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활자들은 방탕하고 무력한 경애왕을 포석정에 앉힌 뒤, 포악 잔인하기 이를 데 없는
견훤으로 하여금 그를 찢어 도륙하게 만들어 놓고, 드디어 신라의 마지막 임금 경순왕을
왕위에 오르게 한다.
그런데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 또 벌어진다.
견훤은 경애왕의 족제인 부를 옹립하여 왕으로 삼으니, 김부대왕은 견훤이 세웠다.
이 장면을 나에게 납득할 수 있게끔 설명해 달라.
나라를 세워 천하를 얻고자 하는 야심으로 후백제 깃발을 드높이 치켜들고 그 융창했
던 백제를 다시 일으키자.
열광하는 백제 유민 전주 완산 백성들의 이백사십 년 피못 박힌 원한과 통분을 반드시
갚아 주겠노라, 백제를 다시 찾겠노라, 신라를 쳐들어 간 견훤이, 인정 사정 없이 궁궐을
유린하며 재물을 약탈하고, 경애왕을 명령 한 마디로 자살시키고, 왕비를 능욕하고, 그리
고 무엇이 무서워서, 무엇을 위하여, 그 자신이 신라의 왕이 되지 않고 경애왕의 먼 친
척 아우뻘 되는 족제 김부를 세워 왕으로 삼았을까.
나는 이런 일이 동서고금에 있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다.
견훤이 남의 왕국 왕통을 잡아 주려고 양위를 시키고자 그 먼 길에 그 군사를 이끌고
원정을 간 것이라면 모르되, 신라를 쳐 정벌하러 간 후백제의 임금이, 이미 정통의 신라
임금을 제 손으로 죽이다시피 죽게 하고는, 무슨 자비로 그와 같은 엉뚱한 일을 저지른단
말인가.
이 기록을 따른다면 견훤은 금수와 같이 저급 치졸하고 무자비 잔혹한 일개 도적에 불
과한데, 어찌하여, 부하 군졸 다 보는 앞에서 제 용맹을 뽐내기 위하여라도 경애왕의 목
을 보란 듯이 제 손으로 치지 않고, 자결케 하였을까. 억지로. 어쩌면 그것은 차마 견훤
이 목을 쳤다고 까지는 지어내기 어려웠던 붓터럭의 망설임이었는지도 모르지.
아무렇든, 그렇게 경애왕을 죽게까지 하고, 신라의 백성도 아닌 후백제 왕으로서, 견훤
이 무엇 때문에 피비린내 휘몰며 군사를 이끌고 신라땅 서라벌 궁성까지 쳐들어갔길래,
손아귀에 움켜쥔 신라를 기껏 김부한테 주어서 왕으로 앉히고 돌아온단 말이냐.
견훤은 일본이 만주에 괴뢰국을 세우듯이, 신라에다 자기 말 잘 듣는 꼭두각시 허수아
비를 만들어 놓은 것일까?
지나가던 황소가 웃을 일이다.
왕위에 오른 경순왕은 경애왕의 시신을 서당에 안치하고, 여러 신하들고 함께 통곡하였다.
그렇다면 견훤은 이때 어디에 있었을까.
시신을 안치하고 통곡을 했다면 날짜로 보아 금명간인데.
남의 나라 왕궁을 도륙해 버린 견훤은 증발하고 없는 것이다.
거기다가 고려 태조 왕건은 사신을 보내서 정중히 조상했다고 하니 견훤은 무단히 서라벌까지 미쳤다고 피 흘리며 군사 몰고 쫓아가 신라의 임금만 바꿔주고 돌아왔다는 말일까. 그 누구도 원하지 않는 것을. 아무 이득도 없이.
그 뒤로 신라가 후백제에 복속하여 주종 관계로서 조공을 바치다든가 군신의 예를 갖추
었다는 말, 한 마디도 없는 것으로 보아 더욱더, 견훤이 김부대왕 세운 일은 해괴하기만 하다.
이듬해 무자년 춘 삼월에 태조가 오십여 기병을 거느리고 순행을 하면서 신라 서울에
이를 때까지, 후백제의 견훤이 경순왕에게 어찌 했다든가, 경순왕이 견훤에게 어찌했다는
말은 눈 씻고 보아도 비치지 않는다.
이것이 명색 승전국과 패전국 사이에 있을 수 있는 일일까.
그보다도 경순왕은 문무 백관과 함께 왕건을 교외에서 영접하여 대궐로 모시고 들어갔다.
그런 다음 정리와 예의를 다하고 임해전에서 잔치를 열었다.
그리고 술이 얼근해지자 경순왕은 정곡을 털어 말했다.
내가 운을 못 타고나서 환란을 불러일으켰고, 견훤은 불의한 짓을 마음껏 행하여 우리
나라를 망쳐 놓았으니, 이 얼마나 쓰라린 일입니까.
경순왕이 체읍하여 눈물을 흘리면서 우니, 좌우 사람들도 흐느끼지 않는 사람이 없었
다,고 자못 비장하게 흐르던 문장은 드디어 태조의 위용이 자애롭고 너그러우며, 그의 부
하 군사들이 엄숙하여 조금도 침범하지 않는 것에, 신라의 서울 선비 귀족들과 부인들이
서로 놀라 경탄하며 흠모하는 광경을 적는다.
그리고 말한다.
전에 견훤이 왔을 때는 마치 성난 늑대와 호랑이라도 만난 것 같더니, 오늘 왕공이 이
르니 부모를 만난 것 같다고. 물론 천하의 인심이 왕건에게로 기울어 모이는 것을 밝히고자 한 말이겠지만, 소위일국의 선비와 귀족과 부녀자들이 지아비를 두고도 새남자를 보듯,
왕건의 세력이 강성하여 자기 나라가 위협을 당하고 있는 판국에, 왕건과 그 군사를
흠모할 수가 있었을까.
