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영의 관전이 원금이라는 걸 임가 쪽에서 알면, 돈을 당장 갚을 게다. 갚고 나면 일은
모두 글러버리는 게야, 네 사삿돈이라구 외치며, 핍박하여 임가의 분통을 잔뜩 건드려놓으란 말야. 될수록 구경꾼이 많으면 더욱 유리할 것이니까.”
“염려 마십시오. 그래서 틈을 보아 임가의 골통을 깐 연후에 허리뼈를 부러뜨리지요.”
“아니야, 그자를 물고를 내는 것은 아무도 안 보는 데서 해야지. 그러니 며칠 뜸을 들이
는 게 좋을 게야. 오늘은 소란만 피우고 오게나. 취련이년두 함께 데려가라구. 너는 취련이
서방 행세를 한단 말이지.”
곁에서 막개가 물었다.
“샌님, 그런데 임가가 창피하여 돈을 갚아버리면 어쩝니까?”
“원금이 관의 변릿돈인 줄 모르는 한, 임가는 돈을 절대로 갚지 않을 거야. 더구나 임가
는 아들이 사기 노름에 걸려들었다구 생각하거든. 헌데...... 염려가 되는 것은 우대용이란 놈이 송도에서 올라왔는지 모르겠어. 저희 상전이 당하고 나면 펄펄 뛸 게란 말야.”
덕이가 제 가슴을 쥐어박으며 외쳤다.
“에이, 샌님 걱정 마십시오. 까짓 뱃놈이 거슬리신다면 아예 배때기를 푹 쑤셔서, 발끝에
돌을 매달아 용당포 깊은 물에 던져버릴 게유.”
“아니야, 나는 살생을 좋아하지 않는단 말야. 놈이 들썩이기만 하면, 감영에 손을 써서 얽어 넣으면 간단하지. 좌우지간에 유리한 건 우리 쪽이야.”
그때에 술상이 들어왔다. 신생원은 마당쇠를 불러 말했다.
“만회루에 가서 취련이 좀 들오라구 일러라.”
“아닙니다, 제가 이 길루 나가서 데리구 가지요.”
덕이가 일어서는 자세로 엉거주춤하며 말하자, 신가는 고개를 흔들었다.
“술 한잔 하면서 좀 기다려. 내 취련이가 오면 함께 단단히 일러둘 말이 있으니까.”
신생원이 두 사람에게 술을 따라주었고, 막개와 덕이는 황송해서 기가 죽은 시늉이 되어 술을 마셨다. 신복동이는 명심록과 초일기를 문갑에서 내어 차질이나 틀린 데가 없는가를 살피기 시작했다. 초일기라 함은 매일 금전출납이나 여러 가지의 거래를 기재하는 것으로, 금전이 들어오는 것은 상으로하고 나가는 것은 하로 쓰는데, 단순히 거래만 행해져 실제로 금전의 수급이 없는 경우에는 내역만을 입하품기등으로 쓰게 되어 있었다. 큰 여각이나 객주는 물론 상인은 누구나 초일기와 명심록이 필수 장부였다. 임가를 반죽음시켜놓은 뒤에 그 아들이 쓴 각서와 사금파리 어음, 그리고 관전의 이자를 놓은 내역이 적힌 이 장부를 감영에 제출하여 폭행을 합법화할 것이었다. 신가는 장부를 덮으며 빙글빙글 웃었다. 해주에서 임유학이 없는 용당포라면, 이제부터는 자기가 경강 해운을 독점하게 될 것이었다. 임가가 장사에서 손을 떼면, 신복동은 달포 안으로 송도와 한양의 해로 행상들의 신용을 얻어 낼 자신이 서 있었다.
“자, 술 좀 들게나!”
신복동이는 연신 빙글거리며 웃었다.
“샌님, 취련이가 왔습니다”
마당쇠가 장옷을 쓴 기녀를 데리고 들어왔다. 취련이는 허리를 구부리고 섬돌 아래 읍하고 서 있었다.
“음, 잠깐 올라오너라.”
취련이가 방 문턱에 무릎을 세우고 앉자 신생원이 여태까지의 계획을 낮은 목소리로 일러주었다. 얘기가 모두 끝난 뒤에 신가는 다짐했다.
