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Books/Reading Books

장길산 1권 (25)

카지모도 2026. 2. 25. 06:25
728x90

 

길산이네 광대들과 박대근이의 상단은 안악장을 벌이고 나서 월당강의 지진나루에서 헤어

지게 되었다. 큰돌이가 이끄는 광대패는 안악서 먼저 재인말로 돌아가고 길산이, 갑송이는

박대근이와 밤새껏 여러 이야기를 했던 것이다. 나루터에서 배에 오르기 전에 박대근이 말

했다.

"이번 장삿길은 무엇보다도 아우들을 여럿 갖게 되어 내 틀림없이 큰 부가옹이 될 성 싶

소. 아마도 예상보다는 빨리 이 박대근이의 상단이 생길 거요. 송도 가서 꼭 광대 물주 한

번 되어보우. 지방 장시를 모조리 쓸어버립시다."

"글쎄요, 우리네는 그러고 싶지만, 어디 노인네들이 허락을 할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대

장부 사는 일이란 게 ..... 날마다 제 처지에만 매달려서야 되갰습니까." 길산이가 말하자 갑

송이도 껄걸 웃으면서 자기 가슴을 두드렸다.

"거참 통쾌한 말이로구나. 사나이가 인정하구 의리를 빼면, 귀 빼구 쫒 뺀 당나귀 아니라우."

"그냥 헤어지려니 목이 말라 안되겠구.s"

박대근이 못내 아쉽다는 듯 뒷전에 섰던 차인 행수를 불렀다.

"여게 거 술 좀 가져오게. 이별주가 없을 수 있나."

그들은 강변 자갈 위에 털퍼덕 주저앉아 화주 한 병을 털어 붓기 시작했다. 박대근이가

허공을 한참이나 올려다보더니 이야기를 꺼냈다.

"아우님들, 내 옛말 하나 하구 가리다."

"옛말, 조오치."

"일찍이 한양 땅에는 일 않고 놀고 먹고 좋은 입성에 허우대만 멀끔하여 약간의 입담재조

와 계집 호리는 솜씨를 가지구서 기생년들 기둥 서방이나 하는 놈들이 무수하게 있소. 기중

에 내 아는 오입쟁이 한 녀석이 있었는데 이 자가 다방골에서 서문 밖 홍제원, 남문 밖 잰배

에 이르기까지 한 집 건너 두 대문 세 기방에 드나들며 기생년들 오줌을 잘잘 싸도록 만들었

거든. 하여튼 이렇게 주지육림을 헤매다가 반평생을 보냈지. 나이는 들지, 양기는 쇠락하고,

다리는 후들후들 한번 올라갔다 내려오면 눈앞에 안개가 서리고 일월성신 북두칠성이 뱅뱅

돈단 말이렸다. 한 입 건너고 두 몸 건너 소문과 내력이 파다히 알려지니 제깐 놈이 몸붙일

곳이 있나.

에라, 화무십일홍이요, 권불십년이라는데 오입쟁이의 말년에 어디 기댈 곳은커녕 맞아 죽기

나 꼭 알맞은지라, 한양을 떠나리라 작정하고서 팔도강산 유람을 나섰소.

물은 흐르는데 그름 가는 곳은 어드메뇨, 허망한 인생이로구나! 예전엔 뒤 보아주는 무뢰

배나 있었건만, 일시에 몰락하니 어느 년 하나 배꼽 맞추잔 일없고, 어느 놈 술 한잔 사는

이 없어 저자에서 따귀를 맞아 입술과 코피가 터져도 혀끝 한번 두드리지 않는구나! 간혹

들을 가다가 들밥 먹는 농부들 틈에 기웃기웃 기장밥이나, 보리밥이라도 얻어걸릴까 논두락

을 걸어가건만, 제놈이 여름철엔 시원한 데 찾아 놀고, 겨울철엔 따뜻한 데 찾아 쉬어 놀고

쉬고 일 한번 못 해본 놈이 손가락은 산수 냉천에 은어 뱃바닥같이 새하얗고. 매끄럽지. 손

본 농부님네들 천하지대본 장대 세워놓고 만정이 똑 떨어져 에이, 여보 양반이 들밥을 자시

다니, 그냥 내쳐 길이나 가요, 한단 말이우.

