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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길산 1권 (19)

카지모도 2026. 2. 19.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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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이가 나귀의 볼을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이 녀석아, 네가 지금 누굴 태워는고 하니...... 이 어르신네의 애첩에 만회루 기방어멈을

태웠다 그 말이다.”

“흥......”

취련이는 장옷을 깊숙이 쓰고서 덕이 쪽은 흘낏도 하지 않고 코방귀를 뀌었다.

“얘, 어째서 코바람을 내느냐. 임가놈만 물고를 내버리면, 너희 만회루 바깥채앤 내가 들

어앉는다. 그리되기만 한다면 너는 이제 머릿기생이 아니라 어엿한 기모루 올라서는 게야.”

“참 나, 기맥혀 죽겠네. 나는 뭐 언제나 기방에서 사내들 까실림이나 받구 있나. 보아요,

나는 생원나리 작은방으루 들어앉을 텐데 혼자서 신명일세.”

“에라 이년...... 무엄한 소리 지껄이지 마라. 네 따위가 감히 샌님의 소실루 들앉아? 다

의논이 되었으니, 오늘밤엔 손님 받지 말구 이 행수님이나 기다려라.”

“잡소리 그만 하시구 길이나 보아요. 견마를 잡았으면, 좀 고분고분 해야지.”

“고이헌 계집이로다.”

그들이 이렇게 시시껍절히 주절대며 용당포로 내려가려는데, 결성을 나서니 해주 앞바다

가 훤칠하게 펼쳐져 있었다. 포구 쪽에는 각종 어선과 상선이며 나룻배가 가득 차 있고 오

색 깃발에 큰 돛을 올린 관선들이 바다 바깥쪽을 천천히 오르내리고 있었다. 동쪽으로 광석

천 물이 실처럼 흘러내려가는 포구 안쪽에 즐비한 기와집의 지붕들이 내려다보였다. 임가의

객주는 이곳에 두어 채 있었고, 살림집은 좀 떨어져서 결성포 못 미쳐서 있었다. 객주는 포

구에 가까워 자칫하면 임가 수하의 뱃놈들에 봉패당할 염려가 있었다. 덕이는 광석천 쪽으

로 내려가지 않고 곧장 임가의 살림집이 있는 결성포 방향으로 향한 채 비탈길을 지나갔다.

길가에서 사공인 듯한 노인과 마주쳤으므로 덕이가 물었다.

“여보슈, 용댕이 사슈?”

“예, 왜 그러우.”

“용댕이 임부자 알지요?”

“바루 우리 동네 살우.”

“그 양반 시방 집에 기신가요?”

“내 그 댁 사랑에서 나오는 것두 아닌데 어찌 알겠수. 하오마는 대개는 집에 기십디다.

더구나 집안에 우환이 있는갑디다.”

“우환이라니?”

“그 댁 큰서방님이 내로라는 한량인가 봅디다. 해주 나가서 주색잡기와 투전을 했다구

임대인께서 성이 나셨지요.”

“거 남의 집안일을 영감님은 어찌 그리 소상히 꿰시우.”

“우리 딸내미가 그 댁에서 품을 팔거든요. 안 그대루 그 댁 큰서방님과 나리 어른 사이

가 나쁘다구 온 해주 바닥이 다 알지요. 헌데...... 그 댁에 가슈?”

“그렇소.”

“허 낭팬걸. 공연히 헛소리했네.”

“염려 마우. 우린 먼길 가는데 게서 며칠 기식이나 해볼까 하는 참이우.”

“가거들랑, 아예 아는 내색 하지 마오.”

덕이와 취권은 임유학의 솟을대문 앞에 이르렀다. 덕이는 높다란 처마를 쓱 올려다보고

나서 일부러 무지막지하게 대문을 발과 주먹으로 요란하게 두드렸다. 안에서 사람의 기척이

들리건만, 덕이는 고함을 내질렀다.

