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 6. 1 (금)
노오란 계절, 5월은 갔다.
시간을 생명으로 죽이고 있는 아픈 정화.
확신으로 인생을 사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가식과 자기도취 또는 착각으로 이루어진 확신일 것.
그러나 실존의 밑바닥까지 통찰하여 삶이란 과연 살만한 가치가 없는 것이구나하는 확신에 이르면 그 또한 비극이다.
1973. 6. 2. (토)
목욕하다.
바람에 설래이듯 흔들리는 나뭇가지를 우두커니 한참동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청명한 유월인데 바알간 장미 꽃잎이 떨어져 뒹군다.
고만 피곤이 엄습한다.
어머니의 눈치 속에 고단한 한낮이다.
외국여인의 제스추어에는 감각을 ENldj 넘은 생태적인 세련됨이 있다.
1973. 6. 3.(일)
정화 만나다.
알벨또 라뚜아다 '사랑과 죽음의 전장'
인간의 본성에는 전쟁에의 욕망, 지옥의 형상을 그리는 마성이 자리잡고 있다.
연지동에서 찬란하지도 않은 그 에로스의 언덕을 오르다.
별들이 쏟아지는데 나는 떨어지는 그 별을 헤아리는 소년.
1973. 6. 4 (월)
정화와 '남태평양'
낙원같은 바다가 있고, 노래와 음악이 있고, 춤이 있고, 비극의 드라마 또한 있으나 그 속에서의 비극은 비극이 아니다.
'내가 마음과 넋을 불태우는 사내다운 것을 존중하고, 또 그와 같은 열렬한 것을 추구하는 것이 옳다고 믿은 것이 잘 못되었나? 이 세상에서 제일 강하고 제일 굳세게 사는 자는 제일 고독한 자야. 어두컴컴한 숲 속을 자기 입김만 따라가는 늙은 곰이 바로 그런거지. 정다운 친구도 없고 위로해 주는 동물도 없어. 그 자가 울며 부르짖는 소리가 어째서 쥐새끼 울음처럼 가냘퍼야 해?'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중 지미의 대사다.
맑은 새벽같은 청색의 서리가 서서히 내리기 시작한다.
나는 무언가 또 잠 속에서 찾으려 한다.
숙면하지 못하는 고통에서 벗어나 보았으면.
눞자마자 코를 드르렁거리며 곯아 떨어지는 사람들을 나는 증오한다.
그들은 조야하고 더럽고 불순하다.
1973. 6. 5 (화)
역사의식이라는 것.
모든 예술의 본질은 허무를 극복해야 한다는 명제로 일관해야 할 것.
역사는 허무한 것이 아니지 않은가.
고적감, 대낮의 그 고적감은 견디기 힘들게 고통이다.
낙영만나다. 그를 만나면 어김없이 행하는 술마시기. 싫어하는 것이 없다는 것은 낙영의 장점이며 단점이다.
태초에 신은 무수한 유치를 창조하셨는데 나는 그 유치의 숨결에 호흡을 맞추어야 하는 아주 희극적인 비극배우.
아, 절대자여.
이래 뵈도 나는 재능이 있는 놈이 아니올시다 그려.
1973. 6. 6 (수)
비 내리다.
육신은 잠에 빠져 있으나 정신은 말짱 깨어 있는 밤이여.
아침의 그 흐릿한 불쾌감.
어제는 그만 취해 버렸는가.
경찰서, 예비군 문제가 여직 끝나지 않았다니 이 또한 불쾌하다.
아, 불쾌하다.
일상의 유치함들이 너무나 불쾌하구나.
자신에게 관대하자.
못살겠다.
신경은 극도로 날카로와지고, 번득이는 건 살기일까?
돈과 시간.
비가 내린다.
살신성인한 영령들아.
진혼곡의 나팔소리에 나와 춤춰라.
비가 내린다.
무덤 속의 착한 귀신들아.
나와서 춤추고 노래하라.
1973. 6. 7 (목)
헨리 하사웨이의 'Raid on ROMEL'
저녁.
나는 이렇게 축축히 저물어 가는 저녁을 사랑한다.
게다가 차이코프스키와 한병의 맥주가 있음에랴.
나는 이런 저녁을 사랑한다.
정화.
1973. 6. 8 (금)
서울서 친척들 내려 온다고.
할아버지 돌아가신지 백일째.
