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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B> 부활 (16) -톨스토이-

카지모도 2021. 7. 19. 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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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성당에서 돌아오자 네플류도프는 고모들과 함께 금식을 끝낸 다음, 연대에서 익힌 습관에 따라 화주와 포도주를 마신 뒤 방으로 돌아와 옷을 입은 채로 잠이 들었다. 그러다 그는 노크 소리에 잠이 깼다. 그 노크 소리가 카추샤의 것임을 깨닫고 그는 눈을 비비고 기지개를 켜면서 일어났다.

"카추샤야? 들어와요."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말했다.

그녀는 살며시 문을 열었다.

"식사하러 나오시랍니다." 그녀는 말했다.

그녀는 역시 같은 흰옷을 입고 있었으나 그 빨간 리본은 머리에 없었다. 네플류도프의 눈을 흘깃 보고는 그녀의 얼굴은 마치 무슨 반가운 소식을 전할 때처럼 갑자기 빛나 보였다.

"곧 가지." 그는 대답하면서 머리를 빗기 위하여 빗을 집어들었다.

그녀는 잠시 동안 주춤거리고 서 있었다. 그는 그녀의 그런 모습을 보자 빗을 내던지고 그녀 쪽으로 다가갔다. 그러나 그녀는 그 순간 재빨리 몸을 돌려 가볍고 빠른 걸음으로 복도에 깔린 양탄자 위로 미끌어져 갔다.

"바보 같으니라고! 왜 그녀를 붙잡지 않았을까?" 네플류도프는 혼자 중얼거렸다.

그는 그녀의 뒤를 쫓아 복도를 달려갔다.

그녀에게 무엇을 바라는 것인지 그 자신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가 방에 들어왔을 때, 자연스럽게 대해야 했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 안타까웠다.

"카추샤, 잠깐만." 그는 말했다.

그녀가 돌아보았다.

"왜 그러세요?" 발을 멈추면서 그녀가 말했다.

"아무것도 아냐, 그저..."

그는 가까스로 자신을 달래며 이런 경우 다른 사람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하면서 카추샤의 가는 허리를 껴안았다.

그녀는 선 채로 눈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안 돼요, 드미트리 이바노비치. 이러시면 안 돼요." 눈물이 글썽이도록 얼굴이 빨개진 그녀는 억세고 딱딱한 손으로 자기를 껴안으려고 하는 남자의 손을 뿌리쳤다.

네플류도프는 그녀를 놓아 주었다. 그 순간 그는 쑥스럽고 부끄러웠을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혐오감마저 느꼈다. 그 때 그는 자신을 믿었어야 했다. 이 쑥스럽고 부끄러운 생각이 밖으로 드러내려고 몸부림치는 자기 영혼의 가장 순박한 감정임을 깨달았어야 했다. 그러나 도리어 그는 자기가 못난 탓이다. 다른 사람처럼 자기도 그런 짓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던 것이다.

그는 다시 뒤쫓아가서 카추샤를 껴안고 목덜미에 키스했다. 이번 키스는 전에 했던 두 번의 키스-라일락 숲 뒤에서 정신 없이 했던 키스와 오늘 새벽 성당에서 했던 키스-와는 판이한 것이었다. 이것은 뜨거운 키스였다. 그녀도 그것을 느꼈다.

"아. 왜 이러세요!"

그녀는 마치 한없이 귀중한 무엇을 깨드려 버려서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이라도 저지른 것처럼 외치며 그대로 도망쳐 버렸다.

네플류도프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화려한 옷을 입고 있는 두 고모와, 의사와 이웃 마을의 부인이 자쿠스카(식사 전의 전채 요리)를 차려놓은 테이블에서 식사중이었다. 모든 것은 여느 때와 같으나, 네플류도프의 마음속에는 폭풍이 일고 있었다. 그는 누가 자기에게 말을 걸어와도 못 알아듣고 엉뚱한 대답을 하면서 오직 카추샤만을 생각했다. 그의 머리에서는 그녀에게 한 마지막 키스 때의 감촉뿐이었다. 그 밖의 일은 아무것도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녀가 방으로 들어오자 보지 않고도 그는 자기의 온몸으로 그녀가 그 곳에 있음을 느꼈다. 그러면서도 그녀 쪽을 보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

