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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B> 부활 (13) -톨스토이-

카지모도 2021. 7. 16.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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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그 후 3년 동안 네플류도프는 카추샤를 만나지 못했다. 그녀와 다시 만나게 된 것은 장교로 임관된 네플류도프가 부대로 부임하는 길에 고모네 집에 며칠 묵었을 때였으나, 이제 그는 3년 전 한여름을 이 곳에서 지내던 때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 당시만 해도 그는 모든 선한 일을 위해서는 자기의 생명도 돌보지 않을 만큼 정직하고도 희생 정신이 강한 청년이었으나, 지금의 그는 오직 자신의 향락만 추구하는 속물로 완전한 이기주의자가 되어 있었다. 그에게 있어 그 때는 이 세상이 신비롭게만 생각되었으며, 따라서 그는 기쁨과 감격에 찬 태도로 그 비밀을 풀어 보려고 애를 썼으나, 지금의 그에게는 인생의 모든 것은 단순하고 명백해져서, 자신이 몸을 담은 생활 환경에 따라서 결정되는 셈이었다. 그 당시 그에게 필요하고 중대한 것은 세속적인 관심사나 동료들과의 사회적 과제였다. 그 당시 그에게 있어 여자는 신비스럽고 매혹적인-신비롭기 때문에 매혹적으로 보였지만-존재였지만 지금의 그에게는 여저의 존재-자기 가족이나 친구의 아내를 제외한 모든 여자-는 매우 분명하였다. 즉 여자란 이미 그 동안 경험한 가장 뛰어난 향락 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그 당시는 돈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아서 어머니가 주는 돈의 3분의 1도 모자라지 않았고, 아버지한테서 상속받을 땅도 사양하고 그것을 농민들에게 분배해 줄 용단도 있었으나, 지금은 어머니로부터 매달 받고 있는 1500루블도 부족하여 돈 때문에 벌써 여러 차례 어머니와 싫은 소리를 한 적도 있었다. 그 당시의 그는 정신적 존재를 참된 자아라고 생각했으나, 지금은 건강하고 씩씩하고 동물적인 자아를 자기의 '참모습'으로 여기고 있었다.

이러한 무서운 변화가 일어난 것은 그가 자신을 믿지 않고 남을 믿고 맹종하는 데서 생겨났다. 그가 자신을 믿지 않고 남을 믿게 된 것은, 자신을 믿고 생활한다는 것이 너무나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자기를 믿고 생활하자면, 항상 모든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서 값싼 쾌락만을 찾는 동물적 자아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거꾸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나 남을 믿고 있으면 새삼스레 해결할 일이라곤 아무 것도 없었다. 이미 모든 것은 항상 정신적인 자아를 무시하고, 동물적 자아에 영합하도록 되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자기를 믿고 생활하면 늘 남의 비난만을 감수해야 했지만, 남을 믿고 있으면 주위 사람들의 칭찬을 받을 수가 있었다.

이러한 까닭으로 네플류도프가 신에 대해서 진리에 대해서 부와 빈곤에 대해서 생각하고 읽고 이야기할 때면, 그를 둘러싼 모든 사람들은 이를 그와 어울리지 않는 우스꽝스러운 일로 보았다. 심지어 어머니나 고모까지도 악의 없이 비꼬아서 그를 '우리의 친애하는 철학자님(notre cher philosophe)'이라고 부르곤 했다. 그러나 그가 소설을 읽거나 '외설스런' 이야기를 하거나, 프랑스 극장에서 구경한 저속한 희극 이야기와 재담을 재미있게 늘어놓으면 모두들 손뼉을 치면서 칭찬했었다. 자기의 욕망을 절제할 필요를 느끼고 그가 낡은 외투를 입거나 술을 마시지 않게 되면 모두들 괴상하게 여기고 무슨 과시욕이나 나온 것이라고들 말했다. 그러나 사냥을 하든지, 호화판 서재를 꾸미기 우해서 막대한 돈을 쓰면 사람들은 그 취미를 칭찬하고 그에게 값진 선물을 보냈다. 그가 결혼할 때까지 동정을 지키는 순결한 청년으로 있겠다고 하면 친척들은 그의 건강을 염려했다. 그리고 어머니마저도 그가 어엿한 남자가 되어 어느 친구로부터 프랑스 여자를 빼앗았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 슬퍼하기는커녕 오히려 기뻐했을 정도였다. 그러면서 카추샤와의 에피소드-그가 그 처녀와 결혼할 생각을 가질지도 모른다는 문제에 대해서는 공작 부인인 어머니도 몸서리를 치며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네플류도프가 성년이 되어 아버지로부터 상속받은 약간의 사유 토지를 부당하다고 하여 농민들에게 분배해 주었을 때, 이런 처신은 어미니와 그의 친척들을 깜짝 놀라게 했으며, 그 때부터 그는 걸핏하면 친척들의 비난과 조소의 대상의 되었다. 사람들은 수시로 그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 주었는데, 그것은 토지를 분배받은 농민들은 마을에다 선술집을 셋이나 차려 놓고, 일은 조금도 하지 않아서 재산이 늘어나기는커녕 오히려 가난해졌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네플류도프가 근위대에 들어간 후부터 상류 계급의 동료들과 함께 막대한 돈을 유흥비로 쓰거나 도박으로 탕진하여 엘레나 이바노브나가 은행으로부터 재산의 일부를 찾아와야만 되었을 때도, 그녀는 한 마디의 잔소리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생각으로는 그런 일은 당연한 일일뿐더러 천연두를 예방하기 위하여 우두를 맞는 것과 마찬가지로 젊었을 때 멋진 사회에서 체험을 한다는 것은 오히려 좋은 일이라 했다.

