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Books/Reading Books

장길산 3권 (9)

카지모도 2026. 4. 29. 06:11
728x90

 

큰쇠가 당연하다고 무릎을 쳤다.

"암, 거참 사리 분명한 말이로군. 우리는 여하간 웅포까지 달아나 배를 탈 터이니

부지런히 쫓아들 오시우."

하고는 제 패거리들을 재촉하여 큼직한 봇짐들만 골라서 지고 일어서려는데, 달근이는

서두르지 않고 점잖게 말하였다.

"어허 성미 급한 건 좋은데... 개두 뒤본 자리는 덮구 가는 법이우."

큰쇠는 그제서야 봇짐을 내려놓고 입맛을 다셨다. 황회가 가장 공평한 듯이 모두의

봇짐을 손수 빼앗아다 한가운데에 쌓아놓고는 하나씩 풀어헤쳤다.

"이건 우리가 함께 일하여 번 재물이니 세 몫으로 똑같이 나누지."

큰쇠도 반대하지 못하고 그럽시다 하는데, 횡회네 패에 끼여 있던 덜미꾼의 상모를 쓴

얼굴이 거무튀튀한 사내가 세 사람 사이로 끼여들었다.

"아니우, 네 몫이우."

"아니 자네는 왜 또 싸리울 터진 데 개 주둥이 내밀 듯 끼여들어?"

상모 제껴 쓴 덜미꾼이 제 뒤로 넘겨다보는 같은 패를 슬쩍 돌아보고 나서 뻣뻣하게

대꾸하였다.

"물론 황회 성님과 작당이 되어 연희를 팔구 다녔소마는... 우리 덜미꾼들은 우리끼리

식구요, 성님네 패가 아니우. 아예 말이 난 김에 여기서 갈라서두 좋수."

황회가 뭐라고 말하려고 불끈하여 손을 쳐드는데, 고달근이가 황회의 발뿌리를 지그시

밟으면서 옷소매를 잡아당겼다.

"그 동무의 말을 듣구 보니... 과연 네 몫이로군. 네 몫으로 나누세."

황회가 달근이를 돌아보며 또 뭐라고 말하려는데, 달근이가 엎드려서 비단을 한 필 두 필

나누어 쌓으면서 얼버무렸다.

"넷으로 나누자면 나누는 게지 네가 뭐 여리 두령이여, 이 자식아."

황회는 씨근거리며서 덜미꾼을 노려보았고 가지는 나누어진 장물을 따로 그러모았다.

비단과 무명은 필로 나누고, 돈꿰미는 모두 풀어서 나누었으며, 패물도 원망이 없도록

노끈으로 매듭 제비를 뽑아서 나누어 가졌다. 재물의 분배가 끝나자 그들은 짐을 지고

일어섰다. 큰쇠가 저희 짐을 가장 팔팔하게 걷는 자에게 지우고 뒤따라가면서 건성으로

외쳤다.

"웅포에서 기달릴 테니 빨리 따라오우."

"꼭 기다리우. 뒤떨어져봤자 화살 한 대 거리일 테니."

그러나 그들은 마저 대답하지 않고는 일제히 언덕을 내려가 고갯길을 가로질렀다. 덜미꾼

여섯 사람도 그 뒤를 다르려는데 짐을 진 자는 역시 상모를 쓴 자였다. 그가 일어서자마자

황회는 총을 겨누고 말하였다.

"여보게, 나 좀 보구 가게."

그러나 그는 뒤를 힐끗 돌아보고는 화승총의 요리를 아는지라 씩 웃어 말하였다.

"승에 불두 안 붙었수. 그 작대길랑 저리 치우구 말해보우."

"너 건너가기 전까진 탄환이 나간다. 내 부시 치는 솜씨 알지?"

"나는 내 봇짐 갖구 가겠수."

그자가 후닥닥 뛰는데 달근이가 등덜미에 꽃고 다니던 말채를 날려서 목을 휘감아

당겼다. 사내가 뒤로 넘어질 때 박거사가 덮치면서 비수로 가슴을 내리찔렀다. 사내는 눈을

희게 까뒤지고 그들을 올려다보다가 절명했으며, 박거사는 칼을 뽑아 시체의 옷에다 쓱

닦고는 일어섰따. 황회는 나머지 덜미꾼들에게 으름장을 놓았다.

"갈 테면 가고, 나를 따를 놈은 오너라."