이렇게 흘러 다니는 중에 폐의파립 꼴이 되고, 몰골은 폭삭 늙어, 오래된 과부 월경서답

꼴로 벽촌서 논두락을 베게 되었는데, 사람이 고생을 좀 해보니까 철이 조금씩 들어간 지라,

내 어디 가서든 남들처럼 땀흘리고 일하여 내 밥 찾아 먹으리라 작심하잖았겠소.

걷다보니 저어기 두만강 변경에 회령까지 갔것다. 성문을 지나는데 방이 붙었거늘, 명필을

구하오, 글을 써주면 오백냥을 주리다 하는 소리였지. 견물생심이요, 사람은 근본에 따르더

라고, 이 파락호가 사심이 안 들리 없었수.

찾아갔지. 고래등 같은 기와집이 날아갈 듯 서 있는데.....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 세가지

가 있소그려. 산에 범이 무섭고, 미친놈 칼자루 잡은 것이 또한 무섭고, 무식한 놈 돈 가진

것은 더더욱 무섭거든. 이 부가옹 나리가 금병풍을 가졌는데 글씨 받아 치장하려고 잔뜩 기

다리다가 자칭하여 찾아든 파락호에게 버선발루 뛰어나왔것다.

허어 흠, 허어 흠, 우선 심기를 돋워야 하니 서른 날만 잔탕 놀게 해 주오. 그날부터 산해

진미에 말 타고 칼 잘 쓰는 북변기생 모두 모아다 풍악을 잡혀 연일 잔치 하니 서른 날이

마치 무릉도원의 일각이라 .

허어 흠, 허어 흠, 이번에는 붓을 골라야 하는데 수종 드는 예쁜 종년 하나 붙여두고 몸

보신 좀 하게 해주오. 서른 날 동안 양기를 길러야 하오. 서른 날이 또한 옹기장수 지겟작대

기 치듯 지나갔겄다.

흐음, 허어 흠, 이번에는 먹을 한동이 갈아둬야 하니 과수댁이나 하나 넣어두고 먹시중이

나 들게 해주오. 서른 날이 더욱 남가 일몽이라.

드디어 안달이 오른 주인 양반 의심이 부쩍 들어 재촉하고 볶아치며 핍박할제, 이제 열흘

말미를 주겠으니 그때까지 하지 않으면 관가루 넘기겠단 말이렸다.

열흘이 흉년의 뻘건 해보다 더욱 길어서 밤마다 엎치락 뒤치락 이 궁리 저 궁리 저 술수

생각 중에 달아날 길밖에 업어졌지. 그래 마지막 밤이 되어 옷을 주섬주섬 싸들고 발끝걸

음으로 일어서는데, 허 갈 데가 없구나, 두만강 끝에 와서 어디로 간단 말이냐. 이날 짧은

밤이 사나이의 평생이라, 눈앞에 다가섰으니 발이 떨어져야지.

까짓 거..... 쓰고 말리라. 결단하자마자 일어서서 왕붓 꼬나들고 항아리 그득한 먹을 푸욱

찍어서 병풍 끝어세 저쪽까지 한일 자를 주욱 긋고는 문지방에 발이 걸려 고꾸라지니, 섬돌

에 해골이 깨져 피가 낭자했단 말이우.

자, 이 꼴이 되어 주인양반 노기 충천했으나 별도리가 있나. 오다 가다 걸리 건달놈께 병

풍 버리고 엉뚱한 송장 치우게 되었지.

