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뛰어서 배 한 척만 잡으면 된다."
그들은 제각기 힘을 다하여 포구로 뛰어내려갔다. 범선을 잡아야 했으나, 해안을
빠져나가기 전까지는 나룻배보다 속력이 느리고 손이 많이 가는 때문에 우선 손쉽기는
나룻배가 나을 듯 하였다. 큰쇠가 닻을 뽑아 뱃전에 던지면서 올라탔다.
"어서 밀어내라."
그들이 일시에 밀어내니 배는 곧 물이 허리에 닿을 만한 깊이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그들은 허위적거리며 배에 올라탔다. 노젓기에 자신있다는 총각 거사가 죽기로 작정한 듯
온 기력을 다하여 노를 저었고, 배는 뒤뚱거리며 물 가운데로 헤쳐 나갔다. 그들이 제법 소
한 울음거리는 됨직하게 나갔을 때에 성당산을 빠져나온 군노 사령들이 하얗게 쏟아져
들어왔다. 선미에 앉아서 노 젓는 자를 독력하던 큰쇠는 그 모양을 보자 문득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주먹으로 널판을 소리나게 내리쳤다.
"아뿔싸! 속았구나."
큰쇠는 그들이 제각기 포구의 배를 밀어내는 광경을 크게 뜬 눈으로 내다보면서 중얼거렸다.
"우리가 안성패들 도망길을 터주느라구 웅포루 나왔구나."
큰쇠는 그때까지 안성 고달근이 패와 황회 패거리에 관하여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는 제 식구들을 이끌고 달아나기에 급급하여 그들이 뒤를 따라서 성당산
능선을 타는지 마는지조차 확인할 겨를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 군사들이 몰려나와 나룻배를
밀어내느라고 법석이 아닌가. 그가 제 사당들을 도망의 미끼로 삼았던 것처럼 달근이는
큰쇠네 패를 미끼로 삼아 지금은 어딘가로 편안하게 내치는 중일 것이었다.
큰쇠가 여러 가지 따져보지 못하고 한시바삐 달근이네를 떼쳐보리려 했던 것은 재물에
대한 욕심 탓이었다. 아무리 후회해봤자 이제는 이미 늦은 일이었고, 두 척의 나룻배가
해안을 떠나고 있었다. 아직 거리는 멀었는데 뭍을 멀리 할수록 물결이 차차 높아져서 노를
젓던 총각 거사는 벌서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더욱 힘껏 저어라. 웬만큼 쫓아오다 말겠지. 물길루 접어들기만 하면 그 다음엔 남양까지
황포를 달아매어 바람을 타구 내치는 게야."
두 사람이 번갈아 허리를 굽히면서 표주막으로 배 밑창의 스며든 물을 퍼냈다. 워낙에
이쪽은 필사적으로 달아나는 판이라 아무래도 노 젓는데 온 힘을 다하였고, 저쪽의 두
배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바다로 나오고 있건만 좀체로 이쪽을 따라잡을 수가 없을
듯하였다. 그쪽에서 하릴없이 고함만 꽥꽥 내지르고 욕설을 퍼붓는 것이 고작이었다. 큰쇠는
조금 안심이 되었다. 이제 조금만 더 저어 나가면 좌우로 불쏙 튀어나온 만의 양쪽
곶머리를 벗어나게 되는 것이었다. 섬으로 달아났던 거사 몇 명과 사당들은 군사들에게
잡혔을 것이 분명하였다. 사당년들이야 다시 여염 향리에서 계집종이나 빈농의 굶는 아이를
후려내면 될 것이지만, 기왕에 동작진 복만이네 식구임이 드러날 테니 사당골에 돌아가기도
그른 일이었다.
"제기럴... 꽉 물렸구나. 수원 가서 재물을 팔아 모두 흩어져 살길을 찾아야지."
큰쇠가 혼잣말로 중얼거리고 앉았는데 선수에 앉았던 거사가 큰 소리로 외쳤다.
"저기 배가 옵니다."
