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Books/Reading Books

장길산 1권 (23)

카지모도 2026. 2. 23. 06:03
728x90

 

"여기에 신복동이가 나와 있소?"

"신생원 나리는 여기 안 계시구. 그 대신 전에 주내방 차인 하던 사람이 회계 어른으루

나와 계시우."

"주내방 차인? 그자를 지금 어디로 가면 만날 수 있겠소?"

"결성골 용정루엘 찾아가보슈."

"결성골 용정루..... 처음 들었는데."

"예, 게가 전의 임대인 댁이지요."

박대근이는 짧게 신음했다.

"나쁜 놈들! 남의 집을 빼앗아 창가를 만들다니...."

"아유 무슨 말씀이 그렇게 어패가 있으슈. 빼앗긴 뭐, 그 바보 같은 작은 임씨가 헐값에

팔았지."

박대근이는 눈을 부릅뜨고 노파를 건너다보다가, 음식값을 치러주고는 나서려는데 노파가

불렀다.

"나리, 셈이 맞질 않는데요."

"뭐요, 밥 겸상 열에 술 한 말이면 셈이 꼭 맞는데."

"아니...... 또 있잖우. 얘기값을 주셔야지."

"그래?"

박대근이는 두말 않고 닷 푼을 내던졌다.

박대근이의 상단 사람들이 선창에 이으러 물품을 위탁하느라고 행수를 찾는데, 어계방에

서 꺽돌이가 나왔다.

꺽돌이는 상단 사람들을 쑥 훑어보고 나서 물었다.

"어디 임방 동무 되시우?"

"예. 송도 배대인 댁입니다."

"송상이시우?"

"예, 경강 마포의 강주인에게 물품을 부치려 하오."

꺽돌이는 어둠속에서 서 있는 나귀들의 머릿수를 눈짐작으로 헤아렸다.

"몇 바리요?"

"이십 바리가 넘습니다."

"한 척 값을 내슈."

"한 척이라니..... 전세를 내란 말이우?"

"그렇소, 다른 짐들이 모두 떠나버렸으니, 배를 낼 수가 없소이다."

박대근이네 차인이 고개를 저었다.

"한 척 값이라면, 화물에 비해 너무 비싼걸."

"아예 물건을 우리 객주 여각에다 위탁매매해버리든지, 아니면 다른 화물이 모일 때까지

기다리슈."

박대근이가 도착하자 그들은 분개하여 제각기 떠들었다.

"행수 어른, 이곳 놈들은 순전히 도적들입니다. 말짐 이십여 바리에 배 한 척 값을 내랍니

다."

"물건을 저희 객주에 넘기랍니다." 박대근이가 나섰다.

"인사 틉시다. 나 송도 임방의 박대근이우."

꺽돌이는 그를 뚫어지게 노려보면서 인사는 트지 않고 오히려 되물었다.

"당신네들 송화서 난장 텄지?"

"우리네는 관에 개시세를 내고, 장을 설치했소이다. 송화에두 갔었소."

꺽돌이가 그제사 생각이 났다는 듯,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흥, 그러구 보니까 약산골서 장을 텄던 사람들이군."

"알고 있소. 무더리에서 장을 냈었지요?"

꺽돌이가 다짜고짜로 박대근이의 멱살을 잡았다.

"네 이놈들 잘 만났다. 여기 우리가 있을 줄 몰랐지. 어디 한번 맛좀 보아라."

박대근이는 멱살 잡은 손을 틀어쥐고 뻣뻣이 버티면서 부드럽게 말하였다.

"장사하는 자들이 원행 나가면 서루 경쟁하게 마련인데, 이거 이러지 말자구. 댁네들두 송

도 들를 것 아닌가."

"잔소리 마라 이놈. 너희들이 문화 광대 패거리와 안악장까지 갔다는 것 알구 있다. 우리

가 얼마나 별렀는지 아느냐."

"허, 이 사람들 상대 못하겠군."

박대근이도 은근히 부아가 솟아올라 상대를 쥐어박으려는 참인데 누군가 그들 사이를 가

르며 뛰어들었다.

"왜들 이러나, 이러지들 말게."

"말리지 말어. 저놈들께 빚 받을 게 있단 말야."

"자넨 좀 가만있어. 장사하는 사람들이 쓴 것 단 것 가려서는 오래 못 가네."

하고 나서 그는 박대근이를 향하여 허리는 굽혔다.

"손님, 욕보셨습니다. 나는 여기 선창서 행수 선인을 맡아보는 사람입니다."