헌데, 몇년 있다가 강 건너 되 사람 중에 박물군자 하나이 지나가다 보니 남쪽으루 훤한

서기가 뻗쳤어. 서기를 따라 부가옹 나리 대문 앞에 이르렀지. 문을 두드려 사유를 말하고,

박물이 있는가 물었더니, 고개를 이리 기웃 저리 기웃 하다가 버린 병풍이 광에 있소. 보여

주오. 그래, 데려가 광문을 여니 이 박물군자 무릎을 탁 치더란 말이우. 커 사람 한목숨 들

었고나.

그 오입쟁이 녀석, 미루고 미루다가 온 평생이 코앞에 왔은즉 물리칠 재주가 있나. 마지막

기를 몽땅 쏟았으니 억만 전의 박물이 되었지. 허허 어떠우? 내 얘기가. 사내의 목숨이란 아

주 귀한 것이우."

"거참 그럴 듯한 예말이로굿."

"헤어질 때가 되니까, 더욱 흥이 나는 모양이구려. 어젯밤엔 소리한 가락 안 뽑더니만."

길산이는 남은 술을 병째로 들어 꿀꺽꿀꺽 마시고 나서, "두고두고 피차의 흥이 많아질

텐데 어서 강을 건너가오." "그럽시다. 우리 그러면 보름 뒤에 해주 관시놀이 때에 만나기

루 하고..... 저기 부담마를 가져가요. 포목이 조금 있소."

"우리의 게회에 요긴하게 쓰겠습니다."

"아직두 해주 용당포 뱃사람들과 왕래가 있으시우?"

"예, 철마다 거기 들르면 우리가 풍어제를 놀아줍니다." "하면 ..... 그 어계방에서 만납시

다."

상단은 봉산을 바라고 월단강을 건너갔다. 길산이네는 보수로 이백냥과 적지않은 포목을

얻어가지고 재인말에 돌아왔는데, 나이든 광대들은 이제 그들의 연회가 상인들과 밀접한 관

계를 갖게 되었음을 어느정도 이해한 것 같았다. 늙은이들 중에서 누구보다도 깊은 관심을

보인 것은 길산의 아비 장충이었다.

 

4

출행 계회날은 큰잿말과 작은잿말이 온통 떠들썩 했다. 우선 큰잿말의 뒷산 등성이 빈터

에서 사냥굿을 벌일 예정이었다. 돼지도 잡고 술도 빚고 갖은 과물에 떡을 쳐서, 재인말의

아이들은 명절 때보다 더욱 행복해 보였다.

새벽에 큰잿말에서는 모두들 재수를 준비했고, 부녀자들이 작은잿망에서도 거의 올라와서

하루 종일 음식을 장만했다. 밤이되자 집집마다 종이등을 켜서 매달았다. 자정이 가까워 졌

으나 아이들도 잠을 자지 않고 기다렸다. 광대들은 맨 앞에 용등을 앞세우고 좌우 사방으로

관솔 횃불을 밝혀서, 청룡 황룡이 그려진 붉고 푸른 깃발을 펄럭이며 뒷산으로 올라갔다. 빈

터에는 이미 당집 문이 열려 있었고 거기서 스무 발짝쯤 떨어진 신목에는 색색이 댕기를 가

득 달아서 새롭게 치장해놓았다. 또한 돌무더기 앞에도 촛불밝힌 작은 세상이 놓였다.

제관은 손돌 노인이었는데, 화려한 색동 더그레에다 벙거지를 쓰고 있었다. 제상이 초가의

당집앞에 차려졌다. 돼지 대가리와 각색 과물, 떡이 놓여 있었고 당에는 종이 연꽃이 두 송

이 새것으로 바뀌어졌다. 굿에 참가할 광대들이 화려한 각색 빛깔의 더그레에다 탈을 쓰고

있었으며 장충의 아내와 큰돌의 아내를 위시한 무녀 여섯이 홍철릭 차림에 벙거지 비껴쓰고

신칼, 부채, 놋쇄방울 등을 각기 들고 있었다.

