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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 10권 (51)

카지모도 2025. 8. 19. 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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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례는 고개를 신중하게 끄덕인다. 전에도 더러 수천댁으로 나가, 철이 바뀔 때

면 겨우내 덮었던 이불과 겨울옷들을 모두 한꺼번에 손볼 적에, 밀린 빨래 묵은

빨래일들을 우례가 돕곤 하였기에 오늘날 혹 바느질하러 왔다고 해도, 수천댁이

어색하거나 괴이쩍게 여기지는 않을 것 같아서였다. 생각이 그에 미치자 우례

얼굴이 아까보다 조금 밝아진다.

"근디 시방 수천아씨께서 비개 꼬매고 지실 정이 없으시겄드라고."

소례가 아랫몰 물가 빨랫돌에 자배기를 내려놓는다.

"어찌?"

"수천샌님이 댁에가 안 지시잖아여어."

"왜? 수천아씨께서 시앗 뵈겼다냐?"

순간 우례의 눈귀가 저도 모르게 곤두서 치켜진다. 감히 자기 같은 종년이 무어

상전의 댁 하는 일에 새암을 내고 말 처지도 아니었지만, 가뜩이나 지금 속에

품은 획책이 있는 터여서, 지렁이를 밟아 꿈틀한 것처럼 터럭이 곧추 선 것이었

으리라. 봉출이의 아버지가, 발설할 수는 없으나, 수천샌님 기표라는 것은 알고

있는 소례가 냉큼 말을 잇지 못하며 빨래를 돌 위에 쏟는다.

"성은, 인자 옛날이얘기 아니여?"

이불 호청 한 자락이 물에 잠겨 흰 너울 긴 베폭 만장마냥 넘실넘실 흐른다. 물

살 따라 곧 그대로 떠내려가고 말 것만 같다.

"누가 머이라대? 근디 시앗이 누구래여?"

맨발로 첨벙 물에 들어가 호청자락을 걷어 당기며 우례가 퉁명스럽게 무지른다.

그런 형을 소례가 힐끔 곁눈질한다.

"그게 아니고잉."

셍이 아직도 그 속을 못 갈앉힜능게빈디. 세월 오래 가네이. 기양 잊어 불제. 멋

헐라고... 속으다 두먼 멋 히여, 무단히 깡텡이만 생기제. 깡치 생기먼 속 질리고,

속 질리먼 아푸고, 어푸먼 병들고. 종으로 난 것을 어쩔 거이여. 신세가 이런디.

헐 수 없제. 기양 나맹이로, 차라리 요렇게 훨훨 날개치디끼 탁, 탁, 빨래 털어서,

묵은 때 던지런 얼룩, 흐르는 물에다 푸욱 당귀 갖꼬 싹 풀어서 빨어 부리먼, 흔

적도 없이 깨깟허니 좋을 거인디. 저렇게 때를 키워어. 때가 눌어서 살이 되간디

이. 멋 헐라고 저렇게 쫑쫑 꼬매, 긍게, 바누질을 허네잉. 셍이 왜 저리여? 참말

로. 요새 왜 점점 요상해지능 것맹인디. 그 속을 누가 몰라. 분허고 억울허지만,

그 맘을 빨고 빨어서 다 빨어 불고, 인자 요 담 시상으 날 적으는, 종의 때를 냉

기지 말고, 눈물의 얼룩도 다 빼고, 개완허게 나먼 된디... 에러우까. 하지만, 말

못허고 못 잊을 마음도 한 땀 꼬매고, 못 이룰 꿈도 같이 한 땀 한 땀 꼬매어,

제 바느질 솜씨처럼 날렵하고 곱게도 이씨 문중 성씨 찾아 봉출이를 견고하게

꼬매 주고 싶은 우례는, 손끝에서 심장이 뛰었다.

"누구라대?"

우례가 재차 묻는다.

