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잡설들

<<<비르투오소 (巨匠)>>> (1,4,3,3,1)

카지모도 2021. 1. 9. 0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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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비르투오소(巨匠)>

-허버트 골드스타인 作-

 

***동우***

2018.07.14 23:57

 

휴일.

자못 철학적 사유가 깃든 SF 한편.

'허버트 골드스타인 (Herbert Goldstein)'의 'Virtuoso (巨匠)'

 

++++

<마에스트로는 이불을 제치고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는 침대에 앉아서 연주를 들었습니다.

그는 어둠 속에서 더듬어 가운을 찾고, 여윈 발을 슬리퍼에 집어 넣었습니다.

그는 걷잡을 수 없이 떨면서 그의 스튜디오 문으로 살금살금 가서, 가운을 입은 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가냘픈 몸으로 서 있었습니다.

스튜디오의 갈색 어둠 속에서, 피아노의 빛이 음산한 섬처럼 빛나고 있었습니다.

롤로가 인공의 매끈하고 단단한 렌즈의 초점을 어둠 속 어딘가에 두고, 건반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육중한 발이 페달에 놓여 있었고, 팔과 손은 - 마치 완벽한 기계인 그의 몸에서 분리된 살아있는 독립체같이 - 섬광처럼 반짝였습니다.

음악이 떠다니듯 흘렀습니다.

베토벤의 '열정'의 악보가 의자 위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것은 마에스트로가 기억하기로는 피아노 위 악보들 사이에 있던 것이었습니다.

롤로가 그것을 연주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은색의 맑은 불꽃처럼 음악을 창조하고, 음악을 숨쉬며, 음악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시간은 공기중에 매달린 듯 의미가 사라져 갔습니다.

마에스트로는 롤로가 소나타의 연주를 마칠 때까지, 자신이 울고 있다는 것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로봇은 마에스트로를 돌아보았습니다.

"소리들이-"

그가 웅웅거렸습니다.

"주인님을 기쁘게 했나요?"

마에스트로의 입술은 떨고 있었습니다.

"그래. 롤로야."

그가 한참 후에야 대답했습니다.

"나를 기쁘게 했단다."

그는 목이 메이는 것을 참고 있었습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악보를 집어들었습니다.

"이걸-"

그가 더듬더듬 말했습니다.

"벌써?"

"저의 데이타에 추가되었습니다."

롤로가 대답했습니다.

"주인님께서 저에게 설명해 주신 규칙들을 이 게획서에 적용시켰습니다. 별로 어렵지 않았습니다."

마에스트로는 말을 하려다 말고 침을 꿀꺽 삼켰습니다.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

 

"너와 나 둘이서 할 일이 많단다. 너를 위한 계획이 있다, 롤로야- 위대한 계획이!"

롤로는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오후에 다들 이리로 오라고 해 놓았단다."

마에스트로는 계속했습니다.

"지휘자들, 콘서트 피아니스트들, 작곡가들, 내 매니저. 음악의 거장들이, 롤로야, 너의 연주를 기다리게 될 거야."

롤로는 진공청소기의 스위치를 끄고 조용히 서 있었습니다.

"너는 오후에 바로 여기서 연주를 하게 될 것이다."

마에스트로의 목소리는 숨막히듯 점점 높아졌습니다.

내 생각으론, 그래. '열정'을 다시 연주하는 거다. 그거야. 그들의 어떤 표정을 짓나 봐야지! 그리고는 너를 대중과 비평가들에게 소개하는 공연을 마련하는거다. 그다음엔 대형 오케스트라와 협주곡을 연주하는 거야. 그 장면을 전 세계에 텔레비젼 중계를 하고, 롤로야. 그렇게 만들 수 있다. 생각만 해도- 롤로야. 생각해 보거라! 역사상 가장 위대한 피아노의 대가...로봇! 완벽하게 환상적이고 멋진 일이다. 새로운 세계의 탐험가가 된 기분이로구나."

그는 들떠서 앞뒤로 걸어다녔습니다.

"그다음엔 물론 음반을 내는 거다. 나의 전 레파토리를. 롤로. 더 많은 것도 가능하다. 더 많은 것도!

"주인님?"

