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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길산 3권 (11)

카지모도 2026. 5. 1. 0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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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긴 무에 달라. 계집이 사당패에 끼였으면 못해먹어두 색주가에서 굴렀을 텐데... 고작

저따위 계집에게 눈이 뒤집혀 몸을 망치려나? 내 자네가 청한다면 안성 색주가에게 내로라

하는 미인을 찝어다 바치겠네. 자네 자식 없어 걱정하는 건 잘 알지만 아주머니가 또한 보

통 성깔이신가. 만약에 자네가 저 계집을 데려가서 잠잠하다 하여도 소문이 날 것이요, 더구

나 처첩이 싸움질이라도 하게 되면 사당이라는둥, 안성서 왔다는둥, 고달근이의 계집이라는

둥, 별의별 소문이 꼬리를 물 걸세. 그러면 포교의 기찰에 들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 아닌가.

아예 후환 없도록 계집에게 몇푼 주어서 저 갈 데루 보내게나."

주인은 경순의 입장을 생각해서 하는 말이었으나, 그는 묘옥을 제신변의 위험 때문에 떼

친다는 일이 몹시 욕스럽게 생각되어 벌컥 짜증을 내고 말았다.

"그런 것까지 생각해주어서 고맙지만, 말 두필이나 어서 구해주게나. 내 세마비는 두배를

물터이니."

"거참 얘기 못할 사람이로고! 두고 보게, 뒤에 가서 내 말이 생각날 걸세. 사내는 그저 계

집 조심해야 하느니..."

객주인이 마당으로 내려서면서 중얼거렸으나, 이경순에게 지금 그런 말이 귀에 들어올 리

가 없었다. 경순은 다만 묘옥을 데리고 여주로 돌아가는 일이 가슴 뿌듯하도록 흐뭇하기만

한 것이었다.

늦은 밤이 되어 인근 동네에서 이따금씩 개 짖는 소리만이 들려올 즈음하여 길 채비가 되

었고, 경순과 묘옥은 초저녁잠에서 깨어났다. 그들은 곧 양성 물상 객줏집을 나섰는데, 견마

잡힌 묘옥이 앞서 갔고 그뒤로 경순이 말을 타고 뒤를 따랐다. 이경순은 객점 주인이 원행

할 때 여로에 천시받지 않으려고 마련한 테 넓은 통영갓과 도포를 차려 입었고, 묘옥은 새

치마 저고리에 장옷까지 들쳐 써서 양가의 부인과도 같았다. 다만 좀 별스러운 것은 선비

양주가 밤길을 가는 점이었다. 반달이 때맞추어 중천 하늘에 엇비슷하게 걸려 있었는데, 세

마의 목에 걸린 쇠방울이 끊임없이 달그랑대고 있었다.

"얘야, 마상에서 눈이나 좀 붙여두어라. 음죽 가서 새벽잠을 잠깐 자고 나서, 내쳐 여주까

지 가려면 기력을 많이 남겨야 하느니라."

하는데 묘옥은 대답이 없고 그 대신에 마부가 돌아보며 안 체를 하였다.

"예서 육십 리니까 인시 전에 닿을 게유. 우리말이 이래보여두 한양까지 파발을 뛰던 말

이우. 타보는 손님마다 모두들 적토마에 비길 만하다 합지요. 북관 것이니, 어디 글방도령들

의 남방 나귀에 비기겠습니까요."

"듣구 보니 아마 역의 퇴마를 사들인 모양이구나."

"퇴마라닙쇼! 당치두 않습니다. 시방은 밤이라서 그렇지만 낮에 굽과 갈기를 살피시면 준

마라는 걸 한눈에 압지요."

마부의 말자랑은 과연 당연한지라 경순은 더 이상 오금을 박지 않고 모른 성해버렸다. 한

데 마부는 일단 입이 터지자 시키지 않은 것까지 참견하기 시작하였다.

"샌님은 참 이상두 하십니다. 여주까지 가신다면 양성서 하루 푸근히 주무시고, 내일 식전

에 떠나면 까짓 세마두 내었겠다 한나절감인데 어찌 이 밤길을 가십니까."

