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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B> 부활 (15) -톨스토이-

카지모도 2021. 7. 18.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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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네플류도프에게 있어 일생을 통해 가장 빛나고 강렬한 추어그이 하나가 그때의 새벽 미사였다.

군데군데 눈 때문에 훤하게 비치는 캄캄한 밤길의 물웅덩이 속을 철버덕거리면서 네플류도프는 성당으로 갔다. 교회 주위에 있는 흐린 불빛들을 보자 귀를 쫑긋거리기 시작한 말을 몰면서 그가 교회 안으로 들어셨을 때 이미 미사는 시작되고 있었다.

농부들은 네플류도프가 마리야 이바노브나의 조카임을 알자 마른 땅으로 인도하여 말에서 내리게 하고 말을 끌어다 매는 수고까지 하면서 성당 안으로 안내했다. 성당은 축제 기분에 들뜬 군중들로 가득 차 있었다.

오른편에는 남자 농부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노인네들은 집에서 짠 띠가 달린 긴 소매옷에다 인피 짚신을 신고 때묻지 않은 하얀 각반을 두르고 있었고, 젊은이들은 새 나사 외투에다 화려한 허리띠를 두르고 장화를 신고 있었다. 그리고 왼편에는 여인네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들은 붉은 미사포를 쓰고 솜 비로드의 소매 없는 재킷 밑으로 선명한 블라우스를 내보이며, 푸른색, 초록색, 빨간색 등 여러 가지 빛깔의 화려한 스커트에 편자가 달린 구두를 신고 성장하고 있었다. 하얀 미사포를 머리에 쓰고, 회색웃옷에 구식 스커트를 입고, 가죽신이나 새로 만든 인피신을 신은 검소한 노파들은 젊은 여자들 뒤에 서 있었다. 그 중간에는 머리에 기름을 번질번질 바르고 갖은 치장을 한 아이들이 서 있었다. 남자들은 성호를 긋고 절을 하고는 머리카락을 뒤로 흔들어 올리고 있었다. 여자들 중에서 특히 노파들은 촛불이 몇 개나 켜져 있는 성상에 빛 잏은 눈동자를 고정시킨 채 깍지낀 손가락을 이마의 미사포나 어깨와 가슴에 꼭 누른 채 무엇인가 중얼거리면서 허리를 굽히기도 하고 무릎을 꿇기도 하면서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아이들은 남이 보고 있을 때만 어른들 흉내를 내면서 열심히 기도를 드리는 척 했다. 금빛으로 빛나는 성상대는 금으로 둘러 장식한 커다란 촛대로 사방에서 에워싸고 있는 많은 작은 양초불빛에 비쳐서 번쩍이고 있었다. 샹들리에에는 많은 촛대가 빽빽하게 꽂혀 있었으며, 성가대에서는 저음과 소년들의 하이소프라노가 뒤섞인 미숙한 성가대원의 유쾌한 찬송가 소리가 들려왔다.

네플류도프는 앞으로 비집고 들어갔다. 성당 중앙에는 그 지방의 귀족 계급- 지구 내외, 수병복을 입은 그들의 아들, 경찰서장, 전신 기사, 장화를 신은 상인, 훈장을 단 촌장, 그리고 설교대 오른쪽, 어느 여자 지주 뒤에는 불빛에따라 색깔이 달라지는 보랏빛 옷에, 가장자리에 수놓은 흰 숄을 걸친 마트료나 파블로브나와, 허리에 주름이 잡힌 흰옷에 하늘색 띠를 두르고 검은 머리에는 붉은 나비 모양의 리본을 단 카추샤가 서 있었다.

모든 것이 축제일답게 엄숙하고, 즐겁고, 아름다웠다. 금빛 십자가를 그려 넣은 은빛 제의를 입은 사제와 축제 때 입는 금빛 은빛의 중백의 제의를 입은 부제와 복사도, 머리에 기름을 번지르르하게 바른 성가대원들도, 무용곡처럼 즐거운 느낌을 주는 축제일의 노랫소리도, 꽃으로 장식된 삼색양초로 사람들에게 내려주는 사제들의 축복도, 그와 동시에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예수 부활하셨네! 예수 부활하셨네!'하는 축하의 외침도, 모든 것이 아름다웠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것은 흰옷에 하늘빛 띠를 두르고 검은 머리에 붉은 리본을 단 채 기쁨에 못 이겨 눈을 반짝이고 있는 카추샤였다.