“그러니 자네는 덕이의 아내 노릇을 해얀단 말야. 또 덕이가 오늘 거기서 낭패하여 봉변을 당하게 됨직하면, 자네가 임가 아들놈과의 관계를 떠들어대며 악다구니를 쓰게. 만약에 임가가 망신을 견디지 못하여 돈을 내주게 되더라도 너희는 크게 떠들며 소란을 피우다가 땅에 던지고 오란 말이지. 그러면 오늘 할 일은 끝난다. 내일 새벽에 담을 타넘구 들어가서 임가를 덮치고는, 그 길루 관가에 자수를 허게. 뒤에는 우리 변리놀이 장부와 어음이 있으니, 감사를 은근히 난처하게 만들면...... 오히려 수월히 처리될 테지.”
“여하간 덫에 딱 걸린 오소리새끼올시다. 우리는 슬슬 가죽이나 벗길 궁리를 허면 되겠군요.”
“나귀를 내줄 테니 이 아이를 태우고 시방 나가도록 하게.”
취련이와 덕이가 읍하고 나갔다. 신생원은 다시 글이라도 암송하는 듯 상체를 흔들거리며 눈을 감고 앉아 있었다. 막개가 틈을 보아 말을 걸었다.
“나리...... 저, 여쭐 게 있습니다.”
“뭐냐?”
“예...... 저...... 외람된 말씀이오나, 제가 아이들의 머리가 되어 샌님을 모셔온 것이 벌써 십 년이 넘었습니다요. 덕이놈이야 싸움깨나 한다구 타관서 데려온 놈이 아닙니까. 이번에 송화 무더리 장터에서 애숭이 시골 무뢰배에게 망신까지 당하였으니, 싸움 솜씨도 그리 신통치 못한 게 분명합니다. 헌데 그따위 놈에 이렇게 중요한 일을 시키시고, 더구나 성사가 틀림없는데...... 만화루의 운영을 맡기신다니, 저는 모르겠거니와 밑에 아이들의 불평이 높아질 것입니다.”
신생원은 상체를 흔드는 채로 잠잠히 듣고 있다가 또 차가운 웃음을 빙글거렸다.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군. 일석이조란 말일세. 덕이 녀석은 임가를 해치는 데 쓰고, 우대용이는 덕이를 처치하는 데 쓴다 그 말이지. 우대용이란 놈이 성질이 표한한 뱃놈이니 분을 참지 못하여 덕이놈을 그냥 두지는 않을 게 아닌가. 살인죄를 지게 되면 관에서 우가놈을 없애줄 것이고, 우리는 용댕이 앞바다를 손에 넣게 되는 게야.”
“나리...... 아무래두 저희는 샌님 앞에선 관세음보살 손바닥의 잔나비올시다. 참으로 제갈량 윗길 가십니다.”
막개가 머리를 휘휘 내저으며 감탄을 했으나, 신복동이는 눈을 감은채 말했다.
“자네 여각으루 나가봐. 짐 푸는 일을 감독해야지. 그리구 아이 하나를 덕이네 뒤로 딸려 보내어 동정을 살피구 오도록 하게.”
“예, 소인 물러가겠습니다.”
막개가 나간 뒤에 신복동이는 사랑채에서 나와 안채로 들어갔다. 갓과 도포를 내어 의관을 갖추고 나갈 채비를 했는데, 감영에 현신할 작정이었다. 덕이란 놈이 용당포에 가서 난동을 부리는 동안 관의 아전비장 나부랭이들을 끌어내어 부용당에서 한판 흐드러지게 놀 작정이었다. 신가는 나귀에 안장을 얹어 순명문안으로 들어갔다.
신복동이 생원을 모칭해온 것은 거의 십여 년이 되었으나 원래는 양주 관아의 통인으로 어릴 적부터 술수가 뛰어나 아전에까지 입신했었다. 양주는 경부에 가까워 아전이 이를 얻기엔 빡빡한 고장이라 생기는 것이 없어 신복동은 조정에 연줄이 드센 원이 충정도로 나아갈 때 향리직으로 편승하였다. 그 고울의 아전 출신이 아니고는 맡지 못할 직이었으나 신가는 원의 심복으로서 백성들에게서 재물을 수탈하는 데 능란하여 최적의 하수인이었던 때문이었다. 도서원이란 직임은 지방의 조세를 받아들이는 직책을 맡은 아전직의 우두머리를 말하는 것이었다.
공주 도서원은 생기는 것이 많다고 하니 그 자리를 제게 줍시오.
공주는 향리가 드센 고을이네. 도서원이란 이속들의 노른자위 같은 자리인데, 어찌해서 타처 출신 아전에게 넘겨줄 텐가. 그 일만은 관장의 위엄으로도 안되는 일일세. 하며 사또가 난처해하는 것을 신가는 은근히 졸라대었다.
사또께 빼앗아줍시사고 여쭘이 아니올시다. 제가 두어 달쯤 미리 내려가 살며 저를 이안(아전명부)에 올립지요. 이안에만 오르면 안 될 까닭이 있겠습니까?
