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잡설들

<<<새로운 선사시대>>> (1,4,3,3,1)

카지모도 2021. 1. 10. 0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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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새로운 선사시대>

-르네 레베테즈 코르테스 作-

 

***동우***

2018.09.15 22:46

 

'르네 레베테즈 코르테스 (Ren Rebetez Cortes)'의

'새로운 선사시대 (The New Prehistory)'

'SF 호러 단편선'이라는 소설집에 실린, 1972년에 발표된 소설이고 작가는 컬럼비아人이라고 합니다.

 

군집(群集)한 집단.

각 개별들이 집단으로 혼화(混和)되어 거대한 하나의 개체적(個體的) 생명체로 변한다는 기발한 상상력.

거대한 지네처럼, 아메바처럼.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께스(그 또한 컬럼비아 작가)의 '마술적 리얼리즘'을 떠올리지 않을수 없습니다.

집단주의(Groupism)는 집단을 이룬 개별들의 개성과는 전혀 다른 흉칙한 괴물이 되어 버립니다.

 

월드컵 열기, 붉은 옷을 입은 수만의 무리들이 합창하는 대~한~민~국.

나는 그 집단 속에서 개별을 찾을수 없었습니다.

그 대한민국의 합창에는 개별의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집단 속의 개별은 데포르마숑된 무개성의 괴물입니다.

 

++++

이제 공포가 번지기 시작했다.

모두들 한꺼번에 빠져나가려고 아우성을 쳤다.

그 길다란 행렬은 이리저리 찌그러진 모양으로 마치 딸국질을 하는 듯이 격렬하게 흔들렸다.

사람들은 욕을 하고 발버둥치고 울부짖었다. 모두들 흥분하여 스스로를 억제하지 못하고 마구 주먹을 날려댔다.

갓 태어난 괴물 주위로 한 떼의 군중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든 구경꾼들이 모여드는 것이야말로 도시의 습성들 중 하나이다.

기중기나 철거용 중장비, 발파 인부들. 군대의 도열 행진. 정치 유세. 광고 간판을 쳐다보는 군중들. 뭐든지, 아무거나 모여서 구경하는 군중들.

하지만 나는 원래 떼거리로 모인 군중과 행렬을 싫어했다. 내가 비사교적인 사람이라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저 군중 속의 인간성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이 그렇게 흘러갈 줄은, 내가 그 변형을 지켜보게 될 줄은 정말 꿈조차 꾸어보지 못했다.

행렬에서 난동을 부리던 사람들은 곧 사정을 깨달았다. 자기들끼리 싸워봤자 아무 소용이 없음을 알아챈 것이다.

너덜거리는 옷차림에 피를 흘리는 꼴로 그들의 기세는 누그러져갔다. 불길한 침묵이 주위를 감쌌다.

이윽고 마치 물 흐르는 소리처럼 조금씩 조금씩 놀라움과 공포에 질린 목소리들이 일어나서 큰 강줄기를 이루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서로서로 붙어버린 것이 확실했다. 무엇인가가 그들을 한 덩이로 꽉 묶어버린 것이다.

처음엔 한 자락의 숨결에 불과했던 그것은 곧 끈적끈적하면서도 구체적인 형태를 갖춘 실체로 급속히 변해갔다.

그것은 이내 투명한 젤라틴 덩어리처럼 변하더니, 다음 순간 거대한 괴물의 연골이 되어 행렬 전체를 마치 샴 쌍동이들을 줄줄이 묶어놓은 모양으로 바꾸어버렸다.

이제껏 자연 속에서 잠자고 있던 미지의 힘이 방출된 것이다. 사람들이 새로운 원소를 구성하는 원자처럼 되어, 집단 심리학적 종양을 형태를 갖춘 괴물로 탄생시킨 것이다. 모두들 풀로 붙은 것처럼 접착된 채.

 

사람들을 한데 꿰어버린 그 이상한 물질은 무척 질겨서 끊어지지가 않았다. 누군가가 그것을 잘라내려고 몹시 애쓰는 장면을 본 적이 있는데, 그는 결국 괴롭게 몸부림치다 죽고 말았다.

이렇게 어쩌다 죽은 인간 고리들은 말라버린 잎사귀처럼 너덜거리며 계속 괴물에게 매달려 있었다.

 

언젠가는 버스에 가득 탄 사람들 전체가 한 덩이의 괴물로 변하는 광경을 보기도 했다. 괴물은 버스에서 나갈 수가 없게 되자 그것을 부수어버렸다.

속에 갇혀버린 군중 아메바에 의해 건물 하나가 통째로 붕괴해 버리기도 했다.

 

이제껏 홀로 남아있던 몇 안 되는 사람들은 괴물들을 피해서 생쥐처럼 도망다녔지만, 결국 대부분은 흡수되고 말았다.

 

난 그것들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다.

내뱉은 침 한 방울이나 아메바처럼 형체없는 것으로 변하고 싶지도 않고 거대한 벌레의 마디 하나가 되고 싶지도 않다.

나는 내 개인의 인간성과 독립적인 성격을 유지할 것이다.

나는 인간이다. 군중 아메바의 팔다리나 내장이 아니다.

 

이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힘들었다. 왜냐면 사람들이 독립된 개체였던 옛날에는, 행렬이나 군중의 일원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어중이떠중이 얼간이들이었기 때문이다.

지혜로운 사람들은 결코 그런 어리석음에 붙들리려 하지 않았다.

그런 사람들은 죄다 멸종되었거나, 아니면 나처럼 홀로 폐허를 떠돌고 있다.

 

하지만 나는 아직 아무도 만난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새로운 피조물들의 힘을, 그들이 보여주기 시작한 기술적 능통함의 경지를 인정한다.

수 천 개의 손발이 동시에 작업하여 그들은 기괴하게 좁고 둥근 건축물들을 세우고 눈깜짝할 새에 재료를 변형시키며 물건을 만들어낸다.

가끔은 그들이 기묘한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수 천 개의 목소리가 불러대는 합창이 내 귀에 들릴 때도 있다.

 

나는 그들이 자신들만의 비행기와 리무진, 뿐만 아니라 궤도 열차에다 둥글납짝한 비행접시까지 만들어 낼 날이 머지 않으리라 생각해보기도 한다.

그들이 골프를 칠 날도 틀림없이 올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일들을 알고 싶지 않다.

나는 언제나 군중과 사람들의 행렬을 싫어했다. 나는 나의 개체적 인간성과 나 자신만의 독립된 성격을 고수할 것이다.

내가 반사회적이라서가 아니다. 독립된 인간들이 군중으로 뭉친 것은 취향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일이 이렇게 되어버릴 줄은, 또 내가 이 모든 변화를 목격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는 폐허 속에 앉아있다.

멀리서 거대한 합창이 들려온다.

새로운 선사시대의 목소리이다. 새로운 역사의 순환이 바야흐로 동터오고 있다.

++++

 

일사불란한 집단의 움직임.

때로 스크린이나 모니터로 볼 적마다 나는 몹시 징그럽습니다.

목구멍으로 구역질이 치밀어 올라옵니다.

저벅거리면서 행진하는 나치 병정... 모란봉 경기장 아리랑 공연의 집단 함성...

 

​어떨 적에는.

당파적이라거나 학연 지연 혈연으로 뭉처진 어떤 집단의 모습에서도...

 

'새로운 선사시대'

등골이 서늘한 알레고리...

의미심장한 SF 입니다

좋은 휴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