네플류도프는 그녀가 돌아보지 않았지만, 자기를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의 옆을 지나 제단 쪽으로 갔을 때 직감적으로 간파했다. 그는 아무할말도 없었으나 언뜻 생각이 나서 지나가는 길에 말을 걸었다.

"마지막 미사가 끝나면 잔치를 연다고 고모님이 말씀하시더군."

언제나 그를 볼 때면 그랬듯이, 이번에도 젊은 피가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 전체에 피어올랐다. 그리고 까만 두 눈이 미소를 담뿍 머금고 천진스럽게 네플류도프를 쳐다보았다.

"저도 알고 있어요." 그녀는 방긋 웃으며 말했다.

그 때 커피를 끓이는 놋쇠 주전자를 든 복사가 신도들을 헤치며 카추샤의 옆을 지나쳤는데 제의 자락이 그녀에게 걸렸다. 짐작컨데 그는 네플류도프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하여 피해 가려다가 카추샤를 스친 모양이었다. 그러나 네플류도프에게는 그것이 못마땅하게 여겨졌다. 어째서 그 사내는 그것을 모르고 있단 말인가? 여기에 있는 모든 것은, 아니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오직 카추샤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며, 온 세상의 만물을 무시할 수 있을지라도 결단코 그녀만은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왜냐하면 그녀는 우주의 한 중심이기 때문이었다. 성상대의 금빛도 그녀를 위해서 빛나고, 샹들리에나 수많은 촛대에 꽂혀 있는 양초도 그녀를 위해서 타고 있고, '예수 부활하셨네! 기뻐하라, 만백성아!'하는 환희에 넘친 성가도 그녀를 위해서 불려지고 있는 것이다. 무릇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아름다운 것은 모두가 그녀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네플류도프에게는 카추샤 자신도 이 모든 것이 그녀를 위해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이 느껴졌다.

주름진 흰옷을 입고 날씬한 모습과 한 가지 일에만 몰두한 듯한 기쁨에 찬 얼굴을 보았을 때, 네플류도프는 정말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얼굴 표정으로 보아 그는 자기 영혼 속으로 부르고 있는 것과 똑같은 노래를 그녀의 영혼 속에서도 부르고 있음에 틀림없다고 깨달았다.

처음과 마지막 미사의 중간에 네플류도프는 교회 밖으로 나왔다. 신도들은 그에게 길을 비켜 주면서 인사를 했다. 그의 얼굴을 알고 있는 사람도 있었고, "저이가 뉘 집 도련님이야?"하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그는 성당 입구까지 나와 발을 멈추었다. 그러자 거지떼들이 그를 둘러쌌다. 그는 지갑에 들어 있는 잔돈을 모두 나누어 주고 계단을 내려갔다.

어느새 앞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먼동이 텄으나 해는 아직 떠오르지 않았다. 사람들은 성당 주변에 있는 묘지에 흩어져 앉아 있었다. 카추샤가 아직도 성당 안에 있었으므로 네플류도프는 그녀가 나오기를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들이 계속해서 나왔다. 그리고 포석에 구두징 소리를 울리면서 계단을 내려와 성당의 뜰과 묘지 쪽으로 흩어져 갔다.

마리야 이바노브나의 집에서 과자를 만드는 늙은이가 머리를 흔들면서 네플류도프를 붙잡고 부활절 키스를 했다. 주름투성이의 목덜미를 비단 목도리 위로 드러내고 있는 그의 늙은 아내는 손수건에서 노란 달걀을 꺼내 그에게 주었다. 바로 이 때 소매 없는 외투에 푸른 허리띠를 두른 건장한 젊은 농부가 싱글벙글 웃으면서 다가왔다.

"예수 부활하셨네" 그는 눈웃음을 치며 이렇게 축복한 다음, 네플류도프 옆으로 와서 농부 특유의 구수한 냄새를 풍기면서 곱슬곱슬한 턱수염으로 상대의 낯을 간질이며 뻣뻣하고 싱싱한 느낌이 드는 입술로 네플류도프의 입술 바로 위에다 세 번 키스했다.