“이놈, 임가놈아...... 불쌍한 계집의 돈을 울궈냈으면 갚아줘야 할게 아니냐. 임가놈 나오

너라.” 하자마자 대문 안께가 소란스러워지면서 여럿의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웬놈이 남의 집 대문을 부수려고 소란이냐.”

문이 열리면서 서넛의 하인이 울레줄레 문가로 나섰다.

“이 집 큰서방님짜리를 만나러 왔다. 비켜라.”

하인들이 알겠다는 듯이 서로 눈을 맞추는데 덕이가 그들 사이를 가르며 안으로 들어가려

는 몸짓을 했다.

“어어, 감히 여기가 어디라구 함부루 생떼야.”

“보슈, 큰서방님은 지금 안 계셔.”

덕이가 막무가내로 안으로 제 몸을 쑤셔넣으려고 버둥댔고, 하인들은 양쪽에서 그의 겨드

랑이를 끼고 버티었다.

“괜히 매나 흠씬 맞구 나서, 나중에 의원 찾지 말구 좋은 말 할 때 가슈.”

“이놈들, 이 집 주인을 만나야겠다. 아들 빚은 애비 빚이 아니라드냐?”

덕이가 일부러 힘을 쓰지 않고 발을 허우적대며 악을 쓰니 지나가던 동네 사람들이 하나

둘씩 걸음을 멈추고 서서 구경했다.

“놔라, 이놈들아.”

“이놈이 정말 죽을려구 환장을 했군.”

“그놈 보아하니 허우대가 멀쩡한 놈이 마누라 아랫구멍을 팔아 제 윗구멍을 처막는 놈이

로세. 이놈 떠들 것 없다. 야, 줴박질러라.”

곁에서 관망하던 청지기가 하인들께 걸찍한 패설 섞어 분부했다. 덕이의 겨드랑이를 끼고

있던 자들이 그의 가슴팍을 치면서 둘이 일시에 떠박지르니, 덕이는 빈 자루처럼 풀썩 나둥

그러졌다. 나둥그러졌을뿐만 아니라 한참이나 일어나지 못하는 시늉으로 입만 딱 벌리고 나

자빠져 있었다. 취련이가 손발을 맞추느라고 우선 비단 찢기는 소리로 비명을 내지른 다음

에 달려와서 덕이를 부축하는데 이미 눈에서 눈물이 비 오듯 했다.

“애고...... 우리 서방님, 계집 몹쓸 년 만나 이 괄시가 웬말이오.”

“놓아라, 이년...... 그러게 내가 뭐라더냐. 이제는 봉양해드릴 부모님도 안 계시고 빚도 모

두 갚았으니 기적을 떠나 애들 맡긴 사촌 댁으로 돌아가자고 그리했지. 잘되었다. 십년 동안

먹도 않고 쓰도 않고 온갖 천작을 하여 마련한 전 재산을 금수 같은 파락호에게 모두 뜯겼

으니, 이젠 알거지로구나.”하며 부부가 땅바닥에 주저앉아 우는데 그 소리와 짓이 제법 처

량하고 구슬퍼서 아무리 남의 일이라지만 차마 못볼 정경이었다. 더구나 임가네 맏아들이라

면 뜨르르한 건달이요, 시방도 제 아비가 골방에 가두었다는 소문이 동네 안에 파다하고 보

면 누구나 그들 기생 부구가 침탈당했거니 여길 수밖에 없었다. 한 사람, 두 사람, 혀를 차

더니 이윽고 속삭이는 말로 임가네 욕을 지껄인다. 그맘때에 덕이가 활활 털고 일어났다.

“좋다, 내 아무리 천한 기부라지만 네놈들께 이런 모멸을 당하구 돌아서진 않겠다.”

덕이가 하인들이 막아선 대문으로 다가서자 그들은 폭소를 터뜨렸다.

“허 그놈, 독사 아가리에 콧잔등 넣는구나.”

“자는 범 코침 주지 말구, 네 계집 데리구 가서 일찜감치 방굴이나 굴러라.”