어머니는 늘 두려워했고, 늘 기대어 왔던 할아버지와 또한 삼촌,고모들이었기에 설레이고.
나는 이제 발 뒷꿈치처럼 굳어버린 기억의 멍울과 지금의 초라한 내 몰골이 자의식이 되어 초조하고.
T.E.로렌스.
늘 그는 자기자신을 무서워 했다.
일생동안 그가 극복해야 했던 것은 자신이었다.
그는 언제나 자신을 향한 눈길을 거두지 않았다.
그가 그토록 사랑하였던 청결한 사막을 바라볼 때 조차도.
1973. 6. 9 (토)
서울서들 우 내려온 고모들.
일찌감치 벗어나 보수동 뒷골목.
헌 책 한권 사다.
다큐멘타리 영화 '검은 대륙'
눈물겹고 충격적이다.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배, 성냥개비같은 팔과 다리, 뜨려다 감기는 힘없는 눈시울. 비아프라의 어린이들.
나의 문제라는 것이 이 굶주림의 나신들 앞에서 과연 어떤 당위성을 가질수 있을까하는 부끄러움.
나는 두렵다.
그리고 죽고 싶지 않다.
생은 단하나의 귀중한 것이다.
그리고 나는 아직 싫컷 살지 못하였다.
1973. 6. 10 (일)
우 내려 왔듯이 우 몰려 올라가다.
돈이 있으면 그 사람의 모든 색깔은 빛을 띄기 시작한다.
그 사람의 사고와 감성과 언어와 마음씀의 모든 것이.
돈이 좋은 것이 아니라 그런 빛을 띄는 색깔이 좋다는 것이다.
1973. 6. 11 (월)
바람이 불고 거리는 우중충.
'애인교실' 이토록 영화적인 소재를 선택하지 못할까?
돼지불고기와 매캐한 연기와 그녀의 초췌한 아름다움과 독설과 울분과 종장에는 서러움과...
커단 개천에서 물흐르는 소리만 들리고, 또 그것만을 생각하며 물을 먹은 해면처럼 넓고 깊고 무겁게 저 다른 세계로 빠져 들어간다.
1973. 6. 12. (화)
검은 후로아의 샤넬 라인의 스커트.
검은 브라우스.
준수한 이마와 코.
무결한 어여쁨의 순간적인 느낌에 그만 아연해 질때가 있다.
정화.
몹시 바람이 불다.
'우리는 우리의 인격의 한계를 너무 좁히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세계의 총체로 만들어져 있으며 우리 각자는 우리의 육체가 물고기에 이르기까지의, 아니 더 먼 곳까지의 발달의 족보를 간직하고 있듯이 우리의 영혼 속에는 인간의 영혼이 한번이라도 살았었던 모든 것을 간직하고 잇다. 여태까지 존재한 모든 신과 악마는 모두 우리 속에 함께 있고, 가능성으로서 소망으로서 출구로서 존재하고 있다.'
피스토리우스. ....아프락사스.....
1973. 6. 13 (수)
목욕.
존.M.씽의 희곡 '서쪽나라의 장난꾸러기'.
한국의 희곡과의 수준차이.
소설이나 시보다 희곡이라는 장르에서 그 수준은 현격하게 드러난다.
다시 읽는 김승옥의 '생명연습'
22살에 이런 소설을 쓸수 있다니!
그 감각과 조숙함.
김승옥은 최고의 소설가다.
상곤 만나다.
텔레파시와 독심술과 동양적 신비주의 얘기들..
조금 취한다.
엄마는 나를 증오하기 시작했는가?
박제가 되어 버린 애정.
부끄럽다.
1973. 6. 14 (목)
상곤이와 종일 바둑.
주간한국에보내려고엽편소설'BeautifulSunday'구상하고 조금 쓰다.
쓰고 나니까 시시하다.
김승옥의 백분의 일만큼의 감각만 있었으면.
1973. 6. 15 (금)
홍성원 '처세술개론'
그녀에게 무언가 할 말이 태산이어서 편지를 쓰려고 펜을 잡으면 그만 콱 막혀버리고 만다.
나의 필재는 도저히 나의 가슴을 따라갈수 없다.
1973. 6. 16 (토)
결국 편지 써 부치다.
실제적인 내용은 하나도 없고 추상적인 내용만 나열.
사랑....사랑.....견디자......미래......
