辨明 僞裝 呻吟 혹은 眞實/部分

1970

카지모도 2016. 6. 16.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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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 8. 29.


1967년 10월 19일로부터

34개월. 34개월... 좆도 삼십사개월이다.

그러나 제3육군병원 영문을 나설 때 침같은건 뱉지 않았다.

1947년 2월 7일부터

20수년. 나........

이제 돌이켜 내 도정에 침같은건 뱉지 않겠다.


신이여.

내게 의미를 주십시오.

내게 이유와, 또한 조건을 부여해 주십시오.

기도드리는 자세를 알도록 하여 주십시오.

당신의 영감과 당신의 안정을 주십시오.

화려함, 음란함을 버리게 도와 주십시오.

나의 절망을 도말하여 주십시오.

오늘은 너무나 시시합니다.

저에게 내일의 바람을 불어 주십시오.


1970. 9. 26 (토)


말년의 불면증.

중앙부에서 고참 끝발로 늘 얻어 복용했던 수면제 메프로.

말년병이 제대한지 한달이 넘어가는데 이어지고 있나.

꿈. 꿈.

잠자는 동안에는 마치 딴세계에서 살고 있는 것 같다.

아침 눈뜨는 순간에 어느 미지의 세계로 급작스레 떨어져 내려 온듯한 느낌.

잠속이 현실인지, 깨어났을 때가 현실인지.

내게 수면은 휴식이 아니다.

열심히 살고있는 내 또하나의 세계이다.

모두 다 기억할수도 없는 꿈. 꿈.

정신분석학을 공부하였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들은 풍월.

욕망, 공격성, 리비도, 공포, 억압.....


코지코너는 이제 나의 아지트가 되었다.

동진, 중일, 길선등과 죽치고 앉았다가 예전 동진이를 그토록 좋아하였던 김영라 만나다.

여대2학년의 그때 어린애가 아니다.

부쩍 숙성하여진 여인이다.

동진에게 담담하게 던지는는 한마디.

"전에 난 그 쪽을 무척 좋아했었죠?"

아직도 신성일 폼이 가시지 않은 동진이에 비하여 훨씬 어른이다.


1970. 9. 27 (일)


풍이형과 바둑.

바둑 속에서 풍이형의 고지식함같은걸 느끼게 된다.

코지 코너.

성태, 길선, 만기, 학도, 박무열이.

그놈들은 절망의 폼.

나와 같은 진짜배기가 아니다.

코 끝에 달고 뻐기는 절망이라는 장식.

부평집에서 마신다.

막걸리에 흠뻑 취하다.


1970. 9. 29(화)


코지 코너.

김성태의 이른바 공개된 애인이라는 고미진.

학도, 성태와 부평집.


철수에게서 편지가 왔다.

순수한 놈. 보고싶은 놈.

오란다. 하, 자식.

갈거다. 임마.

그리고, 널 만나면 어쩜 울것도 같구나.

군대, 군대, 군대 좋았지? 이 눔아.

임마. 너도 그러니?

이 눔의 자유가 행복한거니?

이 불안을 어드렇게 처리한다지?

임마 망둥아.


1970. 9. 30(수)


추위를 느낄 정도로 가을이 깊었다.

코지 코너.

육군 장교나리 국정이가 일방적으로 사회에 대하여 씨부리고 나는 지겨움을 감춘채 들어주고 있었다.

해병대 장교나리 길선이는 그 옆에서 맞장구.

오늘 술은 먹지 않았다.

오래 살고 볼일이다가 아니고 속이 쓰려서.


1970. 10. 2 (금)


왼종일 집에 박혀 있는다.

어제는 너무 취했다.

취해 버렸다.

술안마시기.

작심3일아닌 작심2일.

어쨌거나 술을 마시던 안마시던 계절은 지나가고 있다.

가을 냄새가 나는구나.

동진이가 내일 여수내려 간단다.

아침 일찍 뱃머리 나가야 할까나.

게으르다. 무척.


1970. 10. 4 (월)


난 용기도 끈기도 없는 놈.

집착도 강하지 못한 놈.

미치게 만드는 대상이 없는게 아니고 나 자신이 미치는 능력이 없는 것.

만사가 시들하여 그런가?