"나 모르겠소? 박대근이오."

"아이구 참 오랜만이올시다. 내가 이번에 선창에서 머물게 되었습니다."

"아는 이가 있으니...... 마음을 놓았소. 짐 좀 부칩시다. 종전대루 말이오."

"그러시지요. 반 척 값만 내십시오."

"좋소. 그러면 송증을 써서 객주로 보내주오. 우리는 거기서 묵을 테요."

"차인으론 누가 동행하시게?"

"이 사람이 갈 거요." 하며 박대근이 차인 한 사람을 지정해주었다. 새로 된 행수 선인이

말하였다.

"그럼 이분은 남아서 물품과 송증을 확인해주실까요. 내일 새벽 조수 때에 배가 떠납니

다."

박대근이가 선인의 소매를 끌어 사람들에게서 멀찍이 떨어진 다음에 낮은 목소리로 물었

다.

"우대용이의 사형이 확정되었소?"

새 행수 선인은 뒤를 힐끗 돌아보고 나서 대답했다.

"확정되었답니다. 아마 한달 안으루 주내방 사거리서 집행할 모양이오."

"무슨 수가 없겠소?"

"글쎄요. 나는 이미 신씨네 사람이 되었으니 주인을 배반할 수야 있겠습니까만...." 하며

망설이는 선인을 박대근이 달래었다.

"댁이야 예전 안면으루 내게 말해줄 뿐인데 배신이랄 게 있소."

"이번 일은 모두 우대용이의 살인으로 해서 신생원이 유리하게 된겁니다. 그러니 신생원

쪽에서는 대용이를 한시바삐 처치하는 게 원입지요. 그 사람을 빼내는 것은 바다에서 여의

주를 건지는 일과 같소."

"무슨 통기라두 넣어볼 구멍이 없을까?"

"글쎄...... 나는 잘 모르겠소마는, 저쪽 관선 선창에 가면 포교가 나와 있습니다. 그이가 맨

처음에 현장을 포착하여 대용이를 압송했으니, 무언가 알 수 있을지두 모르겠소."

"고맙소."

"내가 그러더란 말은 아예 하지 마시우."

박대근이는 상단 사람들을 객주로 보냈다. 선창에는 꺽돌이란 자가 없는 것으로 미루어

객주 쪽에 먼저 간 모양인데, 박대근이는 시비가 벌어질까 몹시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그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고분고분 눌러 참으면서 상대를 하지 말라고 사람들에게 신신당부를 해

두었다.

그가 포교를 만나 우대용이에 관하여 물으니 포교는 단번에 경계하는 빛을 보였다.

"여보, 사형이 결정된 자를 내 어찌 알겠다구 묻는 거요?"

"우가는 나허구 친동기간이나 다름없는 사이라서 그럽니다. 비록 도형수노릇을 하게 된다

할지라도...... 어떻게 봄까지만 목숨을 부지할 길이 없겠습니까?"

포교는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젓기만 하는 것이었다.

"나두 장사치들 중에는 꽤 알려져 있는 사람이올시다. 만약에 구명할 길을 알려주신다면

그 은혜는 쪽 갚겠소."

한참이나 묵묵히 생각에 잠겼던 포교가 입을 떼었다.

<중간 몇줄 누락>

잠시 노리고 섰던 두 사람 중에서 감동이가 서너 걸음 크게 뛰며 윽박해 들어갔다.

노가의 장검이 원을 그리며 휘익 날았다. 쨍겅 하는 소리가 들리며 칼날이 마주쳤다. 감동

이는 반대편으로 휘둘러 오는 노가의 칼날을 피해 그의 등뒤로 빠져나갔다.

노가는 자기 뒤로 빠져나가는 감동이를 치기 위해서 휘둘렀던 칼을 그대로 세우며 아래로

내리쳤다. 감동이가 재빨리 옆으로 비켜나며 예도를 노가의 가슴팍에 꽂을 듯이 찔렀다. 노

가는 칼날로서 상대의 칼끝을 옆으로 뿌리쳤고 끼이꺽하는 칼날 엇갈리는 소리가 들리면서

두 사람은 칼을 잡은 채 몸이 닿도록 가까워 졌다. 두 사람 모두가 진땀으로 가슴께와 등판

이 흠씬 젖어 있었다. 벌써 네 합이 지났다.

두 사람이 다시 떨어질 적에 노가가 장검을 수평으로 휘둘렀는데, 감동이의 옆구리가 그

어지면서 갈라진 무명 적삼 위로 피가 배어나왔다. 노가는 자신만만하게 감동이에게로 뛰어

들면서 쳐든 칼을 자기 머리 위에서 회전시켜 상대의 목을 바라고 엇비슷이 베려는 찰나였

다.

