형식, 즉 위신, 존망, 명예, 명성 등으로 규정된다(정일준, 1995: 31-33; Anheier et al., 1995: 862; Turner, 1990: 512).
특히 부르디외에게 있어서 문화자본은 취향을 구별짓는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되는데, 그는 문화자본을"하나의 지식 형식, 내화된 코드, 또는 문화적 관계들과 문화적 가공물을 해독하는데 있어서의 능력, 해독하기 위한 감상력, 해독하는 데 있어서 공감대를 지닌 사회적 행위자를 갖추기 위한 인식의 취득(Bourdieu, 1984: 2)"이라고 규정한다.
이러한 네 가지 유형의 자본 분배는 사회체계의 객관적 계급구조를 결정한다. 계급갈등은 상징을 특별한 자원구성을 정당화하고자 하는 이데올로기로 동원하려는 데서 일어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인간 사회에서 대부분의 갈등은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자원들의 특별한 패턴을 가장 적합한 것으로 보이도록 하기 위해 상징들을 조작하려는 노력에서 생겨난다(Turner, 1990: 514).
(3) 취향과 계급(계층)구조
부르디외의 이론이 토대를 두고 있는 경험적인 현상은 바로 객관적 계급(계층)구조와 취향간의 선택적 친화력(selective affinity)이다. 앞서 논의했던 취향과 아비투스의 관계, 아비투스와 계급(계층)구조와의 관계에 관한 논의는 이러한 경험적으로 관찰 가능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부르디외의 이론 가운데 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이제는 부르디외가 토대를 두고 있는 경험적 현상이자 본 연구의 관심대상인 취향과 계급(계층)구조에 대해 살펴보자.
부르디외는 문화와 경제가 상호구성망 속에서 복잡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경제의 계급구분은 반드시 문화의 상징적 구분을 발생시키는데, 이것은 다시 계급구조를 재발생시키고 정당화한다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 계급분석의 단편적인 유물론을 거부하면서, 부르디외는 상징적 상품의 소비가 정당화와 선택을 통해 계급지배를 재생산하는데 기여하는 바를 드러내고자 한다(Gartman, 1991: 421-423; Swartz, 1977: 547). 부르디외에 의한 이런 종류의 분석은 어떻게 개인들이 특별한 문화적 코드를 구성하는가에 관한 잘 다듬어진 구조주의적 모델을 산출하지는 않지만, 계급문화에 대한 흥미 있는 분석을 제공하는 것으로 여겨진다(Turner, 1990: 515).
부르디외는 문화적 취향을 세 가지로 구분하는데, 그것은 대체로 교육수준과 사회계급에 부합한다. 첫째는 정당한 취향(legitimate taste)으로서 고전적인 고급예술에 대한 취향을 말한다. 이러한 취향은 교육자본이 가장 풍부한 지배집단 분파에서 흔하다. 두 번째의 중류층 취향(middle-brow taste)은 질이 좀 떨어지는 예술작품에 대한 취향으로서 중간계급에 많다. 마지막으로, 대중적 취향(popular taste)은 대중음악이나 경음악 같은 작품을 선호하는 것인데, 노동계급에 가장 흔하다(Bourdieu, 1984: 16).