모두들 그가 손가락질 하는 곳을 내다보니, 곶머리 뒤에서 넓은 돛을 올린 배 한 척이
살같이 돌아 나오고 있었다. 앞에서 청룡 황룡기가 펄럭였고 북소리가 계속하여 울리고
있었다.
"아무리 달아나봤자 글렀소. 저건 병선이우."
"남양까지 갈 것두 없다. 어디 깊은 산이 보이면 아무 데나 갖다 내어라."
그러나 병선은 차차 가까위지고 있었으며 갑판에 병장기를 세워 들고 삼엄하게 열지어 선
진군들의 벙거지가 또렷하게 보였다.
"도적들 멈추어라!"
"순순히 잡혀서 죽음을 면하고 싶은 자는 배에서 뛰어내려라!"
홍철릭을 입은 장교가 선수로 나와 호통을 쳤다. 그들은 북창에서 배로 갈아탄 정예
군병들이었다. 큰쇠네가 아무 대꾸 없이 계속 노를 저으니 이윽고 장교의 모습이 사라지며
총포가 터져나오기 시작하였다. 뱃전에 십여명의 포수들이 붙어서서 총을 놓으니 노를 젓던
거사는 그대로 한꺼번에 서너 방을 맞고 바닷속으로 고꾸라졌다. 날아오는 연환 소리가
귓가를 째는 듯 날카로웠고, 그들 중에는 이미 제물에 물로 쮜어드는 자도 있었다. 총포가
없으니 대적하여 쏠 수도 없는 큰쇠네는 모두 뱃바닥에 한무더기가 되어 엎어져 있었다.
큰쇠 곁에 바짝 엎드려 있던 거사 하나가 등판에 총알을 맞고 비명을 내지르며 죽어가자,
나머지 거사들은 엎드린 채로 큰쇠에게 제각기 떠들었다.
"모가비 성님 어쩔라우... 우릴 떼죽음시킬라우."
"공연히 도적질에 가담하여, 이젠 비어먹지두 못하게 되었수."
"어쩔 작정이야. 이젠 용빼는 재주 없이 살아 도망하긴 글러버렸어."
큰쇠는 이를 악물고 나서 뱃전으로 손을 쳐들어 휘저으면서 소리쳤다.
"쏘지 마오. 항복할 테니 살려주시우."
이어서 곧 총소리가 그쳤다. 뒤에서 쫓아오던 나룻배들도 가까이 다가왔다 큰쇠네 패는
모두들 뱃바닥에 죽은 듯이 엎어져 있었다. 장교가 병선 위에서 내려다보며 나룻배를 타고
뒤쫓던 군노 사령들에게 지시하였다.
"몸뒤짐을 철저히 하구 나서 차례로 결박하라. 꿈쩍하는 놈은 단칼에 베어두 좋다."
엎드려 있는 도적들 위로 사령 셋이 달려들어 하나는 창을 겨누고, 다른 하나는 거사들의
단검이며 몽둥이 같은 무기를 거두는데, 또다른 사령이 그들의 몸을 일일이 뒤졌다 가까이
대어진 병선에서는 포수들이 화승총을 일제히 겨누고 있었다. 장교가 아래쪽에다 고함을
질렀다.
"그 두 번째 있는 놈 창대로 후려 패주어라. 자꾸만 고개를 들어 두리번거리는구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허리가 부러지도록 두어 대 얻어맞고는 거사패는 모두들 고개를
처박았다. 오라에 굴비두름 엮듯이 모두 줄줄이 묶어놓고 나서, 그들은 큰쇠네가 타고 왔던
배를 끌고 웅포 도선장으로 되돌아갔다. 그들이 뭍에 끌리어 내려지자 벼르고 있던 마을
사람들이 일시에 몰려들어 주먹과 발길질을 해댔고, 뒤늦게 도착한 장교가 가까스로
위협하여 그들을 떼어냈다. 큰쇠는 면상을 얻어맞아 코피를 줄줄 흘리고 서 있었다. 섬으로
달아나다 수직 군사들게 잡힌 사당들도 묶여서 그들과 합쳐졌다.
"사또께서 기다리고 계시다. 잡힌 도적들을 우리가 압송한다."
