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리뷰-
<비단>
-알렉산드로 바리코 作-
***동우***
2011.11.12.
1.
‘비단 (silk)' -알렉산드로 바리코-
운명에 휘둘리지 않는 사람.
비오는 날 창밖을 물끄러미 내다보듯 그렇게 자신의 운명을 관조하는 삶.
그것은 행복한 삶이다.
인생에 사랑이 없다고, 열정이 없다고 한 세상 살아내지 못할바 바이 없다.
누에장사 ‘에르베 종쿠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를 지닌 아내 엘렌과 누리는 그의 삶은 평온하다.
유럽에 누에알을 죽이는 잠균병이 퍼지면서 누에알을 구하기 위하여 에르베 종쿠르는 ‘세상의 끝’이라는 일본땅까지 여행한다.
유력자인 ‘하라 케이’와 그의 무릎을 배고 누운 묘령의 소녀.
그녀는 하라 케이의 애첩.
엑조틱한 신비로움 가득한 그녀와의 비밀스럽고 뜨거운 사랑, 그는 열병에 빠져 버렸다.
“돌아오시지 않으면 죽어버릴 거예요.”
소녀의 몽환적인 부름에 그는 두 번이나 더 그 먼 일본땅을 찾는다.
마지막 일본을 떠나온 후 그는 일본으로부터 왔다는 한통의 편지를 받았다.
간절한 열망이 담겨있는 관능과 성애(性愛)의 글들.
“제 몸 속으로 파고든 당신의 손가락. 제 입술에 닿은 당신의 혀. 당신은 제 몸 아래로 미끄러져 들어와요. 당신은 제 엉덩이를 두 손으로 움켜쥐고 저를 들어 올려요. 그리고 당신의 음경 쪽으로 서서히 제 몸을 끌어당겨요. 누가 감히 지금 이 순간을 지워버릴 수 있겠어요? 당신은 천천히 제 몸 속으로 들어와요. 당신의 손은 제 얼굴을 더듬어요. 당신의 손가락이 제 입 속으로 파고들어요. 당신의 눈에서, 당신의 목소리에서 기쁨이 넘쳐나요. 당신은 천천히 몸을 움직여요. 마지막 고통이 느껴지는 순간, 저도 환희의 비명을 내질러요.”
그러나 말미의 반전, 이 편지는 하라 케이의 애첩이 쓴 것이 아니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를 지닌 그의 아내 엘렌이 쓴 편지였다.
“무언가를 사무치게 그리워하며 죽어가는 것, 그것이 어떤 것인지 당신은 절대로 모를 겁니다”
아내 엘렌이 먼저 죽고, 에르베 종쿠르는 그 후 23년을 더 살다 죽았다.
그 23년을 작가는 한마디로 써 버렸다.
“줄곧 평온하고 건강하게 살았다”고.
작가 ‘알렉산드로 바리코’는 음악을 전공하였다고 한다.
마치 음표기호처럼 절제된 언어로 씌어진 일상풍경과 감성의 묘사, 대화체와 지문(地文).
그 문장은 아름답고 강렬하지만 모호하기 짝이 없는 이국적인 선율이었다.
잔물결 속에서 일렁이는 갈매빛 그림자.
사랑이라는, 인생이라는 그림자.
도무지 알 수 없는.
그 놈의 인생이거나 사랑이거나.
2.
또 한칸 가장자리로 밀려나는 느낌의 세밑의 한 밤.
밀려드는 공허는 죽을만큼 찐하다.
언제부터였을까, 내 것이었던 내 것들 행복하지 않아.
삶은 시나브로 모호하여 나는 홀로 섬이로구나.
간 밤의 맥주안주 마른 멸치 한마리, 그 한점 눈깔이 홀연 뙹그랗다.
저 화상의 부릅뜸, 사랑이 삭막하다거나 열정이 구차하다는게 아니라.
자기연민 가득한 네 꼬라지가 저처럼 말라 비틀어져 가엾다는 표정이다.
지난 것들 지독스레 모호한채로 이제 새로움은 없구나.
덜 살았지 싶었는데 나는 너무 오래 살았나 보다.
-엇그제 쓸쓸하여 몹시도 몹쓸 밤이었다, 지우려다 그대로 두련다.-
++++
***후니마미***
2011.12.12 00:27
동우님의 마음인가요?
아님 어느 책의 문장인가요?
잠자러 가려다 들렀습니다 ㅎㅎ 잠옷 차림 ㅋㅋ
주말까지 하려던 일 다 못해도, 오늘 남편과 같이 집에서 잘 놀고
손님 맞아 이야기 나누며 편안히 지냈답니다.