감동이가 한 쪽 무릎을 꿇어 파고들며 노가의 배에 예도를 꽂았다. 노가의 손에서 장검이

힘없이 떨어졌다. 그는 눈을 부릅뜨고 자기 배를 내려다보았다. 감동이는 다시 팔목에 힘을

주며 칼을 상대의 몸속으로 깊이 박았다. 노가가 다리를 푹 꺾더니 뒤로 넘어졌다. 감동이가

발로 그 가슴을 내지르며 칼을 쑥 뽑아내자, 피가 일직선으로 솟아오르며 감동이의 얼굴과

가슴에 튀었다. 감동이는 소매로 제 얼굴과 피를 닦으면서 뒤로 천천히 물러났고, 노가는 다

시 움직이지 않았다 감동이가 몇몇 졸개들을 지적해내며 말했다.

"시신을 수습해서 묻어주어라."

감동이는 박대근이에게 다가가서 한숨을 길게 내쉬고 나서 말했다.

"거 술 한 잔만 주슈."

박대근이가 쪽박에 술을 따라 내밀자 그는 벌컥벌컥 맛나게 들이켰다. 노가의 시체가 치

워졌다. 감동이가 이제는 좀 홀가분해진 낯으로 말했다.

"산채로들 올라갑시다. 며칠 놀다들 가시우."

"글세..... 우리는 장삿길이 바빠서 어쩌지?"

박대근이가 선뜻 대답을 못하고 있는데, 갑송이가 말했다.

"모처럼 사귄 놈을 이런 데서 놓아 보낼 수야 있수? 아주 진을 빨아 먹구 가야지." "산

채로 가십시다."

"아따 그러지 뭐. 구월산 녹립당의 행수 두령께서 초대하시는데 우리가 마다할 리가 있

나."

하면서 박대근이도 웃었다.

"그런데 자네들 칼솜씨가 제법이데그려. 아무래두 훈련원 위영서 배운 것 같데. 그렇지 않

고서야 노가나 나네가 검을 본떼있게 다룰 리가 없지." "내막은 차차 얘기하지요"

"그러구 저기 키 큰 자는 창술을 제법 알더구만."

"예, 그자는 본시 평안진군의 초장이었수. 상관을 패 죽이구 쫓기다가 우리 패에 들어온

사람인데, 됨됨이가 아주 근직하우."

감동이가 그 자를 손짓해서 불렀다.

"어쩌려나, 부두령이 되어 나하구 산채일을 도와주겠나. 아니면 떠나려나? 거취는 자네 마

음대루 하게."

"두령이 없으니, 의당 성님이 산채를 칻을 것이고, 나두 불만은 그리 없수." 하고 그자가

말했고, 박대근이가 웃는 얼굴로 말을 붙였다.

"나는 고향이 파주인 박대근이란 사람이오. 우리 알구 지냅시다." "안주의 오만석이우."

길산이와 갑송이도 차례로 오만석이와 인사를 나누었다.

박대근이는 길산이, 갑송이들과 구월산으로 들어가기 전에 차인들을 돌려보낼 작정이었다.

그는 한 사람을 불러서 일렀다.

"내가 내일 안악 읍내에 당도하기 전까지는 장시를 열지 말라구 전하게." "예 그럼 저희

는 배고개서 한내를 끼구 안악으루 들어가겠습니다.

"그리구 우리 일을 절대루 아무에게두 얘기하지 말게. 어둡기 전에 빨리들 출발해야지. 어

디 상한 사람은 없나."

"뭐 정갱이 조금 삐구 허물 벗겨진 사람이 있습니다." 이렇게 수작들이 오갈 때에 화적

들이 지고 왔던 짐들을 차인들 앞에다 쌓아놓기 시작했다. 박대근이 감동이에게 물었다.

"이 사람아, 이게 뭔가."

"잘 알면서 뭘 물으슈. 내 아무리 숭악한 도적놈이기로 형제지간에 그럴 수 있수? 다 돌

려드리는 게유."

"결이 나서 뒤쫓아왔다가 자네 산채의 기강을 잡는 일을 도운 것이네. 재물 찾아갈 생각

없네. 그렇다면 아예 자넬 묶어 포도 군사를 앞세우고 산채를 들이쳤을 게 아닌가." "공연

히 그러지 마슈. 나두 이런 물건은 못 받겠수." 감동이는 팔짱을 끼고 뒤돌아서버렸다. 박

대근이가 우물쭈물하는 쫄개들에게 말했다.