경순은 속으로 뜨끔하였다. 세마는 그들이 자는 사이에 객점 주인이 중노미를 시켜서 시

오리 길인 안성에서 내온 것이었다. 그러니 양성 객주인의 주의를 준 바와 마찬가지로 입단

속을 아니하면 혹시 후환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견마를 잡았으면 고삐를 단단히 쥐고 마보나 살피어라."

경순이 점잖게 타일렀으나 마부는 깐간하였다.

"글세, 소인이 정수리에 쇠똥 떨어진 직후부터 견마꾼을 해먹었습니다만 이런 일은 처음

이올시다. 샌님뿐이라면 가내 급한 기별두 있겠다 싶지만, 아씨마님까지 동행이시니 더욱 그

렇습지요."

"외가에 초상이 났느니라."

경순은 울컥 솟으려는 역증을 참고서 대답하는데 마부가 다시 말하였다.

"샌님 댁이 그럼 여주가 아니올시다그려?"

마부란 놈이 돌부리를 찼는지 주춤하는데 당겨진 고삐로 해서 말이 걸음을 흩뜨리면서 고

개를 뒤로 젖혔다. 마상에서 졸고 있던 묘옥이 소스라쳤고, 경순은 화가 치밀어서 호통을 쳤

다.

"이놈, 그러다가 낙마하여 사람이 상하면 네 한 모가지로 감당하기 어려울 줄 알아라!"

마부가 경순에게서 호된 욕을 먹고는 은근히 부아가 치밀었다 견마꾼이란 비록 하인배나

다름없는 천한 신세라 하니 남의 노적에 오른 자가 아니요, 더구나 별의별 손을 겪게 마련

인지라, 마부는 대개 세마낸 손님을 가벼이 알기가 십상이었다. 말깨나 탄다면 거의가 양반

행세인데 견마꾼은 그 언행으로 손님의 실지 신분을 꿰뚫게 되어 있었다. 갖은 무리들의 양

반 행세가 자심한 세월이니 그런 일을 소상히 아는 마부의 배포가 부풀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언제 다시 보랴하는 심정으로 마부는 슬슬 능멸하고픈 간지가 돋기 시작하자, 골탕

먹일 근거를 하나 둘씩 들춰내기 시작하였다. 말하는 푼수로 보아 계집이 양가의 부인은 아

닌 것이 분명하고, 선비가 객점 주인과 하게를 놓으니 차림새는 그럴듯하여도 상놈일시 분

명하였다. 따져보면 돈이 있달 뿐이지 자기와 다름없는 불상놈이 이놈 저놈 하는 게 고까위

서 견딜 도리가 없었다.

마부는 손목에 힘을 주고 고삐를 갑자기 잡아채었다. 아니나다를까, 재갈에 당겨진 아픔으

로 깜짝 놀란 말이 앞굽을 쳐들며 입을 틀었고, 묘옥은 보기 좋게 말에서 떨어져버렸다. 경순

은 급히 말에서 뛰어내려 묘옥을 부축하였다.

"어디 다치지 않았느냐?"

기실 미리 꾀를 내어 저지른 노릇이라 말이 심하게 날뛴 것은 아니었으니, 사람이 깜짝

놀란 정도였다. 묘옥은 제 가슴을 내리쓸며 도리질을 해 보였다.

"헛, 이놈의 말이 갑자기 암창이 나서 이러나?"

딴전을 펴는 마부의 뒷덜미를 경순이 잡아당겼다.

"네 이놈! 내가 뭐라더냐... 마보를 살피랬더니 웬 고삐질이냐."

"어째 이러시우. 말이 성미 부린 게 어디 소인 탓입니까요."

뻣뻣하게 대꾸하는 짓거리가 하도 괘씸하여 경순은 마부의 궁둥이를 죽어라고 차올렸다.

마부가 앞으로 고꾸라지는 것을 보자, 경순은 기왕에 내친 김이라 아예 죽여버리고 싶어서

안장께에 걸어두었던 돗자리로 말아 감춘 화승총을 그대로 뽑아서 후려치려고 번쩍 쳐들었

다.