단순해진 요즘의 생활이 제게는 좋아서
몇 개 안 되는 세포들로도 살아가지는 나날 같습니다
곧 12월이 끝나고 올해도 막을 내리겠군요.
괜히 엄숙해지는 세밑. ㅎㅎ
***┗동우***
2011.12.12 06:32
후니마미님.
엇그제 한밤중 지독한 염세에 빠졌더랍니다.
아마 직전 꾸었던 꿈의 컨텐츠가 피붙이들에 대한 근심과 염려와 허망한 이미지로 가득한 탓이었을겝니다.
'더 살아 이제 무슨 영화있으랴'는 곡조의 배경음악이 흐르는.. ㅎ
좀 전 들렀더니 마미님은 달변의 꿈을 꾸시고.
'애들 꿈은 개꿈'이지요.
후니마미님 말고 나 말입니다.
늙으면 아이가 된다지 않습니까?
몇개 안되는 세포들로도 살아지는 나날이라...
흐음, 마미님.
나의 나날이 그러하였으면하고 소망하는 나날입니다.
뒷방 영감들은 씨잘데없는 세포들 일으켜 지레 근심이 많지요. 하하하
마미님, 괜히 엄숙해지지 맙시다그려.
세밑이 별(別)거리까.
달력 갈아 거는 그런것... ㅎㅎ
***뜨락***
2011.12.13 09:33
알렉산드로 바리코의 비단.
동우님도 좋게 읽으셨다니 너무 반갑습니다. ♪♪
저도 작년에 읽고서 애송하는 시집처럼 제가 아끼는 책이랍니다.
동우님 쓰신것처럼 모호하지만 애련한 느낌. 사랑이라는 것 인생이라는 것.
잔물결 속에서 일렁이는 갈매빛 그림자.
전에 동우님이 담담하게 쓰셨던 동우니믜 가족사 갈매빛 그늘.... ㅎㅎ
동우님.
상당히 우울하셨었군요.
저도 갱년기무렵 (여자는 폐경기라는게 있답니다. 호호) 한동안 무척이나 비관적인 감정에 빠졌더랍니다. 입원까지 했었지요 (우울증 때문만은 아니었지만요.)
조울증의 경향은 누구에게나 있는 거라고 합니다.
더구나 너무나 풍부하고 예민한 감성을 지니신 동우님인데 우울한 기분에 잠기실 때 왜 없겠어요?
동우님의 이쁜 손주님들 비니와 미니(맞지요? 두 아기) 재롱보시면 금새 회복하실 거에요.
위의 답글에서 동우님 웃음뵈니까 이미 울증으로부터 벗어나 조증(호호, 실례)에 진입하신 듯 하여 안심. ♬♬
***┗동우***
2011.12.20 06:05
'비단'같이 이런 소설이 좋습니다.
하아, 뜨락님.
내 뜨락님한테 묻건대 뜨락님의 인생에서 사랑을, 행복을, 아름다움을 딱 그때 바로 그것이었다고 적시하여 끄집어 낼수 있겠어요?
영화는 죄 압축효과지요. 하하하
우울...
뜨락님도 아실터인 후니마미님.
참으로 섬세한 감정밭과 자의식을 지니신 분이지요.
후니마미님이 자주 우울한 기분에 사로잡히고는 한답니다.
나는 '순간의 기분에 속지 말자'고 그분께 잡설을 늘어 놓고는 하지만..우울함 역시 그분의 것, 그리고 나의 것.
때로는 우울함을 견디지 못하는 그것, 그 정체를 발본색원해야 할듯.
'우울함'과 '우울함을 견디지 못함'과는 무언가 다른 심리작용에 기인한듯 합니다.
비니미니..
말할수 없이 인색한 딸아이.
내 딸년은 아마 제 어린날 아비에게 무슨 '트라우마'가 있는듯 합니다. 하하하
뒷방 늙은이의 기분, 그 우울함은 별 푸념을 다 하지요. ㅎ
뜨락님도 늙어보슈, 허허허
***송현***
2011.12.16 13:33
동우님의 우울은
이 삭막하고 건조한세상에
촉촉한 이슬을 뿌리시는 거죠? ㅎ
해뜨면 곳 사라지는 .....
***┗동우***
2011.12.20 06:12
아, 송현님.
내 우울이 촉촉한 이슬이라니. 하하
우리 송현님의 위로를 읽습니다.
'동우님의 우울은 잠시잠깐의 회색, 늘 푸르른 사람은 푸르지 않은 사람, 해가 뜨면 곧 사라질 동우님의 우울...그것은 동우님의 한밤중 잠시 내린 축복의 푸르름..'
하아, 아전인수.
그냥 웃어 주십시오, 송현님.
송현님의 위로는 그러나 짙었습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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