이러한 문화적 취향에 있어서의 계급차이들은 계급체계를 정당화하고 재생산하는데 기여하는데, 이는 지배자들과 피지배자들 모두에 의한 '체계적 오인(systematic misrecognition)'(DiMaggio, 1979: 1462)을 통해서라고 부르디외는 설명한다. 피지배자는 자신이 현실을 오인(misrecognition)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오히려 그 오인을 올바른 인식이라고 생각하고 의식적·무의식적으로 행위 함으로써 거기에 공모하고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지배체계의 표현이 모든 문화적 산물, 의류, 스포츠, 음식, 문화, 예술, 언어 더 일반적인 의미에서는 취향에서 발견된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계급 차이들이 가시적인 문화적 차이들을 생산하지만, 이러한 문화적 차이들은 계급위치 보다는 재능이나 성취 같은 개인적 특성에 따른 것이라고 잘못 인식되기 때문에, 결국 계급체계를 정당화하는 것으로 끝맺는다고 주장한다(양종회, 1994: 153; DiMaggio, 1979: 1462; Gartman, 1991: 429). 비록 예술과 문화적 소비가 계급분류나 불평등을 창조하거나 일으키진 않지만,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사회적 차이를 정당화하도록 미리 성향 지어지면서 사회적 재생산 과정에 공헌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부르디외에게는 문화나 미적 논의가 항상 비판의 대상이 되고, 거듭해서 언급할 정도로 중요한 것이다(한상정, 1995: 3).
특히 이러한 오인을 통한 사회계급의 재생산에서 교육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되고, 따라서 문화자본은 부르디외의 이론에서 핵심적인 개념으로 등장하게 된다. 부르디외에 따르면, 교육제도들은 계급들간의 문화적이고 지위적인 틈새를 강화시켜서 사회계급구조의 재생산에 기여한다. 사회적 위계를 학문적 위계로 바꾸어서 사회적 위계의 재생산을 모호하게 하고 정당화하면서, 민주주의 이데올로기의 원칙을 깨뜨리지 않고 상층계급의 이해관계가 보존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회화와 교육을 통해서, 비교적 영속적인 문화적 성향들이 내면화되고, 이는 다시 기존 계급관계를 재생산하는 방식으로 개인과 집단의 행동을 구조화하는 것이다(정일준, 1995: 33-35; 최종철, 1994: 237; Swartz, 1977: 546-547).
이와 같이 계급 내에서 상이한 사회적 기원을 지닌 다양한 계급들, 분파들, 그리고 개인들이 어떻게 구별되는 문화적 취향을 발생시키는 지를 설명하면서, 부르디외는 종종 구조주의적인 방식으로 이야기한다. 객관적 위치가 이해관심과 구조적 제약들을 발생시키는데, 이것들이 상이한 문화적 취향을 발생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부르디외의 설명이 구조주의적인 것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이것은 부르디외가 자기-선택(self-selection)의 과정을 강조하는 것에서 알 수 있다. 부르디외는 이 과정을 "구조와 실천을 통합하는 순환관계(circular relations)의 체계"라는 측면에서 이해한다. 즉, 객관적 구조가 구조화된 주관적 성향을 생산하는 경향이 있으며, 그 주관적 성향은 구조화된 행동을 낳고, 또 이 구조화된 행동은 객관적 구조를 재생산한다는 것이다(Swartz, 1977: 548).
이러한 부르디외의 논의는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 계급이론에 대한 수정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계급을 경제자본으로만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형태의 자본들까지 함께 고려하는 복합적인 계급분류의 구성을 모색하는 것이다. 또한 경제와 문화 사이의 관계를 토대와 상부구조라는 결정론적인 입장에서 파악하는 것을 극복하고자 한 시도이다. 이처럼 부르디외는 가장 개인적인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 간주되어 온 취향의 영역을 사회학적 분석의 주요 대상으로 삼았고, 이를 통해 사회의 지배-피지배 구조가 어떻게 재생산되는지를 설명하고자 한다.
(4) 비판
부르디외의 이론에 대한 가장 강력한 비판은 구조와 행위를 연결하고자 하는 그의 애초의 의도에도 불구하고, 그의 설명이 구조 결정론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들에 따르면, 부르디외의 이론은 구조결정론을 회피하려고 하지만, 결국은 사회구조→문화→사회구조의 도식으로 환원되어 문화는 사회구조에 대해 어떤 독립적이고 창조적인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문화적 자본에 대한 투쟁은 주로 지배계급 내에서 주로 일어나며, 아비투스는 결국 계급에 의해 결정되고, 그렇게 형성된 아비투스는 다시 기존의 계급구조를 정당화하고 재생산하는데 기여하기 때문이다(양종회, 1994c: 19).