백제가 멸망하게 되었을 때 의자왕을 따라 삼천 궁녀가 낙화암 푸른 물에 떨어져 한 점
꽃잎들처럼 죽어간 정경과는 참 사뭇 다르다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더니 끝내는, 경순왕이 이 나라 사방의 땅이 모두 남의 손으로 들어가, 국력은 약화되고 형세가 고립되어 제대로 부지할 수가 없으므로, 여러 신하들과 함께 전국토를 바치고 고려 태조에게 항복하자고 의논하는데 여러 신하들의 가부 의견이 분분하여 끝날 줄을 몰랐다.
이에 왕태자가 말했다.
나라의 존망은 필유천명이라 반드시 하늘의 마련이 있을 터이매, 응당 충신과 의사들이
함께 민심을 수습하여 해 보는 데까지 해 보다가 안되면 할 수 없지만, 어째서 천 년 역
사를 가진 나라를 선뜻 남에게 내준단 말입니까?
그러나 끝내 왕은 시랑 김봉휴를 시켜서 국서를 가지고 태조에게 가 귀순하여 항복하기를 청했다. 태자는 통곡하면서 왕에게 하직하고 금강산으로 들어가서 죽을 때까지 삼베옷을 입고
나물을 뜯어 먹어 가면서 세상을 마쳤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마의태자라고 부른다.
신라의 마지막 임금 경순왕은 그 뒤로 죽을 때까지 털끝 하나 상처 입지 않은 채, 고려
태조의 장녀 낙랑공주와 다시 혼인하고 왕건의 늙은 사위가 되어, 비단옷에 맛있는 음식
을 먹으며 화려하게 번쩍이는 수레를 타고 다녔다. 그리고는 죽어서 귀신은 경순왕신이
되었다.
그는 나라를 지키는 대신 불쌍한 백성들을 보호했다고 해서 민간에 널리 받들어진다고
한다. 물론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 있어 경상북도 경주와 포항, 영풍, 월성 등지를 비롯
해 강원도 원주, 충청북도의 제천이며 청풍, 북상해서는 서울 시흥동 군자봉 꼭대기 서낭
당에까지, 무당들이 섬기는 신령으로 추앙된다는 것이다.
그가 왕신이 된 이유인즉, 그는 비록 신라를 고려에게 넘겨 준 비운의 왕이었지만, 시
운이 다한 나라를 붙들고 있다가 온 강토를 피투성이 전쟁의 참화에 빠뜨리는 대신에, 가
련한 백성들 목숨을 보호하여 안심하고 살게 해 주었으므로, 백성들의 칭송을 받은 덕이
라 한다.
그리하여 그가 죽은 뒤에는, 경순왕 살아 생전의 유적지에 곳곳마다 다투어 사당을 세
웠고, 영험의 전설이 여기저기서 생겨났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경상도 경주에서 포항에 이르는 지역의 주민들은 인근의 형산 옥련사에 경순
왕을 모셔 놓고 기원을 드린다. 그 까닭은 원래 이 형산과 강 건너 제산이 한 덩어리로
붙어서 이어져 있어, 비만 오면 물이 안강벌까지 잠기어 빠지지 않는지라 여기 사는 사람
들은 수해를 몹시 크게 입었는데, 하루는 용으로 변한 경순왕신이 그 꼬리로 산을 후려치
자 중간이 끊어져 두 산은 서로 나누어졌다고 한다. 자연히 넘치는 물은 그 끊긴 자리 골
짜기로 모여 흘러서 바다로 빠지매, 사람들은 마음 놓고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애오라지 백성을 보호하려는 경순왕의 눈물겨운 자애가 현신한 이야
기 한 토막이라고 하겠는가.
경상북도 영풍군 영주면 영주리에는 목조 기와로 지은 집 자인당이 있어, 경순왕 영정
을 봉안하고 있고, 충청북도 청풍의 덕주사 뒤편에는 김부대왕사 사당이 있다고 전해진다만.
제군들 생각은 어떠한가.
백제를 잃은 유민들이 부안 변산 주류성에서 만 사 년씩 돌멩이를 부둥켜안고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에 항거하며 백제 부흥운동을 피가 나게 벌이었던 참경과, 신라를 고려에
넘겨 준 제 나라 임금을 고마워하며 사당까지 지어 바쳐 왕신으로 받드는 신라의 유민들
정경을, 무슨 말로 비유하여 그릴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조선의 선조 임금이 칠 년 동안이나 강토를 쑥밭으로 만들며 임진왜란
을 겪도록 하였으니, 이순신 장군까지 싸잡어 온 백성이 타도해야 할 것이다. 누가 나라
를 지키라 하였느냐고, 왜국에 우리를 고스란히 넘겨 주어 나라의 이름은 개가 물어가
도 좋으니, 우리는 우리의 목숨을 보존하고, 자식을 낳으며, 옷에 밥에 먹고 입으면 그만
일 뿐이라고, 부르짖으면서.
그 대신에 말이다.
대한제국 마지막 임금 고종 황제는 이제 앞으로, 어쩌면 이 순간부터라도 고종황제신이
되어야 할 것이다. 국권과 우리나라 이름은 일본에 넘겨 주었으되 혹독한 전쟁을 치르지
않도록 백성을 보호했으니, 그가 한 일이 신라 경순왕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심진학 선생은 다시 입을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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