장교는 이르고 나서 길가녘에 창을 비껴든 군병을 삼엄하게 늘어세웠고, 그 사이에
큰쇠네 식구들을 걷도록 하였다. 붉은 고개 사람들과 군노들이 먼저 당진 읍내로
달려가니, 벌써 당진 군내에서는 유동지 댁을 습격하였던 화적들이 잡혔다는 소문이 일시에
퍼져서 길바닥은 마치 팔원 대보름장이 선 듯하였다.
2
그 무렵 이미 닭 울 녘에 단샘에서 나룻배를 탄 이경순과 묘옥은 백석포를 돌아 평택 앞
의 시포를 거쳐서 내쳐 지류를 거슬러 항곶포로 향하고 있었다. 뱃삯으로 경순이 안성서 묘
옥에게 내주었던 쌍금가락지였으니, 사공은 선가가 위낙에 비쌌던지라 그들을 제 상전 모시
듯 해주었다. 망해산 봉수대까지는 혹시 남의 눈에 띄거나 관의 기찰에 걸릴까 하여 근심하
였으나, 경양을 지나서부터는 긴장이 풀려서 묘옥은 어느덧 경순의 무릎에 기대어 잠이 들
었다. 뱃길 육십리라 하나 상류를 향하여 거꾸로 올라가니 밀물 때는 몰라도 썰물 때에는
거진 강안에 닿을 듯이 하고서 삿대로 앝은 땅과 물풀을 헤치며 나아가야 하였다. 그들이
항곶포에 이른 것은 점심때가 훨씬 지나서였다. 경순은 돈 가진 것이 없었으나 양성 까지
가서 옹기 물주를 하는 객주를 찾을 셈이었다.
항곶포서 백운산성 금로치를 넘어 양성까지 삼십 리 길을 경순은 기진맥진한 묘옥을 데리
고 두 끼니나 굶은 채 허위허위 걸었다. 뒤처져 따라오던 묘옥이 풀섶에 주저앉아버렸다.
"나으리, 쉬어 가셔요. 아무래두 다리가 삐었나 봐요."
경순은 말없이 묘옥의 곁에 쭈그리고 앉았다. 묘옥은 제 무릎을 두드리다가 문득 무슨 생
각이 들었는지,
"나으리, 양성에서 여주까지 혼자 가시지요."
하자 경순은 영문을 몰라서 눈만 껌벅였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이냐? 네가 당진서 빠져나올 제 여주 내 집으로 가기로 작정이 되지
않았느냐?"
묘옥은 거친 경순의 말에 고개만 살레살레 저었다.
"아닙니다. 나으리께서 혼자 작정하신 일입지요. 저는 안성 사당골에 돌아가야 합니다."
"거기 가보았자 지금 아무도 없을 게다. 그리구 모르긴 몰라두 달근이가 가만히 있지는
않았을 것이고, 곧 기별이 받은 관아에서 사당골을 샅샅이 뒤지게 될 게다."
"안성 사당패 모가비가 어디 고서방 뿐입니까? 다른 식구에 들어가지요."
"아니다, 다른 식구들이 네가 당진서 달근이네 패에 끼여 놀았다구 관원에게 이를게야."
"저는 어쨌거나 여주 가서 나으리 곁에 주저앉을 수는 없는 몸입니다."
이경순은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쉬었다.
"내 널더러 구태여 소실이 되라구 여주로 가자는 것이 아니니라. 당분간 세상이 조용해지
는 기미가 보일 때까지 여주에서 좀 쉬라는 게야. 그 다음엔 네가 가구 싶은 곳으로 어디든
지 떠나두 붙잡지는 않겠다."
묘옥은 더 이상 대꾸를 하지 않았고, 경순이 묘옥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어서 양성으루 들어가자. 네 옷도 갈아입어야 하고 더구나 아침부터 여태 굶었으니 오죽
이나 시장하겠느냐."
하고는 이경순이 묘옥을 업으려 하자 묘옥은 자꾸만 허리를 빼내었다.