네플류도프도 처음엔 유혹과 싸워 보기도 했으니 그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싸움이었다. 왜냐하면 그 자신이 선한 것으로 믿고 있던 모든 일을 다른 사람들은 악으로 생각하였으며, 반대로 그가 악으로 믿었던 일을 그를 둘러싼 모든 사람들은 선으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네플류도프는 이에 굴복하고 말았으며 자기 자신을 믿는 것은 단념하고 남을 믿게 되었다. 처음에는 참된 자신의 포기에 대하여 불쾌하였으나 그 불쾌감도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다. 때마침 네플류도프는 술과 담배를 입에 대게 되자 그러한 불쾌감도 잊을 수 있었고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해지기까지 했다.

이렇게 하여 네플류도프는 그의 열정적인 본래의 성정대로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장려하는 이 새로운 생활에 몰두하게 되었으며, 다른 무엇을 요구하는 마음속의 소리를 완전히 짓눌러 버리고 말았다. 이와 같은 변화는 그가 페테르부르크로 옮긴 후부터 시작되었으며, 군에 복무함으로써 절절에 달하였다.

일반적으로 군복무라는 것은 인간을 타락시키게 마련이다. 왜냐하면 군에 복무하는 사람들을 완전히 무위한 나태의, 즉 모든 지적인 유익한 행동이 결여된 끌어넣어, 일반적인 인간의 의무로부터 해방시키는 대신, 연대라든가 군복이라든가 군기라든가 하는 규정된 명예만을 내세우고, 한편으로는 타인에 대한 무한한 권력을 부여하며 또 한편으로는 상관에 대한 노예적 복종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군복과 군기에 대한 숭배, 폭력과 살인의 공인 따위로 뒤범벅이 된 군대는 일반적으로 사람을 타락시키는 힘을 갖고 있지만, 더욱이 부유한 명문의 자제들만이 복무하고 있는 선발된 근위 연대에서 볼 수 있는 금권과 황족과의 친분이라는 데서 오는 부패까지 겹치게 되면 그 타락은 이기주의의 완벽한 광적 상태에까지 이르고 마는 것이다. 네플류도프도 군에 복무하여 동료들과 함께 생활을 하게 된 이후로는 그 역시 이런 상태에 빠져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자기가 직접 하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남의 손에 의하여 깔끔하게 재봉되고 손질된 군복을 입고 으리으리한 군모를 쓰고, 역시 남의 손으로 만들어지고 손질되고 제공된 총을 들고, 역시 남의 손으로 길러지고 길들여진 살찐 훌륭한 말을 타고, 자기와 같은 사람들과 함께 훈련이나 사열을 하고, 뛰어다니며 군도를 휘두르며 사격하고, 그리고 남에게 그런 것을 가르치는 것 외에는 별로 하는 일이라고는 없었다. 더욱이 고귀한 사람들-청년과 노인, 황제와 그의 측근자들-까지도 이 일을 시인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찬양하고 또 감사하였다.

게다가 장교 클럽이나 최상급 요정에 모여 먹고 마시기 위하여, 특히 술을 마시기 위하여 출처도 모르는 돈을 물쓰듯이 쓰는 것이 대단하고 좋은 일이라고만 생각하였다. 그러고 나면 연극, 무도회, 여자, 그리고 다시 말을 타고 칼을 휘두르며 훈련에 나서거나, 또 돈을 뿌리고, 술, 도박, 여자-이런 생활이 계속되었다.

특히 이런 생활이 군인들에게 치명적인 작용을 미치는 것은 바로 군인이 아닌 사람이 이런 생활을 한다면 내심 그런 생활을 수치스럽게 여기게 되는데, 군인은 이런 생활을 당연시하며 때로는 자랑으로 여기고 자만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전시에는 더욱 그러하였다. 네플류도프도 마침 터키에 선전 포고를 한 직후 군에 복무하였으므로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전쟁터에서 생명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으므로 이러한 방종한 쾌락주의가 마땅히 허용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필요 불가결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이런 생활을 영위한다.'

네플류도프도 그 때에는 막연하게나마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특히 그 당시 그는, 여태껏 자기 스스로 지켜 온 모든 도덕적 규범에서 해방되었으므로, 열광적인 환희와 만성적인 이기주의의 광적 상태 속에 빠져 끊임없이 헤매었다.

그가 3년 만에 고모네 집에 들렀을 때, 그는 이미 이러한 상태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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