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취가 났는지 박대근이는 잔질이 잦아졌고, 길산은 벌컥벌컥 들이켜는데도 여전히 덤덤
했고, 갑송이는 갈비를 뜯기에 바빴다.
서슴지 않고 매옥이가 나서며 사설시조로 엮어 내려갔다.
"역시 엮음이 우리 취향이로다."
흥취가 났는지 박대근이는 잔질이 잦아졌고, 길산은 벌컥벌컥 들이켜는데도 여전히 덤덤
했고, 갑송이는 갈비를 뜯기에 바빴다.
"벽사창이 어른어른커늘 님만 여겨 뚝 나서보니 님은 아니 오고 명월이 만정한데 벽오동
젖은 잎에 봉황이 와서 긴 목을 휘어다가 깃 다듬는 그림자로다. 마침 밤일새망정 행여 낮
이런들 남 우일 뻔하여라."
"이총각두 엮음새 한수 해보우."
"그럴까..... 어디 그동안 목청 상허지 않았는가 떨어봐야겠군." 갑송이가 우람한 체격대로
굵고 거친 소리로 엮는다.
"얽고 검고 키 크고 살찐 구레나룻 별로히 길고 넓죽한 놈이 밤마다 품에 들어 좁고 작은
구멍에 큰 연장 넣어두고 홀근홀근 홀레들일 적에 애정은 커니와 태산으로 덮누르는 듯 잔
방귀 터질 게 젖 먹던 힘이 다 들겠구나. 아무나 이 님 데려가 백년을 동주하고 영영 아니
온들 어느 개딸년이 시앗 새음 하리오."
엮음이 끝나고 지름시조로 접었닥, 이윽고 잡가가 계속해서 나오는데 길산이도 능숙하게
소리를 훑어냈다.
"까마귀 멀리 가고 늦게 뜬 노고지리 우짖을 제 지리지리 지리 뱃종 지리지리 보리밥도
먹고지리 조밥도 먹고지리 장가도 가고지리 아이도 낳고지리 뱃종뱃종 하는구나. 남녀노소
안면부지 고하귀천 가릴 이 없이 그저 보는 대로 쪽박 들어 권하되 진지 좀 잡수시오 탁주
한잔 드세나 수인사를 건네니 남전북답 산산골골 처처에 이 고장 인심이 으뜸이로다. 이
노총각 양반댁 고용살이 일뼈만 굵어서 어언 서른이 넘었는데, 때는 마침 이앙모이 내는 때
라 농자 천하지대본이라 기를 세워들고 풍물 잡혀 내려갈 제 서로 다투어 모심이에 흥이난다.
꽹꽹 칭가징 닐리리리 칭가징 꽹꽹 칭가징 허허후후야 날아가는 갈까마귀야 잔솔밭을 넘
어 굵은 솔밭으로 넘어 나가는 구나. 허허후후야 갈까마귀야 야이후후, 동무네야 벗님네야
어서 하세 바삐 하세 점심도 늦어가고 술도 늦어간다. 산천초목은 젊어가고 우리 부모는 늙
어간다. 갈까마귀는 날아가고 털벙거지에 총 든 포수 재를 넘어 쫓겨간다. 논두락엔 남정네
밭고랑엔 아낙네가 개울로 갈려서 일한다. 김매는 처자 중에 과부 하나이 있어 자색이 명월
이라 개참봉 반양반네 첩으로 팔려갔다. 첫날밤도 새이지 못해 늙은이가 급살탕을 맞아 뒈
어지니 소년 과부가 되었구나. 저 노총각 저 과부 거동 볼작시면, 모심이하는 짬에 상사는
내를 건너 밭고랑에 박히는데 두 눈에서 불이 훨훨 불두덩이 울끈불끈 가슴은 퉁퉁 뻐적지
근하여 터질 듯, 목구멍에 침이 말라 오뉴월 대한에 바닥난 우물이며 고이춤 사타리는 중놈
에 삿갓처럼 불뚝 솟아 찔러대는데 애꿎은 모판에 손구녕만 나는구나.