취련이가 제법 곱상하게 생긴데다, 덕이의 나자빠진 양을 깔보던 하인들은 마음을 턱 놓

고 팔짱을 끼고 섰다.

“끼놈들.”

덕이가 한 녀석을 오른발 딴죽을 걸며 왼쪽 목을 치니, 그놈은 살판소의 곤두박질 재주나

벌이듯 공중잡이를 했다가 처박힌다. 다른 놈이 멈칫하는 것을 멱살을 잡아 바싹 끌어당겨

마빡으로 박치기를 하자 코피를 콱 터뜨리며 주저앉는다. 이렇게 두 장한을 단매에 보내고

나니 남은 하인 두엇과 청지기가 안색이 변하여 뒷걸음질쳤다. 구경꾼들이 감탄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럴밖에 없는 것이 덕이야 소싯적부터 여러 고을을 싸다니며 소악패 노릇을 해서

싸움하는 요령이 제법인 반면에 하인들이야 쌀섬이나 지라면 모를까 주먹질엔 능하지 못하

고 더구나 상대를 너무 가벼이 알고 방심했던 탓이었다. 닫히려는 대문을 밀치며 덕이가 행

랑채를 돌아 쫓아갔고 취련이도 뒤를 따랐다.

“이놈들, 돈 뺏어먹고 사람 치는 놈의 집구석에 불을 확 싸지르련다. 게 섰거라!”

덕이가 사랑채 앞 바깥마당에 선 채 고래 고함을 지르자, 역시 퇴창문이 후닥닥 열리면서

정자관을 쓴 임유학의 뻘겋게 상기된 얼굴이 나왔다.

“웬놈이 백주에 남의 집에 돌입해서 이리 떠드는고.”

“어른은 누구시오. 임유학 어른이시오? 아니라면 잠자쿠 계시우.”

덕이가 슬쩍 누그러든 어조로 우물거리자, 임가의 수염이 떨리면서 호통이 떨어졌다.

“이 고얀 놈! 양반에게 욕을 보이면 어떤 벌을 받게 될지 아느냐.”

“양반이시면 가도를 세우시오.”

“온 저런, 박살을 낼 놈이......”

“양반의 아들이면 모두 불쌍한 계집들 돈이나 우려먹는답디까.”

“으음......”하며 임가는 잠깐 사이를 두었다가, 체통을 찾아 노기는 띠었으되 나직하고

강력한 말씨로 고쳐 물었다.

“그래 네가 온 연유가 무엇이냐?”

“빚돈 삼천 냥을 받으러 왔소이다. 헌데 이 댁에서는 언제나 남의 돈을 빼앗고 사람이나

때려 쫓아 보내는 모양입디다. 용댕이 임부자 댁이라구 해서 우리는 뭐 재물 모은 사연이

기이한 줄 알았더니, 세상에 이리로 인륜에 어긋나는 일이 어디 있습니가.”

“이놈...... 돈이란 무슨 돈이냐?”

“만회루에서 이 사람께 빌려간 삼천 냥 말입니다.”

“좌우진간에 빚은 모르겠다마는, 있다 한들 네가 간여하는 까닭이 무어냐?”

“예, 소인은 저 계집의 기부 되는 사람이올시다.”

“천하에 몹쓸 놈이로군. 너희들은 신복동이 수하에 있는 것들이 분명하렷다. 이 못된 연

놈들, 그래 물정 모르는 양가의 소년들을 꾀어내서 사기투전을 시키고 노름빚돈까지 지우느

냐. 세상에 어느 못난 놈이 투전장이가 내어준 빚돈을 잃고 갚겠는가. 삼천이 아니라 세 품

도 못 주겠다. 너희 주인에게 가서 일러라. 직접 받으러 오면, 내 인근 촌로들 앞에서 소상

히 밝히고 내주마 하더라고.”

덕이가 놓칠세라 고함을 지른다.

“우리께 사금파리 어음도 있고 댁네 자식이 몸소 수결한 각서도 있소이다. 그래두 잡아

떼시려오.”

