辨明 僞裝 呻吟 혹은 眞實/部分

'辨明, 僞裝, 呻吟, 혹은 眞實' 公開의 辯

카지모도 2016. 6. 16.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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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辨明, 僞裝, 呻吟, 혹은 眞實'

公開의 辯




당초.

日記라는 형식으로 끄적거린 공책의 글을 P/C에 옮겨 入力코자 시도한 것은 순전히 척박한 신앙을 한번 다 잡아 보기 위해서 였습니다.


삼십대 끝무렵의 어느 날.

홀연 거칠고 거친 하나님의 세계가 완전히 나를 압도하였었고, 나는 그 신비한 빛 속에 함몰되었던 적이 있었거든요.

그 다음해 1987년 2월 어름의 새벽 기도중.

하루도 빠뜨리지 아니하고 일기를 쓰기로 그 분과의 약속을 하였더랬습니다.

그 내용이야 난삽한 것이지만 오늘에 이르기까지 하루중 일정시간 책상 앞 앉는  습관 하나만은 나의 신앙의 약속에 대한 진지함이란 자부심이 있습니다.

 

기록 중 신앙에 관련된 부분을 골라 컴퓨터에 넣어놓고서, 내 존재 어딘가에 기억으로써, 혹은 영혼이 경험한 어떤 흔적으로서 남아 있을 법한 단서를 찾아, 당시의 그 거친 느낌을 반추함으로써 변질되고 부박한 작금의 신앙의 식은 재에다 불씨 한톨 당겨보자는 생각에서  짬짬이 자판을 두드려 아날로그의 문자들을 디지털로 옮기기 시작하였습니다.

 

문득 다른 하나의 욕심이 솟아나기 시작하였습니다.

기록들을 공개하자는 것이었지요.

볼펜으로 필기한 글자들을 무한정 복사가 가능한 디지털로 변환시키는데 있어서, 그걸 그대로 여기저기 사람들에게 읽히도록 하자는 생각.


기록이라는걸 다시 읽노라니.

살아온 인생역정이라는게 참으로 평범하기 짝이 없어서 내밀할 것도 감출 것도 없는 그렇고 그런 참으로 어줍잖은 것이었구나하고 느끼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중뿔나게 유별난 인생사의 다양함도 없을뿐더러 무슨 특별한 경험의 글도, 기발하고 특출한 느낌의 기록도, 무슨 대단한 사유의 기록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보잘 것 없이 살아왔고, 모자라게 사유하고, 못난 품성으로 느낀, 뛰어 난 글솜씨도 아닌 그저 평범해 빠진 글조각들의 나열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나 죽기 전 이것을 사람들에게 읽히도록 해보자.

 

그 의도에는 '이해받자'는 강렬한 욕망을 숨기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읽혀짐으로서 이해받기를 시도해보자는 것입니다.

 

자의식이겠습니다만 나는, 사람들에게 나의 감정모체의 진정한 현실을 보여주려 하지 않았고, 사람들 역시 내 우물 속을 들여다 보려 하지 않았습니다.

나라는 인간은 어느 누구로 부터, 심지어 가장 가까운 나의 이웃으로 부터도 한줌 파악되지 못하면서도 잘도 견디며 살아 왔구나하는 안타까움이 있는 사람입니다.

이런 안타까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비단 어찌 나 뿐이겠습니까만, 어쨌든 나 역시 그러한 안타까움에 가슴앓이를 해 온 사람들 중의 하나라는 사실이 새삼 절실하게 느껴졌던 것이지요.

 

누군가 말했다지요.

'어떤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이를테면 그가 굉장히 화를 내고 있을 때, 실은 그의 절절한 감정모체는 죄의식으로 몹시 괴로워하고 있다는 그 내면의 그 사실을 눈치채는 것이다.' 


그러나

이 기록들이 나의 내면을 올곧게 표현한 진실의 기록일리는 없습니다.

감정모체의 진실을 내비치기가 부끄러워서 변명하기에 급급하였거나, 혹은 그 진실을 직시하기가 무서워서 위선이나 위악의 거짓으로 왜곡하여 자기합리화에 끙끙대었거나, 혹은 그 진실이 불쌍하여 자기연민에 겨운 신음소리가 고작이었던 경우가 대부분일 런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이 많은 기록중에 어찌 한줌 녹아있는 진실이야 없겠습니까?

이 기록의 제목을 '辨明, 僞裝, 呻吟, 혹은 眞實'이라고 붙인 所以가 여기에 있습니다.


진실은 언어로 표현할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언어가 사유를 위장하고 있다고 하기도 하고, 진실은 언어 속에서가 아니라 언어와 언어 사이 그 침묵의 빈 공간 속에 있다고도 하더군요.

그러나 바라는바, 글자 속에서건 글자 옆의 빈 공간에서건, 그 진실을 한번만이라도 슬쩍 눈치채신다면 나는 기쁠 따름입니다.

나는 정녕, 나라는 인간의 본질을 조금이라도 이해받고 싶습니다.

필경 나 자신도 모를 그것이겠습니만. 


이 기록은.

1967년부터 1973년사이 간헐적으로 쓴 기록들을, 낡아서 부스러지는 공책들을 들쳐가며 자판을 두드렸고, 그 후 1987년 까지의 약 13년간은 아무 기록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1987년 2월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썼던 것들입니다.

현재 120페이지 정도의 큰 대학노트로 쳐서 40권가량의 분량이구요. 먼 곳 출장이나 여행중에 간혹 빠뜨린 날도 있었습니다만 그 날수는 모두 합하여 열흘이 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모든 기록을 몽땅 옮겨 놓지는 않겠습니다.

모든 내용이 진부하고 산만하고 난삽합니다만, 그래도 그 중에서 그 정도가 지나친 것들은 날자를 건너 뛰거나 부분적으로 생략하여 입력하겠습니다.

옮겨 입력하면서 원문의 다듬어지지 않은 조야함이나 표현의 유치함등을 좀 더 품격있게 고치고 싶은 마음 굴뚝같습니다만, 잘못된 맞춤법이나 문맥이 통하지 않는 문장따위를 고치는 이외에는 그대로 옮겨 놓겠습니다.

예전 것의 유치함과 졸렬함을 덧칠하여 세련됨과 유려함을 시도한다 할지라도, 추악한 얼굴에 횟칠하듯이 그 덧칠이 더 이쁠거라는 보장도 없으며, 또한 그것은 나 자신의 의도를 스스로 훼손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어떤 사람들에 대하여 심하게 폄하고 훼하는 내용들이 있는데, 다시 읽어보니까 나의 용렬하였음이 부끄러워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이런 부분들은 그 사람들을 생각해서라기 보다, 나 자신을 위하여도 차마 옮겨 적지 못하겠습니다.

진부하고 산만하고 난삽한 범주에 넣어 생략하는 것이라고 치부할 뿐, 이것이 하나의 위선적인 은폐가 될지라도 어쩔수 없는 일입니다.


정말 대단하지도 않은 기록공개의 변을 이렇게 장황하게 늘어 놓았습니다.

해량하여 주십시오.


끝으로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아포리즘 한구절을 베껴 씁니다.

"나는 어차피 살덩이와 뼈와 피와 땀과 그리고 눈물과 욕망과 꿈으로 가득 채워진 자루이다."


2001년 10월 25일 이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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