길선이 놈이 제법 핵심을 찌르는 언변을 농한다.


이제 미칠수 있는 능력을 키우자.

방황은 끝내자.

뭔가 하자.

글도 쓰고, 연극도 하고, 복학 전과도 하고, 장사도 하고 그러자.

내 감정의 편린들을 줏어 모으자.

싯달다처럼 진리의 강을 찾자.

드넓고 깊고 유장하게 흐르는 강을 찾자.

나이 반오십에 이제 강을 갖자.

왜 쫓기나?

왜 늘 도망가나


1970. 10. 8 (목)


어제는 맥없이 취해 버렸다.

무슨 철학을 분석하고, 예술을 매도하고, 우정을 구타하고, 실성한 놈처럼 노래를 부르고, 무슨 역겨움에 싸움도 해 보려하고.

만일 내게 지금 친구라는 무리들이 없다면?

철저하게 나 홀로 이 일상의 모든 시간을 죽여야 한다면?

차라리 그렇다면 뭔가 할수 있지 않을까?

불안하더라도 의연하게 그 정체와 맞서겠다는 의지는 길러지지 않을까?


1970. 10.16 (금)


서울 도착.

어느 여관방에 엎드려 있다.

이 곳은 사직동인데.

냄새가 난다. 옛날의 냄새가.

아주 옛날, 내가 서울사람이었을 적.

그 아주 옛날의 냄새가 난다.

이 냄새 속의 자유- 미치게도 싫고 좋고 불안한 이 자유.


서울의 밤.

욕망,야망,좌절,호사,세련,욕정,기교.....

모든 것을 담고있는 이 나라의 수도.

내일 인사하마.


도착하여 주원이 만났다.

날 이해의 눈길로 바라보려 애쓰는 하나 뿐인 동생.


1970. 10. 17 (토)


휘경동 철수네 집.

철수와 군대시절 편지 나누었던 그 여동생 영숙이.


서울-

굉장히 변한 것 같지만 똑같이 남아 있는 골목과 골목.

그 익숙한 길눈에 비추는 풍경화에서 아슴프레 풍겨 오는 옛날의 색깔과 내음.

외갓집은 빌딩을 짓고 있고.

작은 형은 결혼한다하고, 큰형의 온화한 표정.

외숙모, 이모의 다정함.


영회,철주,오산,호창등 중학교 친구들 아직 만나지 못하고.


벌써 한양대를 졸업한 이순원여사(?)만나 사주는 맥주를 함께 마신다.

서울의 언어, 서울 계집애의 각선미, 옷차림 화장의 세련됨...

이 곳, 옛날의 내 동네 서울의 모퉁이에서 나는 지금 엄청난 열등의식과 소외감을 느낀다.


1970. 10. 18(일)


신예용안과.

콘택트렌즈 검안.

정말 콘텍트렌즈를 끼면 안경과는 영영 작별할수 있는 것인가?

과학이 발달한 덕을 볼수 있을까?


고모집. 홍철 만나다.

숙모, 고모들-

무슨 여가선용처럼 교회 나가기에 열심인 듯.


작은 형 결혼식전 회식.

요리집 대여도-

견디기 힘 든 분위기 속에 끼어 앉아서 기름진 중국 음식을 먹는다.

힘이 든다는 것은 주눅이 든다는 것.

서울사람이 아니어서 난숙한 서울 친척들 사이에서 드는 주눅인가, 아니면 깊은 곳에서 억압하는 내 자의식인가?

주원이가 그런 오빠를 답답해 하며 신경질을 내며 돌아 간다.

총총히 포도의 인파 속으로 사라진 그 애의 뒷모습이 쓸쓸하여 스스로에게 견딜수 없는 분노가 솟는다.

종로 길가에서 우연히 노병국 만났다.



1970. 10.19(월)


철수네 집 숙식이 불편하여 근처 여관으로 잠자리를 옮겼다.

참 숫기도 없는 놈.


한양대학 올라간다.

무슨 아즈텍의 산상도시처럼 언덕 여기저기 자리한 건물..

환경이는 만나지 못하고.


철수, 성태와 명동에서 마신다.

음악을 좋아하는 망둥이 철수.