“허튼 소리 마라. 아무리 계집의 손으로 빚돈을 내주었단들, 너희 업주가 누구인가? 신복

동이가 전주이니 직접 오라구 해라. 너희들은 내가 모르겠으며 한 푼도 내어줄 수가 없어.

냉큼 나가지 못하겠느냐.”

임가는 마당에 모여든 하인들께 말했다.

“빨리 저것들을 내쫓아라. 뭣들 하느냐. 고분고분 말을 듣지 않으면 무리매를 놓아두 괜

찮다. 양반에게 행악한 죄는 중형이니까.”하고 나서 퇴창문이 거세게 닫히며 임유학은 모습

을 감추었다. 덕이가 소리를 질렀다.

“권세 없고 비천한 놈은 돈을 떼여도 주인이 찾아주지 않으면 못 받는단 말이오? 계집이

웃음을 팔아 한푼 두푼 모은 것을 파락호 아들놈은 잘라먹고 제 아비는 비호하는구나.”

여럿이 사방에서 달려들어 덕이를 잡아끌고 행랑채 앞을 지나 중문을 나서고, 대문께에

이르러 냅다 밖으로 던져버렸고 취련이 역시 질질 끌려서 문 밖에 쫓겨 나왔다. 대문이 육

중하게 닫히고 빗장 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이 모양을 지켜보던 구경꾼들이 모두 덕이네 거

짓 부부에 동정을 하고, 임가의 인색함을 은근히 비방하였다. 덕이가 다음일을 우하여 가장

억울한 체 울상으로 호소하기 시작했다.

“아이구 장사해처먹는 공명첩 양반이 백성의 등을 치는구려. 아이구...... 내가 죽일 놈이

지, 국으루 호전이나 갈며 주림을 참을 것을 거듭 흉년 호환에 아이들은 차례로 일고 남은

목숨이며 부모님이나 풀칠하겠다구 대처루 나왔더니, 배운 재주라곤 땅 파먹는 일이라, 걸식

을 하다 못해 병이 들어, 마누라를 기적에 넘기구 말았수. 진작에 죽을 것을 그래두 하늘이

낸 목숨이라, 자진하지두 못하구 아내의 웃음 판돈냥이나 모아 낙향하려든 참인데, 저 도적

들이 빼앗고 주질 않으니 세상에 우리에겐 국법도 없단 말이우.”하며 덕이는 땅을 치며 통

곡하는 시늉을 벌이는데, 취련이가 온몸에 꼿꼿이 힘을 주고 덕이의 무릎에 쓰러져 실신하

는 모습을 보인다.

“허어, 목불인견이로고!”

“사정을 듣구 보니 참 불쌍가구만.”

“관가루 가서 호소해보시우. 여기서 이런다구 저 수전노가 눈썹 하나 까딱 않을 게요.”

“보시우. 거 아낙들 중에 누가 좀 나와서 손발 좀 주물러요.”

구경꾼들이 제각기 떠들었고, 늙수그레한 부인 하나가 눈자위가 불그레해져서 달려나와

취련의 손발을 주물러주는데 연신 한숨에 혀를 두드려댄다.

“하이구, 세상에 이럴 수가...... 응? 참 하이구.”

그때에 대문이 다시 열리더니 하인들이 한떼거리 몰려나와 구경꾼들의 등을 떠밀었다.

“가요 가. 무슨 구경 났어, 이거?”

“나중에 얼굴 봐뒀다가 여쭈면 괜히 경칠 게요. 가서 볼일이나 보슈.”

하인 하나가 나귀를 끌고 와 고삐를 덕이의 코앞에 내밀며 윽박질렀다.

“되잡아들이기 전에 냉큼 이 동네서 나가. 우리네는 그래두 성깔이 느리지만, 포구에서

뱃사람들 들이닥치면 뼈마디 부러질 게야.”