"나으리!"

뒤에서 묘옥이 허리를 감싸않았고, 마부는 두 팔을 쳐들어 휘젓고 싹싹 비벼대면서 애걸

하였다.

"에고 잘못되었소이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테니 샌님 한번만 용서하십시오."

경순은 씨근거리다가 자리에 싸감은 화승총을 슬그머니 내리고는 내뱉었다.

"샌님 소리 집어치워라. 이제 또 한번 그따위 심사를 보이면 아주 길에다 파묻고 갈 테여."

마부는 의외로 불한당처럼 본색을 드러내는 경순의 기세에 완전히 풀이 꺾여버렸다. 돼지

가 목청 때문에 백정 신명을 돋군다고, 순님 대접이나 해주며 모른 척하였다면 탈이 없을

것을 공연히 덧들여서 내놓고 상놈 짓거리로 들볶임을 당하게 되었던 것이다.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경순은 화승총에 둘둘 말았던 자리를 풀어내고 장약과 연환을 재워 겨누고는 얼러

대었다.

"다시 고삐 장난하면 뒤통수에다 대추씨 박아준다."

힐끗 돌아다보니 그게 작대기가 아니라 틀림없는 총포였다. 마부 녀석, 말을 몰아 가면서

도 내내 뒤털이 곤두서는 느낌을 털어낼 수가 없었고, 대개 견마잡이란 걸어가면서도 수시

로 조는 법이건만 눈딱지에 아교를 바른 듯하여 눈알까지 뻣뻣이 굳어버렸다.

이미 간교한 마음을 드러낸 자는 주먹으로 일시 고쳐졌다 하여도, 겉으로는 꾸미고 있으

되 속으로는 반심을 품고 약점을 노리는 것이 세간의 이치였다. 권문가의 종살이로 잔뼈가

굵은 놈이나 도회지의 돈맛들인 퇴기년들, 또는 양반만 타고 다니는 세마의 마부 같은 자들

이 그러하니, 밥이 때 지나면 쉬듯이 천한 자 나름의 순박한 본성이 닳아서 없어졌기 때문

이다. 따라서 종놈은 언제나 종놈임을 자랑하고, 갈보는 죽기까지 갈보로서 자족하며, 마부

는 말 부리기를 농군이 보습 대는 일보다 더 높이 여긴다. 권문가의 종놈이 주인보다 더욱

방자하여 양인은 물론 제 동무들에게는 특히 가혹하고, 풍상 겼은 퇴기일수록 동기의 정분

에 매정하며, 마부의 벽제 세도가 과하여 노중 행인에 행패가 자심한 것이었다. 이러한 일은

모름지기 사람이 사람의 됨됨이에 따라 하늘 아래 똑같다는 이치를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제가 위로부터 겪은 수모를 남에게 되돌려서 제 신분을 더욱 굳히려는 어리석은 생각 때문

이다. 그러니 애초에 제 신분을 정하여 수모를 준 쪽에 더욱더 이로울 뿐이며, 기실은 자기

와 같은 자들의 원수가 되고 마는 것이 고작이 아닌가.

그들은 견마잡이의 말대로 인시 무렵에 음죽에 닿게 되었다. 아직은 캄캄한데 봉미산 마

루턱 너머로 밤새 남아 있는 마을의 불빛들이 한두 점씩 깜박이고 있었다. 경순은 이미 저

지른 짓이 있는지라 말에서 내렸다. 마부를 데리고 가지 않으려는 마음을 먹었기 때문이었

다.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고 하지만, 바꾸어 말하자면 발 있는 말을 데리고 사방 백여 리

를 뛰는 마부도 소문에는 뒤지지 않을 듯하였다. 경순이 묘옥을 안아 내린 뒤에 마부에게

고삐를 내어주며 말하였다.

"예까지 오느라구 수고 많았다. 삯은 양성서 모두 받았겠지."

마부는 아직도 겁을 집어먹고 목을 움츠리고 있었다.

"그러문입쇼. 여주까지 가시지 않습니까요."

"음... 여주서 배를 타구 경강으로 올라갈 작정인데 이젠 말이 필요없다."