과부 이 눈치 채고 나서 가슴에 불티 앉아 솔솔 바자작 솔솔 바자작 타들어간다. 눈꼬리
에 추파 꼬리가 아홉 개로 구미호가 실렸으며 입술은 쫑긋 물기가 밴밴한데 숨결은 쌔근발
딱 풀을 뽑는다기 치맛자락 솔기를 뜯어 속살이 다 나오것다.
총각아 총각아 저 눈 돌리게 참새 같은 앙가슴이 갈라지겠네.
저 님네 앙가슴 갈라지면 태산 같은 이내 몸이 들어앉겠네.
이내 팔자 기박해 상부를 했네. 이십 안팎에 에레섯 살에 출가를 하니 이팔은 십륙이 열
살 먹어 아버지 돌아가고 세 살 먹어 어머니 돌아가고 모란 같은 내 얼굴에 개나리꽃만 피
어 삼단 같은 내 머리가 싸릿대로 되었구나.
청사초롱에 불 밝혀라. 청사초롱 님의 방에 님도 눕고 나도 눕고 저 불 끌 이 누 있을꼬.
치정이 은근하고 애틋하여 남 모른 줄 알았더니 느티나무 가지 새로 서톀바람을 알아보
고, 너른 들 솔밭 너머 연기 보면 마을 알 듯, 스리슬쩍 발 달린 소문이 갯가에 안개 퍼지듯
되었구나. 빨래터에 속닥속닥 우물가에 초싹초싹, 길쌈장에 씩둑 철커덕 쌕둑 철컹, 짚신 꼬
며 이래야 비비비 저래야 비비비, 장기 두며 그랬군 장군야 잘했군 멍군아, 소 몰면서 여차
여차 낄낄낄 저차저차 낄낄낄, 풍문이 이러하니 과부 설운신세에 치정은 고사하고 우환이
되었구나. 들보에 띠를 걸고 버선발을 날릴 적에, 나는 간다 나는 간다. 정든 님을 두고 간
다. 나는 죽어 꽃이 되고 님은 죽어 나비 되면 양춘가절 호시절에 꽃핀 나를 찾아오리, 간다
간다 나는 간다. 님을 버리고 나는 간다. 내가 죽어지면 맷돌짝이 되어지고 님은 죽어지면
위짝이나 되어지면 어랑어랑 정한이여, 어랑 어이요 어랑어랑." 과연 길산의 소리는 관록이
있어놔서 낮았다가 높아지며 흐느끼고 날뛰다가 다시 잔잔해지고 중중모리 잦은 모리가 휘
들어지는데 계곡 사이를 우당탕 흘러내려가는 시냇물과 같았다.
"잘한다!"
박대근이가 감탄을 했고, 어느 틈에 문을 열고 들어섰던 주모마저 눈시울을 붉혀가지고
앉았다가, "내 재인 신명을 많이 듣고 보았건만 장총각은 아버지보다 낫소. 춤은 또 얼마
나 하게." 질세라 신이 돋친 창기들이 다투어 노는데, 청이 없어 장고춤을 휘날리지 못하는
것이 유감이었다. 그들의 술자리는 모르는 결에 자시 어름을 넘겨서야 물리게 되었고, 박
대근이가 기어이 같이 자고 가자는 것을 갑송이만 떼어놓고 길산이 혼자 나섰다. 길산이는
순라에 들키지 않게 객사 앞길을 피해서 향교의 담을 끼고 읍내를 빠져나왔다. 달빛에 길
이 하얗게 구불거리고 있었다.
수장
1
신복동이의 졸개들이 해서 장터들을 휩쓸다가 해주로 돌아온 것은 길산이네가 재인말을
떠나기 사흘 전이었다. 행수 되는 자는 제법 상리가 많았다고 의기양양했으나, 송화 무더리
장터에서 본바닥 광대들께 톡톡히 망신을 당한 사실이 이미 신복동이의 귀에 들어가 있던
것은 몰랐다.
