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설-
<<<왕성규 사진전>>>
***동우***
2017. 3. 15. 04:32
++++
<오후 다섯시의 그림자>
-왕성규-
정오의 태양 아래
장막처럼 검은 외투 두른 그대는
강고한 병정으로 서 있다
가을의 푸른 차가움
낙엽을 흩뿌린 빈 가지를 감추고
그대에게 고독이란
색 바랜 입술같은 꽃잎이
거리에 분분해도
시들지 못하는 덩굴가시 같은 것
그늘이 모여들고
어둠이 된 길 모퉁이
배부른 벌거숭이 시엔이
그대에겐 슬픔이지
어리석은 나는 한 때 애절하여
열망을 노래하는
정염으로 가득한 작은 새였다
낡은 핏줄이 두 눈을 멀게 하고
시간을 셀 수 있게 될 때
나는 알게 되었다
나,
그대 안의 또 다른 그대이니
눈보라 휘날리는 저 벌판
허리 굽혀 떨고 있는 자작나무
흘러내린 옷자락에
다 진 잎 굴러도
그대는 아픔을 모르지
가을을 떠나보낸
서늘한 입맞춤
독배 든 하얀 손길이
그대는 두렵지 않지
그대가
아픔이요
독이니
하나 둘 그대가 세운
시간의 기둥이 기울면
내 작은 키는 자라
그대 품을 떠날 것이다
나는 그대를
사모하지도 가여워하지도 않으니
예정된 이별에
슬퍼할 일도 없는 거지
아, 그러나 그대는 알고 있다
달빛 품은 구름 흐르고
풀벌레 울음 지면
적막한 저 편
별은 멀어
나 그대에게 거두어 지리라는 걸
나는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조각 뼈 뿌려진 숲 길 따라
저민 살점 목에 걸고 떠날 것이다
풀잎 시든 들판을 지나
강변에 서면
은빛 물결에 일렁이는
슬픈 그림자 하나
젖은 채 춤을 춘다
나 이제 떠나지 않겠다
검은 파도
폭풍우 몰아치는 바다로 나서지 않겠다
흐르지 않는
깊은 물 되어
그대 스러 안고 잠들 것이다
영원한 사랑이란
망상의 꿈을 꿀 것이다.
++++
박상곤 조낙영 김황근과 더불어 20대적 부터의 오랜 친구 왕성규.
수년전, 그가 사진을 한다고 하였을때 난 좀 놀란척 하였다.
다 늙어 왠 사진?
젊어 한때 충무로 영화판에서 노닐었음을 (김수용감독의 퍼스트로) 모르는바 아니지만.
사진이란 장르는 본시 박상곤의 영역, 원로작가 김복만을 사사(師事)한 상곤이의 사진 연조는 수십년이다.
양산 어름에다 백악관 같은 모텔을 지어 운영하면서도 틈틈이 파인더를 들여다 보는 그의 열정은 아직도 끈끈하다.
호랑이같은 어부인 눈치 보아가면서.
근데 왕성규가 사진전을 한다고 한다.
지난 해 서울에서 소설가 백종선과 셋이서 술 마시면서 그의 사진관(觀)에 관한 철학적 언설을 듣기는 하였지만.
그래서 은비님이 파리에서 보내주신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의 벽돌같은 사진집을 성규에서 부쳐주기는 하였지만.
이번에는 '척'이 아니라 단독 전시회까지 하는 그가 진짜 놀랍다.
우선은 친구로서 대견하고 뿌듯하다.
우리 연배, 나이 따위는 그냥 숫자라는 걸 웅변하는 성규가.
어제 팜플릿을 받고서야 성규의 사진작품을 처음 보았다.
작품들은 감각적이고 아름다웠다.
왕년에 암실작업 한답시고 집안에 시큼한 하이포 냄새 풍기기도 하였지만. 이제 색바른 감성의 내가 사진에 관해 무얼 알런가마는.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은 라이카의 50밀리 표준의 단(單)렌즈만을 사용하였다고 하는데, 내 알거니와 성규의 기질상 심플함은 매우 유니크한 것이다.
장비에 연연하는 스타일이 아니란 말이다. (휴대전화도 고물을 들고 다닌다)
이번 작품들도 이른바 ‘똑딱이’ 카메라로 찍은게 아닐까 싶다.
그래도 작품의 이미지는 얼마나 고급스러운지.
오브제는 심상의 이미저리로 뭉개져 추상의 포름으로 시각화되었다.
화선지에 번진 영상들... 어김없는 인상주의 그림의 색채감이다.
구름처럼 가볍고 바람처럼 투명하고 연기처럼 유연하게.
팜플렛에 인쇄된 작은 규격의 이미지만으로도 여실하게 느낄수 있겠다.
사진.
순간으로 포착하는 빛, 스러져 가뭇 사라지는 리얼리티.
그 허망한 이미저리가 예술적 감수성에 접합되는 순간 자아내는 것들.
풍경과 상처.
그것이 상처일런지는 모르겠으되 성규의 것들은 아름다웠다.
왕가위의 영화처럼.
으흠, 혹여 우리의 화양연화, 성규의 사진 속에 녹아 있을런가.
Drawing with Light
The Solo Photo Exhibition by WANG KYU
인천여성가족재단 전시실
2017년 3.20일부터 3.31까지
팜플릿에 쓰여진 유일한 문장이 이러하다.
++++
펄럭이던 하얀 깃발들이 스러진다.
노을이 지기 전에
속살들의 울음은 끝이 나고
흔들리는 흔적
부서진 은빛 속으로
기다림이 지워진다.
이렇게도 작은 어루만짐이
회연(灰煙)처럼 가벼운 잔잔함이여
바람이 젖는다.
느리게 떠나간 갈잎소리
그리움마저 비워낸 자리
그저
아득한 고요만이 있다.
++++
***시연***
2017.03.15 14:56
동우님.
친구분의 사진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시를 쓰시고 사진을 하시는 아름다운 분.
제게는 좀 어렵지만....(◕‿◕✿)
동우님과 친구분, 유유상종입니다.
예술을 사랑하시는 로맨스 그레이 분들,
저 사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 저도 꼭 관람하려합니다.
동우님께서도 올라오시게 되면 연락 주십시오.
***┗동우***
2017.03.16 04:27
고맙습니다, 시연님.
에술을 사랑하는 로맨스 그레이.
하하, 귀에 달아 그렇다고 칩시다그려.
왕성규의 시와 사진.
좀 어렵게 느껴지시기도 할겁니다.
나이 먹으면 곧잘 관념의 뼈다귀가 발달한답니다.
그 안에 용해된 시적감흥은 쉽게 찾아지지 않을수도. ㅎㅎ
팜플릿에 인쇄된 작은 사이즈의 사진, 게다가 그걸 또 카메라로 찍어 올렸으니 더욱 어지러운 이미지가 되었을 법.
직접 원화를 감상하시면 다른 느낌이 드실 겁니다.
지금으로는 올라가지 못할듯 싶은데, 가게되면 전화 드리지요.
***송백***
2018.05.17 10:49
그때, 그 친구분이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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