그들은 길을 건너지 못하고 황회의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고달근이가 말채를 말아서

다시 뒷덜미에 꽃아넣으면서 황회에게 핀잔을 주었다.

"이 자식아 털 뽑아서 그 구멍에 다시 박아라. 이런 판국에 광명 천지가 되었는데

총소리를 내면 우린 어디루 달아나니. 자, 모두들 웅포루 나가자."

달근이가 겁에 질린 유동지네 새댁을 끌어 일으켰다.

"너무 겁먹지 마시우. 여거서 돌려보내 드릴테니... 절대루 관가에 가거나 읍내 나가지

말구 곱게 집으루 돌아가슈. 나중에 말 안들었다간 우리가 다시 짓쳐들어가서 아예

생눈깔을 뽑구 말 테여."

달근이가 눈을 부릅떠서 바짝 들어대니 어린 새댁은 공포에 질린 얼굴이 더욱 납빛이 되어

오들오들 떨었다.

"예예... 살려주셔요. 절대루 읍내엔 안 나갈게요."

"우리가 웅포루 나갔다구 말하면 일가 몰살을 시킬 테니까."

한번 더 다짐을 하고 나서 그는 여자를 끌고 고갰길 쪽으로 내려갔다. 황회는 그 뜻을

짐작하는지라 일행을 이끌고 일단 길을 건너 끊어진 맞은편 등성이로 올랐고, 달근이는

여자를 길에서 놓아주었다.

"자, 빨리 가슈."

처음에 여자는 믿기지 않아서 동그마니 섰더니 놓여난 새가 그러듯이 제자리에서 호흡을

가라앉히고 흐트러진 머리와 옷매무새를 고친 다음에 한번 더 뒤를 돌아다 보았다.

그리고는 몇발짝 조심스럽게 걷다가 또 돌아보고 나서 미친 듯이 뛰어가기 시작했다.

여자가 고개 아래로 내려가 숲에 가리어 안 보이게 될 때까지 서서 내려다보던 달근이가

맞은편 등성이에대 대고 외쳤다.

"어이, 모두들 내려와. 우리는 큰어미내를 건너야 해여."

유동지네 새댁은 이미 고갯길을 벗아날 때부터 방향을 정하고 있었으니, 당진 관아

쪽이었다. 읍내 거리로 들어서는데 도적들에 쫓겨갔던 마을 젊은이 몇사람이 헐레벌떡이며

뛰어오는 것이었다. 그들은 머리가 흐트러지고 땀으로 얼굴이 온통 얼룩진 유필준의 아내를

보자 기겁을 하였다.

"아이구, 아씨께서 이게 웬일이십니까."

숨이 턱에 닿은 새댁은 조금 마음이 놓였는지 쓰러질 듯이 땅바닥에 주저앉아버렸다.

위낙에 상하가 있고 남녀가 유별한지라 차마 여자를 끌어 일으키거나 부축도 못한 채

엉거주춤 서서 장정들은 저희들끼리 얼굴만 마주 바라보았다. 새댁은 제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말하였다.

"지...집은 어찌 되었느냐?"

"예, 모두들 몰려가서 광을 부수고 대부인마님과 하인들을 모두 구완해내었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작당하여 붉은고개로 오르고, 저희는 적경을 알리러 관가로 가는 참입니다."

"그렇지 않아두 모두들 아씨 일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큰 변을 당하신줄 알았는데,

어찌 용케 빼쳐나오셨습니다그려."

부근 농가에 가서 물을 떠다가 내밀자 새댁은 거푸 서너 모금을 대번에 삼키고 나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서방님께서는 정신이 좀 드셨더냐?"

"예, 저는 의원을 부르러 오는 길입니다. 아직도 인사불성이어서 대부인마님께서 곁에

붙어 계십니다."

"아버님은..."

"동지 어른께서는 문을 꼭 닫고 사랑에 계시는데, 아무하구도 통 말씀을 하시지

않습니다."

새댁은 겨우 일어나서 그들의 등을 떠밀었다.

"너희들은 어서 가서 의원을 부르고 관가에 가서 적경을 알려라. 도적들은 저희끼리

의논하는 소리를 내가 들으니, 웅포에서 배를 타고 남양으로 향할 모양이더라."

"예, 그대루 아뢰겠습니다."