물주로 따라나갔던 신복동이네 집의 겸인이 도착하여 짐을 풀자마자 그 사실을 일렀던 것
이다. 포교와 비장 나부랭이들과 술을 마시던 신복동이는 상단이 돌아왔다는 말을 듣자 상
을 찌푸렸다. 그는 곁에 와 섰던 몸집이 좋은 부하에게 일렀다.
“그 행수로 나갔던 덕이놈을 당장 끌어와라.”
“예......? 덕이를요?”
“소두령 노릇두 못할 녀석이 행수 노릇하고, 내 얼굴에 먹칠까지 했으니 그냥 둘수는 없다.”
밖에서 네댓 명이 또 들어왔다. 그들은 우르르 몰려나갔다. 활 한바탕 거리에 신가의 여각
창고가 있는데, 덕이라는 행수는 물건을 풀어넣는 중이었다. 그들이 몰려가자 덕이는 오히려
큰소리를 치는 것이었다.
“아무 일두 않구 색주가나 노름방에 붙어 앉았으면 제일이여? 이 사람들아 밖에 나가서
벌어올 생각들을 해봐야지.”
“그나저나 생원나리가 보자우.”
“그래, 내 물건 다 챙겨놓구 올라갈래는 참이다.”
“시방 빨리 가야겠는데......”
“이놈들아, 네놈들이 뭔데 빨리 가구 말구야.”
텁석부리에 가죽 배자를 입은 자가 팔짱 꼈던 손을 쓱 뽑더니 삿대질하며 말했다.
“이게 죽을려구, 이놈 저놈 하구 있네. 이놈아, 너는 오늘부터 행수고 지랄이고 쪽박 차
게 되었다.”
“뭐라구......?”
“애들아...... 모양을 내여라.”
우르르 달려들어 아직도 그 기분이 진가민가하던 행수를 앞뒤로 잡아 치고 박으니, 여럿
의 매를 견딜 수가 없어 행수는 땅바닥에 엎어졌다. 팔을 뒤로 돌려 밧줄로 칭칭 동여매고
는 텁석부리가 홧김에 면상을 두어 번 내지르는데 코피가 터져버렸다.
“이눔, 타관서 온 놈이 쇠도리깨 조금 돌릴 줄 안다구... 금방 행수질 해처먹더니 꼴 좋다.”
“왜...... 왜 이러는 거냐?”
“몰라서 물어. 쓸개 빠진 놈, 촌것들께 얻어터지고 장터를 쫓겨난 놈이 무슨 염치루 신생
원 아래 붙어 있으려느냐? 일으켜 세워라. 끌구 가자.”
그들은 덕이를 잡아 일으켜 화풀이로 어제까지도 눌려 지냈던 행수사내를 툭툭 발로 내지
르면서 신가의 대청 앞으로 끌고 갔다. 신가는 이미 주위 사람들을 물리치고 나서 친히 매
를 들고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들이 안마당으로 우르르 몰려들자 신복동이는 말했다.
“그놈을 멍석에 말아라.”
덕이 뒤에 섰던 자가 발을 걸어 휘딱 쓰러뜨리고는 멍석에 굴렸다. 멍석과 사람을 함께
뚤뚤 말아가자 다리와 머리만이 밖으로 비어져 나왔다. 덕이가 고개를 흔들며 애원했다.
“생원나리,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제가 상리를 못 봤습니까, 물건을 잃었습니까, 왜 이
러십니까?”
“이눔, 너는 우리 해주 신씨 여각의 체면에 먹칠을 한 놈이다.”
신복동이가 매를 들어 멍석 위를 닥치는 대로 두어 대 내리치는데 행수의 비명이 터졌다.
다시 매를 쳐들자 행수 덕이가 고함을 쳤다.
“생원께서는 고정하시구 내 말을 좀 들으시우!”
“뭐냐, 이눔.”
