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리뷰-
[[송영]]
<투계> <북소리>
<투계(鬪鷄)>
-송영 作-
***동우***
2016.10.04 04:27
옛날, '송영 (宋榮,1940~ )'의 '선생과 황태자'를 읽을 적에 마음밭 위로 비수처럼 날카롭고 한풍(寒風)처럼 써늘한 바람 한줄기 지나갔습니다.
그 소설은 군대감옥 안에서의 이야기였지요.
나중에 그런 살벌하고 음습한 소설을 쓴 작가 ‘송영’이 굉장한 클래식 애호가인걸 알고서 다소 인지부조화를 느꼈더랬습니다.
1967년 '창작과 비평'에 발표된 송영의 데뷔작 '투계(鬪鷄)'
이 소설 역시 닫힌 공간에서의 음습한 이야기입니다.
종형(從兄)의 폭력성에 고스란히 노출된 나의 피해의식.,,
형은 폐색(閉塞)된 삶을 사는 병적 자의식의 인간입니다.
세상과 맞서기를 포기하고 집단과 동떨어진 채 닭싸움에 미처있습니다.
아니, 투계 그 자체라기보다 절대강자 싸움닭 뿌라마를 패퇴시키기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종형에게 있어서 뿌라마는 무엇이었을까요?
자신이 진입하지 못하는 바깥세계, 분노와 절망과 좌절과 저항의 대상으로서 어떤 권력적 메타포였을런지요.
미지의 그것을 향한 종형의 필사적 리얼리즘이 어쩌면 투계의 모습일런지.
뿌라마나 나에 대한 종형의 공격성과 잔인성은 자신의 나약함과 열등감을 감추려는 위장처럼 보이기도 합니다만.
히키코모리에게 바깥 세계는 늘 두려움과 좌절로 관망되는 하나의 관념일테지요.
그 관념이 뚜벅뚜벅 현실로 다가오자 종형은 덜덜 떨기 시작합니다.
문득 아들놈을 생각합니다.
데빠르마숑된 늙은 의식으로 나는 오한합니다.
<뿌라마의 벼슬에서도 피가 보이기 시작했다. 깃털을 퍼득이며 샤모는 쉽사리 뛰어 올라 찍은 자리를 끈질기게 되풀이 찍어댔다. 두 마리는 피로 젖은 머리로 잠시 헐떡이며 서로 몸을 부벼댔다.
다시 서로 떨어졌을 때 지쳐버린 뿌라마는 비실비실 뒷걸음질 쳐 달아났다. 꼬꼬 꼬 하고 놈은 저조한 베이스로 고통에 겨운 듯 우짖었다.
흐흐흐흐
갑자기 야릇하게 웃어대며 종형은 벽가에서 나왔다.
그놈의 트레이닝이 멋들어지게 맞아들었다.
피로 범벅이 된 두 마리의 투계를 내려다 보면서 그는 신이 나서 떠벌였다. 샤모는 일단 승리한 것 같았다. 두놈 모두가 이미 지칠 만큼 지쳤고 출혈의 고통으로 기운을 잃고는 있었지만 샤모에게는 아직 투력이 남아 있다. 놈은 비틀거리며 뿌라마에게 다가들어 이미 돌아선 뿌라마의 옆구리에 닥치는 대로 헛쪼임을 되풀이 하고 있었다.
부엌 가운데로 나선 종형은 기쁨을 감추지 못해 거리낌 없이 웃고 또 웃었다. 흐흐흐흐 그 웃음 소리는 흡사 신음소리와도 같이 들렸다.
그놈을 나는 안락사를 시킬 참이야.
석양 무렵 종형은 새끼줄을 들고 큰 부엌에서 서성거렸다. 패한 놈은 식용으로 처분한다는 관례에 따라 뿌라마를 처분하려는 것이다. 그는 새끼줄로 올가미를 만들어 그걸 부엌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뿌라마의 목에 걸었다.
이놈을 빨리 죽도록 하는 방법이 있어. 죽는 시간이 오래 걸리면 고통스런 법이야.
한번쯤 죽어본 사람처럼 그가 말했다.
너하고 나하고 양쪽에서 이걸 잡아다니면 돼.
그는 올가미의 한 끝을 내게 내어밀었다.
나는 못해요.
겁먹은 얼굴로 말하고 나는 뒤로 주춤주춤 물러섰다.
눈 딱 감고 한번만 잡아다니면 돼. 일초도 안걸려.
난 못해요.
임마, 이걸 못해?
이맛살을 찌푸리며 경멸조로 종형이 말했다. 나는 아직도 그가 내쪽으로 내어밀고 있는 올가미의 한 끝을 두려운 듯 바라보며 자꾸만 뒷걸음질 쳤다. 구석에서 올가미에 목을 감기운 뿌라마가 영문도 모르고 내쪽을 바라보았다. 놈의 눈에 물기가 유난히 돋아나 반짝반짝 이슬처럼 빛나고 있었다.
나는 못해요.
뒷마루 문설주에 엉덩이를 부딪쳐 뒤로 넘어지며 나는 말했다.
이 새끼가―
종형은 올가미를 휙 뿌리쳐버리고 나를 때리려고 한발짝 한발짝 내게로 다가왔다. 커다랗게 부르쥔 주먹이 노여움으로 덜덜 떨리는 게 보였다. 나는 몸을 일으켜 세워 뒷마루로 기어올라 갔다.
