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잡설들

시인 옥영재 <제10회 고운 최치원 문학상> 수상 축하.

카지모도 2018. 12. 18. 0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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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까머리 소년 적의 벗 옥영재.

<10회 고운 최치원 문학상> 수상, 진심으로 축하한다.

 

이제

하늘 가차이 우리 늙어

 

허지만 영재.

 

엄니를 그리는 여적 아이의 마음.

그 언어로 彫琢된 네 詩篇.

더욱 붉어 순결하고나.

 

 

 

 

 

 

 

 

 

 

<봄의 프롤로그>

 

-海亭 옥영재-

 

햇살이 창문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눈꺼풀에 고드름처럼 늘어진 밤을 털어버리고 침대의 늑골 사이를 지나려는데 글자 몇 날이 앞을 가로막는다. 잠깐 밤사이 밤을 재우는 혼신으로 기가 쇄진 된 몸 좀 더 도닥거리고 일어서란다

 

턱을 곧추 세운 침대가 재차 발목을 잡는다

 

무슨 늙은이 같은 소리냐고 벌떡, 침대 가슴을 밀어내는 순간 퉁, 캄캄해졌다. 정신이 제 구실을 찾았을 땐 내 몸은 이미 추락을 끝낸 뒤였다. 그때 방안에는 허공밖에 없었고 그 허공마저 등을 돌리고 있었다. 신음이 바닥을 기어 다니는 방의 늑골 사이로 뭉게뭉게 구름처럼 꽃들이 피어났다

 

붉다

 

멍하니 절룩거리는 눈물, 콧물, 몸의 퇴적물을 들이마시며 꽃잎들을 줍고 있는데 창문 밖 마당에는 봄이 재잘거리고 있었다. 세월의 비웃음을 톡톡히 치른 봄날, 귀를 열고 봄의 속삭임을 조용히 담는다. 봄은 오고 있고, 소용이 다한 젊음을 만나는 오늘은 참, 기분 좋은 아침이다

 

봄이다.

 

 

<어머니가 어머니에게>

                     

고막을 깨운 입술이 어둠을 지운다

잿빛 통증으로 얼룩진 천정과

창문의 흐느낌이 방안 가득하다

각질뿐인 침대엔

주검이 휴지처럼 구겨진 체 뒹굴고 있다

‘데려가 제발 엄마’

죽음을 회유하던 독백

핏빛 염원의 그녀는 매몰되고

죽음의 그림자는 동굴 속으로 추락한다

부질없는 생명의 끝자락

굽진 마디마디 뼈에서

뚝뚝 검붉게 뱉어내는 피, 피, 피의 함성

꺼져가는 불씨를 밟으며

죽음에 목을 단 그녀

버리고 지워야 할 것들을 고르지 않은 채

탯줄을 움켜쥐고 있다

고음으로 달려 나온 핏줄

 

“엄마”

 

 

<유효기간이 지난 기억>

 

노을의 가쁜 숨이 산허리를 휘감아 도는 시간

구겨진 확성기의 소음이 동네어귀를 굽이굽이 밟는다

집집마다 고무신 들썩거리고

흐려진 햇살 위로 갈 까마귀 눈알이 붉다

욕정이 깃털을 세운

사자처럼 꾸역꾸역 모여드는 백사장

흘러간 유행가 가락이 혼탁하게 뒤엉키며 밤이 돌아간다

먹이를 낚아챈 갈 까마귀 미로 속에 숨어들고

파도와 갈매기와 구름뿐인 해변

풋내 나는 언어들이 익은 단내를 흉내 내고

꿈의 궁전을 더듬고 있다

여린 가슴을 쓸어 올리며

하나이기를 염원하는 아이는

비린내에 걸맞지 않은 당찬 손가락으로 하늘을 움켜쥐며

일곱 색깔로 피는 무지개처럼

‘세상은 참 따뜻해’