무위는 두려움이다.
할 것이 있는데 내팽겨처 놓는다는 것은 하나의 공포이다.
군대에서 검열공포에 쌓여 어두운 2,4종 창고에서 전전긍긍하고 있으면서도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그런 기분.
고흐의 자화상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그만 슬퍼져 버린다.
그가 그토록 그리려고 하였던 행위, 행위 자체의 찬미였을까?
그 불타오르는 생의 환희의 분류와 같은 그림은 그리는 순간의 행위의 찬미일 것.
T.E.로렌스.
그는 너무나 간단하게 나를 감동시켜 버린다.
그가 좋다. 참으로 좋다.
1973. 6. 17 (일)
형의 생일.
형 친구들과 어울려 술 마신다.
그런데 내 술과 그들의 술과는 차이가 있다.
술 마신다는, 술잔들어 입에 붓는다는 기분의 합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물론 내 방법이 틀려 먹었다.
나의 방법은 오만한 술마시기이다.
1973. 6. 18 (월)
안방에서 기회를 보고 보아 힘들게 나는 얘기한다.
약한 사람에게 강하고 가안 사람에게는 약하다는 행태에 대한 한마디 얘기를....
그러나 엄마는 아랑곳 없구나.
나는 엄마에게 무엇도 할 수가 없다. 엄마는 절대자이다.
연지동 정화의 집.
그녀의 아버지, 어머니.
나는 좋은 사위가 되어야 한다.
지금 고통받는 그 녀.
여자만이 받아야하는 괴로움.
나는 그녀를 평생 사랑해야 한다.
1973. 6. 20 (수)
낙영 상곤 만나다.
그리고 낙영이 데리고 온 웬 여자아이.
술 취하다.
혼탁한 사변과 자기도취적 열변과..
사기다.
아, 정화. 정화.
가엾은 정화.
1973. 6. 21 (목)
돈을 빨리 구해야 한다.
그리고 그녀의 건강찾기.
나같이 무능하고 무책임하고 나쁜 놈이 있을까?
여름.
무덥고 끈적끈적한 여름.
불쾌하고 더러운 여름.
저녁에 야구에 열광한다.
스포츠는 도취할수 있는 대상이다. 술과 같이...
경남고 승리.
1973. 6. 22 (금)
벌써 무더위.
한여름이 성큼 닥아 온거 같다.
올해 날씨는 정상이 아니란다.
동경의 시민들은 지진의 공포 때문에 불안해 하고 있다고.
여름.
여름은 환희이고 긴장이다.
여름의 극치는 곧 죽음을 내포한 어두운 축제이다.
영원하고 보편적인 통일성.
결국은 하나님이 필요할 뿐이다.
1973. 6. 24 (일)
어젯밤 환자 문제로 떠들썩.
어머니는 아직까지 어딘가 몸을 피해있다.
늘 지배하는 불안 요소.
거의 체질화된 불안을 안고 있다. 우리 집은.
예비군 동원훈련.
27일부터 4일간.
어딘가 용병으로 간다면.
1973. 6. 25 (월)
예비군법 위반.
경찰서에 가서 지문 찍고 종결.
이런 것도 전과가 되는지.
왕수지에게서 편지.
그의 말처럼 부르죠아지 속성 강한 가난한 예술가..
정화.
연지동의 무더운 수면.
아침.
비가 온다. 비가 온다.
그녀의 초췌함을 빗속에 보내고.
1973. 6. 26 (화)
비가 내린다.
내일부터 나흘간 부대들어가고.
숙면이 없는 잠이라는 것은 더 큰 고통이다.
그린피아라는 중독성없다는 수면제.
비.
고마운 비라고.
농촌은 해갈을 하고 나의 훈련은 나이롱이 될 수도 있는.
부대에서도 나흘간 잠들 수 없다면 미상불 큰일이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 들어가리라.'
1973. 6. 30 (토)
흠사 훈련병처럼 쫓기는 일상. 나흘간.
군대의 유치함.
직업군인에 대한 아니꼬움.
유격훈련, 포복.
첫 날의 불면, 그러나 둘째 날부터는 잘 잤다.
내게는 강제적인 일상이라는게 필요한가.
김아무개, 서아무개씨등과 취침전 모포위에 둘러 앉아 마시는 소주 정량.
그리고 나흘후 제대군인처럼 껄껄대며 영문을 나섰다.
