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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B> 부활 (2부, 35) -톨스토이-

카지모도 2021. 10. 21.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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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죄수의 행렬은 꽤 길었기 때문에 선두가 시야로부터 사라졌을 때에야 비로소 배낭과 병약자를 태운 짐마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짐마차가 움직이자, 네플류도프는 기다리고 있던 승합 마차를 집어타고 대열을 앞질러 가라고 일렀다. 그것은 남자 죄수들 속에서 안면이 있는 죄수가 없나 알아보기도 하고, 여자 죄수들 속에서 마슬로바를 찾아내어 그녀에게 보낸 물건을 받았는가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찌는 듯이 무더운 날씨였다. 바람 한점 없었다. 천여 개의 발길이 일으키는 먼지구름은 길 한복판을 걸어가는 죄수들의 머리 위를 뽀얗게 맴돌았다. 죄수들은 빠른 걸음으로 걷고 있었기 때문에 네플류도프가 탄 마차의 느린 속도의 말로는 쉽게 그들을 앞지를 수가 없었다. 대열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이 낯설고 괴상한 인간들은 하나같이 똑같은 복장을 하고, 같은 신발을 신은 수천 개의 발을 보조에 맞추어 가며, 마치 기운을 돋우려는 듯이 팔을 흔들며 걸어갔다. 그토록 많은 인간이 그토록 똑같은 복장을 하고 그토록 기묘한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을 보자니까, 무슨 무서운 생물과 같이 느껴졌다. 그러나 이들 속에서 살인범 표도로프를, 유형수 속에서 익살꾼 오호틴과, 그리고 언젠가 힘을 빌려 달라고 부탁해 온 부랑인을 발견하자, 그의 이러한 인상은 곧 사라지고 말았다.

거의 모든 죄수들이 그들 옆을 지나가는 승합 마차를 바라보며 타고 있는 신사를 곁눈질했다. 표도로프는 네플류도프를 알아보았다. 신호로 고개를 끄덕해 보였고 오호틴은 눈을 껌벅거렸다. 그러나 그들은 혼이 날까봐 인사를 하지 않았다. 여죄수들의 대열과 나란히 가게 되자, 네플류도프는 곧 마슬로바를 찾아냈다. 그녀는 두 번째 줄에 있었다. 맨 끝에는 얼굴이 붉고 다리가 짧으며 눈이 까만 못생긴 여자가 있었는데 -- 옷자락을 허리띠에 찔러넣고 있었다 -- 바로 그 멋쟁이 여자였다. 다음은 간신히 발을 끌고 가는 애를 밴 여자였고, 그 셋째가 마슬로바였다. 그녀는 배낭을 메고 앞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 얼굴에는 조용하고 단호한 결의가 나타나 있었다. 그녀와 같은 줄의 네 번째 여자는 짧은 죄수복에 시골 여자처럼 머릿수건을 치켜쓴, 씩씩하게 걸어가고 젊고 아름다운 여자였다. 페도샤였다. 네플류도프는 마차에서 내려, 차입한 물건과 마슬로바의 건강을 알아보고 싶어서 여죄수들 쪽으로 다가갔다. 그랬더니 옆에서 걸어가던 호송병 하사관이 이를 보고 급히 달려왔다.

"이봐요, 행렬에 접근하면 안 됩니다. 금지되어 있습니다." 그는 다가오면서 외쳤다.

곁에 가까이 와서 그가 네플류도프임을 알자(감옥에서는 누구나 네플류도프를 알고 있었다.), 하사관은 거수 경례를 하고 옆에 멈춰 서서 말했다.

"지금은 안 됩니다. 역에 가서라면 모르겠습니다. 여기선 안 됩니다. 이것 봐, 처지면 안돼! 어서 걸엇!" 그는 이렇게 죄수들에게 외쳐 대고는 이런 더운 날씨에 번쩍거리는 새 장화를 신고 위엄을 부리면서 재빨리 자기자리로 되돌아갔다.