식사 후에 곧 자기 방으로 돌아간 그는 몹시 흥분하여 한참 동안 방 안을 왔다갔다하면서 귀를 곤두세우고 그녀의 발소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마음속에 태질하는 동물적 자아가 그를 사로잡고 있어서 그가 처음 이 곳에 왔을 때와 오늘 아침 성당에 갔을 때 까지만 해도 생생하던 정신적인 자아가 무서운 동물적 자아에 마구 쫓기고 있었다. 이 날 네플류도프는 카추샤에게만 신경을 쓰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번도 단둘이서 마주칠 기회가 없었다. 아마도 그녀가 그를 피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저녁때 그녀는 우연히 네플류도프의 옆방까지 오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여기서 의사가 하룻밤 묵고 가야 했으므로 카추샤는 이 손님의 잠자리를 마련해 주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녀의 발소리를 듣자 네플류도프는 마치 도둑처럼 숨소리와 발소리를 죽이고 살그머니 그녀 뒤를 따라 들어갔다.

그녀는 두 손을 하얀 베갯잇에 넣고 양쪽 귀를 쥔 채 그를 돌아보면서 생긋 웃었으나, 그것은 전처럼 쾌활하고 즐거운 미소가아니라 겁을 먹은 듯한 애처로운 미소였다. 그 미소는 마치 그를 향하여, '당신이 지금 하려는 짓은 좋지 않은 일이에요.'라고 말하는 듯했다. 그는 그 순간 잠시 머뭇거렸다. 이 때만 해도 아직 자신을 이겨낼 힘이 남아 있었다. 그것은 약하기는 했지만 그녀의 처지, 감정, 생활에 대해서 그에게 속삭여 주는 진정한 애정의 소리가 아직은 그의 귀에 들려오고 있었다. 그러나 또 하나의 소리가, '정신 차려, 멍청하게 있다간 자신의 쾌락과 행복을 놓치고 말 거야.'하고 유혹하고 있었다. 이 두 번째 소리가 첫 번째 소리를 눌러 버렸다. 그는 단호히 그녀 곁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억제할 수 없는 무서운 동물적 감정이 그의 온몸을 휩쌌다.

그리하여 네플류도프는 그녀를 꼭 껴안아 침대 위에 억지로 앉혔다. 그리고 어쩔 줄 몰라 자신도 그녀와 나란히 앉았다.

"드리트리 이바노비치, 제발 놔 주세요." 그녀가 애원하듯 말했다. "마트료나 파블로브나가 와요!" 그녀는 빠져나가려고 몸부림치며 소리쳤다. 그 때 정말 누군가가 문으로 가까이 오는 듯했다.

"그럼 오늘 밤에 갈게. 너 혼자 있겠지?"하고 네플류도프는 속삭였다.

"무슨 말씀이세요? 안 돼요! 절대로 안 돼요!" 그녀는 이렇게 말했으나, 그것은 말뿐이었으며 흥분에 휩싸인 그녀의 육체는 그것과는 반대로 말하고 있었다.

방문 쪽으로 온 사람은 바로 마트료나 파블로브나였다. 그녀는 담요를 들고 들어왔다. 그리고 나무라는 듯한 눈초리로 네플류도프를 흘겨보고는 카추샤에게 화난 목소리로 담요를 잘못 가지고 왔다고 꾸짖었다.

네플류도프는 잠자코 방에서 나왔다. 그러나 부끄럽다는 생각조차 없었다. 마트료나 파블로브나의 표정으로 보아 그녀가 자기를 비난하고 있다는 것도, 그 비난이 정당하는 것도, 그리고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이 옳지 못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전에 카추샤에 대하여 품고 있던 참다운 애정의 그늘에서 솟구치는 동물적 감정은 이제 다른 어떤 무엇도 거부한채 그의 마음과 육신을 완전히 지배하고 말았다. 급기야 그는 자기의 열정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할까 생각하며, 오직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만을 모색하고 있었다.

초저녁에는 마음이 들떠서 안절부절 못했다. 고모들 방에 들어가 보기도 하고 또 자기 방에 틀어박혀 보기도 하고 그런가 하면 현관 계단에 나가 보기도 하면서 오직 한 가지 일만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그녀와 마주앉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그를 피하고 있었으며, 마트료나 파블로브나도 그녀를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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