제관을 앞세우고 풍물을 잡히면서 마을의 구석구석에 축수를 하며 돌아다니는 데서부터

굿이 시작되었다. 워낙 광대들의 마을인지라 남녀노소 없이 모두들 풍물에 맞춰 고개짓 어

깨짓하며 풍물의 뒤를 길게 줄을 이루어 쫒아다녔다. 이글거리는 관솔 횃불빛에 들어난 원

색의 옷자락과 탈이 제 모습을 찾아 선명하게 어둠속에서 떠올랐다.

북과 장고는 떵 더쿵 꿍떡하며 풍물을 이끌었고, 가끔씩 징소리가 장중한 여운으로 흥겨

운 놀이 기분을 엄숙한 의식의 분위기로 감싸는 것이었다. 대금과 날라리 소리가 불꽃의 바

깥에 너울대는 뾰족한 불의 혀끝같이 날름대면서 별이 쏟아질 듯한 하늘위로 날아 올라갔

다. 그들은 마을을 한 바퀴 돌며 일일이 축수하고 나서 다시 뒷산 당터 앞으로 올라갔다.

당터의 사방에 어른 키만한 모닥불이 훨훨 타오르고 있었다. 징소리가 울리고 제관인 손

돌 노인이 당에 들어가 산신님, 서낭님, 창부님께 각각 술을 올리고 세번 절하고 나서 축문

을 잀었다. 그것을 불살라 허공위에 살풋이 놓아 보낸 다음에 무악이 흥겹게 흐트러지며 당

굿의 신내림 춤이 시작되었다. 당주 무녀인 장충의 아내가 부채와 방울을 흔들어대며 뛰어

나왔다. 부채를 떨고 방울을 요란하게 흔들며 온 몸을 솟구쳐 마당을 빙빙 돌아 나서다가,

펄쩍 뛰어서는 그 자리에서 널을 뛰듯 겅정거리다가 다시 원무를 했다. 춤의 사위가 바뀌며

고조될수록 무악이 빨라지고 동작은 거칠고 강렬하게 계속되다가 온몸을 뻗쳐 부들부들 떨

다가 드디어 입신하면서 뒤로 뻗뻗이 넘어졌다. 넘어져서도 사지를 버둥대며 이리저리로 꿈

틀거리는데 마치 악형을 당하는 지옥의 악귀처럼, 또는 생의 괴로움을 몸으로 재현하는 듯

그 괴로움은 또한 황홀한 듯이 무녀의 동작위에 가득찼다.

"아아르르르르....."

하는 황홀경의 신음 소리와 함께 무녀가 벌떡 일어서서 전신을 떨다가 다시 넘어졌다. 이제

는 사뭇 땅에 온몸을 붙이고 몸부림치면서 땅을 긁고 기어갔다. 입에는 거품이 가득 차 있고,

눈빛은 이미 지상에서 떠나 명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기어가고 있는 동작은 버림받은 사

랑을 찾아, 필사적으로 추적하는 한의 춤인 것 같았다. 너는 나를 버릴지라도 끝내 쫒아가

안기고 말리라. 나를 짓밟아도 , 나를 찢어도, 나를 병들게 해도, 나를 때려도, 나를 싫어해

도, 내게서 모든것을 빼았아도, 내게 욕을해도, 침을 밷어도, 그리고는 끝내 나를 죽인다 해

도...... 기어가는 동작의 끝에서 무녀가 다시 일어섰다.

“어어어헉! 허헉, 아르르르르.”

또 쓰러진다. 그리고는 오랫동안 꼼작없이 업드려 있다가 드디어 환희의 신생이 되면서

되살아났다. 춤이 경쾌하고 힘차게 계속된다, 땀투성이와 흙범벅인 얼굴로 새된 목소리가

낮고 굵게 흘러나왔다. 부정거리가 시작되는 것이다.

