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대근의 좌우에 벌려섰다. 보부상단이 유사시에 자위할 수
있도록 관에서 허락한 것은 멀리는 태조대왕 시절부터였다. 그들이 패랭이에 목화솜을 달고
다니던 것은 부상자의 치료용이기도 했고, 뒤에 와서는 화승총의 화약제조에 쓰이기도 했던
것이다. 또한 때로는 암행어사나 군장의 수행도 했었다. 박대근이는 막대한 상업자금을 가지
고 관에 줄을 대고 있는 송상의 차인 행수로서 지방 무뢰배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다
만 말썽이 일어나게 되면 그는 그 지역에서의 행상권을 박탈당하게 될 뿐이었다. 지방 장터
나 객주에서 상인이나 무뢰배가 다투는 일에 관이 상관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장
세는 지방관아의 중요한 세원이었고, 지방 유력자의 비호 아래 있는 무뢰배나 거주가 일정
치 않은 자들의 분쟁을 규찰하기에는 관아의 행정력이 미약했던 것이다. 따라서 각지에서
날뛰는 난장꾼들을 어느 정도 관의 무능 아래서 번성했던 것이다. 지방 장시에서의 송상들
의 영향력은 실로 막강하여 있었다. 그런 형편이니 박대근이 무뢰배들께 꿀릴 이치가 없었
다. 꺽돌이는 쇠도리깨를 들고 상대편을 노리면서 싸움을 과연 벌일 것인가 망설이는 중이
었다. 박대근이 말했다.
"그래 나오는 기세는 장익덕이 모양이더니, 어찌해서 파리 삼킨 두꺼비 꼴이 되었느냐."
창피를 당한데다 기세까지 눌리고 보니 아무리 벽지의 소악패라도 욱할 것인즉, 더구나
대처의 왈짜패로서 참지 못할 일이었다. 꺽돌이 앞뒤 가릴 새 없이 한달음에 내달으며 대근
의 앞으로 나셨다.
"네놈의 해골을 바수기 전에는 내 여기서 물러나지 않겠다."
꺽돌이 쇠도리깨를 휘젓고 달려들자 대근은 물미장은 잡은 채로 좌우로 비켜서다가 내려
치는 것을 받아냈다. 하지만 제놈이 일찌기 무더리 장터에서 길산에게 혼찌검이 났으니 그
솜씨로 환도깨나 쓸 줄 아는 박대근이를 당할 재간이 있나, 단번에 뒤통수를 얻어맞고 주저
앉는데, 틈을 주지 않고 대근의 물미장 지팡이가 꺽돌이의 목젖을 찔렀다. 꺽돌이는 그 자리
에서 숨통이 막혀 파랗게 죽어 자빠졌다. 대근이 침착하게 꺽돌의 등을 지그시 밟고 서서
천천히 환도를 빼었다.
"나는 평산에서도 억보라는 소악패를 잡아 이마에 표시를 하여 경계한 적이 있다. 또 한
번 네놈 면상에 칼줄을 그어주겠다."
문간에 물러섰던 자들이 꺽돌의 뒤를 이어 달려들 판인데 사람들을 헤치며 누군가 마당으
로 들어섰다.
"행수, 잠깐 칼을 거두오."
소동이 일어났다는 전갈을 받고 달려온 용당포 회계 막개였다. 그는 말쑥한 도포를 입고
말총갓을 점잖게 쓰고 있었다. 그리고 맨손이었다. 박대근이 칼날을 거두면서 그를 바라보았
다. 예의에는 예의로 상대함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막개가 허리를 굽혔다.
"인사합시다. 나는 주내방 신생원 아래서 용당포 회계를 맡고 있는 사람이오."
박대근이 쓰러진 꺽돌에게서 비켜서며 답례했다.
"송상 배대인 댁 차인 행수입니다."