“놔둬, 대용 성님께 걸려서 물귀신 되라구. 이 자식아, 그분하테 잡히면 너는 성한 몸으

룬 못 나가. 성미가 개백정이여.”

하인들의 말이 으름장만은 아닌 성싶었다.

“패가망신한 놈이 죽은들 두렵겠느냐. 내 어찌하더라도 이 원한을 씻으리라.”

이빨을 드러내 보이며 덕이가 끄응 일어났고, 자세한 내막을 모르는 하인들도 더 심하게

행역은 못하고 무덤덤히 서 있었다. 덕이는 취련을 부축하듯이 끼어안고 고삐를 쥔 채 절뚝

이며 마을에서 나갔다. 비탈을 넘어서자 취련이는 손뼉을 치며 깔깔 웃었다.

“아이, 이제 보니 행수의 짓이 꼭 창우 뺨치게 잘하는구려.”

“호들갑 떨지 마라. 관가에 끌려가서 해내던 남지기다. 그나저나 잊는 일이 벌어져도 소

문은 우리께 유리하것다. 감사두 약점이 있으니 우리 편을 들 게고...... 임유학을 아주 물고

를 낸다 해두 중죄는 받지 않겠구먼, 그저 유배 천리는 될까......”

“용댕이루 우리 샌님이 나오시게 되면, 저 집은 날 달라구 그래야지.”

“예끼 이년...... 나리의 작은댁들이 자그마치 셋이요, 네년은 기중 못생기고 배운 것두 없

는 년인데, 용댕이 나와서 작은댁 노릇을 해여? 아예 만회루 기모자리루 편하게 작정하여,

오늘밤엔 나를 모실 준비나 해둬라.”

취련은 금방 토라졌고, 덕이는 식은죽 먹듯 해치운 일이 대견해서 돌아가는 걸음이 자연

빨라졌다.

그날 밤에 신가의 사랑에 덕이와 막개가 둘러앉았다. 일의 앞뒤를 듣고 난 신복동은 매우

흡족해하였다.

“내 그럴 줄 알았다. 아주 잘되었어. 허나, 내일 임가놈을 덮치는 일이 제일 중요하니 잘

해내야 한다.”

“여부가 있겠습니까요. 소인의 경험으루 본다면, 일이 이쯤 되었으니 아예 임유학을 죽여

버려두 될 듯합니다.”

“흐음...... 죽인다?”

“그렇지요, 쇠몽치루 골통을 한번만.”하며 덕이가 내려치는 시늉을 하고 나서,

“임가가 병신이 되어 살아 있게 되면 실상 실권은 그 큰마누라가 쥐게 되니, 제멋대로는

못할 것입니다. 허나, 아주 죽어버리면 유산은 자연히 서자인 그 바보놈에게 넘겨질 테니까,

우리가 먹어치우기엔 매우 쉬워지겠지요.”

“나는 살생을 좋아하지 않는단 말야. 사람을 상하게 하는 것까지는 감가사 적당히 보아

주겠으나, 살인이 나면 서울로 장계를 올리게 될텐데 피차의 입장을 생각해둬야지. 임가가

없는 용댕이란 대들보 빠진 집채와 같네. 자식놈이든 마누라든 별 상관이 없네. 그러니 임가

를 아주 죽여야 일만 커질 따름이여. 죽지 않을 정도루 아예 병신을 만들어 놓으라구. 평생

드러누워 미음이나 받아먹도록끔...... 그 허리를 말이지...... 분질러놓으면 충분해.”

신복동이 조심스럽게 얘기를 마치자, 덕이도 산전수전을 겪은 무뢰배 출신이라 만만치 않

았다.

“알겠습니다. 분부대루 시행합죠. 그런데...... 소청 하나만 들어주시겠습니까?”

“뭐냐......”

“만약에 뒷일이 시끄러워져셔 수습하기가 난처해진다면, 소인은 달아나야 되겠습죠?”

“그래서......”

“달아날 때에 이왕 빚돈으루 말이 나왔으니 돈 삼천 냥과 취련이를 내주십싱. 조용해지

면 다시 찾아와 샌님 밑에서 돕겠습니다만......”