피곤하다.
무더운 대낮은 저물고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태풍이 오려는가?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이것은 내일의 바람이다. 내일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상곤만나 막걸리 몇 잔.
아이스 쑈 티켓 2장.
엄마께 얻다.
1973. 7. 1 (일)
정화와 구덕 체육관에서 아이스 쑈.
은반 위의 그 화려한 파노라마들.
그 속에서 잠시라도 잊자.
정화야.
1973. 7. 2 (월)
완연한 여름이다.
쨍쨍거리며 태양은 매섭게 증오한다.
빙하의 투명함, 냉정함은 여름에는 없다.
찬물 뒤집어 쓰는 맛은 여름의 몇 안되는 즐거움이다.
할머니 서울가시다.
1973. 7. 3 (화)
사고의 한계라기 보다 상상력의 빈곤.
누구처럼 줄줄 글을 쓸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으랴.
가슴 속, 머리 속 맴도는 이 것들을 끄집어 내어 형상화시킬수 있는 재주가 내게는 없다.
그런 재주가 없다면 노력이라도 있어야 할텐데 내게는 그것마저도 없으니.
외 곬로 파고들기보다는 너무나 다양하고 다채롭게 감상의 화살은 빗나간다.
집착하지 못하고 일종의 운명론자.
이런 기분일 때 T.E.로렌스는 내게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한다.
1973. 7. 5. (목)
나의 모든 상황은 지극히 안정적이지 못하다.
비참할이만큼 비극적이다.
이를 벗어나는 것은 나 혼자만의 몸부림으로 해결될 성질의 것이 결코 아니다.
외면적인 상황으로부터의 탈출은 주위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
내 이웃이여.
나를 이해해 주기 바란다.
말없이 고통을 호소하는 내 표정을 이해해 주기 바란다.
허지만 궁극적인 내 사고의 불안은 전혀 내 인식 탓이다.
까뮈의 부조리. 그것을 감지하는 것과 그것을 벗어나려는 몸부림, 반항한다는 理智.
그는 왜 자살을 경멸하였을까?
그 부조리를 인식하면서 왜 인생을 그토록 사랑하였을까?
그것은 부조리는 그에게 있어서 거짓느낌이었고 오직 인생만이 진짜 느낌이었기 때문일까?
까뮈는 위선자다.
1973. 7. 6. (금)
뜨거운 날씨.
그 녀를 생각하며 이 뜨거움을 꿀걱꿀걱 삼키다.
비토리오 데 시카의 'The Place for Lovers'.
네오 리얼리즘에 빛나던 그가 이 무슨 부르죠아적인 망발이냐? 엉터리다.
이 영화를 그가 만들었으면 이건 엉터리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말이다.
작가정신은? 그 빛나던 에스프리는 어디로 갔단 말이냐?
역시 인간이란 가난한 상황에서 끓는 정신을 갖게 되는가.
부로죠아의 색채감, 엉터리 사랑 이야기, 훼이 더너웨이에게는 창부와 같은 병적인 아름다움이 있다.
나는 그녀에게 정욕을 느낀다.
내일 또 예비군 훈련.
모레는 그녀, 그녀의 눈빛을 그윽히 바라보리라.
거기서 나에 대한 신뢰와 애정을 읽고야 말리라.
'이 역한 공기에서 멀리 날아가
드높은 대기 속에 그대 몸을 씻으라.
그리고 깨끗하고 신성한 술처럼
맑은 공간의 저 밝은 불을 마셔라.'
-Baudelaire-
1973. 7. 7. (토)
땡볕 속에 훈련같지도 않은 훈련.
이런 짓거리를 왜 해야 하는지 예비군제도를 만든 사람은 알고 있을까?
주원이 내려오다.
완전히 이질적인 신선한 서울의 바람을 몰고서.
1973. 7. 9 (월)
슬픔은 부끄러움을 낳고 부끄러움은 분노를 낳고 다시 분노는 슬픔을 낳는다.
1973. 7. 10. (화)
보생의원이 무척 무너지고 싶은가 보다.
부엌쪽 지붕이 조금 내려 앉았다.
섬찍한 공포.
가족 파괴.
의식 어느 구석, 각인된 그 혼탁한 기억들.
어머니의 주름살.
그리고 혼탁할때의 어머니의 눈빛.
그리고 어머니의 불쌍한 애정.