이 새끼가―
주먹을 휘두르며 나를 쫓아 마루 위로 단숨에 뛰어 오르려다 종형은 문득 문설주 위에 한발을 얹어놓은 채 멈추어 버렸다.
앞 마루에서 그 여자의 들뜬 듯한 목소리가 가만 가만 얘기하는 게 들렸다.
그 분과 함께 지나가던 길인데요. 마침 생각이 났지요.
그거는 참 고마운 일인데요.
하고 숙모님이 맞받았다.
차리리 그편이 좋겠어요.
그럼 그렇게 해보겠어요.
그 여자는 공손하게 말하고 뜨락 저편으로 걸어나갔다.
이 새끼, 나 혼자서도 할 수 있어.
갑자기 생각을 바꾼 종형은 나를 한바탕 노려보고 나서 부엌으로 다시 돌아섰다.
앞뜰로 향한 큰 부엌방의 유리창 밖을 나는 내어다 보고 있었다. 큰 부엌에서는 종형의 부산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무엇이 뜻대로 안되는지 초조하게 부엌바닥을 왔다 갔다 했다. 뿌라마는 아직 살아 있는 것일까. 그 안락사를 시키는 방법은 혼자서도 가능한 일일까, 어쩌면 그건 한사람의 힘으로는 손쉽게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 때문에 종형이 저토록 애를 먹고 있을 게다. 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돌연 행길로부터 커다란 사나이가 구관사의 뜨락을 향해 걸어오는 게 보였다. 그는 여느사람보다 훨씬 키가 커보였고 얼굴빛도 새하얗게 보였다.
형, 누가 와요.
얼떨결에 나는 큰 부엌을 향해 소리쳤다.
누구야? 손님이야?
종형의 신경질 섞인 목소리가 큰 부엌에서 들렸다.
난 지금 이놈의 목을 조를 참이야.
형, 이리 좀 와봐요.
하고 나는 다시금 성급하게 소리쳤다. 나의 떨리는 목소리에 놀란 종형이 큰 부엌으로부터 부리나케 방으로 뛰어 들어왔다.
무어야 임마?
그는 내 곁에 바싹 붙어 앉아 유리창 밖을 내어다 봤다. 노을이 붉게 타오른 황혼을 등지고 검은 법의를 걸친 그 사나이는 성큼성큼 구관사의 뜨락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넓다란 법의의 소매자락이 비껴오는 황혼의 햇살 속에서 유난히 펄럭거렸다. 그의 모습은 점점 커다랗게 되었다.
서양 신부야.
얼굴빛이 창백해진 종형은 별안간 내 어깨를 붙들고 덜덜 떨기 시작했다. 나는 종형의, 병을 앓는듯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는 내 시선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처음으로 연약한 모습을 보이며 부들부들 떨고만 있었다. 오기만 해봐라. 따귀를 때려줄테다. 라고 말하던 그는 이제 그렇게는 말하지 못했다.>
종형의 모습.
내 자의식의 어떤 이미지가 투사된 그림같기도 합니다그려. ㅎ
<북소리>
-송영 作-
***동우***
2017.03.06 04:25
석달쯤 전, 소설가 송영(宋榮, 1940~2016)이 세상을 떠났다는 신문기사를 접했습니다.
당시 그의 작품 파일 구하지 못하여 아쉬웠는데, 이제야 송영의 소설 한편 얻어 올립니다. (전에 송영의 단편 '투계'를 포스팅 한 바 있지요.)
북소리.
영역되어 해외에서도 평가를 받는 작품이라고 합니다.
잡설은 내일 늘어놓기로 하고, 두번으로 나누어 올립니다.
***동우***
2017.03.07 00:34
‘논골’은 도회의 화려함으로부터 소외된 후지고 후진 지역인가 봅니다.
궁핍과 질병, 폐색(閉塞)된 일상을 영위하는 유적(流謫)의 삶.
<난 이 마을로 와서 아프기만 하고 돈벌이도 안되고 그래서 이상한 생각을 하게 되었죠. 말하자면 이 마을로 들어오면 누구나 무기력해지고 가난에 젖어 버린다고. 그래서 나도 곧 여길 떠나고 싶은데 그게 잘 되지 않아요.>
이제 병도 치유되었고 번듯한 직장생활을 하고 있으면서 무엇하러 찾아 왔을까요.
그 북소리를 찾아 왔을까요.
그러나 동네 꼭대기에서 끊임없이 북을 두드려대던 무당은 죽어버렸는지 북소리는 들리지 않습니다.
<북소리를 들으면 힘이 나곤 해요. 뭔가 미지의 세계로 달려가고 싶은 욕망이 일어나죠. 미지의 세계, 멋진 세계가 보이는 것 같기도 해요. 여길 올라오면 그걸 느끼죠. 난 언젠가 여길 떠나서 멋진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죠.>
캄캄한 밤 외부에서 들려오는 쇳소리. (이호철의 ‘닳아지는 살들’.)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리는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존재론적 상징성.
옛 논골과 다시 찾아간 논골은 다른 곳인가.
‘성애’를 찾아갔을까.
클래식 음악에 대한 조예가 남달랐던 송영.
그의 단절된 공간은...
상징, 암시의 분위기.
암울하지만 그래도 無望하지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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