"우리 손님이신데 아이들이 무슨 행패를 한 모양이지요? 워낙 장사에 서툴러서 혈기로 방
자하게 군 모양이나, 저자의 상사로 아시고 노기를 푸시지요."
막개는 노련한 사내였다. 구변이 좋은 만큼 속셈도 깊고 싸움에도 능란한 자였다. 자기를
드러낸 곳에서 강대한 적을 치는 일이 얼마나 불리한가를 그는 잘 알고 있었다. 박대근이는
한눈에 그가 임유학을 제거한 장본인임을 알아챌 수가 있었다. 그 침착한 예의며 만만치 않
은 눈빛으로 보아 과연 오래 묵은 대처의 왈짜패다웠다.
"상도를 아시는 양반 같수. 내가 벌인 싸움도 아니니 거두지요."
박대근이 자기 사람들을 돌아보며 조용하게 말했다.
"그만들 물러나게, 이젠 끝난 모양이니....."
막개도 선창 사람들을 돌려보내고 기절한 꺽돌이의 얼굴에 냉수를 뿜어 정신을 차리게 했
다. 회생이 되자마자 그래도 선창의 실력자랍시고 놈은 벌떡 일어나 대근에게로 달려들었다.
막개가 큼직한 손으로 그의 뒷덜미를 잡아끄는데, 한 손에 견디지 못하여 뒤로 질질 끌릴
정도였다. 막개가 속삭였다.
"이놈...... 뒤통수를 치랬지. 누가 콧잔등을 물라더냐."
막개는 꺽돌의 등을 밀어내면서 큰 소리로 말했다.
"내 집을 찾아온 손님께 행패를 했으니, 이제 가는 길로 네놈을 혼내겠다. 대죄하고 있거라."
막개가 대근에게 말했다.
"누추하지만 저희 용정루에 모시겠습니다. 오늘 봉변하신 값으루 제가 톡톡히 한턱 쓰지요."
박대근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보다는 우선 청이 있소이다. 우리가 일부 잡화를 객주에 넘겼으나, 제값을 받지 못하였
소. 일반 시세대로 셈하여주신다면 제가 한잔 사지요."
"좋소이다. 앞으루 계속 거래할 분께 손해를 끼친다면 주내방 여각의 신용이 말이 아니지
요. 어떻게....... 선편으로 화물은 부쳤습니까?"
"예, 송증만 받으면 됩니다."
막개가 객주의 점주를 불러 지시했다.
"가서 거래한 장기를 가져오너라."
대강 훑어보고 나서 막개는 새삼스럽게 혀를 찼다.
"정말 손해를 드렸군요. 눈짐작에도 차액이 백여 냥은 되는 것 같습니다. 곧 돌려드리도록
하지요. 자아 가십시다."
박대근은 막개를 따라서 결성골로 나갔다. 홍등이 걸린 예전 임유학의 기와집에서는 여자
들의 웃음소리와 풍악소리가 요란하였다. 막개와 박대근이는 취련이를 사이에 두고 안채에
마주 앉아 술을 들었다. 대근이 처음에는 방심하지 않고 조심스럽게 술을 들었으나, 취기가
오름에 따라 소리도 한가락씩 하게 되고 곁에서 술을 치는 취련에게도 농지거리를 던지게
되었다. 막개가 넌지시 설렁줄을 당긴 뒤에, 새 술병이 들어왔다. 은밀히 상 아래 들이밀 적
에 취련이 냉큼 집어들어 술잔이 아니라 아예 대접에다 둘을 나누어 퐁퐁 쏟아놓았다.
"원래 화해술이란 양자가 벌주이오니 콧김 막고 단숨에 드소서."
박대근이 알맞게 취한 김에,
"이게 무슨 술이냐?" 하며 턱밑으로 가져가는데 취련은 대접을 받쳐주며 대답했다.
"예, 서도 명주 감홍로이옵니다."
"화해술은 벌주라? 그거 좋다! 박행수 드십시다."