가슴을 면도칼로 도려내는 아픔이다.
나는 어머니와 정화를 사랑한다.
어떤 방법으로든 어머니와 정화를 구원해야 한다.
그 방법이 종교적인 뜻을 갖는다 해도.
어머니.
불쌍한, 불쌍한
내 어머니.
1973. 7. 11. (수)
오늘도 역시 폭염.
술은 며칠째 마시지 않는데 위장이 쓰려온다.
원고지 한뭉치 사 두었다. 쓸려나?
답답하여 저녁에 잠시 남포동 나가서 '겟트로'라는 우스운 영화 보다.
연도다리를 건너 오면서 차츰 비감해지기 시작한다.
길은 없는가. 길은 없는가...
내 이 고통을 나 혼자서 연소시킬 수밖에 없는가.
나를 타인에게 이해시킨다는 것이 그토록 불가능한 것일까?
'결국 극단적인 것은 우리에게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도 그것에 대하여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로부터 달아나든가 우리가 그것으로부터 달아나든가 둘중의 하나이다 '-팡세-
극을 요구하거나 극에 집착하면 파멸이다. 중도를 지향하여 무언가는 포기하여야 한다.
그러나 포기할수 없음은 내가 바보인 까닭인데 바보란 것을 알면서도 왜 그 바보를 인식할수 없나? 나란 바보는.
1973. 7. 12. (목)
엽편소설 쓴다. 완성.
나의 감각은 도저히 김승옥의 백분지 일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어떤 풍자의 폼이야 잡지 못하랴.
낙영 전화로 오랜만에 만도씨 만나다.
그가 번역하였다는 니체의 'My Sister And I'.
만도씨는 그 정도 실력이었나? 니체를 번역하다니!
막걸리 잔을 비우며 연신 나누는 대화들.
가짜배기..속물..니체..파스칼..생덱쥐뻬리..로렌스..일본소설들..짜라투스트라..사람..인격..지식..사상..허영..논리..절망.. 극대..극소..그리고 우울한 색깔의 하늘과 노오란 대기와 숙취와 피곤과..
'내가 조숙을 가장해 보이면 사람들은 날 조숙하다고 소문냈다. 내가 게으름뱅이짓을 해 보이면 사람들은 날 게으름뱅이라고 소문냈다. 내가 소설을 못 쓰느척 했더니 사람들은 날 못 쓴다고 소문냈다. 내가 거짓말쟁이짓을 했더니 사람들은 날 거짓말쟁이라고 소문냈다. 내가 부자인척 했더니 사람들은 날 부자라고 소문내다. 내가 냉담을 가장했더니 사람들은 날 냉담한 자식이라고 소문냈다. 그러나 내가 참말로 괴로워서 얼결에 신음을 했더니 사람들은 날 괴로운 척 하는 거라고 소문냈다. 아무래도 어긋나기만 하다.' -다자이 오사무 '사양'-
1973. 7. 14. (토)
정화.
더위, 더위,
거기다 어머니의 눈빛.
정화의 초췌함.
기백원의 현금.
바캉스란 누구의 발음인가.
하, 나는 미쳐 버리고 말리라.
그 높고 숨찬 언덕.
잊자. 잊자. 몽환으로 잊자.
1973. 7. 15 (일)
더위와 그녀의 무지한 신경질과 그 어둔 색채의 엄마와..
이 무더위 속에 오들오들 떨고 있는 내 가엾은 그녀와.
그리고 내 의식과.
1973. 7. 16 (월)
성규에게서 편지.
주원이에게서 편지.
주원아. 나도 그러고 싶다. 나도 안다. 나는 논리를 사랑하는 놈이 아니란다. 내가 얼마나 속물인지를 네가 안다면 너는 그만 어안이 벙벙해 질 것이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벗어 날수 없는 천성이라는게 있는 법. 이게 곧 운명이라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의도하는 것은 절대 이게 아니다.
낮잠은 깊고깊은 나락의 도취이다.
그것은 말할수 없는 나태와 불쾌를 향한 어두운 욕망이다.
일종의 자포적인 기분과 정신의 불건강을 의미한다.
정화에게서 전화.
무엇이 미안하니? 그렇게 간단명료한 문제가 아니지 않니? 상대의 내면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에게는. 철의 진지를 구축하여 !!!!!