네플류도프는 포석길로 돌아가서 마부에게 뒤에서 따라오라고 이르고 대열을 지켜보면서 걸어갔다. 이 대열이 지나가는 거리거리에서 동정과 공포가 뒤섞인 눈초리가 죄수들에게 쏟아졌다. 마차를 타고 가던 사람들은 문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그들이 안 보일 때까지 지켜보았다. 걸어가던 사람들은 발길을 멈추고 놀라움과 두려움이 섞인 표정으로 이 을씨년스러운 광경을 보고 있었다. 몇 사람은 다가와서 그들에게 적선을 베푸는 사람도 있었는데 그것은 호위병이 받았다. 그 중에는 마치 최면술에 걸린 사람처럼 대열을 따라가다가 멈춰 서서 고개를 흔들며 눈으로만 전송하는 사람도 있었다. 여기저기 현관이나 문에서 서로 부르면서 달려나오기도 하고, 창문에서 고개를 내민 채 꼼짝 않고 말없이 이 무서운 행렬을 보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어느 네거리에서 이 행렬 때문에 아주 호화로운 사륜 마차가 지나가다가 멈추어 서게 되었다. 마부석에는 얼굴이 번들거리고 엉덩이가 큰, 등에 단추가 두 줄이나 달린 옷을 입은 마부가 앉아 있었다. 마차 뒷자리에는 부부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아내는 마르고 창백한 여인으로 밝은 색의 모자와 화려한 양산을 쓰고 있었다. 남편은 실크햇에 밝은 색의 훌륭한 여름 코트를 입고 있었다. 맞은편 앞자리에는 그들의 아이들이 앉아 있었다. 금발머리를 늘어뜨린, 역시 화려한 양산을 쓴 꽃같이 어여쁜 소녀와, 가늘고 긴 목과 광대뼈가 튀어나온, 긴 리본을 단 수병모를 쓴 여덟 살쯤 되어 보이는 소년이었다. 남자는 적당한 때를 틈타 죄수들 행렬에서 발이 묶이기 전에 빨리 대열을 앞질러 가지 못했다고 화가 나서 마부에게 야단을 쳤으며, 여자는 불쾌한 듯 눈을 가늘게 뜨고 이맛살을 찌푸리면서 비단 양식으로 거의 얼굴을 가리다시피하여 햇볕과 먼지를 막고 있었다. 궁둥이가 큼직한 마부는 이 길로 가라고 시켜 놓고 이제 와서 부당하게 비난을 퍼붓는 주인의 잔소리를 들으면서 얼굴을 찡그렸다. 그는 굴레 아래에서 게거품을 내뿜는, 번들번들거리는 검정 수말이 달려가려는 것을 간신히 잡아 두고 있었다.

경찰은 이 호화로운 마차의 주인을 위해서 죄수들을 잠시 멈추고 마차를 통과시키려고 했지만, 이 대열에는 그 어떤 부귀한 신사라도 감히 침범할 수 없는 침통한 엄숙함이 서려 있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그는 부에 대한 경의의 표시로서 경례만 하고, 만일의 경우에는 마차에 타고 있는 사람들을 보호하겠다는 듯이 죄수들을 엄한 눈초리로 노려 보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 때문에 마차는 대열이 다 지나갈 때까지 기다리지 않을 수 없었으므로, 배낭과 병약자들을 실은 마지막 짐마차가 요란스럽게 지나갔을 때에야 가까스로 움직일 수가 있었다. 마차에 타고 있던 신경질적인 여자는 겨우 울음을 참고 있었으나, 이 호화로운 사륜 마차를 보자 울음을 터뜨렸다. 이 때 마부가 고삐를 살짝 늦추자 두 필의 검정 말은 포장길을 발굽 소리도 요란하게 고무바퀴 위에서 경쾌하게 흔들리는 사륜 마차를 끌고 별장을 향해 달려갔다. 남편과 아내와 딸과 그리고 목이 가늘고 광대뼈가 불거진 소년은 그들의 별장으로 놀러 가는 길이었다. 부모는 방금 죄수들의 대열에 대해서 아이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들은 지금 본 광경의 의미를 제각기 스스로 판단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소녀는 부모의 표정을 보고, 그 사람들은 자기네 부모나 친척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나쁜 사람들이었기에 그런 대우를 받지 않으면 안 되었던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소녀는 그 대열이 무서웠으므로 그 대열이 멀리 사라져 가자 몹시 기뻐했다.

그러나 눈도 깜빡 않고 죄수들의 행렬을 바라보고 있던, 목이 길고 가는 소년은 이 문제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들도 자기나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인간이며, 그러므로 누군가 해서는 안 될 나쁜 짓을 그들에 대해서 한 것이라고, 마치 신에게서 계시라도 받은 듯 조금도 의심치 않고 믿었다. 죄수들이 불쌍해졌으며, 동시에 쇠사슬에 묶이고 머리를 깎인 사람이나, 그들에게 쇠사슬을 채우고 머리를 깎은 사람이나, 다같이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는 곧 울음이 터질 듯이 차츰 입술을 오므렸지만, 이런 때 우는 것을 창피한 일이라고 생각했으므로 울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