그들이 막 돌아서서 뛰는데, 새댁은 그제서야 기가 다하였는지 스르르 미끄러져 길 위에

쓰러져서 정신을 잃고 말았다. 그들 중의 하나가 다시 돌아서서 새댁을 끌어 일으켜서 등에

업었다.

"나는 이 길루 아씨를 업구 마을에 돌아갈 테니 자네들은 어서 가보게."

하여서 그들은 읍내 거리에서 각각 흩어졌다. 관가에 간 사람이 삼문밖에 이르니 수직

군사가 뛰쳐나왔고, 대강 용무를 말해주니 수령께서는 아직 기침 전이라 동헌에 들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마을 사람은 발을 구르면서 서 있었고, 한참 뒤에야 번드는 장교에게

적경이 닿아 마을 사람은 사또에게로 안내되었다. 통인이 들락거리고 사또가 기침을 하고

옷을 입는 사이에 또한 많이 지체되었다. 간밤에 술이 아직 정신이 똑똑히 들지 않은

군수는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 나서 수청드는 기생년을 발로 지그시 밀어낸 다음에 미닫이를

벙싯 열고 내다보았다.

"식전부터 웬 소란이냐?"

"큰탈이오. 간밤에 도적이 들었습니다."

급한 마음에 마을 젊은이가 먼저 머리를 조아리며 아뢰자, 사또는 눈살을 잔뜩 찌푸리고

장교를 내려다보았다.

"저자는 누구인가."

장교가 머뭇거리면서 아뢰었다.

"붉은고개 사는 농군이온데, 이 사람의 고경에 의하면, 유동지 댁에 도적이 들었다

하옵니다."

그러나 사또는 연방 하품을 터뜨렸다. 사또는 다시 미닫이를 닫으며 짜증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도적이 들었으니 어찌되었다는 말인가. 그깟 일루 아침부터 법석을 떠느냐. 이따가

동헌에 나가면 격식을 갖추어서 문서로 보고하고, 장교는 군사를 데리구 가서 무엇을 어찌

잃었으며 도적이 어느 골의 누구인가 탐문할 것이지, 그깟 일로 시시콜콜히 다 내게 알려

귀찮게 하느냐. 물러가라."

장교는 기왕에 수령의 잠을 깨웠으니 자기 체면이라도 세워야 겠기에 감히 물러가지 않고

아뢰었다.

"소소한 물건을 도적질한 조모적이 아니오라, 유민지배들이 작당한 화적떼인 줄로 아뢰오."

"뭣이라구... 화적떼?"

그제사 깜짝 놀란 사또가 미닫이를 벌컥 열었다.

"예, 화적떼가 간밤에 유동지 댁을 야반돌입하여 가족들을 모두 묶어놓은 뒤에 가산을

털어 갔다 하옵니다."

"인명이 상하였는가?"

"도적들은 총포까지 지니고 있다는데 유동지 댁 하인 몇이 상하고 죽었으며, 붉은고개

사람이 하나 죽었다 하옵니다."

사또는 일의 중대함을 깨닫고 벌떡 일어나 동헌으로 나가면서,

"도적들은 대략 몇이나 되던가?"

붉은고개 젊은이가 대신 아뢰었다.

"한 삼십여 명이 넘는 것 같았습니다. 동지 어른 댁 작은아씨께서 도적들에게 끌려갔다가

간신히 몸을 빼쳐 달아나왔습니다."

"허... 이럴 수가 있나. 감영에는 무슨 면목으로 계를 올리겠는가. 도적들의 종적은 알아냈느냐?"

"달아난 유동지 댁 아씨께서는 도적들끼리 의논하는 소리를 들었다는데, 웅포에서

남양까지 배를 타구 간다고 그러더랍니다. 지금이라두 파발마를 놓아 북창에 알려 고직하는

장교를 시켜서 웅포의 진군과 합대하여 길을 막으라 이르십시오. 하오면 저희 군병이 모두

뒤를 쫓아 바다로 빠져나가기 전에 사로잡을 수가 있을 것이옵니다."

하는 장교의 계책을 듣자, 사또는 고개를 끄덕였다. 도적들이 총포를 지니고 있다니

포수도 동원이 되어야 했고, 군병뿐만 아니라 군노 사령에 군민들까지 모두 병장기를 들고

삼문 밖으로 집합하였다. 이미 북창과 웅포 쪽으로 적경의 전갈을 가진 파발마가 나는 듯이

달려갔다. 정예 군병들은 산으로 오르지 않고 해번가를 따라서 성당산까지 간 다음에 배를

타고 웅포에 닿기로 했던 것이다. 나머지는 붉은고개 농군들과 합세하여 산등성이를 타고

도적들의 뒤를 쫓기로 하였다.