"여보개들, 빨리 짊어지지 않구 뭘 꾸물대나..... 모두 산채루 가져가게." 졸개들이 다시

부담을 짊어지려는데 감동이가 몹시 비위가 상한 듯이 고함을 질렀다.

"이놈들아, 범이 아무리 날고기를 좋아해두 저희 고기는 서루 가리는 법이다. 그 짐에 손

을 대면 손모가지들을 모조리 잘라버리겠다."

곁에서 빙글빙글 웃고 섰던 갑송이와 길산이가 보다못해 그들 가운데로 끼여들었다. 먼저

갑송이가 말했다.

"온 도적놈과 장사치 사이에 말은 드럽게 많네, 예미랄 거, 말은 보태구 떡은 떼랬다구 그

부담짐들이 싫거든 날 주오. 내 몽땅 지다가 화식전에 이름이나 올리게." 길산이가 대근이

에게 웃는 얼굴로 말했다.

"그럴 거 없이 되찾은 재물 중에서 골라 이 사람들게 선물을 하시죠. 또 자네들두 그렇

잖나. 사람이 사귀고 의를 맺었으니 이런 물건을 주고받는 게 그렇게 의기가 상할 노릇두

아닐세."

박대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포목 한 짐과 어포 한 짐을 내어놓었고 나머지는 모두

차인들이 지고 내려가도록 했다. 그가 감동이에게 말했다.

"자, 이러면 되었나?"

"고맙수."

감동이가 씩 웃으며 말했다. 곁에서 잠자코 섰던 만석이가 그들을 재촉했다.

"자아, 빨리 떠납시다. 아사봉까지 가려면 많이 늦었으니....." "골짜기가 벌써 어두워졌는

걸. 산채엔 누가 남아 있나?" "갑득이가 다섯쯤 데리구 있수.우리가 오늘 들어가는 줄 알

거요." 만석이를 앞장세우고 졸개들이 뒤따랐고 감동이는 길산이와 함께 뒤로 떨어져서 걸

었다.

그들은 배고개의 장연길을 가로질러고심산 초원속으로 들어갔다. 산줄기가 부드럽게 한내

의 상류와 나란히 가다가 구월산 연봉의 시작이 되는 실토봉에서부터 산세가 험난해지는 것

이었다. 이미 주위가 캄캄해졌으나 곧 떠오른 반달로 드러난 등성이가 굽이굽이 잘도 보였

다. 고심산과 실토봉을 잇고 있는 낮은 구릉에 도착한 그들은 풀밭에 앉아 술로 목을 축이

며 잠깐 쉬었다. 거기서 투구봉과 아사봉 사이의 분지인 된목 이골까지는 산길 삼십리 거리

였다. 달빛이 부옇게 비친 장재이벌의 은띠 같은 한내천을 내려다보며 박대근이 중얼거렸다.

"허, 좋은 산천이로다!"

"도적놈이 살기엔 참 아까운데지."

갑송이도 말했다. 감동이가 핀잔을 주었다.

"도적놈의 성님두 도적이여. 뭐 도적이 따루 있는 줄 아는가베." "아무렴 내가 제놈 같을

라구....."

"그렇지, 출신이 원래 각좆이니까."

"어..... 이 낯짝 새까만 잔나비새끼가 사람을 우롱하는구나." 그들의 지분대는 꼴이 제법

다정하여 주위에서는 참견 않고 웃기만 하는데, 길산이 감동이에게 물었다.

"그래 아우는 도적놈이 따루 없다고 했것다. 어째서 그러한가." "아 그야 뻔한 이치 아니

우. 나라를 세운다는 것이 큰 도적질 아닙니까. 벼슬아치들은 권력을 도적질해서 가족들과

친척과 저희 연줄로 끼리끼리 해처먹고 허울 좋은 과거까지 독차지하는 데다, 이제는 조정

에 인재가 끊겨 재주 있는 자들이란 모두 죽임을 당하거나, 옥에 갇히거나, 숨어지 살지

요. 임금님부터 재상까지 화적보다 더 큰도적놈들이지 뭐요. 백성들은 헐 벗고 굶주리는데

쥐새끼 같은 무리들은 세도 권문에 아첨하여, 많은 뇌물로 감사나 병사를 사들여 수령직임

을 맡으면 들인 밑천을 백성들에게서 뽑아내려 하지 않우. 함부루 국법을 우롱하고 멋대로

부정해서 백성들의 피와 땀을 짜내고, 자기네는 호박이다 금붙이다 비치다 옥이다 갖은 박

물을 몸에 두르고는, 가엾은 백성의 가난을 향하여 게으른 탓이라고 낭비하지 말고 부지런

하라 닥달하니 참으로 적반하장이지요. 사리사욕에 눈이 팔렸으니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은