"나으리, 걸을 수 있습니다. 괘념치 마셔요."
"너를 업구 가야겠다. 다름아니라 그 꼴로 사내의 도포를 둘렀으니, 누가 보더라도 의심하
지 않겠느냐."
묘옥은 이기지 못하여 다시 경순의 등에 업혔다. 묘옥은 경순에게 업혀 가면서 제 마음을
자기도 모르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녀가 이경순을 자꾸 거부하고 있는 것은 자신의 굳은 결
심 때문이지만, 저도 모르는 사이에 점점 경순의 사내답고 부드러운 사람됨에 기울어지고
있는 것을 느꼈던 것이다. 그런 마음이 들수록 겉으로는 자꾸만 도사려지게 되는 것이었다.
저를 찾아서 안성까지 백리 길을 마다 않고 달려온 사람, 또한 양인으로서 천민 패거리인
사당패에 끼여 갖은 욕을 보면서 당진까지 동행한 사람, 목숨을 걸고 대가에 난입하여 자기
를 구출한 사람, 이러한 이경순이가 묘옥에게는 더욱더 두려운 사람이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저 말바위의 벼랑 끝에서 어두운 바다를 향하여 울부짖으면서 한 젊은 광대를 넋을 다하여
사랑하고 간직하겠다던 마음이 일시에 무너져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경순의 뒷덜미에
서 땀이 흘러 등판을 적시고 있었으니, 아마도 허기를 이기느라고 몹시 힘이 드는 모양이었
다.
그들은 뱃골서 장터말까지 한산한 들판길을 걸었다. 장이 서질 않아 읍내는 행객이 별반
보이질 않았다. 양성은 원래 안성과 같은 군에 속하여 있었고, 장시는 번갈아 열렸으나 옹기
와 유기가 각지로 매매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이경순의 분원에서는 죽산, 안성, 평택, 양성
등지에 거래하는 물상객주가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여주 이도장이라 부를 정도로 경순과
친숙하였다. 특히 객주인들은 경순이 돈깨나 있다며 행세하지 않고 언제나 패랭이에 홑저고
리 차림의 상놈으로 자처하는 것을 그럴 듯하게 여겼던 것이었다.
객주는 대개 봉노도 있고, 술청도 있어서 장꾼이 기숙하기에도 불편이 없는데, 광에는 칸
마다 자기네가 주로 취급하는 물건들이 쌓여 있게 마련이었다. 이경순은 묘옥을 문간에서
얼른 내려놓고 장사치 몇사람이 잡담을 하고 있는 술청을 피하여 안채로 돌아 들어갔다. 중
노미가 마당을 가로지르다가 이경순을 보자 얼른 허리를 굽신하였다.
"아이구, 도장 어른이 웬 행보시우."
"주인장 계시냐?"
"예, 계시다마다요."
하고 나서 마루로 다가가 찾는데, 똥똥하고 눈이 작게 찢어진 중년의 사내가 반색을 하면
서 쫓아나왔다.
"아니 이게 누구여. 도장 어르신이 먼걸음 하였네!"
"너무 소란 피우지 마시게, 그보다 어디 골방이라도 좋으니 후미진 방 하나만 내어주어."
경순의 나직나직하고 다급한 말에 주인은 영문을 몰라 멀뚱하니 보고만 서 있었고, 이경
순은 밖을 향하여 말하였다.
"얘야, 들어오너라."
묘옥이 마당으로 재빨리 들어서는데 누가 보기에도 몰골이 가관이었다. 머리는 흩어질 때
로 흐트러졌고 저고리에 갯벌흙이 묻어 사방이 얼룩이요, 치마는 찢기어서 사내의 도포를
두르고 있으니 가히 저자바닥의 광녀와도 같았다. 주인은 뒤늦게 경순의 아래위를 훑어보았
다.
"무슨 일이 생겼나? 도장은 어디서 오는 길이여?"
"얘기는 나중에 천천히 하기루 하고, 우선 우리가 두 끼니를 걸렀네. 아무거나 요깃거리가
있으면 좀 내주시게. 갈아입을 옷가지두 내놓구..."