마부는 호들갑을 떨었다.

"아무래두 사십 리는 가셔야 할 걸요. 모셔다 드립지요."

경순이 늘어뜨리고 있던 총포를 들어 배를 꾹 밀어대면서 나직하게 지껄였다.

"안 갈테?"

마부는 흠칫하더니 말을 끌고 재빨리 어둠속으로 멀어졌다. 잠시 후에 먼 곳에서 마부의

고함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얘, 이 쇠새끼야. 오살할 놈아... 내모를 줄 아느냐. 너 죄진 놈이지. 당장에 관가에 가서

일러바칠 테니 똥구녕에 불 달구 튀어라!"

경순은 입맛을 다시면서 어둠속을 노려보았다.

"죽여버릴 것을 잘못했군."

"나으리, 저이는 우리가 누군줄 모르잖아요."

"글쎄다... 내일이라두 안성 바닥이 뒤집히면 저놈이 제일 먼저 달려가겠지. 양성 객점주가

닥달을 받겠지만, 그자는 믿을 만한 사람이다. 과객이라구 우길 테니까. 여하튼 조심해야겠

구나."

경순은 불안한 마음을 떨쳐내면서 묘옥의 손을 잡아끌었다. 그는 공연한 역증으로 서투른

짓을 저질렀다고 후회하였다. 그는 황승총을 겨눈 일이 아무리 생각해도 어리석은 짓이었다

고 생각했다.

음죽서 새벽잠을 자고 난 묘옥과 이경순은 정오쯤에 여주에 도착하였다. 여주에는 당도하

였지만, 남의 눈도 있고 하여 막바로 창골에 들어갈 수는 없었다.

창골에는 그의 사기전이 있었고, 분원은 월송골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의 집은 읍내 한가

운데인 창골 사기전 근처에 있으니 그가 묘옥이를 데리고 버젓한 양반 차림으로 들어갈 수

는 없는 일이었다. 누가 뭐라 할 사람은 없겠으나 기이한 일이니 입방아에 오르게 될지도

몰랐다. 우선 갓과 도포를 벗어 던지고 이경순이 혼자서 월송골에 가볼 생각이었다. 경순은

묘옥을 산모퉁이 호젓한 숲속에다 앉혀놓고 혼자서 월송골로 내려가며 말하였다.

"예서 꼼짝 말구 기다리구 있거라. 내가 잠시 후에 사람을 보낼 테니까..."

제 염려는 마시구 나으리 어서 집에 먼저 들러보십시오. 부인께서 걱정하실 거예요."

"아니다, 내가 장삿길로 한양에 간 줄 알구 있으니 그러려니 할 게다. 며칠 있다가 서루

상면해보아라. 그리 나쁜 사람은 아니니라."

묘옥은 고개를 푹 숙이고 힘없이 중얼거렸다.

"나으리... 부탁입니다. 노자나 조금 주시면 배를 타구 한양으루 가구 싶어요. 제가 화근이

되면 뒤에 나으리께서 후회하실 겁니다."

경순은 길로 나가려다가 그런 얘기를 듣고는 안심이 안되는지 되돌아와서 묘옥의 두 어깨

를 잡았다. 그는 묘옥의 눈을 똑바로 노려보면서 말하였다.

"다시 그런 말 하지두 말구, 그런 마음은 아예 먹지두 말아라. 네가 한양엘 간다면 나두

가는 게고, 네가 떠돌면 나두 뒤따라 떠돌게 될게다. 이젠 네가 없으면 나는 파가해버리구

만다."

경순은 묘옥을 흔들면서 다짐하였다.

"부르러 올 때까지 예서 기다리겠느냐. 약속하지 않으면 나두 언제까지나 여기에 지키구

앉아 있겠다."

묘옥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한참이나 대답이 없었다.

"내가 실인을 보내주랴?"

묘옥이 황급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천만이올시다, 나으리! 절대루 그러시면 안됩니다. 제가 그댁의 신세를 하루 한나절 진다

하더라도 제 발로 찾아가 뵙고 인사를 드리는 게 법도입니다. 제발 그러지는 마셔요."