내가 내려간들 그리 쉽게 이안에 붙여질까 모르겠네.
사또께서 도임하신 뒤에 백성들의 송사에 판결문을 불러주실때 형리가 미처 받아쓰지 못하거든 죄를 주거나 도태시키시고, 또 이따위 무능한 자를 형리로 불러 썼다는 이유를 들어 이방을 치죄하십시오. 매번 이처럼 하시면 자연히 도리가 생길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보시는 공문서가 제 손에서 나온 것이면 잘했다고 칭찬해 주십시오. 이러기를 며칠 하고 명을 내려 형리를 뽑되, 현직에 있는 자와 물러나 있는 자를 가림없이 문필이 감당할 만한 자는 모두 취재에 들게 하시면 저를 첫째로 뽑으실 수가 있습니다. 그 다음 제게 도서원 자리를 주신다면, 삼 년 안으로 나으리의 평생을 안락히 보내실 재물을 마련해드리리다.
이리되어 신가는 먼저 공주로 내려가 아전 출신임을 내세워 주막에 기거하면서, 군현의 아전 서리배가 사무를 보는 길청을 드나들며 그들과 술친구가 되었다.
신가가 원래 사람이 영민하고 붙임성이 있어 문자와 셈에 능통하니, 여러 이속들이 그를 대접하여 길청 고지기에게 기식하며 길청에서 잠을 자도록 해주고 제반 문자를 그와 상의하
는 것이었다.
신가와 미리 짰던 신관이 도임하여 관청에 가득 밀린 민소에 제사를 부르는데 형리가 미처 받아쓰지 못하면 반드시 잡아내여 곤장을 엄히 쳐서 하루 사이에 벌을 받은 자가 부지기수였었다. 상관께 보고하는 공문이나 전령에 있어서도 반드시 트집을 잡아내어 엄하게 다스리고, 또 이방을 잡아들여 형리를 잘못 택했다는 이유로 날마다 치죄하였다. 그래서 길청은 날마다 시끄러웠으며, 아전들은 감히 관장에 가까이 나가는 자가 없었다.
문서가 들고 나가는데 만일 신가의 필적이 들어가면 반드시 무사하였다. 이 때문에 길청의 여러 이속들은 그들이 미리 계획한 것을 알지 못하고, 모든 일을 신가와 상의하게 되었으며 신가는 자연스럽게 사무를 관장하게 되었다. 원님이 모른 체하고 이방에게 분부하기를, 내 서울서 들으니 너희 고을이 원래 문향이라 하더니, 이제 본즉 가위 한심하구나. 형리에 적합한 자가 단 하나도 없다니, 길청에서 일하는 아전과 읍내 사람들에 문필이 쓸 만한 자들은 모두 시험을 보여 뽑아 들이라.
이방이 명을 받고 나가서 여러 이속과 문필이 있는 사람을 시험 보이는데 신복동이가 원의 눈에 드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이방이 아뢰었다.
신복동은 본읍의 아전이 아닐, 다른 고을의 퇴임 아전인데 저희 길청에서 우거하며 도와주고 있습니다.
이 사람의 문필이 기중 뛰어나고, 퇴임 아전이라니 이역을 맡겨도 무방하겠다. 그를 이안에 올려라.
신복동이 도서원을 맡아 아전의 우두머리 노릇을 할 때, 책망이 내리거나 벌을 받는 사례가 없었다. 신가는 기생 한 명을 첩으로 들이고, 집을 사서 살림을 차렸다. 날마다 문서를 들이고 낼 때마다 바깥 소문과 실정을 기록하여 백성의 숨은 일이나 서리의 부정을 사또에게 은밀히 보고해서 그들 외의 다른 자의 부정은 용납하지 않았다. 하리배들의 약점을 손 안에 쥔 이상, 그들은 두려울 것이 없었다. 둘의 소득이 부임 첫 해에 거의 만오천 냥에 달했는데, 신복동은 오천을 제가 착복하고 만 냥은 사또의 본가로 올려 보냈다. 그 부정의 방법은 교묘해서 누구도 까탈을 잡을 수가 없게 하였는데 백성을 직접 수탈하지 않고 권력을 이용해서 이권을 얻거나 간접적으로 이서배들의 부정을 묵인하고 상납을 받아먹는 수를 썼던 것이다.
신복동이 천래의 간교한 술수를 발휘하여 부정을 하는데 겉으로는 국법에 어긋나는 바가 없었다.