“구월산 광대들 중에 다른 자들은 하나도 염려할 것 없아오나, 이갑송이란 놈과 장길산
이란 놈이 있사온데 그 기운과 무용이 훈련원 장교들보다두 월등합디다. 그자들을 잡아서
혼을 낼 꾀가 있습니다. 생원나리, 제발 제발 좀 들으시구 용서하우.”
신가는 매를 천천히 휘저으며 빙긋 웃었다.
“그자들을 내 앞에 잡아오겠느냐?”
“예예, 뭐 잡아오구 말구두 없습니다. 그자들이 며칠 뒤에 관시놀이에 나올 것인즉, 조금
만 화를 가라앉히시구 얽어맬 궁리나 하옵시면 됩니다.”
“만약에 해주에 오지 않으면...... 망신을 만회할 길이 없을 터인데?”
“하오면...... 제가 놈들의 마을을 쑥밭을 만들어버리지요. 생원나리의 함자를 욕되게 하진
않겠습니다.”
신복동이는 끄덕였다.
“그래, 우리 체면을 되돌릴 기회가 있다면 잘되었다마는 이왕 그르쳐놓은 일이니...... 열
차례만 맞아라.”
“어리구 생원나리!”
“자, 헤아려라.”
신가가 매를 들어 십장을 치는데, 일곱에 가서 매가 부러져 버렸다. 다시 장목을 가져오라
이르고, 나머지 석 대를 채웠다. 매가 끝난 연후에 신복동이는 다시 웃는 낯이 되었다. 그는
매우 잘생긴 남자였다. 얼굴은 희고, 턱은 뾰족한데 입술이 유난히 붉었으며, 눈이 크고 차
가워 보였다. 눈가와 입에는 언제나 야릇하게 비웃는 듯한 냉소가 실려 있었다. 턱의 모양처
럼 뾰족한 턱수염과 코밑의 가느다란 수염은 그의 전체적인 인상을 더욱 날카롭게 해주는
것이었다. 의관은 이름난 오입쟁이의 행색으로 번듯하고 귀티가 났는데, 다만 흠이 있다면
왼쪽의 손가락이 엄지에서 차례로 셋이나 잘라진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왼손을 항상 넓은
소매 안에 감추어 늘어뜨린 채 잘 움직이지 않았다. 매에 혼찌검이 나서 땀투성이가 되어
주저앉아 있는 행수 덕이에게 신가는 말했다.
“좀, 들어오너라. 네가 할 일이 있느니라.”
하고 나서 신가가 텁석부리 사내를 손짓했다.
“막개두 같이 들어오너라.”
신가는 마치 글을 읽고 난 선비처럼 조용한 걸음걸이로 안마당을 빠져나갔다. 행수와 막
개라는 사내가 뒤를 따랐다. 그들이 밖 사랑채에 가서 좌정하고 들어앉자, 신가는 다시 인자
한 가친이 그의 어린 자식들께 대하듯 태도가 바뀌어 있었다.
“다름이 아니라, 너희들 용당포 임유학을 아느냐?”
“예, 그 우리께 삼천 냥을 빚진 주상이 아닙니까?”
“그렇지, 채무관계를 청산해놓아야겠다.”
“관원을 몇 데려가면 되잖습니까?”
“아니다, 우선 임가놈을 없애버려야겠으니...... 너희들두 머리를 짜내야 되겠다.”
막개가 제 가슴을 치며 웃었다.
“생원 어른...... 까짓 것 쇠몽치루 해골을 바숴놓지요. 밤에 기어들어가서요.”
“어리석은 소리...... 함부루 죽일 순 없다.”
신생원이 놋재떨이 위에 얹힌 장죽을 끌어당겨 입에 물었다. 막개가 재빨리 가죽 배자 주
머니에서 부시를 꺼내어 척 켜서는 불티 붙은 것을 담배에 붙여주었다. 신가는 주욱 빨아들
이고 나서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돈 삼천 냥 때문에 위험한 놀음을 하려는 게 아니여.”
