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잡설들

갈매빛 그늘 -1- (1,4,3,3)

카지모도 2019. 9. 25. 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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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매빛 그늘> (1)

2007년 10월 22일

 

-임정빈은 보듬고 이동우는 흠향하소서-  

 

눈길 너머 아득하고 서늘하게 누워 있는 산자락은 그냥 갈매빛이다.

우리는 갈매빛 그늘 가에 서성이는 쓸쓸한 영혼들.

 

딸아이가 딸을 출산하였다. (2007년 9월 7일 오후 6시 48분) 

임정빈(林貞彬)

유순한 눈빛으로 올려다 보는 갓난장이.

할비와 마주치는 눈빛 너무나 낯익다.

그 눈빛은 온갖 것들을 다 품고 있다.

내 어머니 깔깔대는 웃음이 있고, 아, 아버지 그 분의 헛헛한 웃음도 있고, 어느 날의 크리스마스도 있고, 어느 강변에 울렁이는 연애의 정경도 있다. 

코 끝에 풍기는 작디 작은 갓난장이의 숨결.

그 숨결은 너무나 달콤하여 그저 숨막히는 어여쁨이다.

아, 도대체 이토록 곱디 고운 한 줄기 빛이 어디로 부터 내게 왔더란 말이냐.

 

아들놈.

웃통 벗어 부치고 침대에 엎드려 낮잠 들었다.

서른짜리 맨 등짝에다 얼굴을 부비는 아비.

넓데데한 그 등짝은 아비의 볼에 그득하게 따스하다.

홀연 코끝 시큰해 진다.

아, 이 따스하고 시큰한 연대감은 도대체 어디로부터 연유한 것이란 말인가.

 

아, 핏줄.

핏줄이란 선택되어 지는 관계가 아니다.

숙명으로 수렴해야 할 동앗줄의 포승이다.

 

‘정빈’이라는 이름은 내 아이들과 또 그 아이들의 아이들을 은유하는 메타포.

나의 ‘정빈이’ 들에게 내 갈매빛 그늘의 이야기를 들려주려 한다. 

이른바 쿨하게 새 시대를 살아갈 너희에게 낡고 진부한 관계들에 무슨 살가움 있거나 무슨 도움 닫으랴마는.

푸르스름한 갈매빛 그늘로서 너희 기억에 머물게 된다면 그로서 족하니라.

내가 아득한 갈매빛 그늘로서 보듬듯, 추상의 허랑한 모습으로라도 보듬어주려무나.

나 또한 그 관계들 포옹은 하였으되 나의 존재가 수렴하여 납득한 것은 아니란다.

그리고 혹여. 너희 살아가면서 무수히 부딪는 관계 속, 우연찮게 같은 그늘의 흔적 겹치는 어떤 이들을 만나 까아맣게 낯설다면 그 또한 헛헛하고 딱한 노릇 아니겠느냐.

낫살 들으니 더욱, 내 심경이 그러하다.

 

이 기록이라는 것은 오로지 주관적 기억 속에 투사된 편린들이다.

편도체에 각인된 정서적인 것들, 사실과 어긋나는 것 어디 한둘이겠느냐..

다음은 내가 자주 써먹는,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말이다.

"삶은 한사람이 살았던것 그 자체가 아니라 현재 그 사람이 기억하고 있는 것이며 그 삶을 얘기하기 위해 어떻게 기억하느냐 하는 것이다"

그렇게 읽어준다면 그로서 족하다.

 

그리고 또 한분.

내 입어보지 못한 고귀한 옷, 아버지라는 이름.

이동우(李東雨).

정처 없이 떠도는 구천의 혼, 이 그늘에게로 오소서

예다가 당신 핏줄들 진설하오니 삼가 흠향하소서.

가엾은 당신의 넋 모쪼록 예 묻으소서.

 

나의 아버지 李東雨 (生 1917. 3. 23 ~ 歿 미상)

살아 계시다면 올해 (2007년도) 망백(望百)이시구나.

필경 이 세상 사람 아닐 것

집안 누구도 아흔을 넘긴 사람 없거니와, 여태 생존해 계신다면 그 기인 세월동안 소식 한 올 닿지 않았으랴.

어느 때런가. 북녘 땅 어느 산야 묻히셨을 것인데, 깜깜절벽이니 답답하고 서럽다.

우리 식구에게는 물론, 남녘 땅에도 아버지의 흔적은 거의 남아있지 아니하다.

남편 흔적 지우기는 6.25 전쟁 발발후 가장 먼저 행하여야 할 겁많은 어머니의 생존전략이지 않았을까.

 

월북한 커뮤니스트.

이념구조가 지극히 편협하였던 그 긴 세월 동안 금기의 영역에 속하였던 아버지라는 이름이었다.

혹여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뉘에게선가 한톨 연락이라도 있거든 지체없이 도렴동 고모(대훈고모. 당시 고모부는 고위직공무원이었다)에게 알려야 한다는 경고를 강박으로 안고 성장하였다. (혹 간첩으로라도 남파되었을라 하는 기우..)

학교나 군대에 제출하는 신상(身上)표 등의 아버지 란에는 언제나 납북(拉北)으로 써내기 마련이었고.

납북(拉北)과 월북(越北).

언제부터 두 어휘 사이의 엄청난 간극(間隙)을 인식하기 시작하였는지는 기억에 없다.

무시무시한 공산당. 때려잡자 공산당.

국민학교시절, 화신백화점에서 보았던 반공전시회(?), 공산당에게 무참히 학살 당한 가족의 마네킹의 배경으로 울리는 음산한 까마귀 소리.

공산당은 생각만으로도 두려운 존재였다.

그러나 아버지라는 이름이 마음속 은밀한 곳에서 새롭게 싹트기 시작한게 언제부터는지 모르겠다.

아버지는 조금도 부끄러워할 사람이 아니라는 막연하고 은밀한 자부심.

와세다대학 정경학부를 나온 창백한 인텔리켄차, 사상가의 이미지.

'닥터 지바고'에서 라라의 남편 파샤(스트렐리니코프)의 모습에서 나는 아버지의 이미지를 보기도 하였고. 차츰 그 이념이라는 세계가 아버지로 인하여 몽롱하지만 하나의 지순한 아름다움의 모습을 띄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 뿐.

3공, 5공 때 엄혹한 시절 나는 그저 우물안 개구리, 내가 사회주의 서적들을 지엽이나마 읽어보기 시작한 것은 겨우 나이 마흔이 넘어서였으니.

그러나.

슬슬 늙어 가면서 나는 깨닫기 시작하였다.

이념이라거나 관념적 자랑 따위는 개나 먹어라.

이데올로기란 거짓임을.

목숨의 진짜배기 진실은 오로지 삶의 자리에 있음을

 

그리하여 내게.

아버지는 오로지 가엾은 사람이다.

 

곧 여명(黎明).

 

오늘은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