곁에 앉았던 막개가 기분이 상하여 덕이의 어깨를 두드렸다.

“사람두 걱정이 많에. 시끄럽긴 무에 시끄러워. 취련이가 빌려준 걸루 된 돈의 원금이,

실상은 감사의 것이라구 장부에 적혀 있단 말이야. 감사가 우리께 맡겨서 변리놀이를 하던

돈이라고 슬쩍 귀뜸만 해주면, 감사는 꼼짝없이 우리 편을 들어 일을 무마하려구 애쓸 게

야.”

“말썽이 없다면 또다른 소청이 있습니다, 샌님.”

덕이는 막개의 말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질기게 물고 늘어졌고, 막개는 그의 말을 막으

려고 불끈해서 덕이를 만류했다.

“아니 이 사람이...... 떼를 쓰는 게야 뭐야?”

“가만......”

신복동이가 빙글빙글 웃으면서 두 사람의 실랑이를 막았다.

“그래 자네의 소청이란 뭔가?”

“예, 저 앞전에 말씀하신 만회루의 영업권에 대해서인뎁쇼. 제가 취련이와 열심히 해볼

테니 진정 맡겨주시겠습니까?”

신복동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껄껄 웃었다.

“뭐, 소청이랄 것두 없구먼, 당연하잖은가. 자네말구 또 누가 적임자가 있겠어. 다 알아서

할 테니, 내일밤 일니나 실수 없도록 하게.”

임가를 습격하는 시간은 새벽 파루가 해주 성내에 퍼질 무렵으로 정했다.

이튿날 신복동이는 역시 감영 벼슬아치들과 어울려 수양산으로 단풍놀이를 나갔는데, 그

는 일부러 밤새도록 그들과 골패를 벌이며 보낼 작정이었다. 덕이는 순명문 밖 주막에서 혼

자 술을 마시며 밤이 이슥해지기를 기다려서 용당포 쪽으로 넘어갔다. 그러나 덕이는 막개

가 벌써 포구의 주막에 당도하여 은밀히 파루 때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모르고 있었다. 막

개는 은밀히 신복동의 지시를 받고 포구에서 누군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막개는 빈 대청에 앉아서 혼자 술잔을 기울이다가, 주모를 손짓해서 불렀다. 설거지를 하고

있던 주모가 단호하게 말했다.

“술은 더 없수. 밤이 깊었으니 문을 닫아야지.”

“술 달라는 게 아니라, 뭣 좀 물여볼려구 그러오.”

주모가 앞지마에 손을 씻으며 막개에게 가까이 왔다.

“우대용이를 아슈?”

“알다마다, 우대용일 모르면 용댕이 사람이 아니지......”

“쉬이, 그렇게 큰 소리루 떠들지 말구.”

막개는 입가에 손가락을 세워 들었다가 다시 속삭였다.

“할멈, 돈벌이해볼라우?”

“돈벌이......?”

“내 시키는 대루만 하면 닷 냥 드리리다. 자, 이건 술값 두 돈이구......”

막개가 작은 꿰미에서 술값을 빼내어 던지자, 주모가 아직은 미심쩍은 얼굴로 연신 막개

의 허리춤을 넘겨다보면서,

“우서방을 찾으려구 허슈?”

“아니, 그 사람께 말 한마디만 전해주면 되우.”

“그깟 일에 닷 냥을? 아이 모를 일일세.”

“우가는 지금 어딨수?”

“뭐 그 사람야, 배 띄우지 않을 젠 언제나 저어기 갯가에서 뱃사람들이랑 술을 마시거나

투전을 하지, 어계방에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갑디다.”

“그러면, 내 오늘밤 할멈네서 좀 잡시다. 내 이따 새벽녘에 할멈에게 말을 전해달라 부탁

할 것이니...... 자아 닷 냥에 더 얹어서 남은 일곱 냥 모두 가지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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