막개도 자기 앞의 대접을 들어 마셨고, 박대근이도 계피 냄새 나는 달콤한 술을 꿀꺽꿀꺽
단숨에 들이켰다. 그러나 막개는 박대근이 마시는 사이에 다른 대접에다 자기 술을 재빨리
쏟아놓고 나서 상에 요란히 내려놓으며 입바람 소리를 냈다. 대근의 천성이 침착하고 용의
주도 하건만 한가지 흠이랄 것은 사람 사귀기를 즐겨하는 점이었다.
원체 뒤가 없는 성미이고 보니, 싸움한 상대편에서 예의를 갖추어 대하는 것에 마음이 풀
어졌던 것이었다. 더구나 술자리에서는 술을 사양하지 않는 버릇이었으며, 그만큼 웬만해서
는 취하지 않는 때문이기도 하였다. 박대근이 잔을 내려놓는데 역시 입에서부터 명치까지
온통 불을 삼킨 듯하였다.
"거 술이 보통이 아니로다."
"아이, 대장부가 이깟 술 한 잔에 뭘 그러셔요. 하루 삼백 잔은 못 되어도 석 잔은 채우셔
야지."
"벌주치고는 아주 호강이구려. 감홍로를 대접째로 들이붓는데, 우리가 제법 호걸 숭내를
내게 되는 모양이오."
막개도 어물쩍거리며 술 따른 대접을 쳐들었고 박대근이 벌컥이며 들이마셨다. 아니나다
를까 반 대접을 넘기지 못하여 손이 풀려 그릇이 상 위에 엎어졌다. 그가 손을 맥없이 떨어
뜨리는데 이미 눈에 총기가 사라지고 눈꺼풀이 반쯤 내려 덮었다. 막개가 빙긋 웃으면서 박
대근에게 물었다.
"술이 별로 세지 않은 것 같소이다."
"에....... 에 술이 어쨌다구?"
박대근이 간신히 상머리를 짚으면서 얼굴을 쳐들려고 애썼다.
"이놈....... 주내방의 맛 좀 보아라."
막개가 박대근이의 볼따구니를 손끝으로 두드리면서 빙긋대었다.
"뭐라구, 자네 뭐라구 그랬나."
"쓸개 빠진 놈."
박대근이 몸을 가누려고 애를 쓰면서 궁둥이를 들다가 그대로 상에 머리를 처박더니 움직
일 줄을 모른다. 막개가 박대근의 상투를 잡아 뒤로 젖혀 보고 나서 취련에게 말했다.
"약을 너무 탔던 거 아냐?"
"보통 때보다는 좀 많이 탔어요."
애먹이는 술꾼들에게 몽혼처방을 준비하여 술에 타서 재우는 것은 색주가에서 가끔 있는
일이었다. 취련이 손뼉을 쳤고, 밖에서 투닥거리는 발짝 소리가 들리더니 꺽돌을 위시한 패
거리들이 미딛이 밖에 우르를 몰려 섰다.
"광으로 데려가거라."
막객의 말이 떨어지자 꺽돌과 몇몇 장정이 송장처럼 늘어져버린 박대근이의 몸을 맞들고
방에서 나갔다. 그들은 완전히 인사불성이 되어 늘어진 박대근이를 광으로 데려갔다. 관솔불
을 밝히고 광문을 단단히 잠근 다음, 줄을 내어 대근의 두 손목을 묶고 그 줄을 대들보에
걸었다. 팽팽히 당겨서 높직하게 매달리게 되자 줄을 기둥에 매어놓았다. 박대근이는 두 손
목을 쳐들고 공중에 매달린 채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막개는 멀찍이 서서 팔짱을 낀 채 구
경을 하였다.
"정신이 날 때까지 찬물을 끼얹어주어라."