경순은 하는 수 없이 묘옥의 손을 잡아끌었다.

"까짓 거 나하구 함께 들어가자꾸나. 내가 언제 남의 눈치 보구 살았나."

묘옥이 뒤로 빼면서 애원조로 말하였다.

"시키는 대루 기다리겠습니다. 어서 혼자 내려가셔요."

"정말이냐?"

묘옥은 경순의 크게 부릅뜬 눈을 향하여 끄덕여 보였다.

"길어야 한 식경이다."

경순은 못내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뛰어갔다. 월송골 이도장네 분원에는 가마가 다섯이나

되는데, 장인이 한 가마에 십여 명씩이었다. 번수 밑에 조기장이 있고, 연자매꾼, 흙 고르는

수비, 연정, 도자기 모양을 바로잡는 참역이 있고, 머리가마꾼과 조역과 환장이나 있으니 공

장에만도 오십여 인이 들끓는 셈이었다. 다시 들판에는 도자기에 잿물 올리고 말리는 자, 파

기를 처분하는자, 신재를 벌채하는자, 흙을 파고 나르는 자 등등으로 나뉘어 있으니 월송골

의 들판 곳곳에는 이도장네 사분원 일꾼들이 들끓는 셈이었다.

이경순은 공장으로 다가갔는데, 이쪽 저쪽에서 장인들이 꾸뻑이며 인사를 하였다. 번수가

뛰어나왔다.

"원주 어른 오셨습니까?"

"별일 없지?"

"예, 이번에 청화백자가 새루 나왔습니다. 토질이 좋아져서 이번 것은 아주 상품이올시다."

경순이 잡사기와 옹기는 수량만 대강 묻고는 납품해 가도록 하였으나, 백자는 일일이 가

져다가 채색도 보고 모양도 따졌으니 번수가 그리 말한 것이었다. 사실 경순은 흙의 질과

신재의 종류와 불길을 둘러보면 대강 그릇이 잘 될 것인가 어떨까를 미리 집어낼 정도로 이

력이 생긴 도장이었다. 도장들은 경순이 장사치뿐만이 아니라. 실제로 가마를 지켰던 도한

출신이라서 그의 말이라면 모두 꼼짝 못하고 복종하였다. 경순은 다른 날처럼 가마가 일렬

로 늘어선 분원 앞마당을 일일이 들여다보거나, 안쪽의 조기, 마조, 화청을 하는 작업방으로

들어가지도 않고서,

"전생이, 어디 갔느냐?"

하고 물었다.

"저 뒷방 제 거처에 있을 겝니다. 얘들아, 누구 가서 외팔이 오라구 그래라."

번수가 일꾼을 보내니, 잠시후에 상투머리가 수세미처럼 흩어진 외눈에 외팔의 젊은이가 뛰

어왔다. 그가 바로 과천서 걸식하던 약장 출신이었는데 아마도 화약을 조제하다 왔는지 숯

검정이 옷의 사방에 묻어 있었다.

"원주님 오셨습니까?"

"그래 잘 있었느냐?"

"요번에 풀뭇간에서 쇠를 잘 다루어, 총신이 아주 좋은 놈으로 나왔습니다."

"당분간 네 작업방은 치워버리도록 하여라. 관의 기찰이 있게 될지두 모르겠다."

하고 나서 경순은 전생이의 소매를 끌고 가서 속삭였다.

"내 안성 다녀온 것을 아무도 모르겠지?"

"입 밖에 낸 적이 없으니까요."

"너 이길루 뛰어가서 박씨 과부를 좀 오라구 일러라. 그리구 월송동구 밖에 솔밭으로 가

보면 아낙이 하나 기다리구 있을 테니 얼른 데리구 박씨 과부네루 가거라."

전생이가 신이 나서 들썩였다.

"기어이 모셔오셨군요."

"그래 너두 얼굴을 봐서 알겠구나."

"알다뿐입니까요. 제가 안성 행보를 두 번이나 했는뎁쇼. 그럼 먼저 박씨 과부를 이리루

보내놓고 나서 동구 밖에 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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