하긴 신가의 말이 맞았다. 그는 해주에서는 제일 화려한 색줏집을 셋이나 운영하고 있었
으며, 순명문 밖 삼거리에 있는 여각은 송동의 것에 비할 만큼 장사 규모가 큰 것이었다. 그
리고 세겹 담장과, 행랑채, 바깥채, 안채로 나누어진 집은 어느 높은 벼슬아치에 비겨도 꿀
릴 데가 없었고, 여각에 딸린 주막에서는 밤마다 도박이 성행했는데, 전은자모가도 겸하고
있었다. 그러니 신복동에게는 삼천 냥쯤은 있으나마나 한 돈이었다. 매를 맞아 기가 죽어 있
던 행수 덕이가 조심스럽게 말하였다.
“샌님, 돈 삼천을 못 갚을 상대가 아닌뎁쇼. 돈은 별문제겠지요.”
“시비의 핑곗거리는 되지.”
신가가 말했고 막개도 거들었다.
“예, 나중에라두 밝혀질 때 차용증을 관에 보일 수가 있습니다.”
임유학은 용당포에서는 가장 성공한 주상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배를 열세 척이나 가지
고 있있고, 특히 송도의 부상들에게 신용이 돈독했다. 하여튼 해운 쪽으로는 해주에서 그를
당할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이제 육로 행상을 막 개업하기 시작한 신복동이에게 있어서는
해운마저도 탐나는 장사임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해주에 임가가 있는 한 그는 송상에게 잇
댈 끈이 없었으며, 행상 중에는 순명문 밖의 그의 여각을 지나쳐서 곧바로 용당포로 나아가
임가의 객주에서 묵는 상인들도 많았다. 비록 신가가 감영에 안면이 두텁다고는 하나, 임가
도 만만치 않게 개점세를 내고 있었다. 신가는 송도의 시전 상인들과 관계를 맺기를 원했는
데, 그 이유는 임가가 사상들과 연줄이 있어서 그들에 맞서기 위함이었다. 언제나 관에 붙는
일이 이롭다는 것이었다. 눈에 가시 같고, 명치에 걸린 찹쌀 알심 같은 임가를 어쨌거나 망
쳐주고는 싶었건만 그쪽도 만만치가 않았다. 그의 수하에는 거친 물결을 타는 뱃놈 나름의
사나운 사내들이 여럿 있었던 것이다. 특히 우대용이란 자는 배를 부리기에 명수인데, 힘이
세고 성질은 표한하며, 원래는 강령에서 고기잡이하던 놈을 임가가 데려다 놓았다는 것이었
다. 즉, 그를 데려오게 된 동기가 우대용이의 작살 솜씨를 보고 비범함을 알았기 때문이란
소문이었다. 물가에 서서 작살을 쳐들고 몇각을 노리다가 번개처럼 찍어 올리는데 펄펄 뛰
는 농어가 한꺼번에 두어 마리씩 꿰이더란 얘기였다. 수십 길 물속을 제 집 안방같이 드나
들며, 아침 구름만 척 올려다보아도 그날 뱃길을 안다는 자였다. 그런데 임가는 인색한 사람
이었다. 부리는 사람들로부터 인심을 잔뜩 잃고 있다는 소문이었다. 신복동이가 덕이 쪽을
지그시 바라보며 은근하게 말하였다.
“이번 일은 역시...... 자네가 적임이군. 성사가 되면, 내 만회루의 운영을 자네께 일임하겠
네.”
“분부만 허십시오.”
신가는 말을 꺼내기 전에 막개와 눈을 맞추어 씽긋 웃었다.
“우선 그 삼천 냥 얘기를 해야겠지.”
“그 얘긴 제가 헙지요.” 하며 막개가 나섰다.