옅고, 형벌은 가혹하여 그 모진 매에 얼마나 많은 자가 병들고 죽었겠수. 이런 놈들은 제

고향에 재산과 토지를 늘리고 뇌물로서 상납하여 자리를 지키는데 급급하지요. 그러나 벌은

커녕 오히려 지위만 높아지고 , 간혹 실수하여 물러나게 되더라도 방게와 꽃게가 옆으로

기어가긴 마찬가지라고 저희끼리 비호를 해주지요. 자리가 바뀌어도 그놈이 그놈, 도적놈이

도적놈을 뽑는 식이니, 이런 놈들은 도적의 작은 두령이지요. 부저, 향족, 토반들은 금력으로

줄을 대어 귄세에 힘입고 모리하고 국세나 까먹고 걸핏하면 양민의 등을 치니 두령의 졸개

들입니다. 각 고을의 내외관속들은 문서를 거짓으로 꾸며 무리한 세납과 명목없는 잡부금

을 거두고, 교묘하게 속여서 국고를 축내는데 이놈들은 도적의 손발이 아니고 뭐요. 그뿐이

아니오. 자칭 학사라고 뻐기며 큰갓에 넓은 도포자락으로 거들먹거리는 선비라는 자들은

무식한 백성 보기를 오뉴월 뒷간에 구데기 대하듯 하고, 진서깨나 읽을 줄 안다고 백성들

의 소박한 풍속을 허식으로 고치질 않나, 이름이나 얻엉보려고 이 솟을대문 저 사랑으로

주린 개 장바닥 싸돌 듯 하니 이런 놈들은 도적의 뇌수라, 가장 해로운 놈들이지요. 이렇게

도적들이 허울 좋은 나라의 중심이라 행세하는데 말이우." "그친구 재담만 잘하는 줄 알았

더니..... 과연 구월산의 두령이로군." 듣고 있던 박대근이가 무릎을 쳤다.

길산이는 감동이의 그와 같은 열띤 얘기를 하나도 빼놓지 않겠다는 듯이 고개를 기웃이

하고서 앉아 았었다. 감동이는 계속해서 말하였다.

"세상은 도둑들이 다스리는 나라가 되어있는데, 법이 무너진 판국에 무슨 법으로 우리를

다스린다우. 빼앗기고 밟히다 못해 산속에 들어와, 남의 많은 재물 중에 조금만 꺼내어 굶주

림을 면하겠단 우리는 무엇이오?"

"가장 째째하고 비겁한 도적이지."

"느닷없이 박대근이가 맞받았다.

"겨우 남의 재물을 뺏어 주림이나 견디겠다고 사내 대장부가 산속에 들어와 있는가. 아닐

세..... 백성을 돕는 녹림당이 되어야 하고, 힘을 길러 저 도적들을 없애야 하지. 내가 재물의

참뜻을 깨달은 것은 바로 그것일세. 힘..... 팔도에 두루 덮이는 막강한 힘일세. 겨우 장정 몇

명 거느리고 남에게서 빼앗은 것으로 이밥에 반찬 좀 낫게 먹으려거든 도적 소릴 꺼내지도

말구 고을 관장에게루 자수해서 일찌감치 장교질이나 터보도록 하게." 박대근이의 말은 강

경했지만 열기가 있어놔서 감동이가 대답을 못했다. 묵묵히 앉았던 길산이 감동에게 물었다.

"아우는 혹시 글을 아는 게 아닌가?"

감동이는 대신 만석이가 대답했다.

"알다뿐이우. 우리가 자비령서 옮겨올 제 감동이 형님이 가어서 노릇을 해서 월당나루를

건넜수. 무슨 글이든 척척 읽구, 관아 사정두 훤하지요." 박대근이가 그렇겠다며 고개를 끄

덕였다.

 

 

'Reading Books > Reading Books'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길산 1권 (25)  (1) 2026.02.25
장길산 1권 (24)  (1) 2026.02.24
장길산 1권 (22)  (1) 2026.02.22
장길산 1권 (21)  (0) 2026.02.21
장길산 1권 (20)  (1) 2026.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