“앉아서 본 부정 서서 들은 부정 누들은 부정에 귀들은 부정이오. 손으로 만진 부정 입

으로 옮긴 부정 머리끝에두 백나비 센나비 부정이오. 머리 풀어서 발상두 부정이며, 은하수

곡성두 부정이오. 산에 올라서 산 머구리, 들에 내려서 땅 머구리, 네 발 가진 짐승에 살생

두 부정이오. 재인말에 벌로 품은 처사로서 수많은 인간이 넘나들 제 따라들은 부정에 묻어

든 영정이오. 마루 넘어오던 부정, 재 넘어오던 부정, 신실히 적적이 물리쳐줍소사. 시위를 하

소사. 부리 영산은 산에 영산. 산에 올라서 낙락장송은 늘어진 가지에 목을 매서두 자결 영

산이오. 들루 내려서 만경창파에 둥실 빠져 수살 영산이며, 낳구 가고 배고 가시구, 서상 사

발에 손에 들고 허튼 머리를 빗어 끼고, 청치마 옆에 끼고, 거적자리를 옆에 끼고, 가위 실

패를 허리춤에 넣고서, 울고 가던 하탈 영산, 거리거리에 객사 영산, 총포 밎고 칼맞고 가

던 영산, 불에 타서도 화덕 진군에 가던 영산이며, 부스럼 뜨결에 가던 영산이요. 폐병에

가던 영산, 냉병에 가던 영산, 주마창에 가던 영산, 오늘 많이 먹고 걸게 먹고 옘병 속병에

가던 영산, 모늘 다 이 정성 들인 끝에 이터전에 원주 영산, 집주로 있던 영산, 많이 먹고

이러니 탈이 없고 저러니 탈이 없이, 오늘은 그저 고픈 배 불리고 마른 목 적셔 가고, 진거

는 먹고 가고 마른 거는 싸서 질빵 걸어 지구 가구, 여영산은 똬리 받쳐 이구 가구, 동자 영

산은 오질 앞에 싸가지고, 인정 받고 노자 받아 좋은 데로 천도를 허소이다.”

무녀는 부정거리로 당에 내려올 신의 길을 깨끗이 씻어내리는 동작으로 사방에 술과 음식

을 조금씩 뿌려주어 잡귀를 배웅했다. 이어서 방울을 처들어 예리하게 떨어대며 허공에서

땅을 향하며 신을 받아 내리는 동작이 시작되었다. 공수가 내리는 기미를 보였다. 공수란 신

이 무녀의 몸에 완전히 깃드는 망아 입신지경에 귀신의 말을 하게 되는 상태이다. 무녀는

양손에 백지를 갈라서 쥐고 북편 어둠속에다 절을 계속했다. 저 구월산 삼성봉에 계신 태고

조 단군께 영험을 기원하는 것이다. 무녀가 가망 청배 첫구절인 초가망, 이가망, 삼가망을

선소리로 매기자 잽이의 굿거리장단이 나온다.

장충이 북을 두드리고 있고 그 여자의 신딸인 봉순이가 무동이 복색을 곱게입고 앉아 장

고를 때리고 있었다. 가망머리와 말명거리가 끝나고 이어서 봉순이가 찬란한 색동옷에다 남

빛 철릭을 받쳐 입고서, 머리에는 붉은 말뚝 갓을 쓰고, 두손에 삼지창과 언월도를 각각 들

어 휘두르며 경쾌하게 마당으로 뛰쳐들어왔다. 송도 덕물산 산신 최영장군을 모셔들이는 것

이다. 참관하는 이들은 돼지비계를 성계육으로 하여 질근질근 씹어 삼켰다. 네 이 용렬하고

비열하게 권세를 도적질한 자여, 충신을 배반하고 간교히 입국한 자여, 헌 것보다 새 것이

한의 대상이 되는 것은 새 것이 새롭지 않으므로 인해서이다. 물이 흐르기를 바꾸어 거스르

지 않기 때문이다. 씹혀라, 씹혀져라.