당신서 웅포까지 산길 삼십리요, 해변으로 사십리가 되건만 큰쇠를 위시한 동작진

패거리들은 북창을 조금 지나서 이제 웅포까지는 시오리 길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들도

뒤에서 추격이 있음을 아는지라 한번도 쉴 짬 없이 계속해서 산등성이를 오르내리며 뛰고

걷고 다시 뛰며 달아났다. 그들이 웅포 해변에 도달했을 때 파발에 접힌 북창 고직 군사

서넛과 웅포진군 칠팔 명을 합하여 십여 명을 군사들이 배가 닿는 선창을 점거하고 있었다.

동작진 패거리들은 비록 한바탕 싸울 인원이 충분했으나, 집털이에 가담 않고 기다렸던

사당들 때문에 달아나기가 거추장스러웠다. 큰쇠는 감히 포에 나가지 못하고 망설이다가

한가지 궁여지책을 생각해냈다. 즉, 사당들을 버릴 수밖에 없고, 비릴 테면 유용하게

버리자는 생각이었다.

큰쇠의 생각으로는 우선 사당들을 군사들의 눈에 쉽게 띌 만한 곳으로 내몰아 놓은 뒤에,

그들이 쫓기는 동안 포구를 빠져나갈 작정이었다. 뒤로는 성당산의 짙은 솔밭이요, 앞으로

모래밭을 건너서 범선과 노 젓는 배기 칠팔 척 묶여 있는 선창이었으며, 왼편으로 나지막한

지붕들이 산 밑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선창이었으며, 왼편으로 나지막한 지붕들이 산 밑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포구마을이 내려다보였다. 마을 앞으로 널따란 갯벌이 썰물에

드러났는데 고깃배 두어 척이 모래 위에 기우뚱하게 얹혀 있었다. 개벌을 지나서는

마을과 지척에 잇는 작은 섬이 보였는데 모래톱이 섬에까지 잇닿아 있었다. 섬 주위는 온통

바위와 돌로 둘러싸였으며 뒤쪽은 솔숲이 울창하여 젭ㅂ 후미졌다. 큰쇠는 주위를 한참이나

살펴보고 카서 거사 하나를 불러 섬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보게나. 저기 섬이 보이지? 포에서 배를 탈 수는 없게 되었으니, 저자들 눈에 뜨지

않도록 갯가로 나가서 섬으로 건너가 기다리게. 그러면 우리들이 군사들을 덮쳐서 배를

빼앗아 몰고 섬 뒤쪽에다 배를 댈 테니..."

"그럽시다. 헌데 어느 쪽으로 가야 저자들의 눈을 피할지 모르겠수."

"이런 어리석긴... 마을쪽으로 해서 곧장 달려나가면 되잖나. 우리와 싸우느라고 아마 고개

돌릴 틈도 없을 걸세. 자, 싸울 만한 식구들만 남구 나머지는 사당 아이들과 함께 빨리

피하게."

하고 나서 큰쇠가 집털이에 나갔던 자들만 남도록 지적하고 사당들의 등을 밀어냈다.

그들은 허겁지겁 마을 쪽으로 뛰기 시작했는데 아직은 포를 지키는 군사들게 발각되지 않은

듯하였다. 사당과 거사 몇이 마을 아래로 내려가 갯벌을 뛸 즈음에 해변에 나와 있던 어부

몇이 포구를 향하여 손을 흔들어대며 소리를 질렀다. 사당들은 갯벌에서 모래톱으로

들어섰고, 먼곳에서도 그들이 섬을 향하여 뛰는 모습이 똑똑히 보일 정도였다. 군사들은

창을 치켜들고 환도를 휘두르며,

"도적들 게 섰거라!"

"한놈도 놓치지 마라."

제각기 떠들며서 갯벌으 ㄹ따라서 우르르 몰려갔다. 큰쇠는 벌떡 일어나 제 패거리들을

재촉하였다.

 

 

'Reading Books > Reading Books'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길산 3권 (11)  (0) 2026.05.01
장길산 3권 (10)  (0) 2026.04.30
장길산 3권 (8)  (0) 2026.04.28
장길산 3권 (7)  (0) 2026.04.27
장길산 3권 (6)  (0) 2026.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