음치인 주제에 아는척 떠벌이는 부산놈 성태.

어깨동무하여 명동거리를 노래부르며 휩쓸다.


1970. 10. 20 (화)


철수 동생 영숙이 기타치면서 부르는 등대지기,

가슴을 애잔하게 적신다.

함께 "라마겐의 철교" 봤다.

날이 어두워지면 어김없이 마시는 술.

철수의 영혼 속에는 깨끗한 물이 흐르고 있다.

그 흐름은 단순하기 때문에 순박하게 아름다운 것이다.

나의 영혼 속에도 깨끗한 물이 흐른다면 그 흐름은 복잡하기 때문에 더러울 것.


취한다. 서울의 거리 거리에서.

엄마,형,주원이-

옛날 불행했던 시절. 부산 내려갔을 때 엄마가 하나씩 사 주었던 일본제 도깨비 마스코트. 눈동자가 쑥 빠져 나오는 그것을 어디서 잃어버렸을까?

중3때, 옆자리 한충인가하는 깡패녀석이 그걸 갖고싶어 안달을 했었는데.

형이나 주원이는 아직도 그걸 가지고 있을까?

그 마스코트에 나는 이름을 붙여 주었었지.

淑孝憲媛....

자하문 밖 하숙집에 배달된 정순자란 여자의 편지.

작은 아버지 집에 있던 주원이에 관한 반듯한 애정 가득하여 오빠들에게 어떤 각성을 일깨워 주었던 편지.

당시 작은 아버지 집 가정교사 미술대 여대생이었던 정순자님의 그 편지는 내게 소중하게 간직되어 있는데.

그 따뜻한 마음씨.

전혀 관계없는 우리들에 대한 그 선의.

얼굴도 모르는, 한없는 누나같은 그 분. 정순자....


1970 10. 23. (금)


외갓집 작은 형의 결혼식.

주원이와 같이 참석.

외숙모,이모,이모부,외삼촌,외숙모,큰형,누나들,규정이,혜자...

예쁜 신부와 웨딩마치.

행복하여라. 작은 형.

서부 개척지같던 정능의 주택가. 나직하게 부르던 켄터키 옛집.. 규선이형.


명동 국립극장.

여인극단의 '몽유병환자'.

부산과는 규모 자체가 틀린다.

노숙한 연기.

그러나 애매한 인물설정, 모호한 캐릭터.


1970. 10. 24. (토)


부산서 해병대장교 길선이도 올라왔다.

고생하는구나. 폼잡느라 이길선중위.

카이자호프에서 마시기 시작한 술.

그예 꼭지가 돌아 성태와 길선이 싸움들을 하고.

정민이 누나 합석.

올드미스의 서글픔같은 걸 풍기고, 제법 철학적 사고의 언어를 구사하고, 로맨틱한 분위기도 연출할줄 아는,


1970. 10. 27. (화)


철수와 단성사에서 "내일을 향해 쏴라"보았다.

버치 캐시디, 선덴스 킷.

폴 뉴먼, 로버트 레드포드.

흑백과 천연색의 능숙한 콘트라스트.

시니컬하고 풍자적인 두 악당과 더욱 시니컬한 음악.

"만일 내가 죽으면 저 놈을 죽여 줘."

"자네 여자를 훔치는 중야."

"그걸 엄호라고 하냐?"

"그걸 달리는 거라고 달리냐?

"다음엔 오스트랄리아로 가자."

"그곳에 은행은 있나?"


명동엔 언제나 사람이 붐비고, 모두들 열심히 살고있는 듯 바쁘고.

그 속에서 서울에서 쫓겨 내려 간 나의 열등, 소외의 자의식은 입으로 코로 마구 흘리고 있는데.

서울여자들은 모두 아름답고 세련되고,

나도 구사할줄 아는 서울 말씨는 아무래도 내 것과는 다른 에스프리가 흘러넘치고,

나는 가끔 허영에서나마 압축되는 나의 주체를 느끼고,

사치처럼 술을 마시고.

감정은 마구 방탕하고....

명동엔 언제나 사람이 많구나.


성태놈이 어쩌면 정민이누나를?

그랬다면 그 놈은 비열한 놈이다.

그렇지 않기를 바란다.


