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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 10권 (54, 大尾)

카지모도 2025. 8. 23. 0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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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실이가 호환을 당한 것 같다니, 강태도 만리 타국 남의 땅 낯선 곳에서 아무

도 모르게 무슨 일을 당했을 지 어찌 아는가. 강호가 다녀가고도 얼마인데 아직

도 연락이 없어. 그때가 언제라고 지금까지... 살어 있다면... 만약에... 영영 소식

을 못 듣게 된다면... 그러면 도대체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이여."

수천댁은 곧 울음이 터지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는다.

"요새는 세상이 뒤바뀌어 상놈이 양반되고 양반이 상놈된다 하데그려. 개명헌 집

안에서는 충직허고 머리 좋은 머슴이나 마름들을 돈 들여 공부시키느라고 서울

로 동경으로들 다 보낸대요. 사람 농사를 짓는 것이지. 변허는 시대에 맞춰 공부

시켜 놓으면 나중에 돌아와 다 자기를 위해 써 줄 것 아닌가. 우례네 봉출이도

혹 그럴란지 모르지."

오류골댁이 듣다 말고 드디어 핀잔을 한다.

"그런 생각은 무엇 하러 허시요예?"

"자꾸만 떠오르는 걸 어쩌는가."

"쓸데없는 걱정이니, 키우지 말고 떨어 버리시오."

손아래답지 않게 타이르듯 말하는 오류골댁 심사도 이미 손 못 대게 엉클어져

걷잡을 수가 없었다. 몸도 속을 파먹힌 허울만 같다.

"세상이 어디로 가서 어떻게 될라고 이렇게 가닥이 없이 마구 한 통속으로 뒤집

히고 뒤섞이는 것이까."

수천댁은 다시 오류골댁 쪽으로 두렵고 불안한 눈길을 돌린다. 오류골댁이 무거

운 눈물 가득한 눈으로 수천댁을 바라본다. 그네의 눈에 고인 눈물은 위태로운

세상처럼 넘치면서 금방 쏟아지려 한다. 그 눈물을 넘어, 효원이 황망하게 들어

온다.

"작은어머님, 좀 어떠신가요."

부숭숭하고 푸릇한 그네의 얼굴이 전날 밤 잠 못 잔 흔적을 역력히 드러내는데,

음성조차 결이 떨린다. 아, 어찌 일이 이렇게 되는가. 이게 웬일일까. 영문을 알

수 없는 효원은, 오로지 단 하나, 부디 강실이가 어디에든지 살아 있기만을 빌었

다. 이미 다른 마음은 없었다. 네가 누구이며, 나는 누구인가를 묻지도 않았다.

네가 무엇을 했는가, 내가 어떻게 할 것인가도 생각하지 않았다. 살아만, 살아만

있다면. 거기에서 더 무엇을 바라랴. 그대가 살아서, 나를 용서해 주오. 효원은

강실이의 손을 잡는 대신에 오류골댁 손을 잡았다. 그러나, 오류골댁은 효원의

손을 마주 잡지 않았다. 그 반응 없는 손등에는 찬 기운마저 돌았다. 원망해도

소용없는 일이다마는, 나는 네 말 듣고 그리했니라. 아아, 내 가슴을 찢어라. 나

는 바보. 농판, 버꾸, 천하에 다시없는 등신이라서, 남의 말을 듣고 내 자식을 내

주어 호랭이가 먹게 했다. 어머니, 소리 한 번을 더 못 듣고, 내 새끼야, 소리 한

번을 더 못해 보고, 나는 내 새끼를 놓쳐 버렸다. 효원의 손등으로 차가운 물방

울이 떨어진다. 골이 시리게 찬 느낌이다. 오류골댁의 눈물이었다. 효원은 더욱

몸둘 바를 몰라서 오류골댁의 손을 꼭 쥔다. 죽으라고 보낸 것은 아니었어요. 살

리려고 해 보았던 짓이었습니다. 하지만, 안 보고 싶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작은

어머님은 모르시겠지만... 저만 아는 세상이 있어서, 저 그 사람, 안 보이는 데로

보내버리고 싶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마주치고 살기에는 너무 괴로워... 짊어지고

가기에는 너무 무거워... 용서하고 덮기에는 너무 아파서... 명분을 내세우고 본심

을 숨겨, 내쫓아 버린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죽으라고 내몬 것은 아니었어

요. 이제... 부디... 그대가 살아서, 나를 용서해 주어. 효원은, 강실이의 목숨만이

자신의 생애를 건져 줄 수 있을 것 같아, 한없이 까라지려는 몸을 추스리며, 강

실이 얼굴을 부른다. 강실이가 비록 누항의 시궁창 그 어떤 질곡에 빠져, 말로

못할 더러움을 겪고 있다 하여도, 그네가 온전한 몸으로 살아만 있다면, 효원은

이 무서운 죄책에서 놓여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디에... 어디에 있소... 효원은

등을 구부리고 기도하듯 강실이를 부른다. 그 온몸에 눈물이 차 오른다.

 

-大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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