“임유학에게 팔푼이 같은 건달 애숭이 하나가 있는 건 잘 알겠지. 말하자면 임가의 화근
덩어리란 말야. 그 녀석이 우리네 기방 출입을 하다가 취련이란 년에게 홀딱했거든. 이년을
시켜서 골패판으루 끌어내왔지. 초저녁에 시작을 해서 따게 했다간 잃게 하고, 돌려주고 뺏
기를 여러 차례 한 뒤에 간신히 본전만을 찾게 했단 말이야. 그러니 안달이 났지. 아니나달
러...... 이튿날 오백짜리 어음을 가져와서 세 판에 몽땅 털렸어. 열이 났지. 취련이년을 통해
서 채은 천 냥을 빌려가도록 해주었지. 그날 저녁나절에 그 녀석이 삼천을 털렸네. 우리가
담보 없이 돈을 내주었겠어. 그 머저리가 하인을 갯가로 보내어 경강으로 올려 보낼 화물의
사금파리 어음 쪼가리를 제 아비의 분부인 듯 빼내오게 하였단 말이지. 사금파리 어음이라
면 자네두 알지. 오천 아래로는 없는 법일세.”
덕이가 낄낄 웃어댔고, 신복동이는 글귀를 생각하기라도 하는 표정으로 눈을 감고 상체를
앞뒤로 꺼떡거리며 앉아 있었다. 덕이가 물었다.
“임가는 그걸 아는가?”
“아는 정도가 아니야. 제 아들을 친히 매로 다스린 뒤 골방에 가두었다더군. 한양에 통기
해서 어음을 바꾼 모양이야. 이쪽으론 얼씬두 않거든.”
“삼천 냥은 날랐군!”
“천만에...... 멍텅구리가 제 손으로 각서까지 썼어. 그러니, 각서와 사금파리 어음을 엮어
서 고발하면 송사는 이겨놓은 거지. 돈을 빌린 것과 노름은 아무 상관이 없으니까. 어음 보
고서 돈 안 내줄 놈이 어딨으며, 그 돈 가져다가 계집 밑구멍에 틀어박든, 노름을 하든, 저
자에 뿌리든, 녹여서 개편자를 박아주든 우린 알 배가 아니라구.”
“그렇군......”
“이야기는 뻔하잖나. 시비가 붙어두 일단은 우리 쪽이 말발이 선단 말이거든. 우선 오늘
이라두 당장 찾아가서 개판을 쳐놓고 여러 사람 있는 데서 시비의 원인을 밝혀놓는다 이거
지. 그러고 나선 자네가 좋은 기회를 잡아 임가를 박살을 내버린단 말야.”
“허나 돈 삼천에 살인이면...... 나는 꼼짝없이...... 안 그렇습니까, 샌님?”
눈을 감고 장죽만 빨고 있던 신복동이가 눈을 크게 뜨고 덕이를 노려보았다.
“이 옹졸한 놈! 설마 내가 네깐 놈을 오라지게 해놓고, 이득을 구하려 하겠느냐.너는 저
자의 도리도 모르는 놈이다. 다 방법이 있느니라. 감사가 신연때 쓴 부채가 있어, 관전을 우
리 자모가에 넣어두고 변리를 놓고 있는데, 그것의 원금이 꼭 삼천이다. 그래서 액수를 맞췄
다. 우리께 있는 임가 아들놈의 각서를, 감영에서 입금된 내역이 적힌 초일기와 명심록의 원
금에 맞추어놓으면, 그자들은 감영의 돈을 횡령한 것이 되지 않겠느냐? 그리고 임가를 꼭
죽이기까지 할 필요는 없다. 기동을 못할 병신만 만들어놓아라. 좋은데가 있지 않느냐?”
“샌님, 참으로 신인처럼 묘한 꾀입니다. 저는 그럼 마음을 푹 놓고서 그 영감태기의 허리
뼈를 딱 분질러놓습지요.”
“그래, 닷새 말미를 주겠다. 자, 계당주가 익었을테니 맛이나 좀 볼까?”
신가는 하인 부르는 설렁줄을 잡아당겼다.
딸랑거니는 쇠방울소리가 들리자, 마당쇠가 뛰어왔다. 신가는 술상을 조촐히 차려 내오도
록 이르고서, 문갑에서 사금파리 어음을 싼 주머니와 각서를 꺼내어 덕이에게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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