1970. 10. 29 (목)


서울의 때를 말끔히 문질러 씻다.

7시. 상곤 만나러 코지코너.

내가 개척한 코지코너에는 여전히 시시한 놈들이 들끓는다.

환경이 웬 녀석들과 싸워 피투성이.

부평집 2층에서 푸다.

상곤,길선,성태,희진,환경,성영희.

길선이란 놈 그 지겨운 의식적인 주정과, 성태놈 되지도 못한 자기도취란...

상곤에게서 예전의 예술적 광기같은건 사라지고.

11시 40분 다시 코지코너로.

다방 구석의자에서 쥔 아들인 화가 박무열씨, 성태,환경,희진,성영희등과 밤세워 마시기로.

새벽 3시, 애들 다 뻗고 박무열씨와 나와 남아 대작.

꽁초 찾아 피워가며 무슨 제대로 된 예술가인양 끝없이 씨부려대는 얘기 얘기들.

위스키 3병이 바닥 나, 5시쯤 그대로 의자에 꼬꾸라진다.


1970. 10. 30 (금)


자그마치 3시까지 곯아 떨어져 잤다.

꿈도 없었던 듯.

책과 레코드 한 장 산다.

영화예술지, 창작과 비평 그리고 슈벨트의 겨울나그네.

슈벨트가 노래한다.

책이 있고.

종이와 연필이 있고.

계절은 이토록 싸늘하고.

깊숙히 침잠하여 아름다움을 찾지 못할 이유가 없다.


1970. 11. 2 (월)


오전 예비군훈련.

훈련이 아니고 불려나가 소총 수입하는 작업.

어느 삼십대 고참왈 "여기 나온 사람중 똑똑한 사람 누가 있나?"

말하자면 나는 좆도 끝발이 없는 놈이라는 얘기.


오후 "태양은 알고있다"영화 보다.

음영 짙은 알랑 드롱의 표정 연기. 노골적인 정사씬. 정물화와 같은 카메라 워크. 지루할 만큼 오래 끄는 롱 테이크.

다소 괸찮은 영화.


저녁 코지코너.

학도와 앉아 있는데 휴가 나온 상곤이 나오다.

상곤의 흥미 분야는 정신, 뇌파, 텔레파시.... 상곤에게는 이상스런 오만이 느껴진다.

그의 형의 정신이상, 누이동생 벨기에의 수녀원, 동생 신학생....

카토릭적 세계와 정신병적 세계에서 오는 어떤 형이상학적인 분위기.

박무열씨.

내일 드라마센터 사람들과 만나기로 하였는데 같이 가자고.

예술의 분위기, 그리고 그 무리들의 세계...

내게 있어서 타인과의 교류는 언제나 미묘한 그 무엇이다.

너무나 서툴다고 느끼는데 그건 순전히 내 자의식이 너무나 강한 탓일게다.

나의 자존심을 속이는 것에 대하여 느끼는 두려움.

난 토끼가 있는 곳에서나 여우가 될 놈이지 여우있는 곳에 호랑이 가면을 쓸 놈은 되지 못한다.


1970. 11. 4. (수)


상곤에게서 원고를 받았다.

그의 논문과 오리지날 시나리오 한편.

고맙다. 귀중한 지산의 원고를 맡기는 상곤의 나에 대한 어떤 신뢰감.

그러나 그가 생각하는 만큼 내게 번득이는 재능이 있는 것일까?

일변, 두렵다.

시나리오의 제목은 '바닥이 보이는 관'

읽는다.

죽음, 제의적인 장례... 잉그마르 베르히만의 영화적 분위기 가득한데 상곤이의 난해함이 숨어 있다.

한성여대 올라가 방송과장인 김동규와 김승일씨 만나다.

손수 타주는 커피마시면서 그 분과 연극이라는 단어를 씨부리다.

"언제든지 불러 주십시오."하다.

그의 번역 희곡 'THE TYPIST & TIGER' 받아 읽는다.

늦은 저녁 코지코너.

상곤이가 소개하는 준수한 친구. 왕성규.

동아대학교 영화예술연구회 회장, 나를 대단한 예술가 선배로 극진한 응대에 부끄럽다.

진지하고 성실한 자세의 그들.