은행 알 같은 웃음을 털어낸다

날선 이빨이 하얀 가슴에 피멍을 뿌리며

눈물이 배경으로 깔려 있는 무대에 서있다는 걸

아이는 알 턱이 없다

어느 날

하늘엔 먹구름이 일고 천둥이 울부짖는 날

청청했던 잎새들은 날아가고

이제 시들시들해진 아이를 달이 젖은 눈으로 바라본다

문틈으로 따라오는 모진기억들

늑골 사이로 구겨 넣는 늙은 아이

 

 

<집에 가자>

 

어둠이 내렸으나 잠들지 못한다

오래된 기억들이 한 올 한 올 동공 속에 모여들고

링거 병에 굽이치던 그녀의 낡은 생이 기어나온다

스캔된 목소리가 어둠을 타고 확성기처럼 쏟아진다

 

“집에 가자, 집에 가자, 집에 가자”

 

하늘이시여 정녕

정녕 그대가 내린 한 벌의 숨

나를 거두어 갈 장소를 바꿀 수 없단 말인가

 

이 낯설고 바람 드센 변지邊地에서 홀로지리니

이 못난 삶이여!

 

내 열여섯 새색시 날의 색동저고리며

내 어미가 고이접어 안겨준 눈물 젖은 동정童貞이며

피질뿐인 아흔의 문드러진 생을 포근히 안아주던 침구며

이웃들이여 기어이 작별을 원망해다오

영혼이 찢어지도록 회초리를 내려쳐다오

 

어미의 마지막 애원조차 묵묵했으니

귓불을 흔드는 애끓는 한恨, 아직도

 

“집에 가자, 집에 가자, 집에 가자”

 

어둠은 길어지고 눈물은 깨어나고 있다. 나는

 

 

<폐 여객선 터미널>

 

연육교가 들어서자 여객선들이 발길을 멈췄다 뱃고동 끊어진 여객선 터미널은 제 속을 다 긁어내고 어둠으로 가득 채운다. 녹슨 뱃길 위에는 갈매기 목청이 너덜거리고 무수한 안부를 쥐고 뭍으로 오르던 뱃고동은 갯벌에 발목이 잡혀 요지부동이다. 입 다문 대합실 벤치 위에는 유효기간 지난 기다림만이 떠밀려온 해초처럼 흩어져 있다. '내일이야 꼭 오겠지'

입속을 기어 나오는 푸념이 지독한 소태 같다

사계절이 여러 차례 얼굴을 바꿔 입은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일출을 따라와 다시 뱃고동을 기다린다. 태양이 하루를 마감할 때쯤 축 늘어진 어깨를 걸머지고 또다시 일몰을 따라 대합실을 빠져나간다. 육지로 실려 간 아들의 신음소리가 귀를 잡아당기는

 

별 하나 스르르 눈을 감는다

눈물 한 방울 뚝 떨어진다

 

노을도

허공도 입을 다문 채

아비가 흘리고 간

긴 한숨만이 오늘도 폐 터미널을 지키고 있다

 

 

<장마>

 

비가 온다

 

오롯이 

그대를 찾아 내가 헤매듯

 

우리 길지 않은 날

사랑했듯이

 

그대가 

나를 버린 날처럼 

 

차마

오래 머물지 않았으면

 

비가 온다

 

 

<장마 2>

 

"번쩍

우르르 꽝꽝"

 

쉬 잇 ! 

잠 깨실라

 

생의 

항아리를 말끔히

비워놓고

 

천년 잠에 드신

우리 엄니

 

잠 깨실라!

 

 

<장마 3>

 

어제 왔던 그 비가

오늘도 오네 그려

 

먹구름

젖은 하늘

달빛도 시들한데

 

마실 간

우리 어머니

버선발 어찌할고

 

 

<장마 4>

 

천상이

버린 

상처

 

지상엔 수심

어쩌란 말이냐

 

 

<장마 5>

 

함부로 와서

 

한참을 버티는 너

 

지천이 섧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