1973. 7. 18 (수)
새로운 꽁트라는걸 하나 쓰기 시작한다.
그리고 우스꽝스런 내 창조의 기쁨에 낙영을 불러내어 생맥주를 마신다.
항구- 그 느낌에 대하여 그 친구가 완벽하게 내 느낌을 감지할수 있도록 설명하지 못하는 내 표현력에 절망한다. 그런 주제에 소설이라니!
오늘 태풍이 온단다. 지금도 내 1M 옆의 밖에는 바람이 아우성치고 빗줄기가 세차게 때린다. 드디어 드디어 여름의 제국은 멸망하는가.
이 바람이, 태풍이 온갖 인간의 옷을 때려 벗기고 말았을 때 나는 태풍처럼 그들을 지배하리라.
어머니,정화,상효,주원이, 그리고 내 조그만 젖엄마.
우리 아주 자그마한 노아의 방주에 오르자.
우리는 조금 진짜 아니니?
1973. 7. 19 (목)
어제 태풍은 오지 않았다.
지금 바람이 분다. 태풍의 전초병인 바람이.
작은 집 차로 태종대 드라이브.
포말 부서지는 광장. 바다.
1973. 7. 20 (금)
주희, 따꾹이와 중앙동 실내 풀장.
몇 년만의 수영인지.
물 속의 장난은 즐겁다.
매끄럽게 풍만한 육체는 보기에 좋으나 살갗에 다으면 때로 징그럽다.
1973. 7.21 (토)
홀로 술을 마시면서 책을 보거나 TV로 좋은 영화를 보는 것.
이것 보다 즐거운 일을 끄집어 낼수 없다.
이럴 때 누가 와서 말을 걸거나하면 술 맛은 달아난다.
집 앞의 생맥주집.
돈만 있다면 얼마나 이용하기 좋은가.
생이라는 맥주 맛이 너무 좋다.
그녀가 좋아하는 신선한 날열매를 따 먹는 것 같은 그런 신선한 미각을 만든다.
천재라는 것은 과학적 분석이 불가능한 건가?
일찍 한문을 깨첬다는 것과 천재라는 것은 그 의미가 근본적으로 다르다.
오히려 일찍 도를 깨쳤다는 것이 훨씬 천재에 가까운 의미일 것이다.
내일 그녀를 만난다.
만나면 좀 나는 냉정해 져야겟다.
그런 냉정이 무지하게 방법적이라는 걸 좀 알아줬으면.
1973. 7. 22 (일)
그녀와 옷토 프레밍거 '석양' 감상.
남부적인 분위기, 두드러지는 극적구겅은 없지만 내면적인 격렬한 드라마가 느껴진다.
흑인,백인, 농장 도식적인 미국 남부의 소재들..
테네시 윌리엄스의 냄새도 난다.
영화는 영상으로서 냄새를 풍긴다면 이미 영화다.
드라마 트루기운운하는 연극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야한다는 따위는 훨씬 뒤의 문제다.
영상만 있으면 그것이 영화다.
그녀와 맥주.
그녀는 아름답다. 지금 아름답지 않더라도 아름다운 아이다. 나는 그녀를 사랑한다.
남포도에서 그녀를 버스에 태워 보내 돌아서려니 '상헌아!'하는 소리.
영길이형 만나다.
부산 연극계의 보배. 영길이 형.
전성환씨와 MBC에 있다고.
한시간여 막걸리 마신다.
1973. 7. 23 (월)
대복이라던가.
낮잠.
낮잠은 불쾌하다.
지도를 사랑하는 아이는 지식을 사랑하는 아니.
미지의 지식에 대한 욕망과 철학을 사고할줄 아는 아이.
어두워지는 하늘의 먼 곳 구름을 가만히 바라본다.
우주의 침묵이 느껴진다.
파스칼이 인간을 사고하여 무언가 도출해 냈을때도 아마 먼 하늘의 구름을 바라 볼 때 였을 것 같다.
1973. 7. 24 (화)
권태.
이상.
다자이 오사무.
그는 권태로웠을까?
인생을 너무나 통찰하였기 때문에 권태로운 것이 아닐까?
니힐과 통하는 의미.
사양.
언제 읽어도 가슴 저릿저릿한 소설.
아쿠다가와가 끝난 시점에서 다자이 오사무는 출발하였다고 하는데 나는 아쿠다가와를 별로 읽어 보지 않았다.