이러한 비판과 관련하여 젠킨스(Jenkins)는 부르디외의 도식 내에서 기존질서에 대한 개인이나 집단, 특히 피지배집단의 동조와 순응은 거의 자동적이고 개혁이나 일탈의 소지는 거의 없어 보인다고 비판한다. 이는 체계의 수준에서는 사회변동을 설명하지 못하고 있고, 개인적 수준에서는 행위자의 능동적 역할이나 과정은 거의 허용되지 않고 있다는 비판과도 연결된다. 이와 관련하여 부르디외의 사회모델이 비역사적이고 자기 영속적인 기계적 모델이라는 비판도 있다. 또한 코넬(Connel)은 부르디외의 모델이 균형과 안정을 강조하는 모델로 기능주의적 사회모델과 유사하다는 비판을 제기한다(양종회, 1994: 153).
부르디외에 대한 또 다른 비판은 그가 사용하는 개념들에 관한 것이다. 디마지오(DiMaggio)는 부르디외가 사용하고 있는 주요개념들이 모호할 뿐만 아니라 모순적으로 사용된다고 주장한다. 첫째로, "자본" 개념은 경제자본, 문화자본, 상징자본에 덧붙여 학문자본, 증명된 문화자본, 권위와 신성(consecration)의 자본, 대학자본, 과학자본, 예술자본 등등으로 계속 확대된다. 이처럼 자본들의 수가 증가함에 따라, 은유적 흐름은 넘쳐나고 따라서 그 가치는 감소한다. 두 번째, 부르디외는 아비투스가 일차적으로 초기 어린 시절 경험에 의해 가르쳐지고 아비투스의 차이들은 일차적으로 사회계급에 토대를 둔다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또한 아비투스는 이후의 경험에 의해 변형되고 가족환경의 모든 측면들에 의해 영향받는다. 이러한 문제, 즉 인성(personality)의 안정성(stability)과 유연성(plasticity)의 문제에 대해 부르디외는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계급위치와 아비투스 사이의 연결도 불확실하다. 부르디외는 사회계급과 초기 어린 시절 경험 사이의 관계를 경험적으로 구성하지 않기 때문에, 서로 다른 계급들의 아비투스가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주장하기에는 부족한 것 같다(DiMaggio, 1979: 1467-1468).
스와르츠(Swartz, 1977)는 부르디외의 모델이 모든 사회집단들에 적용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특정 사회집단들에 대한 적용으로 제한될 수도 있다는 견해를 제시한다. 부르디외는 개인과 집단의 행동이 계산된 투자합리성에 의해 지배되는 것으로 기술한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론적 가정은 투자할 자본을 지니고 있는 중간계급과 상층계급에게는 적합할지 모르지만, 많은 자본을 지니고 있지 않고 합리적 투자전략을 통해서 자신들을 재생산하지 않는 하층계급에게는 동일한 모델이 적용될 수 없다는 것이다(Swartz, 1977: 554).
부르디외의 문화분석은 문화적 생산의 연구가 없다는 비판도 있다. 특히 젠킨스(Jenkins)는 문화적 생산과 소비가 기존의 정당성 영역의 경계와 내용에 어떻게 도전하고, 그것들이 어떻게 붕괴되거나 저해될 수 있는지에 대한 분석이 결여되어 있다고 비판한다(양종회, 1994: 154).
이외에도 부르디외가 사용하는 지배계급의 직업구성에 대한 비판과 성적인 측면에서 문화적 취향의 분화에 대한 연구의 필요성도 제기된다(Longhurst, 1986: 454). 또한 그의 가장 흥미로운 통찰력과 이론적 공식화들의 상당부분이 경험적 뒷받침 혹은 경험적 검증의 구체화를 결여한 체로 제시된다는 비판도 있다(Swartz, 1977: 553).
출처 : 네이버 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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