"허 모를 일일세. 날마다 고기 반찬에 이밥으로 호강을 할 사람이 지금 어느 참인데 여태
밥 한 술을 못 먹었나. 어서 들어가... 우리방에 묵지 뭘."
주인은 역시 단순하고 소박한 사람인지라 더 따져볼 염을 내지 않고 안방을 열고 마누라
와 자식들을 불러냈다. 상놈 처지에 예의가 따로 있겠는가. 하지만 제 집 안방을 손님에 내
주는 것은 그만큼 주인이 경순을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마루에 서서 건성건성 인사
가 오락가락하고 나서 두 사람은 체면 불구하고 남의 집 안방으로 들어갔다. 밖에서 부산을
떠는 소리가 들리더니 주인이 몸소 개다리소반에 장국밥 두 그릇을 받쳐들고 탁주도 한병
얹어서 들여왔다. 허겁지겁 요기를 하는 두 사람을 이윽히 바라보던 주인장이 끝내 궁금증
을 못 이기겠던지,
"뭔일이여?"
물었고, 경순은 덤덤하게 중얼거렸다.
"사람을 죽였네."
"어...?"
주인은 입에 물었던 곰방대를 얼결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이경순이 피식 웃으면서 다시
중얼거렸다.
"조금 있으면 발칵 뒤집힐 걸세."
이경순이 안성 사당패와 동행하여 당진 나갔던 일과 유필준과 노상에서 시비하던 일이며,
한밤중에 사당패들이 붙들려간 뒤에 혼자서 월장하여 사당에 불을 지르고 달아난 일 등을
대략 이야기하자 주인은 그 똥똥한 볼따구니를 더욱 부풀리고는 연신 문 밖으로 귀를 기울
여 보고는 하였다. 경순이 한번 더 다짐을 두었다.
"그러니 우리가 이런 행색으로 들른 일을 입 밖에 내지 말게. 내일쯤에는 아마 기찰포교
들이 안성 바닥에 쫙 깔릴 걸세."
"암 여부가 있겠나. 오늘밤 여기서 묵어 가시겠나?"
"하룻밤만 신세를 지세. 그리구 내일 식전에 떠날 테니 말 한필 내어주고, 안사람의 입성
과 장옷 한 벌만 마련해주게."
"헌데... 자네가 주구라는 걸 아는 자가 많은가?"
"고달근이네 식구들은 다 알지."
"달근이네 식구들이 잡혔다면 자네두 무사할 수는 없겠네. 그러니 내가 말 두 필을 내어
주고 우리 아이놈을 견마잡이루 딸려 보낼 테니, 자네는 선비 차림을 하고서 밤길을 떠나도
록 하게."
경순은 국밥을 떠넣고 있는 묘옥을 근심스럽게 바라보았다. 주인의 말이 가장 그럴 듯하
였으나, 묘옥이 노상에서 기진하여 쓰러질까 걱정이었다.
"글세 나 혼자라면 몰라두..."
묘옥이 벌써 이경순의 마음을 짐작하고서 자신있게 말하였다.
"나으리 염려 마셔요. 아까는 허기가 져서 한 발짝두 걸을 것 같지 않더니, 이제 요기도
하였고 더구나 안장에 올라 길을 갈 터인데 무슨 걱정입니까."
"정말 괜찮겠느냐?"
"예, 지금 어서 떠나요."
주인이 그 말을 듣자 얼른 일어섰다.
"가만있게, 갈 채비를 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터이니 그동안 눈이나 붙여두게. 늦은 밤에
달이 뜰 게야. 그리구 나 잠깐 보세."
하면서 객주인이 이경순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두 사람은 마루로 나갔는데, 주인은 그의
귓전에 고개를 숙이고 나직하게 속삭였다.
"헌데 저 여자는 아마 사당인 모양인데, 자네 어쩌자구 저런 홧덩어리를 끌구 다니는가?"
"홧덩어리라니, 이 사람 무슨 말을 그따위루 하구 있나. 달근이네 사당으루 있었지만 그런
노류장화와는 다른 여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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