"시앗이 아니고 징벵이가 때미, 새터서방님이랑 새실서방님 만나신다고, 수천샌

님이 시방 만주 가셌당만. 오늘 아칙에. 가바서 데꼬 오실랑가, 거그다 띠여 놓

고 오실랑가는 모르고잉."

"오오, 그리여?"

우례는 일변 안심이 되고, 일변 갑자기 불안해진다. 시앗이 아니라서 다행이지

만, 강태와 강모를 데리러 간 것이라면, 우례가 지금 꾸미려는 일이 자칫 허사가

되지 않겠는가.

"첨에는 두 서방님 다 만주로 말도 없이 가 부리세 갖꼬는, 수천샌님이랑 율촌샌

님이랑 어지간히 속상허잖에? 근디 이번에는, 외나 잘된 일잉가 몰른다고 그

러시드래."

"오빼미가 그리여?"

"잉."

"왜?"

"거가 지시먼 군대 잽헤가는 거이 좀 낫다능갑든디?"

"피헐 수가 있디야?"

"잉, 머 그런 말씀잉게비대."

"그러먼 안 오싱 거이 더 낫겄다이?"

"하아, 오시먼 멋 히여? 그 질로 징벵가먼 큰일 아니여? 그렁게로, 넘들은 거그

안 갈라고 일부러 도망도 가는디, 기왕으 거까지 가서 자리잡으싱 거, 새옹지마

로 알고, 핵고나 잘 댕기게 해 디린다는 말씀도 있당가 어쩐당가 그러드라는디.

나는 자세 모르겄어."

소례가 갸웃가웃 고개를 저어 보인다. 우례는 마음이 급해진다. 기표가 돌아오기

전에 얼른 이 부적을 수천댁네 식구 베개 어디엔가 끼워 넣어야 하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수천 샌님이 아들을 만나기 전에. 만나서 그들이 돌아온다

고 결정하기 전에. 전에 누가 그랬다등고. 이 집안에 곡식이 썩어나도 먹을 사램

이 없을 거이라고. 씨구녁을 막어 부릴 거이라고, 머 때민가, 하고 모질게 양반

노릇을 헝게로 분이 나서, 푸대접받은 사램이 그런 말 했능갑등만. 아닝게 아니

라, 암만 생각해도 요상허기는 요상허다. 새터서방님이랑 대실서방님이 만주로

가시고는, 똑 거짓꼴맹이로 오류골 작은아씨도 자취가 없으시나. 누가 불러낸 거

이까. 예삿일 아니네이. 삼형제으 세 집이 다 물팍이 비어 부렀잖이여. 요런 수

도 있이까... 시킨 것맹이로. 옹구네 말이 맞을랑게비여. 우리 봉출이, 우리 아들,

내 자석, 금쪽 같은 이씨 자석, 이 가문으 단 하나 금싸래기 씨앗으로 요놈 한나

달랑 남을랑게비여. 하이고오. 내가 천헌 종년이라고, 자식도 따러서 그럴 거이

냐. 아부지가 지신디. 내가 느그 아부지 꼭 찾어줄 거이다. 봉출아. 조께만 지달

러라. 우례는 저도 모르게 부적 꽂은 앙가슴 치마말기를 누른다. 오지 마라, 오

지 말어. 느그들은 오지 말어어. 우리 봉출이 자리, 아무도 와 넘보지 말어. 가슴

을 오그리며 주문 외듯이, 비나리 시늉을 하는 우례 젖살을 부적접은 귀퉁이 꼭

지가 찌른다. 비수 같다. 우례가 흠칠한다. 옹구네 음성이 귀를 찌른다.

"때 놓치지 말어. 때 놓치먼 허사여. 밥 푼 담에 불때고 죽은 담에 생일 찾지 말

고, 사람 없을 때 뱅이 히여. 무난히. 이씨 자식들이 다들 우우허니 집으로 온

담에는 부적 갖꼬 더레더레 금줄을 쳐도 아무 쇠양없잉게. 이렇게 챙게 주고 서

둘러 줄 때 받어 먹으라고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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