마에스트로는 롤로를 쳐다보며 얼굴을 빛냈습니다.

"왜, 롤로?"

"저에게 내장된 기본 지시 사항에는, 저의 소유자에게 해가 된다고 간주되는 행동에 대해서는 거절할 수 있는 선택권이 주어져 있습니다."

로봇은 조심스럽게 고른 어휘들을 정확하게 말했습니다.

"어젯밤 주인님은 우셨습니다. 그것은 제가 결정을 내리는 데 고려해야 하는 지시사항 중 하나입니다."

마에스트로는 최상품으로 주조된 롤로의 두꺼운 팔을 잡았습니다.

"롤로야, 이해를 못하는구나. 그것은 그때뿐이었고, 사소한 것이었단다. 어린애같은 짓이었지!"

"죄송합니다. 주인님. 그러나 저는 다시 피아노 근처로 가는 것을 거부해야만 합니다."

마에스트로는 못믿겠다는 듯한, 항변하는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습니다.

"롤로, 그래서는 안된다! 세계가 너의 연주를 들어야 한다!"

"안됩니다. 주인님."

호박색 렌즈는 마치 부드러워진 듯이 보였습니다.

"피아노는 기계가 아닙니다."

힘있는 기계음이 웅웅거렸습니다.

"제게는 말입니다, 주인님. 저는 한눈에 악보를 소리들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조금만 보아도 즉시 작곡자의 생각을 알 수 있습니다. 제게는 쉬운 일입니다."

마에스트로의 굽은 몸에 비해, 롤로는 엄숙하게 우뚝 서 있었습니다.

"또 안 것이 있습니다."

높낮이없는 쇳소리가 스튜디오에 울렸습니다.

"그것은 이...음악은 로봇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사람을 위한 겁니다. 저에겐 그것이 쉽습니다, 그렇습니다.......음악이란 건 원래 쉬워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

 

예술의 가장 중요한 모티프.

‘감동’이라는 명제.

 

인공지능 로봇 ‘롤로’

베토벤에 대한 완벽한 해석과 완벽한 연주.

미증유(未曾有)의 Virtuoso(거장)의 출현입니다.

 

그러나 롤로는 연주할 것을 거부합니다.

다시는 피아노 근처에도 가지 않겠다고 합니다.

자신은 로봇이기 때문입니다.

악보의 완벽한 해석이 예술이 아니라는, 인공지능 로봇 '롤로'의 자각.

자신은 감동으로 울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깨달음.​

 

그는 깊이 인식하고 있습니다.

베토벤의 악보를 이해하고 연주하는 것이 너무나 쉽다는 사실을.

로직으로 접근하여 완벽한 알고리즘을 구축하여 건반을 탄주(彈奏)할수 있는 완벽한 연주.

창조적 고뇌라는 프로세스가 생략된 예술.

그것은 인간을 위한 음악이 될수 없다고 인식하는 인공지능 로봇 '롤로'

그것은 너무나 쉽기 때문에 인간을 위한 음악이 될수 없다고 합니다.

데카르트의 인간정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이 정의는 수정되어야 할지 모릅니다.

생각할줄 안다고 하여도 AI가 인간으로 존재하는건 아니잖습니까?

생각건대 사람과 AI와의 그 생각의 질(quality)은 동일하지 않습니다.

이세돌이 알파고에게 패하였다지만, 둘 사이 바둑의 성격은 완전하게 다른 것이 아닐까요?

AI는 오로지 효율을 추구하여 결과만을 지향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경우에 따라 비효율을 선택하기도 하고 기꺼이 실패를 받아들이기도 하는 존재입니다.

​며칠전 매스컴을 떠들썩하게 하였던, 태국의 동굴에 갇혔다 구조된 소년들.

AI에게 구조를 맡겼더라면 필경 포기하였지 싶습니다.

그 상황 속에서는 논리적으로 도저히 구조가 불가능하였기 때문에 말입니다.

카뮈가 말했다지요.

인간이 위대한 건 땅 속에 갇힌 광부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하여 여러 사람이 목숨을 거는 거라고.

 

​근데, 저 ‘롤로’처럼, 그 수준까지의 인식이 가능한 로봇.

그 존재가 더 가공스러운게 아닐런지.

좋은 휴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