박상곤, 왕성규...

국제시장 밀주집, 구로집에서 셋이 마신다.

끝없이 이어지며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영화를 비롯한 예술론...

모처럼 진짜 내 꿈꾸어 오던 찬란한 얘기들을 뱉어 낸 것이다.


1970. 11. 6 (금)


상곤 내일 귀대한다고.

왕성규와 함께 만나 대낮 부평집에 앉아 막걸리 마신다.

셋이서 '메술떼'의 정기형씨 찾아가 전에 부산대 영화회장 하였던 친구 만난다.

종교에 관한 얘기들 나누고.


밤, 코지코너에서 박무일씨, 희진이, 미스차, 나 이렇게 넷이서 밤세워 마신다.

박무일- 홍대출신의 자칭 화가인데 코지코너에 걸린 그림들은 죄다 자그마한 소품뿐, 푸근한 성격, 둥근 얼굴의 비만형인데 그의 예술론은 날카로운바 있다.

미스차- 홍대출신의 개인전도 몇번 연 진짜 화가인 모양인데, 담배를 피워 물고 술을 홀짝이는 퇴폐적인 포즈의 매력, 여느 그림그리는 여자들처럼 이런 류의 여자는 곧잘 똑똑해지고 곧잘 기발한 매력을 풍긴다.

새벽 5시- 밤새 마신 4명의 악당들은 새벽거리를 헤매다 어느 해장국집에서 속을 풀고 다시 다방으로 돌아 와 영업시간까지 의자에 쓰러져 잔다.


피곤하다. 피곤하다.

마구 낭비하는 나의 언어들이 피곤하다.

이런 사치가 몹시 피곤하다.

'참된 비극은 슬픔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슬픔을 감추는 그 행위 속에 있다.'


1970. 11. 10 (화)


부평집.

성태,길선,희진,홍민,환경,무일등과 어울려 마신다.


그리고 조금있다가 왕성규, 그는 왕수지라는 예명을 갖고 있다. 가 '상헌씨 보고싶어 미치겠다'며 와서 함께 어울리는데.

왕수지는 이런 잡놈들보다는 어깨 하나가 더 큰 고상함을 갖고 있다.

그 고상함이 보고 싶어 하는 나란 놈의 실체는 과연 잡놈이 아닐까.


1970. 11. 15 (일)


엇저녁 정말 뜻밖에 정화 찾아 왔다.

아, 그 계집애.

대학때부터 군대 있을적까지 얼마나 가슴을 태웠던 계집애냐.

그토록 요절을 내려다가 실패하고 만.

함께 흑맥주를 취하도록 마신다.

나는 오해 한 모양이다.

짚시처럼, 딜라일라처럼, 날뛰어 종잡을수 없는 계집애라고.

그러나 가장 평범하고 상식적인 사고와 가치관을 내비추는 그 애. 이름도 이쁜 정화...


1970. 11. 17 (화)


정화 만나 함께 르네상스-

연극 '교수대의 유모어'.

김용호씨 만나 무료 입장하였다가 가난한 연극쟁이들에 대한 연민 때문에 도로 나가 티켓 산다.

김영송 교수님 연출, 4년이 길었던가. 더듬어 기억해 내곤 반가워 하신다.

제 1부 사형수 윌터와 창부와의 옥중이야기, 기존질서에 충실하려던 윌터는 그 질서안의 모순과 회의로 인해서 그 질서를 파괴하고 사형선고를 받는다. 그 죽음으로 스스로의 모순을 깨뜨리려 하고, 그러나 창녀를 통해서 진정한 생명의 뜻을 깨닫게 되었을 때 그는 몇분 뒤 교수형을 당해야 한다.

2부, 사형집행관 필립과 그의 아내, 그는 너무나 기계적인 삶과 자신을 얽매이고 잇는 사회적 질서를 탈피함으로 삶의 가치를 찾고자 한다. 아무리 애를 써도 기존의 질서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절감하고 다시 그 진부한 삶 속으로 되돌아 온다.


그 내용은 현재의 나에게 시사하는바 있다.

좀 더 상징적, 표현주의적으로 무대를 꾸몄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으나 연극에의 향수와 연민 때문에 비평의식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정화.

라는 여자, 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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