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잡설들

<<<나와 미스 맨디블>>> (1,4,3,3,1)

카지모도 2021. 2. 4.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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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나와 미스 맨디블>

-도널드 바셀미 作-

 

***동우***

2016.09.29 04:27

 

'도널드 바셀미'(Donald Barthelme, 1931~1989)의 '나와 미스 맨디블'

기묘한 소설이로군요.

 

군대를 다녀오고 결혼까지 하였던, 키가 8피트나 되는 서른다섯살짜리 남자가 초등학생 교실에 편입되어 있습니다.

공식적으로 그는 열한살 짜리입니다.

아무런 개연 설명은 없습니다.

 

그런데 그 이상한 상황을 그 자신만 의식하고 있을뿐, 선생이나 생도 아무도 그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심지어 동급생 여학생들은 커단 덩치의 그에게 연정을 갖기도 하는군요.

 

++++

<미스 맨디블은 나와 사랑을 하고 싶어하지만, 공식적으로는 내가 어린아이이기 때문에 주저하고 있다. 생활기록부나, 그녀의 책상 위에 놓여 있는 교무수첩이나, 교장실에 있는 서류에 의하면 나는 이제 갓 11살 먹은 아이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나에게도 그 이유가 확실치 않은 분명한 착오이다.

사실 나는 35살이고, 군대에도 갔다 왔으며, 굵직한 음성에 키가 6피트, 그리고 있어야 될 곳에 털이 다 난 성인으로서, 미스 맨디블이 결정만 내린다면 어떻게 그녀를 다루어야 하는지도 이미 알고 있으니 말이다.

어쨌든 지금 우리는 분수(分數)에 대해 배우고 있다. 물론 나는 그까짓 것들을 이미 다 알고 있으며, 적어도 거의 다 정답을 맞출 수 있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 것도 있으니까).

나는 옛날에 다 겪었던 것들을 다시 한번 겪는다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저항감을 느끼지 않는다.

지금 겪는 것은 예전에 겪었던 것과는 또 다르다. 지금 내 주위의 아이들은 어쩐지 옛날 내 국민학교 시절 처녀 항해를 같이 했던 아이들과는 사뭇 다른 것 같다.

“그들은 자신들이 올바른 길을 걷고 있고, 올바른 답을 얻을 수 있다는 스스로의 능력에 대해 자신감을 갖는다.”

요새 아이들을 보면 그게 정말인 것 같다.

우리 세대였다면 '당국(authority)'을 그리 쉽게 속여먹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가 전에 처음 학교에 다녔을 때에는 ‘당국’(도대체 누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가!)이 하라고 하는 것은 무조건 옳고 정당하다고 믿었다. 그래서 내 인생의 진로는 딱 내가 선택해 결정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어른과 아이를 구별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유용하겠지만, 사실은 의미없는 것이라는 것을 느낀다.

그들은 모두 다만 사랑을 갈망하는 개개의 自我들일 뿐이다.

우리는 기호(sign)를 하나의 약속으로 믿는다.>

++++

 

지자체 청사에 붙어있는 프래카드를 자주 접합니다.

나이 든 이들을 대상으로 컴퓨터 무료교육을 홍보하는.

 

요즘 어린 아이들이 손가락으로 예사롭게 가지고 노는 디지털의 세계.

늙은이들에게는 별세계의 그것들이.

느끼건대, 우리 어린시절 10년 정도의 세월은 하나의 패러다임이 여일하게 유지되는 세월이었습니다.

그 때 우리는 10년 후쯤 세상을 대충 어림잡지 못할바도 없었지요.

그러나 작금, 어느 고명한 미래학자가 10년 후의 패러다임을 대충이나마 예측하리이까.

10년이 무업니까, 당장 오늘의 삶은 바로 내일의 변화에 따른 未知의 다이나미즘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국가도 기업도 조직도 끊임없이 부르짖습니다.

창조다 리노베이션이다 리스터럭처링이다...

개인 역시 어린 세대로 소급하여, 부단한 자기교육(재교육)과 부단한 자기개발에 투자하지 않으면 도태되고 맙니다.

일관된 정책으로 밀고 나가야 할 국가적 어젠다가 한 정권 동안에도 수시로 변해야 함은 어쩔수 없을테지요.

인간 본성은 물론, 인문적 신념이나 이념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년전, '킬링 뎀 소프틀리(Killing Them Softly)'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주인공 브래드 피트가 내뱉는 대사가 인상적이라 베껴두었습니다.

(오바마가 연설하는 티비 화면을 보면서) "저 자식은 우리가 한 공동체속에 살고 있다고 말하지. 웃기지말라그래. 난 미국에 살아. 그리고 미국에서는 자기 앞가림은 스스로 해야하는거야. 미국은 국가따위가 아냐. 그냥 하나의 사업이지."

 

그래서 만일 책상 사이즈가 맞지 않는다면 그것은 학생 사이즈가 틀린 것이라고 지적했다.

변하지 않은 것들을 지닌 인간이 변하는 것들의 규격으로 살아내야 하는..

 

이 소설, 그런 변신(變身)에 관한 알레고리로 나는 읽었는데.. 아니면 말고, ㅎ

 

***momo***

2016.09.30 20:37

 

마지막 문장에서

바비가 준 레코드에 무슨 의미가 있나요?

'스브링의 소리'는 뭔지......

 

***┗동우***

2016.10.01 04:23

 

문향님.

무슨 특별한 의미 있겠어요?

클라스 메이트로서 작별선물이겠지요.

바비는 스포츠카 狂, '스브링의 소리'는 아마 자동차 관련 음악이나 이펙트 사운드 레코드일듯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