“안산은 여덟에 밖산은 열세 위라. 일곱지 명산에 제불지 제천이다. 신덕물 후 덕물에 송

악은 상지 어마 장군에 백마신령 아니시라. 대소마 대장군님, 나라 충신에 임장군님, 덕물산

에 최영장군님 아니시랴. 제주 한라산에 여장군님 아니시리, 황해도 평산에 신장군님 아니시

리, 검은 땅에 헌 백석 마누라백섯 아니시랴.”

이글대며 타오르는 불꽃 너머로 창칼 부딪는 소리가 날카롭고 무동 복색의 봉순이의 날렵

하고 맵시있는 두발이 끊임없이 마당을 돌고 있었다. 상산 노랫가락이 낙랑하게 울리고 나

서 봉순이는 끝으로 무동춤을 질펀하게 추고 들어갔으며 다른 무녀가 거리를 받아 별상거

리, 대감거리, 제석거리를 연이어 풀어나갔다. 다음 처녀귀신의 호구거리와 군웅거리가 봉순

이 비슷한 차림의 처녀무에 의해서 엮어졌다. 밤은 이미 깊어 새벽의 찬 이슬이 내려 덮이

건만 마을 사람들은 아무도 거리를 뜨지 않고 함께 신 들린 듯 빌고 또 빌었다. 드디어 그

들 관대의 귀신인 창부거리가 시작되었다. 광대의 귀신은 한편 청계씨라고도 하는데, 이때에

무당의 선소리와 함께 귀면을 쓴 탈광대 셋이 뛰쳐나와 미친 듯이 춤을 추며 돌아갔다. 한

삼이 하늘에서 내려온 날개처럼 불빛속에 어른어른 날아다녔고, 탈은 모닥불 가까이에서 갑

자기 나타났다가 다시 어둠 가운데 잦아들곤 하는 것이었다. 무녀는 언월도와 삼지창으로

그들을 찌르려고 달려들었다.

무녀가 탈광대들을 찌르려고 다가서면 광대들은 뒤로 물러섰다가 소맷자락으로 무녀를 때

리며 껑충 뛰었다. 무녀는 그들을 마당구석으로 몰아냈다가 맵시있는 뒷걸음으로 끌어올려

얼싸안을 뜻 했다가는 다시 그들을 버리고 원무로 마당을 빙글빙글 돌아갔다. 탕광대들도

모닥불을 훌쩍훌쩍 건너뛰며 경쾌하게 앉았다가 솟구쳐 번갈아 다리를 바꾸면서 맴을 돌았

다. 무녀가 소리를 매기는데 탈광대들은 온몸을 흔들어 광대의 정령답게 미친듯한 난무로

마당을 가득히 채우기 시작했다.

“어허 창부 만신 몸주대신 창부 안산 광대, 밖산 청계, 부리 창부, 신에 창부, 적성 창부,

일년허고도 열두달에 횡수 창부, 놀고 나서 신사덕에 구관덕을 입혀주고 놀고 나오.

어어어 꿋자, 창부씨, 광대씨 돌아왔소. 황해도 봉산 광대, 우리가 모두 일년 홍수 창부,

대주에 몸주 창부 기주에 직성 창부, 일년 열두달에 홍수 창부가 만사망 셈겨주고 떼사망

셈겨주고, 일년 홍구 막아주거들랑, 우리 광대씨 청계씨가 놀구 나오.

어어허! 우리가 만사망 은산에 은을 뜨고 재물산에 재물 뜨고 철양산에 철양떠서 만사망

셈겨줌세, 어어얼씨구나 저절씨구.“

탈박과 부녀의 어우러진 춤이 아까처럼 다시 전투의 형세로 바뀌었다.

“에익!”

“에···에에!”

 

'Reading Books > Reading Books'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길산 1권 (27)  (0) 2026.02.27
장길산 1권 (26)  (1) 2026.02.26
장길산 1권 (24)  (1) 2026.02.24
장길산 1권 (23)  (1) 2026.02.23
장길산 1권 (22)  (1) 2026.0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