네플류도프가 젊은 농부의 키스를 받고 그에게 다갈색 달걀을 받고 있을 때, 불빛에 따라 여러 가지 빛깔로 변하는 옷을 입은 마트료나 파블로브나와 빨간 나비 리본을 단 까만 머리의 귀여운 카추샤가 나타났다.

카추샤는 앞서 나아가는 사람들의 머리 너머로 이내 네플류도프를 알아보았고, 그도 그녀의 얼굴이 금방 밝아지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마트료나 파블로브나와 함께 성당 입구로 나오자 거지에게 적선을 하기 위해 잠깐 걸음을 멈추었다. 민둥코 자리에 붉은 흉터가 난 거지가 카추샤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녀는 손수건에서 무엇인가 꺼내어 거지에게 준 다음, 그에게로 다가가서 조금도 싫은 기색 없이 오히려 즐거운 듯 눈을 반짝이면서 세 번 키스했다. 그녀가 거지와 키스를 하고 있을 동안, 그녀의 눈이 네플류도프의 눈과 마주쳤다. 그녀는 마치 '이런 짓을 해도 괜찮을까요? 잘못된 일은 아닐까요?' 하고 묻는 것 같았다. '괜찮아, 괜찮고말고. 모두 훌륭해. 모두가 꼭 바라는 대로 이루어진다고. 널 사랑해.'

그들은 입구의 층계를 내려왔다. 그는 그녀 쪽으로 걸어갔다. 부활절 키스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니었으나, 그저 그녀의 곁에 있고 싶었다.

"예수 부활하셨네!" 마트료나 파블로브나는 고개를 갸우뚱하고 싱글싱글 웃으면서 말했으나, 그 말투는 '오늘이야말로 모두 평등하답니다.'하고 말하는 듯싶었다. 그녀는 조그맣게 똘똘 뭉친 손수건으로 입을 닦고는 그에게로 입술을 내밀었다.

"예수 부활하셨네!"하고 네플류도프는 대답하고 키스를 했다.

그는 카추샤를 돌아다보았다. 그녀는 얼굴을 붉혔지만, 곧 그에게로 다가왔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어요, 드미트리 이바노비치!"

"축복합니다." 그는 말했다. 두 사람은 두 번 키스하고 다시 한 번 더 해도 될까 하며 생각하다가 그럴 필요가 있다고 결심이나 한 것처럼 세 번째 키스를 했다. 그리고는 두 사람 다 방긋 웃었다.

"사제님한테 같이 가지 않겠어?"하고 네플류도프가 물었다.

"아니에요. 드미트리 이바노비치. 잠깐만요." 카추샤는 정말 기쁨에 넘쳐 어쩔 줄 모르는 듯이 사랑에 넘치는 상냥한 사팔뜨기 눈으로 네플류도프의 눈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남녀간의 사랑에는 반드시 그 사랑이 절정에 달하는 순간이 있게 마련인데, 그 순간에는 의식적이고 이성적인 것이라곤 티끌만큼도 없으며 육감적인 것 또한 추후도 없는 법이다. 네플류도프에게 있어서는 부활절의 이 밤이야말로 바로 그러한 순간이었다. 지금 그가 카추샤와의 일을 회상해 볼 때 이 순간이 그 어느 때보다 훨씬 압도적이었다. 그녀의 윤기나는 까맣고 매끈한 머리, 날씬한 처녀다운 허리와 불룩 솟아오른 가슴을 단정하게 감싸고 있는 주름잡은 흰 드레스, 불그스레한 뺨, 반짝이는 검은 눈동자, 이런 것들이 두 가지 특징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것은 순결한 처녀성과 순결한 애정이었다.

그 사랑은 네플류도프에게만 향한 것이 아니라-그는 이것을 알고 있었지만-모든 사람, 모든 것을 향한 사랑이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오직 훌륭한 것에 대한 사랑만이 아니라 그녀가 키스해 준 거지에게까지도 베푸는 그런 사랑이었다.

그녀의 내부에 이러한 사랑이 넘치고 있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그 날 밤부터 그런 사랑을 아침까지 느꼈기 때문이었다.

'아, 만일 모든 것이 그 날 밤 같은 감정에만 젖어 있었더라면! 그렇다, 그 무서운 사건은 바로 부활절 밤이 지난 이튿날 일어나고 말았다!' 하고 그는 이렇게 배심원실 창가에 앉아 옛날을 회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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