그를 찾아 읽어 보자.
1973. 7. 25. (수)
가장 무더움.
사람들은 무식하고 조야하다.
양주를 마시고, 자가용을 굴리고, 오페라의 아리아나 몇 개 흥얼거릴줄 알고, 영화 얘기를 할줄 알고, 그러면 소위 교양인인가?
음미라는 게 없다.
자기를 대입시켜 스스로의 더러움을 발견할줄 모른다.
왜 그걸 모를까?
자신이 너무 생각할 줄 모른다는걸 왜 그토록 모를까?
답답하다.
무식하고 조야한 주위의 사람들이 답답하여 숨이 막힐 지경이다.
그런 사람들이 영웅을 만든다.
아주 속물들이 영웅을 만드는 법이다.
역사를 남의 것인양.
종교적 감동도 없고, 감각적으로 종교를 받아들이고, 찬송가를 부르고, 사고 추구 자기왜소에 대한 괴로움따위는 없다.
그런데 조야한 사람들은 왜 겸손하지 않을까?
자신의 무식함이 남에게 영향을 줄수 있다고 생각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모를 일.
그러나 그들을 경멸해서는 못쓴다.
나도 그들중 하나인걸.
1973. 7. 26 (목)
오랜만에 어머니,김선생님,간호원 모두 놀러들 나갔다.
보생의원 영업 시스템의 휴업이다.
왼종일 병원 책상앞에 앉아서 책 읽는다.
형 들어와서 '병원 다 비워 놓고 놀러들 가면 어떻게 해.'하고 화를 낸다.
단순함. 도련님의식.
왜 진실한 건 절망과 가장 가까워야 하나?
모든 게 그렇다.
진실한 건 시인.
영웅은 너무나 진실하지 않다. 대중적이다.
'그들은 숲 속에 잠겼다. 그리고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고 그들도 아무말 하지 않았다.'
이건 누구의 시더라?
비가 올 것 같다.
비가 왔으면 좋겠다.
1973. 7. 27 (금)
비가 내리려다 멈추었고 하늘은 음산하게 가라앉아 있다.
내일 서울서들 피서차 내려 온다고.
원시부터 인간이 간직하고 있는 가장 순수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성욕이다.
성욕보다 깨끗한 것은 있을수 없다.
인간이란 가장 파토스적이다.
파토스가 로고스를 포용하고 있는건 아닐까?
새로운 형태의 학문이 필요한 현대가 아닐까?
정신분석학을 넘어선 그 무엇.
이성 감성 따위를 초월한 그 무엇.
아아트만, 브라흐마 하는 인도철학 같은 것..
신비주의의 그 무엇..
시이나 린소의 '영원한 서장' 읽다.
특이한 소설.
책을 읽자. 많은 책을 읽자.
나를 극복하는 길은 입산을 하던가 책을 읽던가다.
결국 절망하고 말테다.
책을 읽자.
1973. 7. 28. (토)
서울서 할머니, 막내 작은아버지일가족, 대훈이 내려오다.
여름. 바다.
번잡함 벗어나 저녁에 샌달 끌고 나가서 영화 본다.
세실 B 데밀의 '십계' 한번 더 봐 주다.
셋트의 완벽함과 몹씬의 거창함은 역시다.
스탠다드 화면에 꽉 찬 농밀함.
영화가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의식, 연극의 아류가 되는, 압축되고 농밀한 드라마는 스탠다드화면이 제격이다. 시네마스코프와 같이 황량한 영상의 허무함이 없어 보인다. 넓은 화면이 허허롭게 느껴질때는 그 공간은 감독의 능력부족, 역부족의 공간이다.
결코 현대의 공허 허무를 나타냈다고 말한다면 그건 변명이다. 미켈란제로 안토니오니의 영화는 모두 스탠다드화면의 흑백이 아니었나.
내일 정화 만난다.
무척 덥다.
언제 쯤 축복처럼 비가 쏟아 지려나.
여름에 꿈꾸는 바다. 그래 사람들은 여름에 바다를 꿈꾼다. 바다 찾아 내려온 작은아버지네처럼..
짐승의 잇빨처럼 소리지르며 몰려 오는 파도를 꿈꾼다.
더위는 불쾌지수를 높이고, 그 억압된 것들은 푸른 바다의 포말을 그리워 하는 것이다.
바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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