꺽돌이가 옷통을 벗어 던졌다. 그는 이 무력해진 상대에 벌써부터 흥분이 되어 연신 볼을
떨고 있을 정도였다. 큰 동이에 떠놓은 물을 바가지로 떠서 대근에게 뿌리기 시작했다. 다리
는 모아진 채 흠칫거리더니 눈을 떴고, 떴다가 다시 감고 물을 뒤집어쓰면 또 눈을 떴다. 몇
번 거듭되다가 박대근이 완전히 젖어버리 머리를 미친 듯이 흔들어 대고 나더니 부릅뜬 눈
을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밑에서 이를 악물고 흥흥대면서 꺽돌이가 씹어서 말하였다.
"정신이 들었느냐? 무어 내 얼굴에 표적을 해준다구? 네놈이 다시는 해주 바닥에 발을 들
여놓지 못하도록 아예 무릎을 꺾어줄 테다. 그뿐야, 다신 칼질을 못하게 손가락 하나 남기지
않을거니까."
꺽돌이는 몽둥이를 들었다가 차마 아까웠는지, 그것을 내던지고 나서 맨주먹이 되었다.
"어이, 줄 좀 낮춰줘."
줄이 풀려지자 대근의 발이 땅에 한 치쯘 남기고 뜰 만한 높이가 되었다. 꺽돌이 힘껏 대
근의 아랫배를 쥐어박았다. 헉 하면서 허리가 휘청했다가 다시 꼿꼿해졌다. 꺽돌이 발을 들
어 대근의 옆구리를 호되게 걷어찼고 줄에 묶인 그의 몸이 팽그르르 돌아갔다. 상투를 잘렸
던 놈들이 뒤에서 차례를 내달라고 보챘다. 막개가 껄껄 웃으면서 말했다.
"이놈들아 개는 천천히 두드려패서 잡을수록 고기맛이 나는 게야. 밤새껏 두드려서 말랑
말랑하게 된 연후에 우리게서 쫓아내버려라. 주내방서 하던 그대루 시행해야지."
둘러섰던 자들이 와르르 웃었다.
"꼭 그대루라면 잊은 것이 있소이다."
"무엇이냐?"
"예, 계집의 월경서답 말이우."
다시 한번 폭소가 터졌다.
"그래, 창기년들께 가서 얻어오너라."
축 늘어진 채 묶여 있는 박대근을 둘러싼 자들이 목청을 합쳐 폭소를 터뜨렸다.
"제일 묵은 걸루 얻어와라."
"계집의 밑씻개를 주둥아리에 처박으면 삼 년 횡재한다더라.
"암 그놈 오늘밤에 운수대통이로다."
막개가 좌중을 제지하고 나서, "고개를 들도록 해주지." 하고 조용히 말했다. 졸개들이 달
려들어 몽둥이로 박대근의 턱밑을 치받쳐올렸다.
"이제부터 너희 송상패의 버릇을 가르칠 텐데..... 다시는 해주에 얼씬거릴 생각을 마라. 평
산 쪽으루 가든지, 직접 평양으루 올라가든지 다 좋은데, 해주에 다시 나타나지 못하도록 가
르쳐주겠다."
막개가 말하는 동안 완전히 정신을 차린 박대근이 부릅뜬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웃통
을 벗어버린 꺽돌이는 참을 수가 없다는 듯 가슴을 부풀리며 뛰어나왔고, 기방에 나갔던 자
가 계집 월경대를 손가락 끝에 걸치듯 들고서 달려 들어왔다.
"농 밑에 처박힌 걸 끌어내느라구 혼났네. 한 보름은 묵었을 게야."
"이리 줘. 내가 저놈 아가리에 틀어박을 테니..."
꺽돌이가 그것을 움켜쥐더니 고개를 돌리며 버둥대는 박대근의 앞으로 다가섰고, 허공에
떠 있던 대근의 다리가 간격을 맞추어 솟구치면서 꺽돌의 면상을 걷어찼다.
"어이쿠!" 꺽돌이 뒤로 폴싹 주저앉았는데 턱주가리를 정통으로 얻어맞은 모양이었다.
"무엇들 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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