은결이라 하여 토지대장에 올리지 않은 논밭을 이용하였다. 잡초가 우거진 황폐한 밭과, 홍수에 무너지고 사태가 난 밭이며, 백성들이 흩어져 내버리고 간 밭을 관아에 기록된 원정의 총결수에 메워놓고서, 기름지고 수확량이 좋은 논밭을 대장에서 빼돌리는 것이었다. 따라서 수확량이 모자라니, 그 과중한 충당량을 백성들이 메워야 하였다. 세를 수납할 때가 되면 먼저 온 고을 안에서 가장 좋은 전지만을 뽑아서, 그것은 은결에 빼돌려놓고, 그리고 나서는 황무하고 온갖 나쁜 논밭만을 나라의 세금을 징수하는 대상으로 삼았다. 돈을 받고 부잣집의 풍작된 논밭을 거짓 재해지로 보고하고, 그 세를 정말 재해를 입은 가난한 백성들의 논밭에 전가하기도 했다. 또는 재해를 답사할 때에 자기 혼자서 재해를 더 많이 잡아두었다가 돈을 받고 농군에게 팔아먹기도 했다. 수확량의 잉여분을 모았다가, 백성들의 세를 감하여 대신 납부해주고 그 다음에 변리를 붙여서 곱으로 만드는 법도 있었다.
민적 옮겨놓기, 군적을 빼주기, 풍현과 약정을 시켜서 군전과 세액을 횡령 착복케 하고 상납을 받기, 규장각책지가, 새로 원이 올 때의 부임 여비인 신관쇄마비, 갈려 갈 때의 귀향 여비로 구관쇄마비, 신관 부임 때의 관아수리비, 민고전, 표선전 등등의 수많은 명목의 잡부금을 빼돌리는데 물론 원호적의 수를 속이거나 가중부과하는 것이었다. 풍년에는 이리저리 생기는 것이 많아서 좋고, 흉년에는 또한 재해로써 세액을 감면해주게 되니 착복할 거리가 생겨서 좋았다.
사또의 임기가 끝날 때까지는 이미 신복동이 빼돌린 돈은 이만 전이 되었다. 사또가 떠나기 며칠 전 신가는 먼저 자취를 감추었는데, 신관이 오게 되면 추궁받아 모두 환상시키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가 원과 짜고 한 일이니 더이상 그의 행방을 궁금하게 여기는 자도 나오지 않았다. 어쨌든 이렇게 해서 귀임하는 원은 만오천 냥을 벌었고, 신복동이는 이만삼천 냥을 긁었다.
신복동이가 한양 양반과 갈라지더니, 배천의 안면 있는 관리에 손을 써서 관전을 빼돌려 담배모를 심었다. 거름을 두껍게 깔고서 모판 덮는 가자를 매고 그 안에 담배씨를 파종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미곡 판매를 벌이는데, 특히 관의 비축미를 빼돌려 팔고 나서 감영의 재고 조사가 있을 때엔 수량을 채워 빌려주었다가 다시 거둬들이는 수를 써서 폭리를 남겼다.
거듭 두 해 만에 신복동이는 배천의 제일 가는 갑부가 되었으며, 이어서 해주로 옮겨가 색주가를 벌여놓고, 여각을 꾸며서 부고를 자처하게 되었던 것이었다.
이어서 그는 자신의 족보를 도감을 통해서 사들였는데, 평산 신씨 가문의 세종 때 정승 신개의 후손으로 하여 뒤로는 인조 때 장군 신경원의 먼 친척으로 해놓았다. 그리고 홍패도 없이 자신이 소과 급제한 생원이라 일컬어 당당한 양반의 열에 끼여들게 되었다. 이제 그가 바라는 것은 물론 장사가 번청하여 대 부가옹이 되려는 것도 있었으나, 무엇보다도 그는 한양의 정승 댁에 길을 뚫어 고을 현감자리나 하나 맡아보는 일이었다. 그는 자기가 만일 한 고을의 수령이 될 수만 있다면, 조정에 나아가 출세 영달하는 것은 여반장이리라 믿었다. 그는 언제 어디서나 사람을 상대하는 일에는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행수 덕이는 제가 중임을 맡게 된데다 일이 잘되면 해주 색주가의 노른자위인 만회루의 운영을 맡아보게 된단 말에 가슴이 잔뜩 부풀어 있었다. 더구나 이것은 함정에 이미 빠진 노루새끼를 잡는 일처럼 성사가 뻔하지 않는가.
그는 코끝으로 타령을 흥얼대며 나귀의 고삘르 잡고 갔다. 취련이는 안장 위에 비스듬히 걸터앉아 혼들거리며 아무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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